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던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는 병실 맞은 편 방에도 6 개의 침대가 있고
그 하나에 나이는 이십여 년 아래지만 내가 친구처럼 여기는 전신마비
시인의 반열에 오른 상이군인 한 사람이 있어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배우려는
의도를 말했더니 유쾌히 받아들여줘 친구처럼 가까워졌고 이런저런 일로 하루에도
몇 차례 다녀오곤 했다.
그 방을 드나들기 시작한지 며칠 안됐을 때 일이다.
그 사람을 지키며 돌보는 갸름한 60 대 여인이 있어 혹시 그
어머니인지 물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내가 __ 엄마냐고 묻는다” 라며
병실 사람들에게 내 말을 뿌렸다. 자신이 그리 나이 들어 보이느냐, 어이없다는 투로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 했다.
그녀가 없을 때 그 방에 있는 다른 환자를 돌보는 건장한 체격의 사십대 남자
에게 그녀가 그 사람의 엄마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냐는 투박한 목소리의 핀잔이 돌아왔다.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하지 않고 왜 바른 대답을 안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그 사람들을 만나면 직접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말을 건네기가
어려워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사람 다 보수를 받고 전문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전문 간병인이었다.
그 남자 간병인은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뼈대가 굵고 매우 단단해 보였다.
내 어머님까지 모두 네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의 다른 환자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각각 아들과 손녀의 간병을 받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맞은 편 방 그 남자 간병인이
처음 보았을 때 자신에게 반말을 해와 나이를 따져봤더니 자신보다 연하여서 고치게 한
조금 건방진 사람이라는 식으로 말했고 자신의 어머님을 주말에만 와서 돌보는 한 중년
여성은 그 사람의 생김새가 옛 농촌 머슴 같다고 약간 비하하는 말을 했다.
내 마음 속 그 사람은 몇 달 동안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것을 기화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조심해야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방은 우리 방 출입문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고
상이군인 친구를 만나러 오가는 길에 얼굴을 자주 보아야하니 지나가는 인사는 하고 지냈다.
그러다 내 손에 들고 가는 먹을 것이 조금 넉넉할 때는 그 방 사람들에게 고루 하나씩
나누어주는 일도 두어 번 있었다. 그가 나를 백안시하지만 그 때문에 내가 불쾌한 감정을
표시한 적은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돌보는 환자가 한적한 호숫가에 있어 환경이 좋은 수도권
어느 지방병원으로 옮기게 되어 함께 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머님도 옮겨야할 상황에 있었고
그 병원은 내가 선택한 몇 개 후보 병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게 나도 그 병원을 고려하고 있어서 가 있게 되면 한번 들려 현지 점검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면 잘 안내해주겠다고 그가 흔쾌히 대답했다.
그는 옮기기 며칠 전 자기네 병실은 물론 우리 병실에 까지 맛있는 닭고기를 한
마리씩 사줬다. 이 병원에는 병실에 함께 오래 머물다 먼저 퇴원하는 사람이 그동안 친하게
지낸 이웃 병상 사람들에게 가볍게 한턱내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처럼 다소 왕래가
있었고 음식이 넉넉할 때 한, 두 번 서로 주고받는 이웃 병실에 까지 한턱내는 일은 거의
없어서 떠나는 인심이 후하고 이날 먹을 복이 좋다는 느낌을 줬다.
떠난 지 한 달이 채 안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이 병원에 나타났다.
그 동안 미처 그곳 병원을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그를 만나 들어보니 그 환자가 갑자기 병이
크게 도져 이곳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마침 그를 만난 김에 궁금하던
그 호숫가 병원의 실제 상황이 어떠했는지 들으면서 마침 점심시간을 맞아 병원 인근 식당에
데려가 반주도 한 잔 곁들여 점심을 함께 먹었다.
말할 필요 없이 한 끼 음식을 함께 먹고 반주까지 곁들이게 되면 평소에 하지 않던 여러 신변
이야기까지 오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친근감을 느껴 서로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번 경우에도
그는 자신이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말로 설득하기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성격으로 여성이나 약자에겐 도움을 주고 부당한 강자에겐 자신의 목에 칼이
들이닥쳐도 싸운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좀 거친 사람이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정의를 위해 불의와 싸우는 정직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지난번 이 병원을 떠나기 전까지 그도 거의 전신마비 상태로 뼈와 가죽만 남아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돌아눕지도 못하는 같은 방의 그 상이군인을 형이라 부르며 식사할 때 침대에서
내려 의자에 앉히기, 목욕하러 갈 때와 물리치료 등 치료 받으러 다닐 때 이동용 카트에
옮겨 눕히기 등을 거의 매번 도와주면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어느 날 그 상이군인은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끊임없이 머리를 쓰며 미워한다고
생각하면서 무척 싫어하고 미워하는 같은 방의 다른 직업 간병인 여자에게 자신이 그 여자에
대해 한 속에말을 알려주고 문자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줘 자신을 곤경에 빠지게 했다고 하면서
갑자기 그에게 증오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을 키워갔다.
