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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주일 예배
본문;<눅>5;9~10
제목; 비전 발견하기
오늘의 제목은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기입니다.
우리 한 번 따라해 볼까요?
소년이라도 비전이 없으면 노년이고 노년이라도 비전이 있으면 소년이다
내가 환갑의 나이에 남들은 조기 은퇴를 하느니 할 때
신학에 도전하게된 것은
사43;10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하신 말씀으로
주의 부르심을 받고서는...내가 나이 많음으로 고민할 때
수14;12에서
86세의 갈렙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이 말씀으로 나이 많음을 뒤로하고 도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품은 꿈과 소망이 있습니까
과연 있다면 아직은 소년이고
만일에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독거노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둔 청년이
40~5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독거노인이야 이제 나이 많아 혼자 사는 것이지만
은둔 청년
이 말은 너무나 가슴 아픈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은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마음에 품은 소망과 삶의 목적과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댈 언덕이 없던 우리 시대는 책을 사 볼 돈이 없으면
신문배달이라도 했는데
기댈 언덕이 예전보다 많아진 요즘 세대는
필요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생의 목적도
삶의 방향도
하고자 하는 의지도 다 잃어버리고 그냥 방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오늘 선포되는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을 향해 도전함으로 소년의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제 9절입니다.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여러분..오늘 대박의 현장을 목격한 자들의 반응은
놀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묵상의 중심은 저들은 무엇에 놀랐는가..입니다.
저와 여러분 놀랄 일에 놀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너무나도 험악한 세상이라
놀랄 일은 너무나 많지만 그래서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났지만
그래도 오늘의 대박은
저와 여러분이 관심을 둘만한 반응으로 그 반응은 놀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람은 반응입니다..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은..슬픈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립니까?
삶에 찌들리고 세파에 시달리다보니 마음의 문이 닫히고 굳어있어
기쁘로 슬픈 일에 관심이 없습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자기감정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
희망적인 것은
안하는 사람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사람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놀람의 반응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 오게 합니다
여러분 요즘의 이 시대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길에서 봉변을 당해도
옆에서 누가 죽거나 사고를 당해 실려 나가도 관심이 없지만
그래서 지금의 이 시대를 무신경, 무관심 무반응이라는
삼무의 시대라 말하는데
춤을 추지도 않고 눈물의 감동도 없는 이 시대이지만
그래도 놀랄 때는 좀 놀라고 반응할 때는 좀
반응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갈릴리 해안가에 놀랄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의 말씀에 의지한 순종으로 일어난
만선의 대박과
주 앞에 엎드린 베드로의 앞에 몰린 사람들의 반응은
놀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샘을 많이 내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하고
적당한 시기심은 도전의식도 자아내기에 권장 할 만 합니다
그리고 그 놀람에 동참하기 위해 베드로의 대박에
욕심 좀 내 보고
또 도전도 하고 시기 질투로 샘도 좀 내 보고 하면서
삶의 의지도
능동적으로 내 비쳐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놀람에 대한 또 하나의 적용은
남이 무엇을 해서
대박을 터트리고 돈을 많이 번 것에 대해 놀라지만 말고
나도 대박을 꿈꾸며 무언가 하기 위한 반응과 적용과
실천과 순종을 좀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의 능력이나 기도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이 모두는 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개입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로 행하신 것인데
남의 이룬 간증
듣기만하고 금방 잊어 먹지 말고
나에게도 그런 대박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도전하면 이루어주실 것을 제발 좀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이 놀람의 반응의 현장은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어부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말씀 능력의 체험장이요..
순종의 역사를 체휼한 경험의 현장이요
그물이 찢어지는 기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짐을 견인해낸
영적 체험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고 가만히 손 놓고
청년은 은둔으로 장년은 환경 탓하고
노년은 나이 탓 하며
그냥 앉아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은둔 청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장년과 노년들도
은둔하는 자들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예수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들이 없어
그렇게 살아...는 있으나 죽은 자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내일에 대한 도전도 없다는 것이요
반응도 아니하고
왜 사는 지 목적이나 방향도 없기 그냥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팔자로 돌리고 운명으로 치부하며
그냥 적당히
오늘 하루를 근근히 견디며 억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왜 그럴까요?..
너무나도 배부르고 등이 따시며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한 것이 지천인지라
애써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과도한 신경이나 고민 사색이 없어도
그저 살만하니까..또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늙으면 늙었다고
나라에서 돈 주지요 은퇴자는 은퇴했다고
돈 나오지요...가지가지 복지에 장사가 안 되어도 돈 주고
직업이 없어도 돈 주는 시대에
애써 땀 흘리며 굳이 그렇게 수고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도..기도원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또 없다는 것은
갈급함도 간절함도 긴장감도 다 소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세상은 너~~무 편해졌습니다
게을러졌고
무사 안일함에 미지근한 삶과 의욕도 상실했고
정욕도 열정도 부족한데 그리고 이런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물질은 풍부하고
육적으로는 살기는 편리하고
굳이 일 안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좋은 세상은 되었는데..
