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인 ‘서복설화’ 이야기
서복(徐福)은 사기꾼이다. 예사 사기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기꾼이 많은 세상이라 이야기 거리가 아예 되지를 않는다.
사기의 상대가 문제다.
서복(徐福)은 사기상대로 다른 사람도 아닌 진시황(秦始皇)을 택했다.
이쯤이었으면 서복이라는 자도 역시 보통 내기는 아니었다고 하겠다.
사기란 언제나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뚫고 들어 간다. 헛욕심이 약점이다.
서복은 진시황이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옳거니! 했다.
한 탕 거리가 생겼다, 그거였다. 그는 어느 날 진시황 앞에 납작 엎드렸다.
“폐하, 신은 장사를 하느라고 바다 가운데를 자주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 가운데 삼신산(三神山)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죽지를 않고 오래 사는 선약(仙藥)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도 그 섬에 올라가 그들을 만나 약을 좀 구하려 들었으나 그 때 마다 배도 그렇고 또, 파도가 심해 섬에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 그런 일도! 그렇다면 뒤 걱정일랑 말고 그 신선을 만나 장생불사의 약을 구해 보시오.”
서복은 참으로 엄청나게 진시황으로부터 마음껏 뜯어 냈다.
그 것도 장장 10년 동안이나. 서복도 없는 장생불사약을 구할 수는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10년이나 끌어왔다. 천재적인 사기꾼 서복이라서 그 동안 그렇게 끌어왔지 다른 사기꾼이라면 어림도 없었다. 서복은 다른 사람의 눈도 있고 해서 배들을 끌고는 먼 바다를 한 바퀴씩 돌았을 뿐이었다. 사기친 돈으로는 자신의 사업 밑천으로 모두 썼다.
진시황은 나이가 들어가자 독촉이 심했다. 그 진시황이 어떤 사람이든가. 여차하면 자신의 목만 달아 나는 것이 아니었다. 삼족(三族)이 몰살당하고 만다. 간단하게 목을 내 놓을 서복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손을 미리 써야지. 달아날 준비자금 뜯기다. 마지막 한 탕! 진시황이 서울 함양(咸陽)에서 불사약 독촉하러 서복이 있는 산동지부로 마침 찾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바다로 나갔으나 매 번 거센 파도와 괴물들 때문에 실패하여 폐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이 번에는 동남동녀(童男童女) 3 천 명과 오곡 종자를 갖고 가서 동남동녀는 괴물에게 바치고 오곡종자는 신선들에게도 손을 써야 하겠습니다. 마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입니다.”
서복의 말은 맞았다. 마지막 뜯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진시황은 장생불사할 욕심에 서복의 부탁을 다 들어 주었다. 서복은 웃으면서 “잘 있거라, 진시황이여! 이 세상에 어디 그런 약이 있겠느냐? 어리석도다!”며 선단을 이끌고는 바다로 나갔다. 서복은 그 선단을 이끌고는 제주도로 왔다.
오늘날까지 제주도에는 서복이 그 때 왔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도 “서 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곁 정방폭포 암벽에는 ‘서시과차(徐市過此)’, 서시 이곳을 지나다 고 글을 써 놓았다. 북제주군 관내에 ‘조천면(朝天面)’이 있다. 서복(서시) 선단이 상륙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서복 일행은 그대로 일본을 향해 갔다. 오늘날 일본에는 서복의 유적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나 간 자리인 제주도에도 그런데, 하물며 자리를 잡은 일본 땅에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진시황은 서복한테 사기를 당한 줄을 뒤 늦게야 알았다. 수도 함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병이 들어 그렇게 기다렸던 불사약 한 사발도 못 마시고는 덜컥 죽고 말았다.
마지막 말이 “서복 이놈, 짐(朕)을 속이고!” 였다.
사기란 언제나 상식을 벗어 날 때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