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0:1-16 하늘사람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고 찾아옵니다. 교회에는 사랑과 위로와 평화가 있고 성도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 교회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교회도 세상과 똑같다고 말하며 실망하고 떠나갑니다. 그것은 교회안의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과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달라야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주류사람들은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율법을 잘 지키고 금식을 하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 늘어나도 제사장들이 많아져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또 다른 심적 고통과 신앙차별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맛보고 행복해 했습니다. 며칠씩 음식을 먹지 못해도 그 공동체에 있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똑 같은 장소와 시간을 살았는데 제사장들과는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주님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습니까?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품성과 삶을 드러냈지만 주님은 하늘 아버지의 성품과 삶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천국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뭐가 문제인가요? 먼저 된 자라고 당당했던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통해서 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본문을 통해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 일군을 구하러 나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삼(9)시,육(12)시,구(3)시에 나가보니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상당히 주겠다고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11(5)시에 나가서 종일 놀고 있느냐고 물으니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끝나자 일당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부터 한 데나리온 씩 주는 겁니다. 나중사람들은 기대감이 당연히 올라갑니다. 그리고 자신들 차례에 한 데나리온을 받자 기대가 분노로 바뀝니다. 그리고 온종일 고생한 우리들과 얼마 일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냐고 항의합니다.
아침부터 수고한 사람들은 귀한 사람입니다. 주인도 친구라고 부릅니다. 그 만큼 영향력이 있고 고생한 사람입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주인과 이런 충돌이 일어난 것일까요?
먼저 온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품 군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품 군은 자기 농경지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를 불러 주어야 비로소 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일군에 비해서 일터가 부족했기에 품 팔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종일토록 놀고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를 써주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일찍 들어간 만큼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이 끝나면 일당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임금을 지불받는 것도 감사한 일인 것은 당시는 일시키고 임금을 떼먹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온 사람들은 그런 은혜를 모두 망각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과 충돌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은혜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자로, 용서 받은 자로, 긍휼 입은 자로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교회 안에서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하나님께 원망하게 되고 매사에 불평하며 하나님을 가르치려 들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딤전1:15]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고백을 통해 은혜를 망각하지 않음이 자신이 젊어서부터 노인이 되기까지 주님을 섬겨온 힘이라고 알려줍니다. 하늘사람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은혜를 아는 것이 다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주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주인의 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전혀 다른 감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절망을 보듬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랬기에 나가 보고 나가보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 주인의 모습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가 된 그들도 주인에게 젖어들었다면 잘한 것이라고! 얼마나 가족들이 기뻐하겠느냐고! 얼마나 어깨 펴고 집에 갈 수 있겠냐고!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하나님의 감각과 사상과 품성과 모든 것을 보는 시선이 하나님의 것으로 젖어들고 있습니까? 우리가 젖어들지 못한다면 먼저 된 자들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장소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처신과 같을 까요?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렘17:9]말씀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지만 하늘의 사람인 우리는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는 언약대로 주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빌2:5]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간절히 말합니다. 그가 하늘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하늘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음이 다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나중에 온 사람들이 또 다른 나이며 나의 가족인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동일한 품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을 그들보다 위에 놓고 주인에게 항의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는 한 가족입니다. 하늘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혈육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이 박수를 보내고 어려움에 눈물을 짓는 것이 하늘 사람입니다. 모두를 시기하고 정죄하는 세상과 하늘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가 하늘 사람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때 교회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