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어제의 일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꿈 같은 일들에 혹시 그 일들이 모두 꿈에 불과한 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는 일어나자 마자 자신의 침대 밑에 바구니를 확인했다.
그 바구니는 고양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으나 그 고양이와 함께 침대위에서 잘 수는 없다
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고양이의 얼마 될지 모르는 기간 동안의 임시침실로
소진이 눈동자를 밑으로 해서 바라보니 그 바구니에는 여전히 검은 새끼 고양이가
새근 새근 잘만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전히 꿈 같은 일들을 스스로 믿을 수 없어 환각이 아닐까 해서 계속 바라
보는 소진의 시선을 느끼기 라도 한 건지 잠에서 깨어나 몽롱한 황금빛 눈동자로
소진을 마주 바라보며 야옹 거렸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일어난 고양이는 가뿐하게 소진의 침대위로 뛰어 올라 소진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파고드는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그때서야 소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간단히 아침 밥을 먹고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소진은 어깨에 가방을 매고는 가지
런히 놓인 검은 구두를 신은 이제는 나가면 그만인 상태에서도 고양이와 헤어지기
싫어 나가지도 못하고 현관문의 앞에서 쪼구려 앉아 파고드는 고양이를 꼭 껴앉았다.
누가 빼앗아 가기라고 할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한테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방금까지도 파고들던 고양이가 답답함에 기어코 견디지 못하고 발바둥을 치는데도 불구
하고 말이다.못말린다는 듯 소진의 엄마가 떨어질줄 모르는 소진과 고양이의 사이를
가로 막으려고 애를 썻다.
"..소진아, 아무리 고양이가 좋다고 해도 그렇지, 이제 학교 가야 할 시간 아니니? "
"..하지만 엄마, 고양이도 나랑 헤어지기 싫은가봐..."
안타까워 하는 소진의 말에 소진엄마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소진과 헤어지기 싫다고 고양이가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어 발바둥 치는 고양이를 끈질기게 안고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동물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소진아, 설마 그 고양이를 학교까지 데려가려는 건 아니겠지?"
뜨끔
움찔하는 소진의 모습에 소진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가 어디 애들 놀러가는 곳 인줄 아니? 네가 얼마나 동물 좋아하는 지 알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키우는 걸 허락하긴 했지만 너가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면
네가 없는 사이에 이 고양이를 밖에 내다 버릴수도 있다는 걸 명심 하거라 "
"...그런 심한 말을! "
"심하긴 뭐가 심하니? 고양이 한마리 때문에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껴앉고만
있는 네가 더 심한 걸 알기나 하니? 누가 너 없는 사이에 이 고양이를 내쫓기라도
한 다고 했니? 네가 학교 간 사이에 널 대신해서 이 엄마가 고양이를 더 잘 돌봐줄
거 란다. 설마 너 엄마를 못 믿어서 못 가고 있는거니? 얼마나 못 믿으면 고양이를
학교 까지 데려 간다고 하니? "
"... ...."
조금씩 언성을 높이는 섭섭하다는 듯한 소진 엄마의 말에 소진은 침묵하며 손등을
핧고있는 검은 고양이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잠시동안 그리 바라보던 소진이 결국에는 어쩔수 없다는 듯 고양이를 거실의 바닥에
내려 놓고 집을 나섰다.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소진의 발 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저 혼자만의 착각 이라는 건 알지만 서도 집에 홀로 남은 고양이가 소진을 향해 돌아
와 달라는 듯 헤어지기 싫다는 듯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외로움에 사묻쳐(?) 냐옹
냐옹 하고 울부짓는 것만 같다.
그럼에 학교로 걸어가면서도 소진은 몇번이고 간에 집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게 되었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춰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몇 걸음을 가다가 멈춰서 고개를 돌리고-
언제나 학교에 도착하던 시간의 이십분이 더 흐른 뒤에서야 교실에 도착한 소진은
마치 정신이 나간 듯 멍하기만 했다.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로
조그만 하던 새끼 고양이가 어느덧 눈에 띄게 커졌다.
고양이를 발견한 지도 이제 삼개월이 지나는 시간동안 소진의 고양이를 향한 사랑은
한없이 커져 가기만 했다.
그도 그럴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피하지 않고 따르는 고양이로 인해 이제는 동물들이
피하지 않는걸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던 소진은 검은 고양이 네로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변함없이 동물들이 저만을 보면 무슨 괴물이라도 본 듯이 겁에 질리거나 혹은 조금 더
오바해서 공포에 사무친 것과도 같이 거부하고 달아나는 그 이상현상은 계속 되고
있던 것 이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검은 고양이 라서 네로라고 단순하게 이름이 지어진 네로만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 갸르릉 경계를 하고나 공격자세를 갖 추면 서도 소진과 소진의
부모 에게 만큼은 참으로 나긋 나긋 하게 굴었다.
