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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시나리오를 쓰고 계십니다. 문제를 이런식으로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유익되지 않습니다.
진면목을 정확히 이해하시고 자유로운 비판을 가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며 발전의 기회가 됩니다.
성문밖편지 카페에 포함된 내용들은 소속된 빌더들에게만 해당 사항이 된다는 것을 우선 알립니다.
쉬운말로 당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엉터리 시나리오 쓰지 마십시오.
입으라고 하지도 않은 옷을 억지로 입는 시늉을 하며 맞지 않는다느니 이단 삼단 666까지 논하니 참으로 웃기는 쑈입니다.
우선 케이빌더(K-Builders) 운동이 입안된 배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적으로 이 배경이 된 것은 내부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니 그것부터 관찰해 드리기를 권합니다.
주의검을보내사님이 상상하는 [세상적 권력 기반을 가진 정부]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라 냉철한 저의 판단의식 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문밖편지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
일할 빌더들만 필요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개인적 판단에 의한 참여에서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 어떤 강요나, 설득,
세뇌, 강제 사항 같은 것들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유의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잠깐의 지나간 성문밖편지카페지기님과 관련된 스토리를 적어보겠습니다.
(사람이 70여세에 이르러 경험하는 폭과 안목은 젊은 우리와 많은 갭이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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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된 내용들은 카페지기님의 책 - 나의 가는 길을 주가 아시나이다-를 참조 했으며 상당부분은 제가 직접 본 일들입니다.
1. 국회 초대목사로 청빙받다. - 1980년
국회사무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금은 국회 조찬기도회 같은곳에 얼굴만 내밀어도 자랑스러워 합니다만
그 시절의 국회목사는 한마디로 끗발을 세울 만큼 100여명 이상의 현직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이 일을 계기로 정치가들과 각종 교단의 중직, 재벌들과 많은 교류를 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국회 기도실에서 예배 인도를 위해 묵상을 하는 중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 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는 말씀이 마음을 쳤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것이 어린 아이의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되어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구두닦이와 재소자등 저변 청소년을 위한 전도운동을 하게 됩니다.
2. 씨들원을 시작하다. - 1982년
구두닦이, 재소자, 공단 직업청소년들을 전도해서 가까운 교회를 소개 해주곤 하였으나. 얼마 지나고 난 후
"교회 생활을 잘 하는가?"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우리의 자리가 없어요" 가 답이었습니다.
; 이런 부분은 지금도 거의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강남 소망교회 같은 곳에 구두닦는 청년이 설 자리가 있을까요?
그래서 고민한 끝에 '이들을 전도 해서 교회당에 소개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전도자가 되어야 겠구나'라는 결론을 내고
이들을 위한 훈련장소를 마련하게 됩니다.
월세 2만원을 지불하고 남양주시 금곡리에 장갑파는 형제와 세 자매를 데리고 훈련을 시작합니다. 훈련은 3개월, 숙식을
같이하며 밤 낮으로 성경을 공부하여 기초적인 조직신학 부터 성경 전반에 대한 교육을 합니다.
소문을 듣고 비슷한 처지의 직업청소년들이 1기 훈련을 마치기도 전에 2기 훈련 대기자가 생겼습니다.
씨들원 3개월 훈련을 마친 사람은 헌신식을 거치게 되는데 복음적 인생을 살게 될것인지에 대한 여부에 따라 파송이 되었습니다.
헌신식이란 3가지 질문이 주어집니다. (빌립보서 2장 6 ~절에 근거)
- 땅의 영광을 포기하겠는가?
- 너희 처럼 어려운 처지의 대상의 입장이 되어 섬기고 복음을 전하겠는가?
- 죽기까지 성경말씀에 복종하고 선생인 나의 가르침에도 따르겠는가?
일종의 세례 의식과 같은 것으로서 얼마든지 거부하고 자신의 원래 삶으로도 돌아갈 수 있지만
한 번 해보겠다는 그들의 의향에 따라 파송식이 이루어집니다.
파송식에는 몇가지 선물이 주어집니다. 쓰레받기, 양동이, 걸레, 염산 고무장갑 따위입니다.
1년동안 자신이 아무데고 원하는 곳(주로 공장)에 찾아가 취업을 하고 가장 먼저 일어나 공장 화장실을 청소하고
저녁 마지막 잘때 공장 화장실 청소와 기숙사를 청소를 하는용도입니다.
즉, 이 파송의 의미는 실제로 섬김의 삶을 시도해보는 예행연습입니다.
