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은 그것이 어떤 고통이든 항상 고통을 묵인하는가? 과거에도 줄곧 제기되어온 이 질문의 대답은 항상 같다. 그 과정 속에 완벽함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무릇 삶이란 선택에서 비롯된다. 선택에 간섭하거나 선택을 문제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선택을 비난하는 건 특히나 더 적절하지 못하다.
적절한 쪽은 그 선택을 관찰하고, 그런 다음 그 영혼이 좀더 고상한 선택을 추구하고 더 고상한 선택을 내리고자 할 때, 그것을 도와줄 뭔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보되 판단하지는 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걸 그들이 깨닫게 해주라. 그러나 그들이 더 새로운 선택, 또 다른 선택, 즉 더 고상한 선택을 하려는 때가 오면 기꺼이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옆에 서있도록 하라.
타인의 영혼들과 깊이 교감하라. 그러면 너는 그 영혼들의 목적, 그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이 치료해준 사람들과, 자신이 그 삶에 접촉한 모든 이들과 함께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는 자기에게 온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내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 모두를 치료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구 치료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했다면 그건 우주의 성스러운 법칙을 모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즉 모든 영혼이 제 갈길을 가게하라는 법칙을.
*출처 : 신과 나눈 이야기 1권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