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교는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유래 역시도 꽤나 오래되었다. 13일 전쟁과 뒤이어 찾아온 90년간의 혼란기는 인류로 하여금 동일된 정체를 통한 극복을 염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탄생한 것이 지구통일정부였다. 갓 수립되었을 때는 아직 통일정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여 이런저런 혼란이 있었지만 혼란이 가라앉으면서 통일정부의 권위가 섰고 통일정부는 인류의 소망을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통일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은 지구의 재건이었다. 한때 인류문명의 산물들이 도처에 널렸던 지구는 폐허만이 가득했고 이 통일정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폐허 위의 재건을 해야 하였다. 다행히 이 시대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지구의 재건을 외치던 시대였기에 지구의 재건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통일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3일 전쟁이 벌어지기 전, 인류의 문명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수준에 이르렀고 간헐적으로나마 태양계 탐사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을 벗어나 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함이었으나 13일 전쟁으로 그 소망은 뒤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이 소망을 이루려는 이가 통일정부였다.
결국 통일정부의 지원 아래 인류는 우주 개척에 나서게 된다. 처음에는 태양계를 목표로 하였고 달과 화성 등에 작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행성 단위로 테라포밍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인류의 거주지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인류의 성장은 끝 모르고 달려가고 있었고 산더미같이 많은 돈과 물자가 실린 우주선들이 태양계 각지를 누볐다.
이런 성공에 인류와 통일정부는 태양계를 넘어 우주 전체로 야심을 가졌고 마침 안토넬 아슈노 박사 주도로 이루어진 초광속항행 기술이 발명되고 이를 개량, 개선해나감에 따라 우주 이주의 붐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는 인류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로 통일정부의 수뇌부들은 한 가지 고심에 빠졌다.
통일정부의 관계자들은 인류의 거주지가 넓어지는 속도에 비해 통일정부의 통치력이 넓어지는 속도는 느림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태양계까지는 지구와 매우 가까워서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으나 태양계를 넘어서게 되자 이것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통일정부의 지향은 인류의 통일이기도 했다. 그것이 설립 목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행정력이 부담하기 힘든 영역을 가지게 되면 어쩔 것인가, 아마 통치력이 온전히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뜻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고 또한 지구와 멀어질수록 지구에 가지는 애착심이 약해질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통일정부의 통일성을 해치게 할 것이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식민지에게도 어느정도의 권한을 줘야 했다. 하지만 그 권한을 어느정도 주어야 하는지를 놓고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동안은 이로 인해 벌어진 문제는 없었다. 우주 진출 초기에는 식민지들의 규모가 극히 미미했을 뿐더러 아직까지는 통일정부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시기에 이르러 발생한 '지구 어머니론'이 지구인과 식민지인간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지구 어머니론이야말로 지구교의 가장 오래된 유래이다.
지구 어머니론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지구는 전 인류의 어머니이다.' 인류가 탄생하고 문명을 건설하고 모든 것의 시작은 지구였으니 지구는 인류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지구인들은 물론 식민지인들 사이에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각지의 식민지들은 초기에는 그 성장을 지구에 의존하였고 통일정부 또한 아직까지는 제정신이었고 아직까지 식민지인의 대부분은 지구가 고향이었기에 '지구 어머니론'은 현실의 사정과 맞어떨어져 식민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심지어 지구 어머니론은 지구와 식민지인의 연결고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놓아야 좋았던 통일정부에게도 유리하였기에 지구 어머니론은 통일정부의 은근한 지원까지 받으며 대중 사이로 빠르게 확산하게 되었다. 물론 지구 어머니론이 지구교의 가장 오래된 유래이고 통일정부가 밀어준 사상이긴 했지만 초기의 지구 어머니론은 건전한 사상이었다.
지구 어머니론은 지구를 어머니처럼 여겼지만 그렇다고 지구=지구인은 아니었으며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자식이 어머니 말을 잘 듣는게 권장되듯 어머니 또한 자식을 잘 돌봐야 한다는 논리로서 지구가 일부러 인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떻게 보면 인류 스스로 13일 전쟁으로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에 대한 자기반성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 어머니론은 통일정부가 병들며 함께 병들어갔다. 통일정부는 이를 악용해가며 자신들의 식민지 착취를 정당화했고 지구인들까지도 덩달아 지적 쇠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질된 지구 어머니론에서 지구는 지구인과 동일시되었으며 모든 기준은 지구인에서 시작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지구인은 어머니, 지구 외 태양계 거주지인들은 지구인의 형제, 그리고 식민지인들은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태양계 거주지인들은 형제 취급을 받았기에 대우가 나았지만 식민지인들은 변질된 지구 어머니론이라는 사이비 이론에 매몰된 지구인들의 폭정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에는 식민지인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인류의 첫번째 통일시대는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비 사이비 이론이 되어버린 지구 어머니론까지 같이 퇴출되고 만다. 그러나 지구 어머니론은 지구에서만큼은 죽지않고 살아남았고 후일 지구교가 세워지며 지구교의 핵심 교리로 자리잡았다.