이 파송된 사람에게는 될 수록 예수믿는다는 것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이 사람들이 씨들원 생활관에 모여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것 때문에 예배 진행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1년 동안 파송식을 마치면 대부분 그곳에 있던 몇명의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오기 마련이었습니다.
언니 가는곳에 나도 데려가주오, 형 같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게 해주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이 회사에 나타나면 산업스파이나 그런것으로 오해를 하였으나 묵묵히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을보고 회사를 마칠때에는 중직을 제의, 파격적인 월급 인상등 회사에 붙잡으려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3. 헌금문제가 생기다.
파송 훈련자들이 늘어나고 생활관에 모여들어 주간보고를 하는 시간에는 서로 말못한 기쁨과 은혜 때문에 매번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자신 같은 신분도 귀하게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감격 때문이었죠.
첫 파송자가 월급을 봉투째 뜯지도 않고 가져와서 목사님에게 드렸습니다.
"이것을 왜 나를 주냐?",
"이것은 제 돈이 아니잖아요?"
"왜?"
"저는 이미 하나님께 헌신한 몸이니 하나님의 몸으로 일해서 받은 이 돈도 마땅히 하나님의 것이잖아요?"
그것에 큰 충격을 받으며 이것은 새로운 전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돈은 씨들원 훈련을 이어가게 하는 자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맡은 회계 자매가 예배 시간에 헌금할 돈을 각자에게 나눠 주어 헌금을 하게 됩니다.
(자기 돈이 없으니 돈은 당연히 회계를 맡은 자매가 갖고 있지요)
이렇게 횟수가 거듭되자 헌금이란 것이 하나님 앞에 요식 행위가 되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미 형제 자매들이 전액 월급을 헌금해 버리고 그 돈을 다시 나눠 헌금하다보니 문제가 된겁니다
횟수가 거듭해 지고 헌금에서 자유해지자는 의견에 따라 예배 시간에 헌금이 없어졌습니다.
즉, 월급전액을 헌금해버렸으니, 십일조도, 헌금도 불필요하게 된 것이죠.
; 참고로 씨들원의 전통은 무소유 무보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4. 주일에도 일을 해요.
이 때 문제가 된 것이 파송된 곳들이 대부분 공장이다보니 주일날 일을 하는 곳이 많았습니다(80년대에는 비일비재 했슴)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돈을 적게 받더라도 반드시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아 직장을 옮겨야 하는게 아닌가 했는데
돌연 어느 형제가(노동판을 찾아 다니며 장갑을 파는 형제)
"목사님, 우리가 몸을 주께 드린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주님의 몸으로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아닌가요?"
라고 질문을 해서 "그렇구나,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 계신다!" 라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의 성경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가 로마교회때부터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교의 제일이 바로
SUNDAY였으며 그것이 유전과 전통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안에 내가 내 안에 주님이 계신 자들"은 일요일 교회당을 찾는 것이 주일 성수가 아니라, 365일동안 주님의 날로
사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 한국 최초의 대안학교를 설립하다.
씨들원을 통해 훈련을 하다보니 나이어린 청소년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화도에 OO재단에서
비어있는 건물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일제시대의 목조건물에 대안학교 성격의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 설립을 위해 담당자가 200회 공무원을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등 눈물겨운 노력끝에 드디어 특수학교
인가를 받아 한국최초의 대안학교인 [국제기능인선교학교]를 설립 3년 과정을 개설합니다.
* 연령제한이 없고
* 자격 조건 없고
* 전원 기숙사 입소
* 숙식 무료
* 시험제도 폐지
* 최고급 교복
* 한달에 10만원 용동(지급된 돈은 마음대로 쓰되 영수증은 반드시 가져오고 외출시 반드시 단정한 복장을 입을것)
첫 입학생이 75명이 입학하여 재미있게 학교가 운영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국가가 사관생도를 키운 것처럼 학비와 용돈을 주어 공부를 시키고 졸업생에게는 희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꾼들로
쓰기 위한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고아, 문제 청소년, 비행 청소년, 갈 곳 없는 아이도 많았습니다.
6. 첫 해외선교사 12인 파송 - 1985년
씨들원 훈련과 국제기능인선교학교를 마치고 헌신식을 치룬 대상에게 최초로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됩니다.
