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승목사글 전도는 절박감이다!
폭우에 갑자기 불어난 물살에 사람들이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방송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 안타까움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몇 날이 못 되어 그 일은 잊어버렸습니다.
만약에 물에 휩쓸려간 사람들이 부모님이나 나의가족 아내 또는 자녀였더라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 일을 잊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전도는 그런 간절함, 절박한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몇 마디 건네는 것조차도 망설이는 것이 오늘날 현대교인들입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절박감이 없습니다. 예수를 말하지 않는 자는 예수쟁이가 아닙니다.
절박감이 무슨 의미인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여기서 더 이상 무러날 곳이 없다”
“내 스스로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힘”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준결승전은 한국 대표선수끼리 붙었습니다. 서승재, 채유정 조와 김원호, 정나은 조의 대결이 새벽에 있었는데 새벽기도회 때문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깨어나게 되어 시청을 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 초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2008년 이용대의 혼합복식 금메달 이후 16년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항상 대결하면 지던 김원호, 정나은 팀이 극적으로 우승하여 결승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베드민턴을 좋아하고
동호회도 만들어서 운동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각 나라 대표선수들이 구토까지 하며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며 경기 하는 것을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원호 선수가 구토까지 하며 처절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경기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냈고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습니다.
극적으로 우승했을 때 감격과 전율이 느껴지면서 나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았는지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상황을 봐서는 도저히 내 힘으론 불가능한 일들을 봅니다.
"우리 집안이 불교집안이 아니었으면 엄마를 전도했을 텐데..."
"내가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친구를 전도했을 텐데..."
그렇다고, 이런 근심을 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인정하고 가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최선을 다해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되면 지금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아픔의 정도가 큰 만큼, 주님의 위로와 영광의 크기도 클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모든 것을 하시는 주의 능력을 믿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양복입고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던 사장님이 회사가 망해 직장이 없어졌을 때 길에 나가 호떡을 팔 수 있는 이유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아쉬울 것 없고 부족할 것 없는 내가, 가족의 핍박과 오해에도 용기와 담대함으로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절박감을 느끼는 자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겁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지금 당장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죠.
"네가 배가 덜 고파서 밥 안 먹는다고 하지, 당장, 배고파봐라..."
우리는 절박감을 느껴야 합니다.
전도에 대해서 절박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어떤 영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절박하십니까?
내가 죽어서라도 반드시 이뤄야할 만큼 절박한 것이 무엇입니까?
절박감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어떤 이를 변화하게 합니다.
절박감은 부끄러움 잘 타고 무관심한 어떤 이를 변화하게 합니다.
절박감은 터프하고 와일드한 어떤 이를 변화하게 합니다.
왜?
저로 인해 주님의 이름이 욕먹어서는 안되니까.
저로 인해 구원의 길이 막히면 안되니까.
내가 아니면, 나의 변화가 아니면 전도의 길이 막히니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1-3)
전도 !!
그것은 우리의 절박한 사명입니다.
산 넘어 불난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평생을 가도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한마디도 안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이지 아니면 허다한 무리에 속한자인지 스스로 반문하고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껍데기 신앙은 위선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옥을 간다 해도 눈하나 깜짝이지 않고 나는 구원받았으니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함께 죽을 각오를 하며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로 만족하며 신앙생활하지 말고 복음이 필요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 죽어가는 영혼들 때문에 가슴 아파서 눈물 한번 흘려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안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거룩한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담도 없이 어찌 부름 받은 사명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저 복 받을 생각과 자신이 잘되기만을 위하여 교회를 나간다면 수준이하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말하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온 세상 위하여(505장)
1.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만백성 모두 나와서 주 말씀 들으라
죄 중에 빠져서 헤매는 자들아
주님의 음성 듣고서 너 구원받으라
2.
온 세상 위하여 이 복음 전하리
저 죄인 회개하고서 주 예수 믿으라
이 세상 구하려 주 돌아가신 것
나 증거하지 않으면 그 사랑 모르리
3.
온 세상 위하여 주 은혜 임하니
주 예수 이름 힘입어 이 복음 전하자
먼 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기도 힘쓰리
(후렴)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 되리라
세상 모든 사람 다 듣고 그 사랑 알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