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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테니스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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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환 칼럼 ■ 스크랩 박스
김석환 추천 0 조회 59 06.05.07 22: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일본에 전시가 있고 한 40여명의 작품을 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내 책임인지라 그것들을 상자로 만들어서 부치기로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삼일 남은 내 개인전 막바지 작업정리에 몰린 시간이고 일 때문에 처음에는 안 나가기로 한 토요일 교수 테니스 대회를 마음이 약해서 덜커덕 나가기로 한 날이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이라서 이래저래 바쁘게 되었고 작업정리도 좀 덜 되었지만 더 이상 짐 붙이기를 미룰 수가 없어서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 5시 정도 부터 짐을 정리해서 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박스를 만든 경력도 있는데다 이래저래 그림 판넬 짜기 경력도 수십 년에 이번 전시 판넬도 내가 다 만들었기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우체국에 크기도 대충 두 번이나 확인을 했던 터이다.

즉 사변 의 길이와 높이의 합이 3미터이고 총 무게가 30키로 그램이면 되지만 그것을 넘어도 긴 쪽이 1미터 50센티만 안 넘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넘는 것은 돈을 좀 비싸지만 더 내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만 생각하고 무게나 크기가 원래 지정된 것보다 당연히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박스를 두개 만드는 것보다 그래도 한개 만드는 것이 더 싸고 또 받는 사람도 한갓지고 보내는 나도 편하리란 생각에 박스를 한개만 만들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한 면만 만들면 되는 그림용 합판을 만드는 것하고는 사뭇 달라서 일이 간단하지가 않았다.


우선 합판을 칼로 자른 후 사방을 나무 각목으로 돌려 박아 여섯 개의 합판을 그 수치에 서로 모서리가 맞게 그것을 서로 맞추어야 하는데 의외로 헷갈렸다.

그래도 억지로 대충 얼기설기 맞추고 못을 박아 보니 마지막 조립단계에서 옆과 밑에 들어갈 판이 비슷한 수치로 서로 바뀌었는지 상자가 전체적으로 찌그러진 마름모꼴이 되어 버렸다.

아니면 만사에 대충인 내가 뭔가 수치를 잘 못 계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조감도가 있었어야 되는데 급한 나머지 눈대중으로만 하다 보니 오차가 나고야 만 것이다.

그래도 그림 넣기에는 특별히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림을 차곡차곡 쌓아 넣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림의 크기가 다 다르고 입체작품도 있고 종이 작품도 있고 또 엠보싱 작품이 있어서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모두가 남의 작품이니 행여 상하기라도 할라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야 하는 통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여러 번을 넣다 뺐다 하면서 사이사이에 스치로폼과 '똑똑히' 비닐과 종이 등을 자르고 구겨 넣으면서 겨우 퍼즐을 다 맞추어 드디어 관 뚜껑에 그리하듯이 뚜껑에 못 질을 하니 완성이다.

대충 청소를 하고나니 밤 한시다.

좀 만만하게 본 약간의 실수가 있었을 지라도 일단 완성이 되었기에 흐뭇한 마음이었지만  뭔가 찜찜했다.


다음 날 나는 짐을 동생 차에 넣고 이렇기 해라 저렇게 하라고 부탁을 하고 테니스 시합장소로 향했다.

가는 중에 동생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체국이 문을 닫았단다.

"아뿔싸!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저번 주 토요일 날 안성 우체국에서 토요일도 한시까지 문을 연다고 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안성우체국에 전화를 했다. 안성우체국만 문을 열지 변두리는 아니란다.

그리고 그 국제 우편도 말이 좀 달랐다. 아니 달랐다기 보다 내용이 자세했다.

기본 규격보다 크면 부칠 수는 있지만 가격차이가 거의 열배란다.

30키로 이내면 10만원이지만 그것이 4-50킬로면 58만원이란다. 거참 기가 막혔다. 아니 세상에 그런 요금체계가 있단 말인가? 떡도 크기에 따라서 비싸지는 거야 당연 하지만 그래도 단가는 많을수록 오히려 싸지거늘 이건 그 반대도 한참 반대라니 어이가 없었다.


토요일 영업이 1시까지지만 국제우편은 12시까지 가지고 오란다.

일이 난감했다. 일이 유난히 늦은 동생 혼자서는 두어 시간 사이에 그것을 분리해 두 개로 만들 수가 없는 터라 윗집친구한테 전화해서 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친구도 바쁘단다.

해준다고 한들 그리 간단할 것 같지가 않았다.