이들을 해외로 파송하게 된 이유는 대부분 저변에서 자란 청소년들이다보니 한국 사회에 내어 놓아도 복음의 일꾼으로
일할 현장이 없었습니다. 누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전과자 출신에게 전도를 받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복음적 정열과 투지는 그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전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도들은 어떻게 했나? 그러면서 사도행전 1장 8절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구나. 예수의 증인들은 한 곳에 머무르면 안된다. 땅 끝까지 가야한다. 그래서 해외로 파송할 곳을 준비하게 됩니다.
불과 얼마전 까지
봉제공장에서 공원으로 있던 사람, 신문을 돌리던 아이, 전과자로 낙인찍혀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람,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를
중퇴하여 카센타에서 일하는 젊은이, 심지어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까지 복음으로 변화되어 해외 선교사라는 신분으로
파송되어 일하게 됩니다. 이 때에는 아직 한국에서 해외 선교사 파송은 거의 전무한 시절입니다.
브라질, 알젠틴, 파라과이, 태국, 필리핀, 케냐, 보츠와나, 싸우쓰아프리카,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등등 1차 12인을 시작으로
약 120여명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게 됩니다.
한국전체 교회가 보낸 선교사 숫자보다 씨들원을 통하여 파송된 숫자가 더 많았던 시절입니다.
주로 이들은 자신이 가졌던 기능을 위주로 기술학교를 운영하거나, 무료유치원, 유치원 등등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자비량 선교사
타이틀을 갖고 묵묵히 선교사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7. 탁명환씨가 찾아오다.
무소유 무보수의 삶을 기본 골자로 살다보니 헌금에 대한 내부 해답 때문에 "하나님께 전부 바친 삶을 사는 사람은 따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 일년 365일 동안 주의 날로 사는 사람에게 따로 주일은 큰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일개 목사가 12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다보니 그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발로 탁명환씨가 찾아오게 된것이죠.(배경을 설명하려면 매우 복잡하니 건너뜁시다)
탁명환씨와 조 목사님이 약 2박 3일의 독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꼬투리를 잡을까하여 취조식 문답이 그렇게
장시간 계속되고 나서 탁명환씨는 [수고 하십시오. 많은 것을 알았으나 이단의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을 뒤로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8. [교회당 문화가 남긴 유산] 1, 2 를 출판하다. - 1987년에 원고를 쓰기 시작 하여 수년 후에 출판
이 책은 나오지 않아야 했을 책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씨들원에서 헌신된 사역자들에게만 적용될 사안인
무소유의 삶, 365일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로 헌금할 것도, 십일조를 낼 것도, 따로 주일을 지켜야 할 것도,
어디에나 가면 함께 가는 내주 하는 예수님때문에 성전(교회)도 필요 없는 답을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되자 교계의 술렁임이 시작되고 드디어 조 목사는 이단아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씨들원 출신들은 복음적 메시지 방식 때문에 기존 교회의 사람들과 섟일 수 없는 신앙 방식이었습니다.
전적인 헌신,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한 무소유, 삶의 영역 속에 복음을 적용하는 것은 일반 교회의 사람들과
너무나 괴리가 생겨서 적응하기 힘든 것이 되었습니다.
마치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요원이 죽음을 넘나드는 훈련을 받았는데 출퇴근하는 방위병하고 같이 섟여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연출되어 일반 교회당 패턴과 너무나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비교의 예로 든 것은 죄송).
이같은 현상은 해외에서 일하는 씨들원 출신의 선교사들과 한국의 교단 선교사간에 큰 마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교단 선교사들 눈에 보기에는 목사 안수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 선교랍시고 하는데
그들의 출신과 정체를 알다보니 학식도 없고, 정통 신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란 것을 문제 삼게 되었죠.
문제는 자신들보다 훨씬 우월한 시스템과 100퍼센트 원주민 선교 사역을 통해 훌륭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받으며 어쨌거나 선교사역을 진행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목사만이 단독으로 교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안수를 받은 목사만이 선교사적 특권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목사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과 비판이 가해지게 되었으며 이때 한국 교회에 회자된 단어가
기능인 선교사라던지, 자비량 선교사라든지 하는 신조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선교지에서도 정통(?)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들의 방해와 음해, 질투 공작이 심심치 않게 자행되었습니다.
9.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들의 남겨진 문제
그 시절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 대부분은 약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소위 부자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저(iDeaRush)보고 제발 한 번 놀러와 우리 집 커 300평인데 잘 곳 많아..를 우스갯 소리로 말하는 분
보츠와나에서는 최초로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을 씨들원 출신 선교사가 세운 기술학교에서 치루고 합격도 학교에서 시키는
역사적인 일도 있게 되었고
어떤 이는 남아프리카 지역의 모 국가의 정부종합청사를 지은 큰 건축회사
아프리카 OO자동차 지사장
중고등학교를 소유한 이사장
초등학교를 세운 이사장
필리핀 코피노 재단 이사장...........기타 등등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게 정착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에 남겨진 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메시지의 정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은사적 측면으로 성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케어내고 현실에서 적용하는 능력을 가진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일이 해외 선교지에서 발생되었습니다.
