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의 악순환,
수해복구 공사하다 수해를 입는 아이러니의 현장,
알면서도 또 그렇게 한다.
하라고 하니 하고,
하려고 달려드는 시뻘건 눈들이 수두룩하니,
국민의 세금은 그렇게 또 허망하게 쓰여진다.
발주처도, 시공자도, 시골 노인네도, ......
이렇게 시공된다면
다시 닥칠 굵은 빗줄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데, 왜 그렇게들 다 잘 알면서도
이런 일이 매년 해마다 당연한 관례처럼 벌어지는 것일까?
관점의 각도, 혹은 이해(利害)의 구조가 엇갈려 있기 때문인 것인지......
발주처의 감독관은 2억 정도 예산의 29개 현장을 관리, 감독하느라
어느 현장 하나 제대로 둘러볼 시간조차 없다.
장마나 태풍이 닥치기 전에 공사를 끝내라며 "빨리빨리"만을 요구한다.
공정상의 사진만 "대충대충", "보기 좋게" 잘 찍어 두라고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윗분들의 성화에
말단인 그도 여간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쾌속시공을 요구하지만, 쾌속은 그 속도만큼의 졸속, 날림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지사.
최소한도의 도의적 양심상, 규정을 지키며 공사하면 "바보" 취급받는다.
"어차피 땅에 묻히니, 보이는 부분만 신경 써도 괜찮다."
주변의 동종 계통의 베테랑 선배들과 농민들의 역설의 충언.
"업자"들은 이 참에 한 몫 보나 했더니,
수요와 공급의 냉엄한 경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구조 아래 허우적거린다.
공사를 반납하는 업자도 있으니, 기막힌 현실이다.
"수해가 적당히 터져야 하는데, 터져도 너무 크게 터져서 조졌어"
치솟은 장비비, 노무비, 재료비,......
너무 심한 수해로, 너무 많은 곳에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이곳에서도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번다."
공사납기일 맞추는 것도 힘에 부쳐 하는 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레미콘 기사에게 돈을 쥐어 주고 콘크리트 타설을 해야 한다.
레미콘 공장 영업부장은 얼마 전에 그렌져를 뽑아서 애지중지 끌고 다닌다.
현장과 현지 여건에 적합하지 않은 설계도를 탓할 수만도 없다.
땅을 일일이 파헤치고 설계를 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이렇게 공사해 놓으면 또 막힐텐데......"-시골 노인네, 우리 현장 노무자
"설계도대로 시공해야 됩니다."- 현장 관리자
'이런 젠장! 파보면, 바위 덩어리요.
왜 이리 걸기적거리는 것(전신주, 통신주, 주변 농토, 탕뛰기 무대포 덤프트럭들,......)은 많누......휴......'
"돈 낭비여, 돈 낭비......
한 두 번도 아니고,
내년에 또 막힌다니까......"-노인네
수해복구 공사의 큰 줄기는
훼손된 농토와 도로의 원상 복구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한 회복이다.
물류 유통은 자잘한 생활의 편의성과 직결되고, 그 소통은 자동차에 의존하고,
자동차는 평평하고 널찍한 길을 필요로 한다.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우리 농촌.
피폐화 되어 가는 농촌을 '경제성'을 갖는 곳으로 만들고자,
비료와 농약과 농기계로 무장시키려했던 정부의 농경 정책은,
'농민'의 민원(民願)과 원성에 민감하다.
관공서는 당장의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미봉책으로라도
최소한의 예산을 들여서 공사를 만들어 내야한다.
조만 간에 또 하겠지만......
우리 국토에서 태백산맥 우측 동쪽 지방은
급경사이므로 폭우가 쏟아지면 일시에 다량의 물이
휩쓸고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물길을 돌리고 돌려도, 막고 막아도, 가두고 가두어도
물은 낮은 곳으로 빈틈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지금과 같은 시공법(석축, 콘크리트 옹벽 및 각종 콘크리트 수로 구조물)은 미봉책일뿐더러
오히려 유속을 가중시켜 적은 강수에도
농경지의 유실과 하류 지역의 피해를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아스팔트 도로에서 집수해 하천으로 일시에 내보내는 수량과
고랭지 채소 재배를 위해 마구잡이로 벌목되어 개간된 상류의 산림들은
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생태적 시공법의 외국의 사례들은
시공의 난해성과 경제성, 장기간의 공사기간 등으로 인하여
우리 현실에선 아직 요원해 보인다.
친환경공법도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인간 중심의 경계와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 수 있는 것인가?
급한 불을 꺼야 하는, 민원의 등살에 시달릴 걱정이 태산인,
정부에서 책정된 예산의 집행과 관리, 감독만으로도 업무가 산더미인,
관공서의 공무원들은 차라리 준공이 원만히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만다.
'언 발에 오줌누기'
'급한 불 끄기'
......
"토목 설계사무소 2년 다니다 박봉에 시달리다
1년 열나게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요.
2년간 민원에 시달리다 골 아파서 때려 치고 노가다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것도 못해먹겠어요. 뭐 해 먹고 살면 맘이 좀 편할까......"
-옆 현장 소장님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민심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던,
우리의 정치는 합당하고 정당한 의사의 표출과 합의보단,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요구와 불만을
오랜 세월 억압 속에 잉태시켜 왔는 지도 모르겠다.
봇물처럼 터지는 민원들과 노동자들의 파업.
공무원 노조의 파업도 어쩌면 준비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 근현대사가 만들어 온 '사회의 업(業)'.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감내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의 오늘이 다음 세대에겐 또 다른, 개인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업(業)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아 두렵다.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의 조리 있는 의사 표출은 이미 부조리하고,
부패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정직한 개인의 삶은 자기희생을 무릅써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삶이 쉽사리 조리와 부조리로, 정직과 부정으로 재단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터파기를 하다 나오는, 덩치 크고 말 없는 바위를 깨내느라,
포크레인 브레이커(breaker)로 타격을 가했더니
그 거대한 기계의 굉음과 묵중한 진동에
비단 개구리 수십 마리가 사지를 쭉쭉 뻗으며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첫댓글 아직도 우리 나라 건축공사현장은 나아진것이 하나도 없군요, 참 암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