남들에겐 잘 하면서도 자기에게 만큼은 으르렁 거리는 동물이 괜히 밉듯이 누구나
자신에게 만은 잘만 재롱 부리고 귀여움 떨면서도 남들에게 만큼은 사람을 알아 보기
라도 하는 듯이 경계하고 공격태세를 갖추는 동물은 이뻐 보일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소진에 못지 않게 소진에게 벌어지는 그 이상현상을 잘 아는 소진의 친구들은 유일하게
소진을 잘 따라는 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면서 한번씩은 꼭 소진의
집에 놀러와 소진의 네로를 구경했다.
물려고 하는 모습에 기분 나쁘기라도 하련만 오히려 소진에게 거부는 커녕 오히려
더 안기는 고양이의 모습에 그저 놀라워만 할 뿐 이었다.
책상앞에 앉아있던지 이제 막 세시간이 지나고 창밖 너머로 하늘이 어두워 지기 시작한
그 무렵 에서야 간신히 숙제를 마친 소진이 뻐끈한 몸을 풀려는 듯 크게 벌려 기지개를
켰다.
"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소진의 허벅지 위로 폴짝 뛰어오른 검은
고양이 네로가 앉았다. 가는편에 속하는 소진의 딱 두 허벅지 만한 크기로 자라 버린
네로는 그러나 무게 만큼은 소진과 처음 만나던 어리던 새끼 시절과 다름없이 가벼웠다.
유난히도 자는 것을 좋아하는 네로는 항상 소진의 허벅지 위에 엎드려 잠드는 것을
즐긴다. 한시도 소진과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어릴적과 다름없이 소진과 그녀의 부모
외에 사람들에겐 누구든지 꼬리를 세우고 낮게 가라앉은 갸르르릉 개가 으르렁 거리는
듯한 공격 하겠다 하는 신호와 다름 없는 소리를 내면서 가라앉은 황금빛 눈동자로
매섭게 바라 보는데 어느날 네로를 데리고 집 밖에 나서 산책을 하던 소진조차 등골이
오싹 해질 만큼의 장난아닌 위압감이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정말 공격을 하는 건 아니다. 네로의 그런 행동마다 누구라도 신기할 정도로
땅 바닥에 닿는 두 발이 마치 접착제 라도 발라놓은 것 처럼 움직여 지지 않은 것 이다.
누구든 네로의 그런 공격태세를 갖추는 모습에선 한마디 말 조차 뻐끔 못했다.
그대로 위압감에 넘어가 버린 그들은 겁쟁이 처럼 굳어 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네로 외의 소진과 눈이 마주친 다른 동물들을 떠올리게 된다.
소진은 그 모습에서 네로와 저는 닮은 꼴 이라면서 왁작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터트리는 소진에게 머리를 가져다 댄 네로의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황금빛
눈동자는 마치 그도 소진처럼 웃는 듯 했다.
가만히 엎드려 있는 네로의 매끄러운 검은 털을 쓰다듬은 소진은 먹다 남은 커피 잔을
들었다.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바퀴가 달린 의자로 그 옆의 컴퓨터 책상 앞으로
가져갔다. 의자를 움직이자 잠들어 있던 네로가 깨어나 황금빛 눈동자로 소진을 올려
보다가 다시 두 앞발 위에 고개를 올리고는 잠을 청했다.
모니터를 켜고 인터넷 창을 켰다. 창이 뜨고 소진이 한창 즐기고 있는 홈피로 들어간다.
홈피는 판타지 소설 동호회 였다. 요즘 소진이 즐기고 있는 소설 장르다.
남 다른 독특한 세계관에 무엇이든 작가의 상상력으로써 만들어 지는 가상세계에서의
가상 캐릭터들의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애틋한 어떤 작가가 쓰냐에
따라서 얼마나 멋진 작품이 될 지가 정해지는 환상 그 자체의 장르.
마법의 생명체 라는 거대한 드래곤이 불을 뿜고 아름다운 공주가 백마 탄 왕자님을
꿈 꾸며 귀족들에게 밟히는 쓰레기 정도로 밖에 취급되지 않은 힘없이 나약한 평민들의
분노어린 슬픔의 눈물이 있으며 저들만이 잘났다 하는 귀족들의 세상. 검을 든 기사들이
연약한 소녀와 여인을 위해 결투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하나같이 진한
분으로 얼굴을 치장하고 하나같이 번쩍이는 드레스와 보석들로 치장하는 레이디들의
이야기..몽상을 즐기는 소진에게 가장 적합한 장르다. 판타지 라는 것은 말이다.
글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잠만 자던 네로가 벌떡 일어나선 몽롱하던 황금빛 눈동자에 생기를 머금고
활발 해지는 그때서야 소진은 컴퓨터의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시, 고양이 과는 원래
야행성인 터라 이렇듯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는 거다.
