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화롯불 같은 재난지원금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금강일보] 어린 시절, 겨울철이면 우리 집 안방 아랫목에는 늘 이불이 깔려있었다. 어머니는 그 아래 발을 묻고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시기도 하고 성경책도 읽으셨다.
겨울방학이면 아침밥을 먹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거나 썰매를 타고 놀다가 점심 때가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꽁꽁 언 동태처럼 뻣뻣한 몸으로 방안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얼른 우리들의 손과 발을 이불 속으로 끌어당기셨다.
아랫목은 아침저녁으로 따뜻하지만, 한낮에는 미지근했다. 그래도 이불 속에 손발을 넣고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퍼렇던 뺨이 발그레해졌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 어머니는 얼른 부엌에 가서 밥상을 차려 오셨다. 그리고는 이불 밑에 묻어뒀던 밥주발을 꺼내시고, 화롯불 위에 놓인 찌개 뚝배기를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러면 우리는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웠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불씨가 남아있는 화롯불을 공부방으로 옮겨주셨다. 온돌방은 아침 저녁으로 부엌에서 불을 지펴 밥을 지어야만 아궁이 속의 불꽃이 방고래를 통해 구들돌을 데워 방을 덥힌다.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때야만 안방 아랫목이 따끈하고, 윗목이나 건넌방인 공부방은 냉기만 가실 정도로 미지근했다. 어머니가 곁에 있던 화롯불을 공부방으로 가져다주시면 그 온기에 의지해 숙제도 하고 동화책도 읽으며 지냈다.
지난 한 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감염 예방을 위해 다중이 밀집한 지역을 피하고, 이동할 때에도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를 차단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와서는 비누로 손을 씻는다. 그리고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오면 옷소매나 휴지로 입과 코를 가리며 호흡기에 의한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위생 수칙도 지킨다. 일상생활과 사회경제적 활동을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외출과 모임을 하지 않고, 다중이용시설 출입, 사적 모임과 종교행사 그리고 공적인 집회도 자제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는 급격하게 확산됐다. 이에 정부에서는 각급 학교의 학사 일정을 조정해 비대면 수업으로 바꾸고, 기업체에도 원격근무를 장려하며, 유흥시설이나 식당의 영업시간도 제한하면서 방역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국민경제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5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재난지원금은 소득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가구원 수에 따라 각 가정에 나눠줬다. 정책 당국자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경제적 갈증을 해소하고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 경기가 회복되길 기대했다.
그 뒤로 수도권 전역으로 일일 확진 환자 수가 증가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상향 조정하고, 지난해 9월에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모든 국민에게 지급했던 1차 때와 달리 2차 지원금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고용 취약계층, 생계 위기가구 등 피해 계층을 선별해 지원했다. 그리고 지난달 11일부터 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3차 재난지원금도 2차 때처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버팀목 자금,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으로 특수 형태의 근로 종사자에게 선별 지원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하자는 의견도 많이 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은 기본 생활의 보장을 위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 저소득 일용근로자, 큰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지급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격려와 희망의 불씨가 돼 재기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냉기가 도는 방에 화롯불을 건네주시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재난지원금이 어려움을 겪는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화롯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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