다시 이 병원에 돌아온 그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동정심을 가지고 오래 도와주었던
그 상이군인으로 부터 근거 없는 오해를 받아 미움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상이군인의 미움을 받는 같은 방의 여자 간병인과 이 남자 간병인 둘 다 비교적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들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작당하여 연약한 상이군인을 괴롭혀 이익을
추구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당신의 성격이 올곧음을 믿게 됐으며 그 사람이 뭔가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니 힘은
없지만 내가 그를 최대한 설득하여 생각을 고치도록 노력하겠다고 그에게 약속했다.
돌보는 환자가 보호자나 간병인의 상주를 허용하지 않는 중환자실에 입원중이어서 그는
하루 한 차례만 면회하여 상태를 살피고 환자 가족들에게 보고하기만 하면 되어 그 뒤에
자주 아는 사람이 많고 익숙한 옛 병실 주위를 드나들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나에게
자신이 점심식사를 내겠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전에 내가 사준 점심보다 더 넉넉한 식사를
마련해줬다.
그 뒤 십 여일쯤 지나서 그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나와 우리 방 옆 병실에 들어왔다.
그가 옆 병실에 상주하게 되면서 그와 나는 더욱 자주 짬짬이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병실 안에서 식사도 함께 했다.
자주 방문하면서 전에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돌보는 환자를 축적된
지식과 숙련된 기술로 편안하고 효과적으로 돌봐서 치유 속도를 완연히 빠르게 할 뿐 아니라
병실 자기 구역 공간의 청소, 물품의 정리정돈에서 마치 군대에서 검열받기 위해 엄청 공
들여 각을 맞추고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닦은 것처럼 놀랄만큼 완벽하게 정돈된 상태로 늘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전에 음식점을 경영하며 요리를 했던 경력을 살려 같은
병실 안 보호자와 간병인들의 식사를 비빔밥을 비비거나 간단한 찌게를 맛있게 조리하여
함께 나눠 먹음으로써 병실 안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여러 해 전부터 우유에 유산균을
배양하여 깨끗한 플레인 요구르트를 만들어온 실력을 바탕으로 이웃 병실의 지인들에게 까지
날마다 나눠주며 환자를 들어 옮기는 등 육체적으로 힘을 쓸 일이 있으면 자진해서 달려가고
초보자들에게 간병지식이 필요할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조건없이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와 나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아직 앞 방 상이군인이 워낙 완고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은 줄로만 철석 같이 믿어서
그들 사이에 놓인 간격을 좁히진 못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람, 오히려 언제든 적이 될 가능성이 많았던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첫 인상과 한, 두 번의 만남에
의하여 얻어지는 상대에 대한 인식은 언제든 변화될 수 있는 작은 부분으로 처음에 좋게
본 사람이 나쁘게 바뀌거나 그 반대일 경우도 많아서 사람을 쉽게 단정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차를 몰고 48 번 국도를 따라 강화로 가던 길 김포 통진 읍내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는 어떤 차 측면에 영문으로 쓰여 있던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이 기억되는 문장이 생각났다.
Love is to wait with patience. 사랑은 오래 참으며 기다려주는 것,
Love is to have faith. 상대방의 본성이 바르고 착하다는 것을 믿는 것.
이번 일을 계기로 세상살이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런 신념을 가지고 대해
상대방의 안 좋은 점을 기억하고 단정하기보다 그의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잘못을 이해해주며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진실을
되새기고 생활 속에서 살려야겠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화내지 않으며
사랑은 오래 기다리고
사랑은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
첫댓글 부모님 병중에 계셔서 맘 아프시겠습니다 ~모친께서 속히 쾌유 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힘내셔요~
성품이 을 다 열어보면 비단결 아니한 사람 없다던데 군인이 누워 있으니 안타깝네요...
이화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후훗~
어데서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면 공부할 것이 생깁니다.
나이 쉰이 넘었으나 아직도 배울 게 많은 걸 보며 죽을 때까지 배워도 모자라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좋은 분들도 많으니 더더욱 좋은 관계 이어가시길요~^^*
이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녜ㅔ!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람에대한 선입견 ~~참 무서울 수도 있더라구요 .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있는것 같아요 ..
알고나면 ~~~다좋은 사람들 ㅇ우리이웃들 ~~~좋은 사람들이예요 ...
'알고 보면 다 좋은 사람들' 고마우신 말씀 감사합니다.
님의 몸도 마음도 힘들 실텐데 이렇게 긴 글을 주시니..
모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함께하는 삶이니 또한 감사 드리지요.
마음 또한 평온 하시어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엄니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사람은 걷으로 보고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풍기는 모습에서 흔히들 애기 하지요,
그러나 상대방이 어떻케 대해 주느냐에 또 다를수도 있지요,
좋은 사람들이 옆에는 많이 있음을 느낌니다, 조금은 벗어 낮다 하드라도
또 다른 좋은 모습들이 다른 누군가에는 있을거라 생각 합니다.
돌콩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새기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우리는 남에 대하여 필요 이상 알려는 버릇이 있는 듯합니다.
있는 그대로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