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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요, 배고파요, 배가 고파-요"
책상 위에 턱을 받친 채 내가 칭얼대자 은주는 그제 서야 책에서 눈을 돌렸다. 나를 바라보는 검은 눈은 맑았고 나에게 말하는 입가에는 조그만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어를 낚은 기분이어서 절로 기분이 환해졌다.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은주가 입술을 벌렸고, 그 속에서 흘러나온 건 뜻밖에도 노래였다.
"배고프면 식당 가서 밥을 먹지요-"
한껏 목소리를 낮춘 그 노랫소리에 나는 와락 웃음을 터뜨렸고, 곧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원곡은 분명히 "배아파요, 배아파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면 병원 가서 주사 맞지요-"였을 것이다. 12년 전에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완전히 바이바이! 결별을 고한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12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 대학 교정, 도서관에서 친구와 서로 노래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생의 휘어짐이 웃기고도 정겹다,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도 당당하게 개사까지 해가면서.
내가 그 노래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럼에도 좀 전에 내가 언급한 그 부분, 즉 "배아파요, 배아파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면 병원 가서 주사 맞지요-"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노래에 얽힌 내 어이없는 사연 때문일 것이다. 사연이라 하기에는 그 명칭이 너무 거창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안 그래도 어휘력이 딸려 은주와의 말싸움에서 항상 "loser"을 도맡아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것에 붙일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하겠다. 사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고, 아무려면 어떠한가.
아무튼 그 날은 유치원에서 거의 연중행사라 할 수 있는 <병원놀이>를 하는 날이었는데, 나는 그 날 아빠 와이셔츠를 빌려 입고 머리에는 전날 도화지로 만든 헤드 미러를 쓴 채 근엄하게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사실 몸이 워낙 건강하여 병원에 갈 일은 별로 없었지만, 사회적인 통념이나 가치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부는 어린 나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매력으로 다가왔으므로 반에서 얼마 되지 않는 의사, 것도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간호사로 뽑힌 것에 반해 당당히 여의사로서 청진기를 귀에 꼽게 된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으므로 나는 정말 의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근엄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줄을 지어 서 있던 아이들이 와아-하고 여기저기로 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놀이에 즐거움을 느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시장통을 기웃거리듯 병원에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아픈 듯이 머리 내지는 배를 움켜쥐고 병원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들도 신이 나서 다 죽어 가는 시늉을 하며 자기의 반도 안 되는 애들 앞에서 고개를 잔뜩 숙이고 예, 예 하며 상담을 하는데, 나로서는 그것이 어떤 희극보다도 재미있게 느껴져 열중하게 되었다.
나에게 온 첫 손님은 다른 병원들보다 한참 늦게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맡고 있는 병원은 <내과>였는데, 그것이 조무래기 애들한테 어렵게 다가왔을 것이란 사실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치과>라느니 <안과>라느니 하는, 세상 경험 없는 일곱 살배기 애들도 한 두 번 정도는 찾아가 봤을 만한 곳들은 북새통을 이루는데 <내과>는 막상 찾아가 봤자 병명을 뭐라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므로 아예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것이었다. 나도, 내 옆에 서 있던 간호사 애들도 슬슬 지루해질 즈음이었다.
그 애의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든 나서길 좋아하고 잘난 체 하기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였다는 점에서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의 아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가 일부러 <내과>를 고른 이유도 그래서 이해가 갔다. 뭔가 조금이라도 더 알면 그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남에게 알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안달을 내며 조급해하고 그로 인한 만족을 즐기는 부류는 성별로 분류하고 나이로 분류하고 직업으로 분류하고 암만 분류해보아도 어떤 집단에서건 꼭 눈에 띄게 마련인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도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를 싫어했고, 선생님마저도 "하여간에 걔는 뭔 말만 하려고 하면 나서서 피곤해요"하는 식으로 다른 선생님들한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그 아이를 응징할 어떤 자격이라는 게 있는 셈이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뭔가 동화를 들려주려고 하면 동화라는 문학적 장르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허점이라든가 비현실적인 사항들을 꼭 들추어내어 흥을 떨어뜨리는 것에 대한 피해보상이었다. 어려운 말로 애써 설명해 보려 하지만, 사실은 그저 곯려주고 싶어했다는 게 정답이리라.
"어디가 아프세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내가 물었고 그 애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신음소리처럼 내뱉었다. 내 눈엔 그것도 못마땅하게 비쳐졌다.
"……배, 배가……."
"그러세요? 간호사!"
"예, 선생님."
간호사 역을 맡은 애들도 처음으로 방문한 환자에 신이 난 모양이었는지 힘차게 대답했지만, 걔들도 이 환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환자는 대놓고 무시한 채 나에게로 눈을 돌렸다. 손을 깍지 낀 채 나는 "얼른 이 환자 분 바지 벗겨 드려"라고,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야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은 천연덕스런 얼굴로 해대었고, 그 아이들은 그 애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야한 행동을 아주 활발한 동작으로 서슴없이 시도했으며, 그 남자아이는 그 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치욕스런 짓을 당해야 했다.