이른바 말씀의 자양분이 바닥난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통제 기능이 없다보니 어떤이는 해외 현지에서 워치만 리에 소속되는 일도 발생했고 선교다운
선교를 펼칠 수 없는 시스템의 부재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현상 때문에 세계적인 네트웍의 필요, 시대적 감각에 맞는 메시지의 생산,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각자 돈꿰나 벌고 든든한 사업체를 갖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구조화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의 조명이 허약하게 되고 구심점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물론 초기 얼마 동안은 조목사님이 각국을 방문하여 사도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제 눈앞에서 순식간에 2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그 기간동안 국내에서 선교기관의 행정, 범죄청소년 대안학교의 자원봉사, 선교업무 지원 볼룬티어등등으로
역시 무소유 무보수 풀타임 헌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젊은 20대 부터 15년에 가까운 시절을 월 2만원 가량의 활동비를 받으며 풀타임 전도자의 삶을 살아 보았던 사람으로
자신감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힘든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사랑하는이도 모두
떠나보내며 이것이 헌신자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30대 중반의 어느날 사역지를 옮기라는 통보를 받고 짐을 꾸리니 라면 박스에 2개가 제 짐의 전부더군요.
그런 과정중에 조목사님이 가정은 그야말로 너덜너덜 구차한 삶을 꾸려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외에 선교할
자금은 아낌없이 투자했지만 가정과 자녀 교육은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일 발생했지요.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결혼했지만 이 섭섭함 때문에 가족들로 부터 외면 당하게 되었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의 생각과, 또는 성문밖편지 카페지기님의 생각과, 여기 플레비언의 사람들과는 근본적인 삶의 철학과
경험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간략(?) 하나마 성문밖편지카페지기님의 교계 등장부터 사회적 매장에 이르게 된 배경을 썻습니다.
성문밖편지카페의 글들은 모두 그 과정에서 생겨난 삶의 정리입니다.
즉, 가상정부라고 하는 세계 네트웍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하시면 됩니다.
통치 기능 없이 씨들원 출신들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의 문제는 여기 플레비언 카페 같이
입씨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의 것입니다. 그것을 이런 속에서 입씨를 하는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사상적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공론화 하는 것은 억지 춘향입니다. 이것이 굳이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당신들의 그것과는 근본부터 다른것이고 최소한 그런 무소유 풀타임 사역의 삶을 수십년
산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통치 기능과 네트웍이 필요한 Kingdom Buidler의 정부입니다.
사관학교
씨들원
헌신식
등록제.........등등은 다 이런 논리 가운데서 형성된 것이며 그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언감생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당신들의 것이 전혀 아닙니다. 혹, 제가 교만하게 보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20대 초반부터 현재 손자를 하나 가진 나이가 되어 죽도록 복음 전도의
삶에 헌신 해보고 내린 숙제들 앞에서 그것이 지탄받고 왜곡 당하는 것을 보며 울분과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귀한 옷을 입고, 든든한 월급을 받아가며, 주일날 거룩한 체 정장을 입고 교회당 나들이를 하는
당신들이 그런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전달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과 하등 다를 것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당신들에게 전혀 귀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재림 후에나 이루어진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례만 들고 마치겠습니다.
꼽추로 살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신체적 한계 때문에 냉대와 슬픔의 시절을 보내다가
씨들원 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이는 편물 기술에 몰두하였고, 일본 생산성 본부에서 평생보장과 어마어마한 월급 - 그 때(80년대) 돈으로 연봉 2억(?)-을 제안
받았지만 보츠와나 부쉬 숲속에 굳호프 기술학교의 교사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사는 삶을 자원하였습니다.
그 선교사의 선교 보고 편지를 제가 본부에서 팩스로 받고 감격에 겨워 울었습니다.
"나는 이 새까만 아이의 눈동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호의 호식하는 것을 꿈도 꿀 수 없노라"
여담입니다만
영혼과 삶이 부서져 버리고 꿈도 빼앗겨 버린 범죄 소굴에서 방황하는 어찌 할 수 없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울어보신 분이
혹시 몇이나 되십니까? 그런 삶을 소생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기 위하여 원초적인 복음의 현장에서 젊음을 불태워본 사람은 여기서 얼마나 있으십니까? 그런 수준의 사람들에게만 갑론을박에 적극 초청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교만해 보입니까?
