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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산행.관광) 스크랩 [스토리가 있는 비슬산 둘레길.1]
풍경소리52 추천 0 조회 84 12.01.24 21:54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영남일보 11월29일 09면 문화]

일연.'약속의 산' 靈氣를 쬐다

1000여 성인의 정기가 깃든 산…일연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비슬산은 ‘약속의 산’이다. 비슬산 산신 정성천왕이 부처 앞에서 ‘1천명의 성인이 나올 때까지 성불을 유보하겠다’고 기도한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1천명의 성인’이 약속된 거룩한 산 비슬산에는 예부터 많은 성인이 깃들어 왔고 앞으로도 깃들 예정이다. 그런 이유로 비슬산은 ‘미래로 열린 산’이기도 하다. 비슬산의 산신 정성천왕은 지금도 1천명의 성인이 나오기를 기원하며 봄이면 진달래를 피워 올리고, 여름이면 수많은 고산식물로 산 위를 장엄하게 한다. <영남일보 DB>

◆연재를 시작하며…

대구의 명산이라고 하면 단연 비슬산을 꼽을 수 있다. 계절별로 독특한 풍광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산의 지세와 경치는 장중하고 화려하다. 봄이면 참꽃 군락지에서 일제히 붉은빛을 뿜어내고, 여름이면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이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이면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하고 겨울에는 얼음 동산이 눈길을 끈다.

특히 비슬산은 ‘스토리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큼 예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도 없이 전해지고 있다. 30여년을 비슬산에 머물렀던 고승 일연의 이야기부터 1천명의 성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대견사지를 비롯한 유가사, 용연사 등 불교유적과 관련한 스토리가 비슬산 깊은 산세를 따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달성군은 비슬산의 문화유적과 풍부한 자연자원을 관광과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비슬산 둘레길 조성이다. 비슬산 일대 108㎞에 달하는 둘레길은 앞으로 대구는 물론 전국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7회에 걸쳐 ‘스토리가 있는 비슬산 둘레길’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는 비슬산의 스토리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스토리텔링화한다. 이를 통해 비슬산 둘레길이 스토리텔링형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영남일보는 또한 발굴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둘레길에 접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형 2차 상품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원고집필은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의 이하석 고문이 맡았다.

#1
비슬산 산신 정성천왕은 꿈을 꾸었다. 성인들이 비슬산의 골과 등성이는 물론, 봉우리마다 깃들여 빛을 발하는 꿈이다. 셀 수 없는 성인들은 비슬산 정상의 봄 진달래처럼 아름답게 산을 장엄했다. 꿈이지만, 정성천왕은 그 꿈이 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되는 걸 보고싶어 했다.

때는 가섭불 시대. 정성천왕은 부처님 앞에서 맹세했다.

“발원하나이다. 지금 바로 성불하지 않고, 앞으로 이 산에서 1천명의 성인이 나올 때까지 성불을 유보하겠나이다. 이 산중에서 나온 1천의 성인을 보고난 다음에야 성불하여 남은 과보를 받겠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서원이고 꽃다운 발원인가? 그리하여 이 산에서 돋아날 성인을 위해 정성천왕은 봄이면 진달래와 할미꽃을 피워 올리고, 봄 끝자락을 산목련으로 장식하며, 여름이면 수많은 고산식물로 산 위를 장엄했다. 풀과 숲으로 울창하게 산을 가꾸어나갔다. 지금도 여전히 그의 손길은 산기슭 어디에나 안 미치는 데가 없어 골골이 흐르는 물은 빛나고, 산 기운은 운무처럼 자욱하니 피어오른다.

그렇다. 비슬산은 ‘약속의 산’이다. 일천의 성인이 약속된 거룩한 산이다. 그러니까 미래로 열린 산이다.

산의 지세는 장중하다. 바위는 도처에 꿋꿋하게 도열하여 벼랑을 이루며, 골이 깊어서 큰 기운을 함장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산에는 많은 성인들이 예부터 깃들어왔고, 앞으로도 깃들 예정이다.

산은 예부터 비슬 또는 포산(苞山, 또는 包山)으로 불렸다.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기해서 비슬산이라 했다. 또는 비슬의 한자 뜻이 포(苞)라 해서 포산이라 붙여졌다고도 한다. 수목에 덮여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고려 중기 일연이 살았던 때까지만 해도 이 산에는 관기, 도성, 반사, 첩사, 도의, 자양, 성범, 금물녀, 백우사 등 아홉 성인의 행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일연은 그들의 삶을 찬양하고 꿈꾸었다.

