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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 미쳤다고 하는 것 봤냐”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받으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될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그 절차가 매우 간단하고 신속하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 정신보건법이 보호의무자 2인 (2인이 없을 때에는 1인)이 동의하고 의사 한 사람만 진단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제24조). 보호의무자에는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이 해당한다. 그럼 이 상황을 따라가 보자.1)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실제로 정신질환이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가족 중 누군가는 이 남자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킬 방법을 찾는다. 129번을 눌러 응급차량을 부른다. 오래지 않아 응급이송단2)이 출동해 이 남자를 강제로 구급차에 집어넣는다. 그저 아프니 병원에 가자는 말만 할 뿐이다. 때로 저항을 심하게 하다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3)에서는, 이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 한 사람이 직접 가족인 척하며 다른 기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응급이송차량을 불러봤다. 구급차를 타고 온 건장한 남성 두 사람은 실제 전화를 한 사람이 가족은 맞는지,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람은 정말 응급하게 이송되어야 할 정도로 질환이 있기는 한지 등을 조금도 살펴보지 않고 병원으로 끌어갔다. 저항하는 기자의 팔을 뒤로 꺾고 차량 구석에 머리를 들이 박았다.
응급차량은 이 남자를 태우고 정신병원까지 이동한다. 가까운 정신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그동안 차 안에서 온몸이 묶여 있거나 제압당한 채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신병원 앞에 내리면 병원 직원이 나와 인계받고, 환자복을 준다. 직원도 환자가 왜 끌려왔는지 묻지 않는다. 의사가 잠시 면담한다. 아무리 나는 멀쩡하다고, 혹은 우울증이 약간 있지만 이렇게 강제로 입원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해도, “미친놈은 자기가 미쳤다고 하지 않는다.”라는 저 강력한 생각은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저항을 단념하고 차분하게 있다면 입원서류에 사인을 하고 폐쇄된 병실로 안내되겠지만, 갑자기 수 킬로미터에서 많게는 수백 킬로미터를 끌려온 사람이 차분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소리라도 지르면, 의사는 격리, 강박을 지시할 수 있다. 정신보건법 제46조는 치료가 필요하고 환자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을 때 환자를 보호실이라 불리는 독방에 격리시키거나 온몸을 묶는 강박이 가능하도록 규정해놨기 때문이다. 멀리서 끌려온 그는 독방에 격리되고, 온몸이 묶인다. 계속 저항하면 안정제가 강제로 투여된다. (이 안정제는 환자들에게 일명 “코끼리 주사”로 불린다) 계속 저항하거나 저항할 기미가 보이면 화장실도 갈 수 없다. 보호사나 간호사가 들어와 소변기를 받쳐준다. 그 동안 CCTV는 보호실 내부를 관찰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수치스러워 여러 시간 용변을 참는다. 하지만 수액이 링거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진다.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우리의 훌륭한 입법자들이 저와 같은 상황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위와 같이 입원된 사람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었다. 하나는 정신보건법상의 ‘퇴원심사청구’로서, 입원된 환자는 해당 정신병원을 관할하는 지역의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다)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다음은 인신보호법에 따라 법원에 ‘인신구제청구’를 하는 일이다. 두 제도를 이용하면 환자를 입원시킨 그 병원의 의사 1인이 아닌, 독립적인 제3자에 의한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 지난 3년간 이 제도를 통해 구제를 요청한 전체 환자의 10% 가량이 퇴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제도는 물론 도움이 된다. 그러나 청구서를 직접 작성하고, 정신보건심판위원회나 법원에 편지를 직접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영문도 모른 채 멀리서 끌려왔고, 온몸을 강박 당했고, CCTV 아래에서 소변도 봤고, 원하지 않는 약물도 투여 받았다. 그 상황에서 정신을 추스르고 저 제도가 있음을 파악한 뒤에 병원 직원에게 발송을 부탁해야 한다. 병원 직원들이 발송하지 않고 편지를 갖다 버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구제청구를 했다는 사실이 병원에 알려질 수밖에 없으므로 환자는 늘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우려하며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편지가 법원에 도착했다고 해보자. 인신보호법은 그 규칙에서 2주 안에 재판을 진행하라고 명시한다. 2주 정도에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혹 운 좋게 진행이 되어 판사가 신속하게 퇴원명령(수용해제결정)을 내렸다고 가정하자. 강제입원 당한 후 청구서를 작성하고, 발송하고, 법원이 접수하고, 심리하고, 재판해서 결정문을 병원장이 받아볼 때쯤 시간은 얼마나 흘러있을까? 아마 빨라도 한 달은 족히 지나갈 터이다.
이제 이 남자는 병원 문 밖을 나올 수 있다. 해방의 날이 온 것이다. 한 달간 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가끔은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병원 정문 앞에 다시 응급구조대가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저희랑 같이 가시지요.” 그는 다시 다른 병원으로 끌려간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다시 과정은 반복된다. 편지를 쓰고, 청구서를 보내고, 법원의 재판을 받고.... 이른바 ‘회전문’ 입원으로 인한 장기입원 현상은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나는 특정한 정신질환이 발병한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한 인식이 없을 경우, 재빨리 그 의사에 반해서라도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병의 정도, 실제 외래진료가 아닌 강제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여부, 필요하다면 얼마간 필요한지에 대한 의료적, 사회복지적 고려를 전혀 엄밀히 검토하지 않는 강제입원이 허용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나라의 강제입원 비율은 75%에 이르는데, 이는 미국이나 일본, 이탈리아 등과 비교할 때 5배가 넘는 수치다. 우리나라가 유독 강제입원을 당해야 할 만큼 심각한 정신질환자가 많은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왜 이런 현실이 지속되는가?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나는 모든 정신병원 입원과정이 이하의 과정과 같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래의 사례 역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사람들의 증언, 언론의 보도, 법원의 판결문,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등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드물지 않은 현상임은 틀림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래의 과정과 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제도의 ‘구조’에 주목해야한다.
각주 2) 이들은 강아지가 하수도에 빠질 때조차 달려가 성의껏 구출해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119 구조대가 아니다. 이들은 민간 사업자들로 구성된다.
각주 3) 2014년 10월 26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은 "14번이나 강제입원"이라는 제목으로 강제입원 문제를 다뤘다. (MBC에서 바로보기 Link 열기)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김원영. 서른 살이 넘었다. 장애, 연극, 법에 관심을 두고 산다. 골형성부전증으로 15년간 집에서만 살았으나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 가방끈이 길다. 친절하지 않은 편이나 친밀한 친구들은 몇 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