당신들은 흉내라도 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십시오.
주의검을보내사님 혹시 당신이 예수님의 심장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낙심해 있는 저의 선생님에게 심심한 사과라도 부탁합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성문밖편지 카페에 있는 글들은 훈련도 안된 사람들에게 입으라고 주는 옷들이 아닙니다.
그것을 일반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많이들 탈이 나더군요.
헌금도 안하지, 주일도 안지키지, 십일조도 안하지 그러면서 아예 하나님 나라의 일도 안하니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준것 아닙니까?
족구 경기에서 수준도 안된 것들이 A 킥을 찬다고 허둥 데다 뒤로 나자빠지고 비틀거리다 골반이나 상하고 하는 것과 같지요 *^^
; 성문밖편지카페 지기님의 훈련을 마친 대부분의 자원들은 당신들이 불쌍한 시선으로 보거나, 멸시하거나, 천대하는 무학력자, 초등학교 중퇴자, 중고등학교 중퇴자가 부지기수요. 전과자, 때로는 술집여자도 있었습니다. 누가 그들을 훈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변신시킬 자신이 있으십니까. 제가 알기로 그분들의 변화된 삶은 여기서 입씨름따위나 하는 당신들의 썩은 입냄새보다 훨씬 고귀한 삶의 향기를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비밀인지도 모르지요.
첫댓글 글을 읽기위해 가입했던 성문밖 카페를 오늘 부로 탈퇴합니다
당신같은 분은 해당 사항이 없는 하류 삶들의 글이니 읽으실 필요가 없을게지요? 저희는 너덜너덜 찢기고 소외된 예수를 사귀고 있고, 님들은 호화로운 예배당에서 금빛 옷을 입은 예수를 사귀고 있는게지요. 흠.
쯧쯧...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하류라니까요? 왜그러십니까? 고귀한 상류 인사님?
당신이 사귀(?)는 예수님과 제가 섬기는 예수님과는 다른 분입니까?
알게 뭡니까? 성경속을 달리다보니 그리 예수님이 발견됩디다. 주의검을보내사님이 저희 카페에 이런식으로 댓글 달길레 저도 그렇게 해보고 있기는 합니다만 별로 재미도 없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구요. 나랑 상관 없으신분이죠? 님이 믿는 예수님 때문에 제가 믿는 예수님에게 화를 내고 싶으신가요?
또 하나 웃긴것은 이 답글의 성격이 애초부터 당신과는 전혀 무관한 글인데 당신의 댓글이 저의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성문밖편지카페를 탈퇴해서 어쨌다는 것이지요? 성문밖편지 카페가 당신에게 해를 입혔습니까? 그따위 댓글의 의도는 뭡니까? 정식으로 저랑 한 판 하실레요? 저는 주먹질도 오래 배운놈입니다. 태권도와 합기도의 정식 사범자격이 있는 놈으로 - 선교사로 가기 위해 필요했지만 - 당신처럼 한 판 붙을 사람에게는 언제든 링 위에서 붙을 자신이 있습니다. 오세요. 친구 관장들의 링도 많습니다. 깨끗이 치워놓고 한 판 하시죠?
태권도와 합기도의 정식 사범자격이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까요?
더구나 기독교인...태권도와 합기도의 정식 사범자격이 있는 사람이 말입니다.....세상게시판에서도 ....무술자들도 많이 있음에도 이런 말은 쓰지를 않는것 아시는지요?
아니죠! 애초 주의검을보내사님이 이런 막말로 저의 카페에서 계속 딴지를 걸었습니다. 이런 댓글을 쓰는 저도 사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혈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 성질 뻗쳐 정말! 누구 좀 주먹 쥐고 덤벼 주쇼. 칼 가지고 와도 무방합니다.
칼이요?
서랍님 사회체육 생활 지도사 자격증, 사범자격증 넘버까지 알려드려야 됩니까? 님은 좀 빠지시죠? 아니시면 한 판 하시든가
참으로 경솔하시군요!
그리고 유치하기도 합니다
아니라니까요. 저는 주의검을보내사님이 한 그대로 해보고 있습니다. 경솔해도 할 수 없죠. 저에게 무슨 소리를 계속 듣고 싶으신가요?
정상적인 소리입니다!