잠만을 청하던 네로가 소진의 허벅지에서 벗어나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 하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는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소진을 향해 재롱 부리도 부리려는 듯한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행동으로 그 의도
대로 소진을 즐겁게 한 네로는 우유 달라고 졸리려는 듯 부엌에 소진 엄마를 향해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처음에 소진에 의해서 마지못해 승낙하던 소진의 부모도 네로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
나면 늘어 날 수록 네로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갔다.
체구는 어릴적 보다 더 커져만 가지만 대신에 조금도 무게가 더 늘지 않은 가벼운 체중과
매혹적인 곡선을 띤 잘 빠진 몸매에 날렵하기 그지 없는 행동들, 고양이 이면서도 나갈
일이 생기면 그 뒤를 따라나가 눈에 띄지 않게 담벼락에 올라 조금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르면서도 무언가 위협될 만한 사람이 그들의 곁 가까이에 오기라도 하면 등을
곧두 세우고 위협을 가 하는데 그 위협이 정말 장난 아니다.
고양이 면서도 주인을 지키는 충성어린 개의 역활을 도 맡아 하는 네로를 귀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듯 위협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위협적으로 충분히 보일 만한 사람이 다가가기라고
하면 번쩍 뛰어오른 네로가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위협을 하는데 장난아닌 위협으로
인해 네로를 탓 하지도 못 한다.
소진의 부모는 그렇듯 자신들을 잘 따르면서 지켜 주려고 노력하는 네로의 모습이 기특
하여 더욱 네로를 아꼈다. 이제는 소진의 못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새 늦은 밤이 되고 슬슬 잘 준비를 해야 하는 그 무렵에서야 방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던 소진은 부엌에서 네로 전용 그릇에 우유를 담아 기다렸다는 듯이 내 주는 그릇에
담긴 우유를 할짝이며 핧아먹는 네로를 흐믓하게 바라보고는 그 사이에 조그만한
그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는 소진엄마의 모습에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나지막히
혀를 찼다.
침대위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잘려는 듯 두 눈을 감는 소진의 옆에는 나란히 한 베개가
놓여있고 그 베개 위로는 이제 슬슬 앞 발의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발톱을 붉은 혀로
가다듬기 시작하는 올라앉은 네로가 당.당.히. 있었다.
삼개월 이라는 짦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이미 소진이 교육을 시키기도 전에 절대
집 안에서 용변을 보지 않고 소진이 창문을 열어주면 그때 휙 하니 기다렸다는 듯 나가
해결하고 조금도 더럽지 않은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그 순간 부터
소진은 걱정없이 침대 위에서 네로와 함께 잠을 청했다.
물론 정말 같이 잠을 자는 건 소진이 어쩌다 낮잠을 자는 한가로운 낮 쯤 뿐 이고
대부분은 소진이 피로한 몸으로 잠자는 늦은 밤 무렵에 잠든 소진의 옆에 누운 네로가
혼자 노는 것 이다.
네로는 항상 낮에 잤고 그 낮에는 소진이 한창 바쁘게 활동하고 있을 시간이니 가끔씩
별로 즐기지 않는 낮잠을 자게 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빼고는 정말 둘이 함께 잘 시간은
있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소진의 옆 자리에서 푹신한 침대에 익숙해져 별 다를 것 없이 데굴 구르면서
놀던 네로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새근 새근 소진의 숨 소리가 들리는 잠든 소진의 얼굴을 향해 소리없는 걸음
으로 사뿐히 다가간 네로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소진의 웬만한 미인들 보다도 아름다운
얼굴로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잠자코 어둡기 때문에 빛을 발하고 있는
두 눈동자로 바라 보았다.
그러다가 구슬픈 울음 소리를 내었다.
냐옹
냐옹
냐옹
냐옹-
그러나 울음 소리에도 이미 깊이 잠이 든 소진은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근 새근 하는 숨 소리만을 낼 뿐 이다.
네로의 울음소리는 방 너머까지 퍼져 나가진 않았다. 마치 정해져 있는 것 처럼 닫힌
방문과는 다르게 벽에 달린 창문은 활짝 열렸지만 절대로 빠져 나가지 않고 소진의 방안
에서만이 울러퍼져 맴돌고 있을 뿐 이다.
웬지 모르게 슬프게 들리오는 구슬픈 울음 소리를 한 동안 반복해서 내던 네로가 한 동안
번쩍이는 황금빛의 동공으로 소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활짝 열어젖혀 마치 네로를 환영하는 듯한 창문 밖으로 휙 하니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써 사라졌다.
그저 휙 하니 무언가가 지나갔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뿐, 정확히 빠져 나가는 네로의
모습이란 보이지 않는 너무도 빨라 모습을 볼수 없는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