자꾸 일이 꼬여만 갔다. 그러려고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도 날 이상한 곳으로만 끌고 갔다. 현충사를 찍었는데 아산 대 온천탕 앞으로 끌고 가서 돌아 나오라는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전화 때문에 그랬다지만 아산이 본집이고 거기서 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다 보낸 고향 같은 곳이고 그 주변도 수없이 다닌 곳인데  기계만 믿다가 길을 헤매다니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일이 답답한 외통수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마음 약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오늘은 원래대로 테니스 대회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던 터다.

 

4시에 평택에서 회의가 있고 서울에 꼭 가야할 전시 오픈이 있고 무엇보다 내 개인전 그림을 싣고 올라가야 하는 날이건만 덥석 대회에 나간다고 해 놔서 결국 일이 왕창 꼬이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지를 안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우선 동생에게 그냥 짐을 작업실에 갔다만 놓으라고 하고 테니스장에 가서 게임을 했다.


워낙이 상대들이 실력이 없고 일부러 져 줄 수도 없는 지라 예선을 쉽게 넘고 8강 4강 올라가기만 하니 시간은 자꾸 길어지기만 했고 결국 결승까지 올라가고 말아서 일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때 이미 4시가 넘어 버렸다. 나는 평택에 전화를 걸어서 늦을 것 같다고 하니 너무 늦으면 내용을 공문으로 보내 준단다.


결국 결승을 끝내고 촌스럽게 번쩍거리기 만하는 접시를 '쪼글티기'자세로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5시가 넘어 버렸다. 나는 모든 것은 포기하고 다시 상자와 씨름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목욕과 저녁식사와 축배 등의 휘황찬란한 시간들과 오늘의 나의 모든 일정을 운동화 속에 구겨 넣고 차를 몰았다.

작업실에는 뚜껑이 박살난 채로 그 커다란 상자가 한 중앙에 버티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친구하고 동생이 상자를 해체해서 다시 두 개로 만들려다 복잡해서 포기한 모양이다.


나는 우선 크기가 비슷한 것을 반 가까이 꺼내서 스펀지에 반짝거리는 비닐이 붙어 있는 포장재로 작품을 둘둘 말다시피해서 하나를 먼저 간단히 싸고 나서 다른 것을 싸기로 했다.

서울 전시장에는 언제 오냐고 전화가 몇 사람한테 와서 두 시간이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전시는 못 보더라도 최소한 노래방은 갈 거라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상자부터 문제가 또 꼬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두부 자르듯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판들을 해체해서 모두 작게 잘라 낸다는 것이 새로 짜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렇다고 다시 짤 수도 없는 것이 베니어판의 여분이 없는 통에 기존의 각개목이 붙어 있는 베니어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게 못을 빼다 보면 다 부셔지기만 했다. 윗집 친구도 오전에 그리하려다 뚜껑 부분을 작살내기만 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어찌 어찌 재단해서 자르고 나니 그런대로 상자가 완성이 되었는데 그것이 역시 서둘러서 그런지 상자가 역시 찌그러진데다가 전체길이의 합이 20센티가 오버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이가 갈렸다.

그건 마치 내 인생 같기도 했다.


내가 가는 길이나 생각하는 일이 늘 정확하고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디선가 믿던 차속의 비닐에서 김칫국물이 새어 차안이 엉망이 되듯이 번번이 구멍이 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은 바둑 판 같은 것이고 고스톱 같은 것이다. 테니스도 그렇다. 내가 수가 있으면 상대도 수가 있는 것이고 내수만 보다 보면 남의 수를 놓치게 되고 마는 것이고 만사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나는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것의 나열이 결국 인생인 것을 나는 그런 것들을 자꾸 놓치고 말아 화근을 자초한다.


그 나열을 구슬 꿰듯이 잘 꿰어야 인생도 결국 '짱짱'하련만 난 언제나 허술하기만 하다.

그건 오랜 나의 병이고 이제는 고질이 되어 버려서 늘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니 이제는 그 자체가 짜증이 되어 버렸다.


결국 다시 상자 한 귀퉁이를 잘랐다. 겨우 총 길이를 3미터 이내로 줄이고 역시 나머지 그림을 차곡차곡 쌓고서 윗집서 가지고 온 저울로 재보니 33키로 그람이다. 결국 또 다시 3키로가 오버다.


이건 여기 쯤 해서 미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나의 아둔함이 주는 장점이다. 나는 나사못으로 뚜껑을 붙이면서 월요일 날 마음씨 좋은 우체부 직원을 만날 거라고 주문 외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크기는 맞췄으니 무게야 좀 넘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마음 같아서는 우체국에 물어 보고 싶었지만 토요일 밤 12시에 어느 우체국 직원한테 물어 본단 말인가?

그냥 대충 지저분한 바닥을 정리하고 나는 잠을 청했다.