붉고 누른 풀 엮어 앞을 가리니

헤진 나뭇잎 옷, 길쌈한 베 아니다.

바위 위 앙상하게 여윈 소나무뿐인데,

해 저문 숲 속으로 나무짐 돌아온다.

한 밤중 달빛 향해 도사리고 앉으매

몸에 걸친 옷 바람 부는대로 반 남아 난다.

거적자리에 가로 누워 단잠 들자니,

꿈속에도 티끌세상 갈 바 있으랴.

두 암자 빈터에는 구름만 오락가락,

사슴은 오르건만 인적은 드물다.

반사와 첩사를 기린 노래다. 자연 속에 몸을 묻은 채 도통을 그리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이후 지금까지 이 산의 정기를 받고 일어선 많은 성인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비슬산은 여전히 수많은 성인의 출현을 기다리며, 신령스러운 산 기운을 오롯이 피어내고 있다.

#2
1927년 한 젊은 승려가 비슬산에 들어왔다. 바로 전, 개성에서 치른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서 장원급제에 해당하는 상상과에 합격한 스물 두 살의 젊은 승려 일연이었다. 그는 보당암에 머물었다. 보당암은 비슬산 정상부근의 대견사로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일체의 세속적 잡념을 끊고 참선 삼매에 들기를 계속했다. 아홉 해를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세상의 어지러움이 절간을 흔들기 일쑤였다. 1236년 몽고의 침입으로 남쪽까지 병화에 휩싸였다. 그는 중생들의 고통을 느꼈다.

“이 전란 통에 중생들은 ?기면서 배고픔과 죽음에의 공포로 나날을 보낸다. 너무 가엽지 않은가? 이들을 구제할 기도를 드리는 게 나의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문수보살에게 기도하면서 친견할 수 있기를 빌었다. 문수보살의 가피력으로 전란의 불안을 이겨내고, 그 힘으로 중생을 위한 기도를 더해갈 생각이었던 게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섰다. 빛에 싸인 몸. 문수보살이었다. 일연은 감격하여 합장을 했다. 문수보살은 그에게 말했다.

“무주(無住)에 있다가, 내년 여름에는 이 산의 묘문암에 거처하라.”

피난처를 일러준 게다. 일연이 절하고 얼굴을 드니 문수보살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보당암 북쪽 켠의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전히 참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화두는 ‘생계불멸, 불계부증(生界不滅, 佛界不增: 현상세계는 줄지 아니하고, 본질적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이었다. 그는 화두를 철저하게 궁구하면서 용맹정진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소식이 왔다. 깨달음을 얻은 게다. 그는 주위 사람에게 소식을 얻어낸 기쁨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에야 삼계(三界)가 꿈같음을 알았고, 대지에 터럭 하나만한 거리낌이 없음을 보았다.”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에 부모에 의해 전라도 무등산의 무량사에 의탁되어 공부를 했다. 머나먼 길을 걸어서 간, 최초의 고행 길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과묵하면서도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총명한데다 늘 반듯하게 앉아서 저녁시간을 다 보내 주위 사람들이 놀라워 할 정도였다. 열네 살이 되자 강원도의 설악산 기슭인 진전사로 보내져 비로소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는다. 또다시 머나먼 길을 걸어서 간 것이다. 설악의 영봉이 보이는 곳이었다. 진전사는 나말여초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이 비롯된 곳이다. 가지산문의 제자가 된 그는 여러 선문을 거치면서 이십대 초기에 벌써 이름이 널리 알려져 구산문 사선(四禪)의 우두머리로 추대됐을 정도다. 그로부터 10년 남짓만에 비슬산에서 비로소 큰 깨달음을 성취한 것이다. 그는 이 깨달음이 자신의 철저한 공부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비슬산의 큰 기운이 작용한 탓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는 비슬산의 곳곳을 돌아보며, 큰 산의 기운을 마음껏 받았다. 44세 때 남해 정림사로 옮기기 전까지 거의 20여년을 비슬산에서 보냈다. 비슬산에는 곳곳에 절이 번성했다. 그가 머물렀던 보당암은 물론, 산 북쪽 켠의 용연사와 유가사, 소재사, 용천사 등과 암자가 즐비했다. 때로는 도성바위 아래 도성암에서 출발하여 관기봉 아래의 관기암까지를 걷기도 하고, 대견봉의 암자에 머물기도 했다. 이들 암자는 아득한 옛날부터 자주 소통되어 뚜렷한 산길로 이어져 있었다. 너른 산정의 길은 구름 속으로 난 길이기도 했다. 그 길을 오고가면서 이 지역에 전해오는 도통 이야기와 도인들의 얘기를 적어놓기도 했다. 이 기록은 나중에, 그의 불세출의 명작으로 꼽히는 ‘삼국유사’에 실린다.

