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판기전/5.14-6.22/창원상공회의소 챔버갤러리
득어망전(得魚忘筌)의 서예미학
창원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재 윤판기선생이 5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현대인이 동감할 수 있으면서 생활공간에 걸릴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5종의 폰트개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의 전시장에는 일반인들이 많이 참관하고 있었다. 창원상공회의소 로비 갤러리에서 초대전으로 열리는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나보았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걸어온 붓길인생은 어떤 과정을 거쳤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붓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의령군에서 큰선비이셨던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랑방에서 먹을 갈면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서당선비가 되려고 외가댁 서당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가정형편상 진학이 어려웠지만 남지중학교 특기장학생으로 입학하였고, 고등학교도 역시 옥야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서예특기장학생으로 다녔습니다. 학창시절 각종 서예대회에 참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어요. 그런 연유로 군입대 후 마침 열린 삼군모필경연대회에서 일등을 하였고, 그런 까닭에 육군본부로 차출되어 붓글씨나 차트를 하면서 모필병으로 근무했습니다. 제대 후 일급 방산업체인 대한중기 총무부에서 근무하면서 시간날때마다 붓글씨를 연마했습니다. 글씨 잘 쓴다는 소문이 퍼져 경남도청으로 스카웃되어서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 뒤 경남도전 최연소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평생 동안 붓 한 자루와 함께한 삶이었습니다.
은청설향
서예를 공부해 온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예협회가 태동한 초창기부터 한글부문에 여사서 판본체로 출품해서 수상했습니다. 궁체는 옥원듕회연을 기본적으로 공부했고, 한자서예도 광개토호태왕비체 안진경, 찬보자비, 구성궁예천명, 예기비 등 오체를 두루 공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민족의 정서가 배어있는 광개토대왕비문을 즐겨 임서하면서 공모전에서도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자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폰트에 대해 관심이 많고 실제 개발한 것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물결체, 동심체, 한웅체, 낙동강체(한글 4종)와 한자폰트 광개토호태왕비체 등 5가지 서체의 폰트를 개발했습니다. 폰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글은 2350자, 한자는 4888자를 개발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폰트회사에서 제의를 받고 궁체와 물결체를 남기고 싶었으나 , 중국이 동북공정 앞세우는 시기라서 한자폰트인 광개토대왕서체까지 개발했습니다.
득어망전
이번 작품전에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까?
다섯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주제는 득어망전(得魚忘筌)입니다. 이 말은 장자(莊子)》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는 의미입니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절대 경지에 들어서면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절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마저 잊으라는 뜻입니다. 특정서체나 고전에 나오는 결구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스럽게 제 나름의 양식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발표해 보려고 이렇게 주제를 정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은 물결체로 쓰고 협서는 낙동강체로 구성한 작품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낙동강체는 제가 어릴때부터 낙동강 물결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폰트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낙동강은 1300년간 흐르는 우리의 젖줄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서단에 한 줄기 강을 이룰것이란 소망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폰트를 개발한 뒤 갖는 전시입니다. 이전의 전시에서는 법첩 위주로 공부했고 그렇게 공부한 흔적을 보여주는 전시였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폰트에서 창작한 물결체, 낙동강체 등 창작서체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알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오게 하기 위해 한글로 발문을 달아 이해를 돕고자 하였습니다.
김춘수 시 비가
앞으로 작가로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현재 창원대 평생교육원에서 광개토대왕서체, 물결체를 집중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한글서체를 익혀서 개성미 넘치는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문인화와 물결체, 낙동강체를 접목시켜서 색다른 작품을 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또한 경남불교미술협회 회장으로서 불교미술을 연구하고 알리는데 앞장서서 봉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깁니다. 이 말은 복숭화, 배꽃은 말이 없이 피어도 그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니 그 밑에 자연히 좁은길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말없이 실천하다보면 언젠가 저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서예는 정신수양에 최고로 좋은 예술입니다. 서예란 흩어진 마음을 붙들어 앉히는 가장 격조 높은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 내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매진할 작정입니다.
대담 및 정리 : 정태수(서예세상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