원래는 택견 관장이 9시에 내 그림을 실어 가고 나는 그 뒤를 쫒아가서 내일 관장이 내 차를 쓰고 나는 그 큰 택견 차와 그림을 가지고 가서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하게 되어 있었지만 내일은 내 차를 안 사용해도 된다는 문자가 관장으로부터 왔다. 따라서 나는 굳이 무리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올라갈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아직 한 낮의 격전으로 말미암아 땀으로 덕지덕지한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맘씨 좋은 우체부 직원 생각에 잠이 잘 안 왔다.

결국 오늘의 일은 모두가 날라 갔다. 회의와 전시오픈 참석과 내가 지부장으로 있는 단식테니스 마니아의 월례대회 등의 일들을 베개 밑에 다 묻고 피곤의 누적으로 오히려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짐을 다시 싸기로 했다.

이제는 정말 미칠 만도 했지만 사형수의 마지막 아침처럼 의외로 담담했다.

어제 윗집 친구가 그럴 줄 알았으면 자기 집에 커다란 '보루박스'가 있는데 처음부터 그것으로 쌀 걸 그랬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윗집에 가서 그것을 빌릴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늦잠을 자는 습관이 있는 친구라 나는 하릴없이 뒷짐을 지고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죽이다 윗집에 올라가 잠을 깨울까봐 노크는 못 하고 역시 얼쩡거리는데 마침 화장실 가던 친구 와이프가 인기척에 날 알아본 지라 겨우 그 박스를 가지고 내려와 재보니 정말 딱 합이 3미터인 상자다.


월남에서 만든 물건 상자인데 아마 이 규격이 국제통일 규격인가보다. 그건 가격을 떠나서 꼭 죽기 살기로 지켜야 되는 불문율 같은 것인 모양인데 좀 더 커도 돈만 더 내면 된다는 우체국 직원의 말을 귀 너머로 대충 듣기만 하고 그리 미련하게 상자를 짰으니 세상일이 어디 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기만 하겠는가?


다시 그 지겨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주로 얇은 스치로품을 이용해서 안에 벽체를 다시 돌리고 사이사이도 더욱 푹신하게 해서 싸니 외피가 얇은 통에 이번에는 오히려 공간이 남아  돌아가서 그림을 한 점 더 넣었다. 그래도 공간이 남아 더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꾹 눌러 참고 끈으로 꽁꽁 묶고 나서 무게를 재보니 햐아! 기가 막히게도 오히려 5키로 그람이 오버다. 아마 욕심으로 한 점을 더 넣은 데다가 상자가 약해서 사이사이에 보호 재를 더 넣어서 그런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내 작품 두 점을 빼고 테이프를 붙인 후 재보니 또 다시 800그람이 오버다.

미련하게도 자꾸만 포장을 끝내고 무게를 재보는 지 모르겠다. 대충 넣기만 하고 재보면 될 것을 다 오므리고 재곤 하니 일만 자꾸 더디다.


할 수 없이 다시 뜯어 합이 6개인 사람의 작품에서 한 점을 뺐다. 그 작품들은 모두 밑에 돌이 달려 있는 통에 그리하면 800그람은 줄일 것 같아서였다. 오므리고 다시 재보니 200그람이 오버다.

이제는 정말 저울을 의심하거나 우체부 직원의 아량을 바랠 뿐 더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이지 인생자체가 무거울 만큼 지치고 진이 빠졌다. 박스 한 개가 사람의 진을 이처럼 빼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상자를 끈으로 칭칭 감아 매면서 그 끈의 무게가 또한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 모든 것은 끝난 마당이라 망설임 없이 둘둘 말아 버렸다.

그리고는 차에 낑낑거려 싣고 분당 전시장에 그림을 걸러 달려갔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걸고 오픈 날인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집 근처 우체국에 가서 그것을 저울 위에 올려놨다.

한개는 당연히 무게가 적었고 불안했던 두 번째 것도 딱 30킬로였다. 역시 못 미더웠던 친구의 저울이 나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두 개의 박스는 나의 인생에 오점과 멍에와 함께 커다란 교훈이라는 선물을 주고 내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놈들은 물건이지만 그 어떤 살아 있는 스승보다도 훌륭한 것을 나에게 갈쳐주고 그렇게 몇 일간의 내 생각의 응어리로 말미암아 생긴 내 지근거리는 골을 감기 걸려 맹맹한 코를 풀 때의 그 통쾌함으로 확 빼가버렸다. 시원하기도 고맙기도 한 묘한 감정을 남긴 채…….

잘 가거라! 내 오점 투성이의 인생을 확인 시켜준 상처의 고름딱지 같은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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