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시절인연이 있어야 감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름 전에 봤었는데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지루해 하다가 잠들고 만 것입니다. 예전에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대낮에 화양연화를 볼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깊은 밤에 불을 다 끄고 혼자 영화를 다시 볼 때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감흥이 남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첨밀밀'의 장만옥도 아름답지만 '화양연화'의 장만옥은 도저히 잊을 수 없게 아름다웠습니다.
오래전에 이 영화 제목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듣고 참 이상한 제목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제? 무슨 뜻이지? 호랑이와 물고기가 연결이 될 수 있나? 참 희한한 제목이라고 생각했고, 뭔가 골치아픈 영화라고 생각해서 볼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어떤 팟캐스트 방송 디제이가 사랑영화의 고전으로 '이터널선샤인'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들어 볼 마음이 났지만 영화를 보다가 졸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영화를 다시 보고 나니 애잔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 조제(원래 이름은 쿠미코이지만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인 조제를 자기 이름으로 소개합니다.)의 사랑이야기 입니다. 대학생인 츠네오는 밤중에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조제를 우연히 알게되고 둘은 호감을 가지게됩니다. 츠네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조제가 츠네오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이후로 발길을 끊은 츠네오가 조제를 보살피던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제가 걱정이 되서 조제의 집을 찾아갑니다. 조제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화 중에 속이 상한 조제가 츠네오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츠네오는 돌아가려고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 데, 조제는 츠네오의 등짝을 주먹으로 치면서 "돌아가란다고 진짜로 돌아가는 인간이라면 돌아가도 좋아"라고 울면서 말합니다. (조제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습니다) 둘은 이제 사랑에 빠집니다. 당연히 행복합니다.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도 구경합니다. 호랑이는 조제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으로 절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안아줄 수 있다면 호랑이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조제는 알고있습니다. '다시 자기는 혼자가 되어 깜깜한 바다 밑바닥에서 조개껍데기 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닐거라는 것을' 그러나 조제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둘이 헤어진 후에 츠네오는 길거리에서 무너지면서 조제를 생각하며 오열하다가 통곡하는 것으로 이별의식을 치릅니다. 조제는 남의 도움없이도 혼자 장을 볼 정도로 굳굳해졌습니다. 안스럽지만 조제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