지구교는 지구가 완전히 망한 시대에 태어났다. 지구교 자신들은 그 연혁을 아직 라그랑 그룹이 존속하던 시기까지 소급해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후에 탄생한 것을 중론으로 여기며 지구교는 그 당시 지구에 난립한 군소신앙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어쨌거나 끝까지 생존하여 지구를 재통일한 것이 그들과 다른 점이었다.
지구교는 지구를 장악한 후 빠르게 지구의 중심을 자신들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이 때는 마침 은하연방이 막 건국된 때였다. 그리고 이 때에 맞춰 지구교는 연방에 접촉하였고 연방 또한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이 때 연방은 지구의 처분을 놓고 의견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지구교는 이들 중 지구에 자치권을 주자는 쪽을 지원하여 지구는 자치권을 부여받게 된다. 이로써 지구교는 지구를 근거지로 한 자신만의 신정국가를 수립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지구교가 그렇게까지 문제있지는 않았다. 물론 전란기에 등장한 종교답게 잔혹한 면도 많았지만 이후의 악명에 비하면 그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미 시리우스 전역 시기의 감정이 사라진 지구인과 그 외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시하지도 않았고 한동안은 어느정도 교류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연방이 우주 개척에 눈길을 돌리면서 지구를 향한 관심도 끊어졌고 관심 끊어진 지구는 고립되었다. 지구는 특별히 발전된 산업이 없으므로 민간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 연방의 관심이 없다면 발전이 힘들었는데 연방의 관심마저 끊어지자 지구는 고립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외면 속에 지구 내에서는 점점 통일정부의 황금기와 시리우스 전역에 의한 피해, 지구 어머니론에 근거한 지구교 사상 등이 뒤섞이며 지구를 떠나고 잊어버린 자들에 대한 분노가 자라났고 이것은 지구교가 변질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연방은 이 변질도 전혀 관심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 누구 하나의 간섭없이 변질되어가던 지구교는 급기야는 지구를 다시 인류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이에 점점 더 많은 호응을 얻다가 마침내 지구교 총대주교의 동의까지 받아냄으로서 후세에 악명을 날리게 되는 지구교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마침 이 시기는 2세기간 이어진 연방의 황금기가 저물고 연방, 그리고 인류 전체의 정체기와 맞닿아 있었다. 지구교는 물 들어올 때 노젓듯 본모습을 감추고 적극적인 포교를 이어나가 우주력 3세기 말에 이르면 인류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마침 지구교의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었다.
지구교는 그가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시점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특히나 그가 군인을 그만두고 정치인이 되면서 더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가 차기 국가원수감으로 떠오른 뒤로는 그를 면밀히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지구교가 보기에 그는 아주 좋은 도구였기 때문으로 그의 성향이 인류를 더 깊은 암흑기에 빠지게 하기 충분하다고 여기고는 은밀히 그를 지원했다.
물론 지구교의 교세는 아직 유명세에 비하면 크지 못했고 특히 정계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전혀 없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지원은 극히 미비했다. 그저 신도들에게 그를 찍을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엔 없었다. 그래도 워낙 루돌프의 지지가 확고했기에 그는 무리없이 당선되었고 이후 루돌프는 독재자에 이어 마침내 황제가 되었으며 폭군이 되었다.
루돌프가 폭정을 저지르기 시작하자 지구교는 쾌재를 불렀다. 민주공화주의가 몰락하고 전제군주제가 타락한 이상 민중들은 다시금 분노를 가질 것이고 그 때 민주공화주의와 전제군주제 모두의 대안으로서 자신들이 일어서게 되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구교가 루돌프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으로 루돌프는 폭군이지만 기본 역량만큼은 대단해서 그의 폭정이 극심했음에도 그의 생전에는 체제를 위협할 대규모 반란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폭정은 지구교에게도 재앙이 되었는데 루돌프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섬긴다는게 싫었기에 지구교 신자들도 죽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구의 자치권은 은하연방 초기부터 주어진 것이고 굳이 회수할 가치도 루돌프의 지구에 대한 관심도 없었기에 보전되어 지구교는 지구에서나마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 후 오랫동안 지구교의 침체기가 이어졌다. 지구교에 대한 탄압은 루돌프 사후 멈췄으나 제국도 초기에는 그런대로 건전하게 운영되었기에 지구교가 파고들 틈새가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지기스문트 2세 시기나 아우구스트 2세 시기에 반짝 신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래도 제국체제가 딱히 민중에게 편한 것은 아니었고 제국도 에리히 2세 사후 서서히 병들어가면서 멀리 보면 신자수 자체는 루돌프 사후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교의 성장은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인식과 자유행성동맹의 2차례에 걸친 제국의 대침공의 격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촉진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