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구미 도리사(挑李寺)
경상북도 구미시 태조산 자락에 위치한 도리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도리사 전경
도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의 초전지(初傳地)로 알려진 곳이며 묵호자(아도화상)가 17년(신라 눌지왕 14)에 서라벌(경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挑)과 오얏꽃(李)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도리사라 하였다.
아도화상은 중국 위나라 아굴마의 아들로 신라 19대 눌지왕때 19세의 나이로 어머니 고씨도령의 뜻에 따라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이미 불교가 전파되었지만 신라는 고유의 신앙과 외국 문물에 대한 배타적인 면이 있어서 불교 포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선산군 도개면 모례의 집에 와서 숨어 살면서 낮에는 소와 양을 키우고 밤에는 사람들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이나 계속 하였다. 그때 중국 양나라 사신이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냈으나 그 사용 방법을 몰랐을 때 아도화상이 그것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고 소원을 말하면 영험이 있다하고 일러 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 성곡 공주가 큰 병이 들어 위독하였으나 묵호자가 초대되어 공주 앞에서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렸더니 공주가 눈을 뜨고 제정신을 찾았다. 왕은 기뻐하며 묵호자에게 소원을 물었다. 묵호자는 절을 세워 불교를 널리 펴고 싶다 하여 왕은 허락하고 불사를 시작하며 묵호자가 아닌 불명인 아도란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다.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완성하고 도리사라 칭하고 마을 이름을 도개마을이라 하였다.
1976년 세존진신사리탑을 복원 하던 중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과 그 속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출토되었다.
지금도 도리사 근처 아도화상이 양을 천 마리 길렀던 곳을 ‘양천골’, 소를 천마리 길었던 곳을‘우천골’이라 부르고 도개마을 위에 외양간이 있었다 하여 ‘우실’이라 부른다.
또 모례장자 집터는‘모례장자터’, 우물은‘모례장자샘’이라하는데 지금도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큰 둑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우물의 깊이는 3m 이고 둘레는 단면이 원형이며 종단면은 배가 부르고 상하가 좁은 형태이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지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도리사 석탑은 화엄석탑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인 석탑과는 다른 특이한 양식을 하고 있다. 높이는 4.5.m 이며 여러 개의 석주를 맞대어 기단부를 형성하였고 다시 그 상부에 모전석탑과 같은 방법으로 쌓아진 중층의 탑신부와 노반위에 연화 보주가 올려진 상륜을 배치한 모양이다.
* 보물 제 470호 도리사 석탑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올려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방생때 순례하는 사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작은 것이라도 모두 소즁한 문화 유산입니다.
안심 법우님들께서는 순례길에 하나라도 더 보시고
좋은 추억 만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녀온듯 아닌듯 어찌이리 까마귀하고 친굴 하는지 ㅎ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역쉬 발 빠르신 쌤이예요. 아미타불
아 이번 방생길에 들리는사찰이라면 열심히 공부하고 가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대구근교이니 언제 한 번 다녀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 -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의 108사찰순례 공덕에 감사드립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