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내전으로 한동안 시끄럽던 세계는, 나토(NATO)의 협상추진으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아간다. 그러나 평화무드에 연신 "God damn it!"을 외치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바로 '격추 한 건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대기만 하느니, 군복을 벗고 민간조종사(유명인들의 전용기 기사 정도?)나 되겠다'는 젊은 장교 "크리스 버넷(오웬 윌슨)"이다. 럭비공 장난, 젤리 먹기 등의 소일로 시간을 때우던 그는 군복을 벗는 문제로 "리가트(진 핵크먼)" 제독과 대립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철수날짜만 기다린다. 철수 당일(크리스마스), 버넷은 정찰 명령을 받고 투덜대면서 출동한다. 그러나 그는 따분한 군에서의 마지막 정찰비행 중 뜻하지 않은 폭격에 휘말려 비행파트너를 잃고, 홀로 적진 한 가운데에 고립된다. 그리고 리가트와 본부는 버넷의 상황을 접수하고 구조작전을 세우지만 이마저 무산될 위기에 놓인다.
<에너미 라인스>, 그 영화 재미있다 ------------ Visual + Sound
영화 <에너미 라인스>는 우선 재미있는 영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다.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의 기를 죽이려는 듯 항공모함의 전경과 비행기 이륙과정을 배치해 둔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세련된 전문용어에 입혀진 현란한 카메라 기교와 편집에, 관객은 여지없이 압도당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계속되는 수많은 폭파/폭격씬과 미사일을 따돌리려는 묘기에 가까운 비행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블록버스터물과 차별화된 점은 시각(visual)이라기 보다 오히려 청각(sound)에 가깝다. 특히 탱크와 대포로 박살난 민가의 시퀀스에서 '굉음으로 귀가 멍멍할 때'와 같은 느낌을 살려낸 것이나, 적과 대치하는 씬에서 보여준 간헐적인 묵음처리가 그렇다. 이것은 분명 이제껏 폭탄소리가 고작이었던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신선한 부분이며, 따라서 이 영화만의 장점일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촬영과 간결한 편집으로 '긴장감은 쥐고 지루함은 버린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항공모함, 이륙, 비상탈출 등에서 보여지는 상세하고 리얼한 묘사는 촬영이 아주 복잡했으며 까다로웠음을 역설하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어렵게 찍은 씬들을 싹둑싹둑 오려내는 보이지 않는 가위 또한 너무나 간결하고 깔끔하다. 정신없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들. 화려하다못해 'MTV적'이다.
<에너미 라인스>, 그 영화 영악하다 ------------ Conception
영화 <에너미 라인스>는 상황설정(conception) 또한 기막히고 영악하다. 영화의 원제 <Behind Enemy Lines>는 경계선 너머의 "적진 한 가운데"라는 뜻으로, 영화는 주인공을 고립시켜놓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탈출을 지켜보게 한다. 그러면서 '초긴장'과 같은 말초적 감정부터 "한계와 극복" 등 내면적 감동까지 함께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총알이라는 총알은 다 피하는 주인공. 지뢰밭을 대놓고 뛰어가는 굳은 심지, 놀라운 임기응변과 때마침 나타나는 구원의 손길 등. 영화는 기존의 액션영화의 공식을 고스란히 흉내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액션영화의 전형적인 한계로 비판받을 법도 하지만, 무리하게 이야기를 비틀지 않고 무난하게 갔다는 점, 즉 테크닉이라는 한우물만 팠다는 것도 칭찬할 수 있겠다.
또, (한 병사를 구한다는 점에서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의식했는지) 구조작업을 저지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제까지 선(善)의 대명사였던 미국 내부에 정의를 외면하고 몸을 사리는 세력이 있다는 설정... 역시 영악하다.
<에너미 라인스>, 그 영화 부족하다 ------------ Awakening
그러나 <에너미 라인스>에도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헐리우드 전쟁영화가 안고있는 문제와 동일하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와 '절대선' 미국의 영웅의식. 안타까울 정도인 이 고질병의 각성(awakening)과 치유는 특수효과나 촬영기법이 진일보보다 더 어려운 것인가 보다.
사실 영화는 한 철부지가 객기부리다 쓰러지고 극복하면서 철드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인간승리', '아픔만큼의 성숙'인 셈이다. 고립된 상황에서도 순간순간 훈련내용과 직관력을 적극 활용하던 버넷은, 어느덧 총알속으로 뛰어들면서까지 죽은 동료의 희생의 증거물을 챙기고 '철수 후 군복을 벗고자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구겨버리는 늠름한 군인으로 탈바꿈한다. '전쟁은 장난이 아닌 현실'이라는 깨달음. '징계를 각오한 상사와 동료들의 의리' 재확인. 그것은 버넷이라는 인물 개인에게 아주 중요하고 획기적인 변화이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 뒤에 교묘히 숨어있는 미합중국 찬양을 발견하고나면 "God damn it!"이다. 미국이 보스니아 반란군을 깨부술 때 울려퍼지는 '승전가' 혹은 '환희의 송가'풍의 배경음악과 미국 헬기 내에서 내려다보는 반란군의 시체들. 이것을 보고 마냥 '주인공이 이겼다'며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
<에너미 라인스>, 그 영화 조심하라 ------------ Movie About WAR
<에너미 라인스>처럼 화려한 기교로 무장한 전쟁/테러 영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의식이나 가치관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절대선 절대악의 [이분법], [영웅주의], 전쟁의 [합리화]와 [일방적 해석]은 정말 위험한 부분이다.
물론 영화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구조작업을 저지하는 인물들을 설정해 미국에게도 치부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한 사건에 대한 반응일 뿐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결국 반란군을 향한 총격은 도발에 대한 정당방위이고 미국은 인권의 천국이자 승전국이 된다.
이것은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라스트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신을 구해줬던 상사의 묘 앞에서,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라이언일병이 거수경례를 할 때 슬며시 오버랩되는 성조기. 전쟁의 원인과 과정, 폐해에는 상관없이 자신을 살려준 상사와 조국에 대한 예찬만이 메아리친다.
앞 뒤 따져보면 속이 거북할만큼 부담스러운 논리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질이 되어서도 테러범 소탕과 세계평화를 이뤄내는 미국 대통령(에어포스원),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대표로 지구독립선언을 선포하는 또 다른 미국 대통령(인디펜던스데이), 갖가지 독극물과 폭탄으로부터 세계인들을 살리려 '살신성인'하는 미국의 수많은 학자, 박사, 요원... '결자해지'라 했던가. (이념대립에 의한 각종 전쟁/테러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결과론적인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간다.
"관객 여러분의 심판을 기다립니다."
영화제작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제작자, 감독, 배우 등)이 개봉을 앞두고 흔히 하는 말이지만,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는 영화가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거나 이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탓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보다는,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작품을 누리는 관객으로서 능동적인 감상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심판자로서.
이참에 <에너미 라인스>로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주인공이 절대 총에 맞지 않는 것'에만 투덜거리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