주위의 시선이 순간 이쪽으로 확 몰린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응당 이러한 일을 막아야 하는 선생님들조차 계속 어디 아픈 시늉만을 하는 것에 열중할 뿐 말릴 생각도 안 한다는 게 명백했다. 선생님들 마음 속에도 밉살스럽게 사사건건 어른스러운 체 하려 드는 그 애가 우스운 꼴 당하게 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었을 거라는 게 틀림없었다. 모두의 관조와 관망 속에서 그 아이는 오리알 같이 새하얗고 둥근 엉덩이를 까고서 핏기 없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노래했다.
"배아파요, 배아파요, 배가 아파-요"
이제 나는 그 노래를 받고 주사기를 간호사들에게 건네줄 차례였다.
"배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지-요"
소절을, 웃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부르는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어맛!"하고 간호사 애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계속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던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우왓!"하고 놀랐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뭔가 누렇고 뜨끈뜨끈한 액체가 그 애의 사타구니를 타고 내려와 바닥에 한창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으로 사태는 종결. 나는 다음에 부를 소절도 다 잊어먹고 망연하게 서 있었고 선생님들은 숙달된 신속한 동작으로 이쪽으로 날아와 그 애를 추슬렀으며 그 남자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울음보를 터뜨림과 동시에 다른 애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웃음보를 터뜨렸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공포와 고통의 상징일 수밖에 없었던 병원 안이 왁자한 극장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극장에서 <심슨>을 방영하고 있었더라도 이보다 웃기지는 않았으리라. 그것은 그 웃음의 본질이 통쾌함과 시원함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내가 너무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크게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당연한 말이지만 몇 분 후에 노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한 그 남자애는 그 날부터 <내과오줌>이란 별명을 갖게 되어 수업시간에 뭔가 잘난 체를 해보려 해도 짓궂은 아이들의 "야, 내과오줌이 어디 주제를 모르고 끼여들어?"라는 말 한 마디에 금새 얼굴이 시뻘개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며칠 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있던 그 애를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애가 기세가 등등하여 여기저기 나서고 다른 애들을 깔보던 광경을 회상해 보았을 때 역시 저 풀 죽어 있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아 보이는 것은 비단 내가 아주 못돼먹은 애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이 얘기를 은주에게 하자 은주는 질렸다는 얼굴로 "이 성추행범, 아동학대범"이라고 하루종일 놀렸지만…….
"하여간에 너는 좀 진득이 도서관에 앉아 있을 생각은 못하니? 내일 모레가 시험인데, 그 여유의 까닭이 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공부하는 것까지 방해하고 말야."
은주의 타박 섞인 말에 나는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그렇게 너처럼 죽자살자 공부하면 머리 빠지는 법이야. 야, 인생을 좀더 여유 있게, 쿨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쫓기듯 살면 무슨 재미냐? 천천-히, 스무스하게! 오케이?"
은주는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낫 오케이! 지금 여유 있게 살면 뭐하니? 다 나중을 위한 저축이며 준비인 셈이야. 지금 쿨을 좇다가 종착하게 되는 건 결국 낭떠러지뿐일 걸. 너도 좀더 현실을 충실하게 살도록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금새 정색하며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것은 이 애가 이은주이며, 내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앞서 달려나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뭐 어때! 혹시 나중에 여차하면 교수님이 된 은주 씨가 나 책임져 줄텐데!"
"뭐? 너 자꾸 웃기는 소리할래?"
하며 금새 나를 쫓아와 내 어깨를 붙들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은주도 웃었다. 내 팔뚝을 붙잡아 나를 잡아끌며 은주가 말했다.
"가자. 너 배고프다며."
"어? 설마 은주 씨가 밥 사는 것?"
"얘는, 내가 왜 사니?"
은주가 별 소릴 다 한다는 듯 묻자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럼? 나 돈 집에 갈 차비 밖에 없어."
"돈 없어도 돼. 백지수표가 있는데 무슨 궁상맞은 소리니?"
하고 계속 내 팔뚝을 잡은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얘가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나하고 어이없어 하다, 나는 무언가에 생각이 미쳐 아연해졌다.
"뭐? 설마 그 사람? 나 그 사람 싫어! 야, 이은주! 너 친구 팔아먹어서 밥 얻어먹을 셈이냐? 야!"
은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뭐 어때? 프톨레타리아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용해 먹을 건 다 이용해 먹어야지, 웬 약해빠진 소리? 적어도 나중에 그 사람이 돈 물어내라고 아등바등할 건 아니잖아? 그냥 마음 편하게 골든 카드 쓴다고 생각해. 우리한테 나중에 영수증 날아올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 쓰니?"
"그래도! 질색인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만큼 질색인 것도 없단 말이다!"