저는 저양반이 카페 탈퇴하거나 강퇴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네요.
아이디어러쉬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었이지요? 님께서 이렇게 막나가시면 님께서 쌓아 올린 공이 다 무너집니다. 또 님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님께서 존경하시는 조목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하시고 돌아서면 후회하시고 돌이켜서 사과하실 건가요? 그런 것이 아니라면 주검보님께서 어떻게 하셨음에 상관없이 자중자애 하시는 것이 님께서 소개하신 조목사님의 얼굴을 세우시는 것 아닌가요?
님께서 하시는 일이 진정 주님의 뜻이며 목적이라면 주검보님의 말에 흔들려서 사람들에게 울분이나 분노로 육정을 나타내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러쉬님의 감정이 이런 사소한 일로 조절이 안된다면 님께서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 세우기 운동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태권도나 복싱 도장같은 곳이라면 저는 쨉도 안되니 가지 않겠습니다. 아이디어러쉬님의 주검보님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으로 바뀔 때까지 플레비언 활동을 중지시켜 드리겠습니다.
휴~~ iDeaRush님 숭사리에서 시원시원 명쾌한 말씀에 많이 공감 하였었는데,,,,지금 어리 벙벙 하네요, 교회개혁의 대안에 압박을 받으셨는지 그 대안이 너무나 억지 스럽다 생각합니다. 이루어질 가능성도 희박하고 시도조차 안되겠지만요,
정말로 사람의 속은 알 수 없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속을 알 수 있을까요. 답답함이여!
내가 한판붙을 나이가 아님니다. 그리고 그런말을 입에 올릴 나이도 아님니다.
러쉬님...!! 성문밖 편지 카페지기의 삶에 푹 빠지신 모양입니다만...우상숭배에 가깝군요. 성령께서 하류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님의 카페지기가 그들을 바꿔놓았습니까?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요일2:9~12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러쉬님에게 하는 말씀인가요?
스스로 주를 위해 버린 안락한 삶이라고 자랑은 하면서 안락하게 사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한 적개심을 가지셨군요. 찬찬히 다 읽었습니다. 고립과 단절속에서 자신의 절대적 신념을 위해 불나방처럼 살았으나 아름답게 맺힌 열매가 보이지 않는 찌들어있는 삶..피곤하고 격해있고 고단하고 그럼에도 아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들원, 케이빌더만의 것이라고
니들이 우리같은 사람들의 피나는 헌신과 그 실전경험을 알기나 하냐면서 이를 악무는 러쉬님의 턱이 보이네요. 저는 주님을 알아갈수록 허술해지고 나이롱이 되가더군요. 그런데 케이빌더팀은 반대인가봐요. 조 목사님의 영적 야심과 영웅심을 철저히 외면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문밖편지는 오래전에 알았던 곳입니다..몇개의 글을 읽어 보고 아니다 싶어서 가입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생각대로 흘러 가는 곳이라 여겨서 무심히 지나쳤지만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이 있으며 성경적이 아니다라고 지적을 한 사람에게 아이디어 러쉬님이 이렇게 흥분을하며 자신들이 여기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며 권면하는 글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또다른 분리주의인것 같습니다..결코 바른 모습은 아니라 여깁니다..성문밖편지에 올려져있는 내용들이 90%가 맞는다해도 10%가 틀리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문밖편지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인위적인 곳이 아니며 짧은 사람의 생각으로 상상할수 없는 곳입니다...사단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사단을 결박해서 불못에 넣은 다음에 완성되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사단이 침범할수 없는 완벅한 곳이기 때문에 비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입니다...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건설하겠다는 것은 또하나의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와 천국(Kingdom of heaven)이 하나님이 지배하며 통치하는 바는 같으나 목적과 범위는 다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성문밖처럼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저런글이 iDeaRush님에게서 나왔단 말입니까? 섬뜩했습니다. 믿고싶지 않았습니다. 비록 왼뺨을 맞았다하더라도 오른뺨마저 돌려대는 것이 온당하고 합당하며 아름다운 하나님의 가르침일진데 어째서 저리도 철저히 악랄할 수가 있단말입니까? 눈물이 납니다.
비록 그게 하나님의 가르침일지라도..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것이 우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울지마세요.. 신선하신 님 우시니, 제 맘도 아픕니다..
한밤중에 처음 댓글 올라온 것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속히 날이 밝아서 회원님들의 권면이 나와주었음 했지요. 그런데 말린다고 되는 것이 아닌가봅니다...저의 연약함도 돌아보며 더욱 주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