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和) 문화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며, 마찬가지로 자신이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입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이것은 和(와)라는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일본의 정신 세계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만 요약하자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지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21] 이 때문에 얼굴에 가능한 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하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나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다. 만약에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얼굴에 미소를 잃고 표정을 찡그리고 다니면 그것은 자신 개인의 문제 때문에 그 문제와 관련 없는,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和(와)를 잃는 것을 뜻한다. 일본인들은 규칙을 깨는 사람을 경멸 수준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와(和)를 깬 사람은 그 일대에서 사회생활이 힘들다.
외국인이 보기엔 '친절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 등 긍정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인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일본에 관광을 온 선진국인들이 길거리에서 자기나라인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든다든가 쓰레기를 버린다든가 술을 벌컥벌컥 마셔서 와(和)를 깨는 행동을 하면 깜짝 놀라고, 나쁘게 본다. 기분이 나쁘다고 외국에 있을 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면,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기도 한다. 일본에 입국한 수많은 외국인 중 특히 한국인과 인도인들이 와(和)라는 일본 사회의 약속을 깨뜨리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다. 중국인은 어디있지? 그 중 인도인은 일본에서 길거리의 개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은 개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평판이 영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22]
심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별 것도 아닌 행동으로 경찰차 두세 대가 오기도 하는데,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래서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본에 관광을 왔다가 법적으로 작게라도 연루되면 영구적으로 일본 여행을 올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강제 추방인데, 일본은 관광객이 백인이든 누구든 간에 문제를 일으키면 강제 추방을 시키고, 영원히 일본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법적인 조치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용서해 준다거나 하는 것이 없이 일본인들은 그 사람들이 이미 기회가 있었는데 깨뜨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그리고 의외로 현재진행형으로 시민의식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을 때에는 포이스테(ポイ捨て)라 하여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마구 버리는 일이 잦았다. 시민의식과는 상당히 무관한 일이지만 미나마타병, 카네미 유증 사건같은 각종 산업재해도 195-60년대에 꽤나 빈번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이 부분은 일본이 선진화되고 환경오염이 사회 논쟁거리가 되면서 개선되었지만 이게 해외로 불똥이 튀어서 1960년대 여행자유화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는 일본인들이 어글리 재패니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세계에서 매너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여하튼 어글리 재피니즈라는 이미지는 1980년대-90년대 초반에 대대적인 개도 캠페인으로 일본인 여행자들이 그런대로 좋은 평을 들을 정도로 개선되었다. 이것을 1990년대에 한국인이 이어받다가(때마침 한국이 여행자유화 되었던 시점과 맞물린다.) 2000년대 와서는 중국인이 이어받았다. 시민 의식과는 별개로 2000년대인 현재, 세계에서 짝퉁이라며 악명이 높은 메이드 인 차이나처럼 1970년대까지는 메이드 인 재팬이 악명이 높았다(...) 시민의식과 전통적인 와 문화는 사실 근현대에 들어서야 생긴 것이다.
별도로 '와 문화' 자체도 지역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예로 도쿄 메갈로폴리스 권역이나 교토 등지에 비해서 홋카이도, 오키나와, 후쿠오카, 오사카 같은 곳에서는 위에 서술된 것 보다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다.
2. 메이와쿠 문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는 일명 '메이와쿠(めいわく, 迷惑)' 문화가 있다. 일례로 전철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이 낯선 사람들과 이용하는 곳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으며, 휴대폰 통화조차 삼간다.[25] 그래서 일본인이라고 하면 우수한 질서 의식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는 전국 시대, 에도 막부 시대부터 전해진 관습의 영향이 크다.[26]
특히 일본인 하면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가 유명하다.[27] 이것은 일본인 특유의 와(和)를 강조하는 사회성 등에서 비롯된 전통 사회 규범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이해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일본의 전통 사회 규범은 개인의 주장은 최대한 억제하면서 집단 내에서 대립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희생하여 원만한 대인관계와 집단의 단결을 강조하는데, 이때 사회 규범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다테마에를 정면으로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그 결과 대체로 상대의 진정한 마음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지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의식 구조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른 사람과 눈에 띄게 대접이 다르거나 목소리가 낮거나 하는 식으로 눈에 띄는 다테마에를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보다 더 곧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다테마에라는 것은 딱 부러지게 공격적인 말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것 정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인은 진심을 털어 놓아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표면적인 원칙만을 강조하는 쪽을 택하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동안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규범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상대의 부탁에 대해 사실은 거절할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딱 잘라서 아니(NO)라고 분명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따금 국제 사회에서 싫어도 싫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한 예로 외국에서는 일본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다테마에)을 듣고 계약 성사가 눈앞인 줄 알고 희희낙락했다가 이후 확인 전화 시 "그런 대답은 한 적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배신감과 좌절을 느낀 적이 많다고 한다.[28] 한국에서 쇼핑하다가 마음에 안 들 때 "둘러보고 올게요." 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항상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여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일본 사람의 대인관계의 습관이다. 또한 언어를 문화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볼 때, 이러한 표현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며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오해를 유발하면서 발생한 문제로도 볼 수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조금 조명을 받게 되면서 일본도 혼네를 감추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기는 어렵고 이해되기 어려운 것임을 느끼며 다테마에에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29]
와, 그리고 메이와쿠 문화 탓에 정치권이던 회사던 토론이나 회의 등 의사 결정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고, 간부나 높으신 분들은 사실상 아랫사람들로부터 반대 의견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네마와시(根回し, 뿌리 솎아내기)라 부른다.
혼네를 평소에는 꽁꽁 숨겨두다가 특정한 공간에 있을 때에만 한꺼번에 털어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단골 이자카야나 오뎅집, 꼬치구이집 등에서 지인이나 주인과 뒷담 까는 일은 단순히 만화나 애니상의 상상이 아니며, 현실에서도 꽤 존재하는 풍경이다.
첫댓글 이번주 목요일에 읽을 국화와 칼이라는 책 읽으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너무 아는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 저기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나의 일본인 경험은 일본의 자생기독교 무교회를 접한 것이 전부다. 우찌무라를 비롯한 무교회 신자들의 진지성과 성실성은 감동적이었다. 함석헌, 김교신 선생도 일본 유학시절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동경대 학생들 중심의 우지무라 성서집회에 참석하려면 성서본문을 희랍어로 암기해 와야할 정도로 그들의 열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일본 무교회 신자들이 한국집회에 와 일제침략을 참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잘 읽었습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과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국화와 칼 읽고 다른 책 찾아보고 있어요. 문화가 너무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