어느 새 절규가 된 내 외침에 신나게 걸어가던 은주는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돌아본 은주의 얼굴은 아까와는 달리 장난기 하나 없이 굳어져 있어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시무룩한 얼굴로 발끝만 바라보고 있자 은주는 내 팔을 붙든 손을 놓고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은주는 한참 후에야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뭐가? 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고 은주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내 마음이고 행동인데 어떻게 남한테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 묻는 것도 우습지만, 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정훈 씨 좋은 사람이고 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거 너도 눈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알 거야. 성격도 좋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서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편해. 그렇다고 얼굴이 못났니? 입학 초기에 여자애들이 정훈 씨 얘기하며 난리 떨었던 거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잖아. 그런 사람이 뭐가 부족하다고 벌써 몇 주 동안 대놓고 너만 쫓아다니고 있는데, 넌 거들떠보기는커녕 알아서 피하고만 있고. 나야 당연히 네 편이지만, 그건 너랑 함께 다닌 시간 때문이지 객관적인 시각이 아냐. 냉정히 말하자면, 난 왜 그 사람이 너 쫓아다니는지 그것도 이해 안 돼. 넌 분명히 좋은 애고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정훈 씨 같은 사람이 쫓아다닐 만큼 매력적이라고는 도저히 생각 안 들어. 하지만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고 확실히 너에게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까 그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고 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너의 태도야.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아 내 타입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랑 너랑 오래 알아왔니? 고작 몇 주 됐다고. 아니, 몇 주 동안 알아와서 아니다 싶어서 피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너는 그 사람 처음 만난 날부터 피해왔잖아. 정말 정 떨어질 만큼 도망치고 피해왔잖아. 그건 마치……."
"마치, 뱀이나 들쥐 같은 것에 대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두려움, 혹은 혐오 같은 것과 같아 보인다고?"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은주는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이 깜짝 놀랄 만큼 시퍼렇게 굳어져 있어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내 얼굴도 저 눈만큼이나 굳어져 있을 것이다.
은주는 아주, 천천히 물었다.
"……너……정말 그 정도니? 그 정도로 싫으니?"
나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말은 쉽게 흘러나왔다. 아니, <하지만>이 아니라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정말 본능적으로 싫어. 좋은 사람이라는 거 알지, 당연히. 머리 속으로는 알아.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돼. 내 행동이, 마음이. 뭐랄까, 이건 정말 생리적인 두려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야."
말을 마치고서도 한참 동안이나 정적이어서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은주는 가만히 날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길이 애처롭고도 슬퍼 보여 나는 다시 찔끔 고개를 숙이고 발 끝에 시선을 모았다. 때가 타서 더러워진 흰 운동화가 갈피를 못 잡고 서성대고 있었다. 왼쪽 운동화 끈이 헐렁해서 풀어질랑 말랑 하고있는 꼴이 어째 애 타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허리를 숙여 헐렁해진 끈을 풀고 단단하게 매듭을 짓고 싶지만 은주의 눈길이 날 풍경 속에 못박아둔 것처럼 꼼짝 못 하게 했다. 나는 발가벗겨져 관중들 앞에 내던져진 죄수라도 된 기분이었다.
한참 후에 은주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은주는 말하면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을 듯했다. 그런 우수 어린 동작은 은주에게 잘 어울렸다.
"그래,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 없지. 나도 참, 안 어울리는 짓을 해버렸네. 원래 남의 애정사에는 끼여드는 법이 아닌데.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하지만 너 10년 후에 능력도 없는 노처녀 돼서 이불 쥐어뜯지나 마라?"
마지막 말이 묘하게 농담조라서 나는 불쑥 받아쳤다.
"뭐, 은주 씨가 책임져 주시겠지."
"뭐야?"
은주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고개를 들고 웃었다. 사춘기에 갓 접어든 아이처럼 허리가 꺾어질 만큼 웃으면서 든 생각은 생뚱맞게도 나는 역시 이 애가 좋다는 것이었다. 난 이 애가 좋다. 아주아주 좋다……. 잃고싶지 않다는 것.
"하지만 애정사는 애정사고 밥은 밥이지."
배를 잡고 웃고 있는 내 위에 은주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냉정한 미소를 띄운 채 나를 보고 있는 은주의 얼굴이 들어왔다. 난 경악해서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야, 너 설마……."
"프톨레타리아에게 선택권은 없다! 미안하지만 난 너를 아주 알뜰히 이용해 먹어야겠어."
그리고 내 팔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은주와, 그런 은주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도 이보다 필사적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내가 복에 겨운 애송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난 끔찍한 비명을 울렸다.
"야, 이은주우우우우!"
하지만 은주는 움찔하는 기색도 없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앞장서서 걸었다. 난 기가 막혀 흔들리는 그 애의 등을 바라보았고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 애의 힘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것에도 생각이 미쳐 놀라웠다. 그 애가 잡아끌며 걸어가는 동안 내 몸은 내 몸이 아닌 듯 위태하게 흔들렸다.
누가 얘 좋다고 했니?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제가 지금껏 신연재랍시고 시작한 글들 중에 완결한 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_=
하지만, 이번 만큼은, 이라는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항상 시작은 그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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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완결, 꼭 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어요. 건필하세요'-'!
건필. 좋은글 이네요. 꼭 완결되길 빌어요. 글도 쓰시고 다른 활동도 많이 해주신다면..;;
맨 처음에는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다는... 그나저나 프톨레타리아였었나요? 흐음... 저는 이때까지 프롤레타리아로 알고 있었는데... (긁적) 어쨌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