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4]오수에 불어오는 ‘시(詩)의 바람’
‘개나무골’ 오수에 ‘시(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운율(음악적 리듬)에 맞춰 시청각적인 언어를 압축하여 여운이 남도록 빚어내는 언어라 하면 크게 틀린 정의는 아닐 터. 설화로 내려오던 1천년 전의 의로운 오수개 이야기를 들었다치자. 작가(시인)들의 눈은 제각각 남달라서 같이 보고, 같이 읽고, 같이 들었어도, 그의 소질에 따라 시, 수필, 소설, 그림이나 음악 등으로 표출이 될 것이다. 한 시인이 불과 40-50년 전의 오수 오일장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 등으로부터 듣고, 그 영광과 쇠락에 대해 시를 쓴다. 토착 오수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니 필이 꽂혀 감정을 몇 번이고 추슬러 멋드러진 운문(韻文.시)를 남긴다. 문재(文才) 없는 한 생활글작가도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체리암 이야기에 ‘떠나는 자와 머무는 자’들과 감정이입이 돼 에세이를 남길 수 있다. 노벨문학상으로 빛나는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하여 그 아픈 마음을 수 년 동안 얼마나 묵새겼을까? 나는 ‘감정의 앙금’을 털어내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앙금을 찌꺼기나 침전물이 아니고 ‘앙꼬’라 생각하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광주항쟁의 비극을 듣고 아무 감정이 없다면 그는 예술가가 아니다.
아무튼, 며칠 전 ‘북방의 시인’으로 유명한 중견 시인(곽효환)이 카톡을 보내왔다. 전주 태생이나 원적이 오수면 주천리이다. ‘오수’관련한 연작시 중 첫 편 <오수 오일장>이 시 전문잡지 <애지>에 실렸단다. 이 아니 좋은 일인가? 호흡을 가다듬고 읽어본다.
역참과 찰방이 있었고
전주나 남원, 곡성, 구례, 순천으로 혹은
장수나 순창으로 가려면 거쳐 가야 했던
교통 요지 오수에
장이 서는 5일 또는 10일이면
할머니 손을 꼭 붙잡은 어린 나는
휘둥그레진 눈에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랐다
오수 망루에서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풀무질과 칼 벼르는 소리 가득한 대장간을 힐끗거리고
옷감 끊는 사람들과 흥정이 오가는 포목전을 기웃거리고
중절모에서 빨간 털모자까지
온갖 모자를 파는 모자전을 곁눈질하고
꽃신 비단신 고무신 파는 신발가게 앞에 멈춰서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고
그릇 소반 비누 양초 등 온갖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점과
손님 부르는 소리 가득한 장돌뱅이들의 난전은
늘 흥성흥성했다
소와 말 같은 가축 거래를 마친 어른들은
국밥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성명하고
커다란 쇠 가위를 현란하게 돌리고 부딪치는
엿장수에게 산 엿가락을
볼이 터지라고 물고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요란한 북과 심벌즈 소리와 함께 원숭이가 흥을 돋우는 작은 공연과
연신 주문 외우듯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며 붕어 그림이 그려진
약봉지를 흔들며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의 의심스럽고 걸쭉하고
마법 같은 입담에 나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고
더 많은 근동 사람들로 차고 넘쳐 붐비던
전국에서 가장 큰 면 소재지
근방 제일의 오일장터 거리는
이제 한때의 추억으로 남아
몸을 부딪치며 지나다니는 사람도
장날 따라 옮겨 다디넌 장돌뱅이도
큰 소리로 호객하던 장사꾼도 사라지고
늙은이들과 더 나이 든 늙은이들이
느린 걸음으로 드문드문 오고 또 간다
근동에서 가장 컸다는 오수 오일장의 정취와 정서가 그려지시는가?
이렇게 여실하게 글로 그려내는 것을 보면 시인은 참 재주꾼이다.
화가들은 그림으로 그리고, 음악가들은 소리로 나타낼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드문드문(‘뜨문뜨문’이 맞다) 오고 또 가는’‘늙은이들과 더 나이 든 늙은이들’에게 이 시 한 편을 읽어드리자. 아마도 옛 추억에 많이 아련해 할 것이다. 늙은 눈에 이슬같은 눈물이 맺히기도 할 것이다.
기특하고 고맙고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연작으로 썼다는 시인의 다른 시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