일연은 남해에서 10년을 보내며, 정림사에서 대장경 간행사업을 3년 동안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강화도 선월사를 거쳐 보조국사 지눌의 법을 잇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남쪽의 오어사를 거쳐 다시 비슬산으로 돌아온다. 인홍사(仁弘寺: 비슬산 북편, 현 남평문씨 세거지)의 주지가 되어서였다. 그는 인홍사를 중수하고 경내를 넓혔다. 이를 조정에 아뢰자 원종임금은 바로 사액을 내렸다. 인흥사(仁興寺)로 이름을 바꾸어 왕이 직접 제액을 써서 하사했다.

비슬산 동쪽의 용천사를 중수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이 절을 불일사(佛日寺)로 불렀으며, ‘불일결사문’을 쓰기도 했다. 불일사는 나중에 용천사로 이름이 바뀐다.

이후 그는 가지산파의 학일스님이 명성을 날리던 운문사에서 지내다가, 개경을 오고가면서 국사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만년에는 노모의 봉양을 이유로 인각사에 주석하면서 ‘삼국유사’의 편찬을 마무리 짓는다. 인각사에서 구산문도회를 개최해 성황을 이루기도 하며, 1289년 향년 84세로 눈을 감는다. 그는 30여년을 비슬산 기슭에서 정진하면서 지냈으며, 비슬산의 기상과 기운을 사랑했다. 때때로 전국 곳곳을 떠돌기도 했지만, 이내 비슬산으로 돌아와 정진하기 일쑤였다. 그만큼 비슬산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곳이었고, 그의 수행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하기도 한 산이었다. 어쩌면 그가 지향했던 삶은 관기와 도성, 또는 반사와 첩사 등의 성인들이 살았던 숨은 은자의 삶이었을까?

비슬산에는 그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해발 1천84m인 비슬산은 대구로부터 가창, 화원, 옥포, 논공, 현풍, 유가의 6개면과 청도군에 걸쳐있는 큰 산괴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대견봉은 서편에 월광봉과 필봉을, 북편에 석검봉·천주봉·수도봉을 거느리면서 동으로는 화악산으로, 남으로는 창녕 화왕산으로 뻗는다.

글=이하석 <시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공동기획 : 달성군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기전 30여년을 비슬산에 머물렀다. 너른 산정의 길을 오가면서 이 지역에 전해오는 도통 이야기와 도인들의 스토리를 적어 놓았다. 이 기록은 나중에, 그의 불세출의 명작으로 꼽히는 ‘삼국유사’에 실린다. 사진은 일연이 한때 머물렀던 비슬산 유가사와 소재사. <영남일보 DB>
비슬산 유가사

비슬산 소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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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작성자 12.01.25 23:51

    강 하나 건너면 닿는 곳인데, 경계때문에 멀어만 보였던 달성이 이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엇습니다.
    삼대골 뒷산에서 보면 구마고속도로가 먼나라 같았는데...
    선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통일 대통령 되십시요.

  • 12.01.25 12:49

    비슬산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깊은 내력이 있었구나!
    어릴 때 멍듬이에서 강 저쪽을 바라보면 참꽃으로 인해 산이 온통 핑크빛이었던 거 생각나네.
    명절에 친정엔 잘 다녀갔는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 이해연 선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4.22좋은 통일절을 정하고 통일대통령 꿈을 품은 초딩 3년 때..
    얼치골 산에서 소를 먹이며 통일국기를 고민하든 중 소낙비가 그친 후에 낙동강 건너
    팔공산&비슬산 사이에 뜬 색동무지개 하늘국기를 보고는 엄청 큰 영감을 받았죠..

  • 작성자 12.01.25 23:48

    언니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오빠집에 가셔서 설 보내시고 어제 오셨는데 오늘 달성 강정보 구경시켜 드리고 모셔다 드리고 왔습니다.
    그래도 고맙지요 건강하게 여기저기 다니시는걸 보면.....
    강건너 시집왔을 뿐인데 이제 달성군 사람 다 됐습니다.22년 째 사니까요

  • 12.01.26 23:39

    두기 후배도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소원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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