체사리우스 아빠스의 수도원에 한 수사가 있었는데, 그 수사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수사들과 똑같은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사의 성덕이 얼마나 높았던지,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아픈 사람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들을 보면서, 그가 다른 수사들보다 더 모범적인 삶을 산 것이 아니었음을 안, 수도원장 체사리우스 아빠스가 어느 날 이 수사에게 그런 기적을 일어나게 하는 성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수사는 자기도 왜 그런 능력이 생기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본인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스가 물었다. "수사님 무슨 특별한 수덕행위를 쌓고 있는 게 아닌가요? 그게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원장 수사님! 뭐 제가 특별히 닦고 있는 수덕행위란 없읍니다. 다만 저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열심히 따르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수도생활을 하는 것뿐인데, 하느님께서는 제 소원을 들어 주시어, 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은총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일이 잘된다고 해서 제 마음이 기쁘지도 않고, 불행이 닥쳤다 해도 제 마음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수도원장이 되물었다. "얼마 전에 강도 떼가 우리 수도원을 습격해서, 한바탕 털어간 일이 있지 않았소. 그 강도들이 우리 식량을 모조리 털어 가고, 가축은 있는 대로 몽땅 몰고 가지 않았소. 그것 뿐인가요? 그자들이 떠나면서 창고에 불을 질러 창고가 다 타버리지 않았소? 그런데 이 일로 해서 수사님은 속상하지 않았나요?" "예. 원장 수사님!" 그 수사는 이렇게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속상하기는커녕, 저는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했는걸요. 저는 모든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늘 이렇게 하느님께 감사하는 버릇을 들였거든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간에, 우리의 선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저는 철저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늘 평화롭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영합하며 살아가는 그 수사의 수덕을 알고 난 후, 원장 수사님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 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과 내적 담화를 하는 어떤 외국 신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수님! 저를 모조리 차지하세요"라고 말했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너를 차지하고 있으며, 네 원수들까지도 내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의 성덕의 진보와 영적 성숙과 구원을 위해, 원수들까지도 이용하시고 들어 서신다는 내용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매사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고찰하고 순명해야 한다. 성 필립보 네리는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주님! 감사합니다. 바로 이 순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순명할 때, 바로 그 수사에게서처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장 42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