이런 세상을 영적으로 진단하니
황무함의 시대라 하고 영적 흉년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는 점점 악해져가고 있고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져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시대가 악해졌으니 세월을 아끼라고
주님이 곧 오시니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술은 알콜과 함께 세속과 옛 습관 옛 사람의 모습인데
창조이후
소돔과 고모라 때보다도 사사시대보다도
더 많이 타락한 현 시대를 성경은 이렇게 진단합니다
엡4;22~24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아멘
새 영을 창조받은 저와 여러분은 새 사람을 입고
성령에 취해 살아야 합니다
성령에 취한 것은 새 사람을 입는 모습의 새로운 처방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아직은 남아있기에
누구는 적게 남아 있고 누구는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한 치 앞을 모르면서
또 내일이 없는 인생이지만 목숨이 붙어있으니 살기는 살아야 하는데
그냥 덧없이 인생무상만 느끼며 살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비전을 공유하며 [사는 자 답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같은 꿈을 공유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왜 꿈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왜 무반응 무관심 무신경의 3무 시대가 되었습니까?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는 세대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아무리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말씀을 멀리하여
말씀을 듣지 않는 세대는 꿈을 상실하게 되고
여러분 이런 세상을 향한 예언의 말씀은
꿈을 상실하면
도전이 없는 미지근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단이 정확해야 좋은 처방이 나오고
살길이 생깁니다
나이를 먹어서 꿈이 없다고요? 아브라함도..모세도 갈렙도 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했습니다.
은퇴자들이 왜 빨리 늙을까요..꿈을 잃고
꿈 없이 놀고먹기 때문입니다.
나는 환갑의 나이에 신학을 하며 꾸게 된 부흥사의 꿈을
70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
합3;19의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는 말씀을 받았고
적용하였으며 반응으로 기도한 끝에
오산리를 시작하여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인지도가 있는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꿈을 간직하세요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세요
내 말을 헛되이 듣지 마시고
흘려 듣지도 마시고 귀담아 듣고
심비에 새기며
반응하여 도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대안입니다..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자는 삶의 방식이 바로 올바른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대로 살면
비전은 물론 주님이 주시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꿈을 가지면 외롭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그 꿈을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십니다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 말하지 마세요
믿고 두드리면
하늘문도 열리고 기도는 하늘 보좌도 움직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꼭 만나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하면 저와 여러분의 미래가 환하게 열릴 것입니다
그 분을 만나면 그분이 내 인생을 역전시켜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도전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베드로는 어부로의 만선의 꿈을 이루지만
하나님은 이 베드로의 꿈을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비전으로 승화시켜주십니다.
이 땅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만 만나기만 하면
꿈도 이루고
인생의 대반전과 대박의 인생이 펼쳐짐을 믿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베드로의 만선에 대한 대박은 많은 어부들의 소망이요
이루고 싶은 꿈이요 비전인데
오늘 베드로가 택한 것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이요
항복이요
나를 당신께 다 맡기오니 나를 책임져 주소서..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받은 말씀에서 발견한, 만선의 비전을 가지고
그대로 순종한 결과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입니다.
무한한 신뢰입니다..하나님 밖에 없다는
하나님의 주권 외에는
내가 바라고 기댈 것이 없다는 선포가 오늘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기도의 무릎을 회복하라고
하지만 문제는 여러분이
이 이일은 성경에나 나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로만 치부하거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취급하고
말씀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의 역사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말씀을 건성으로 듣고 들은 말씀을 실생활에 반응도
적용도 안 하니까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나에게는
그런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자기 확신과
미리 단정하는 불신앙과 확신도 없는 부족한 믿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말씀에 반응해야 도전의식도 생기고 말씀에서
비전도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에..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꿈을 가지고 비전을 발견하는 일의 처음은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한 순종이었고
그 다음은 공동체와의 협력이었고
오늘은 놀람에서
시작되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람은 반응이요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야고보와 요한도 보고 놀란 것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10절을 읽습니다.>10절의 상반절입니다ㅣ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아멘
그런데 9절의 사람들은
많은 고기가 잡힌 것에 놀란 반응이었고
10절의 놀람은 역시 많이 잡힌 고기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소의 모습과는 많이 변화되고
달라진 베드로에 대한 놀란 반응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둘러선 무리들과 야고보와 요한의 눈에
대박을 이룬 후에
예수님 앞에 엎드린 베드로의 모습을 보았고
베드로가 ‘주여’ 부르짖으며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평소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놀람이 놀람으로 끝나지 말고 변화를 좀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여러분 예수를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으면
우리 심령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가난한 달동네 나사렛 마을의 가난한 목수이셨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사오니
주여...나를 떠나소서..
여러분,,,그의 이런 변화는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베드로 스스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니고 있었던
자아와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고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룰이나
틀을 깬 과감한 결단이요
순종인데 이런 순종도 말씀을 들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베드로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말씀을 듣고
변화된 그의 모습의 핵심 키는 순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런 기적은 여러분에게도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말씀을 듣고 순종도 하고 놀람으로
반응도 하면서
변화도 좀 가져보자는 것입니다..그러나 참으로 변화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변화하기를 원하고 결단하면 주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내 삶의 방식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와 그토록 고집하던
나의 인생관
내 삶의 양식 등 변화할 것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다시 요약하여 정리하면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의 변화된 모습에 놀랐지만
저와 여러분의 가장 가치 있는 ‘놀람’은
아무개가 예수를 믿더니 변했더라..
예수 믿기 전에는 대단히 완악하고 고집스럽고 강퍅했던 그가
예수를 믿더니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더라...아멘
여러분 변화야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귀한 열매임을 믿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기억합시다
소년이라도
비전이 없으면 노년이고 노년이라도 비전이 있으면 소년이다
그렇습니다...오늘 내게 주신 오늘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 정도에서 정리하면서 참으로 간절하게 부탁드리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머물러 있지도 말고 반응하여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시대는 악하고
세월은 빠르기 때문에 주저할 틈이
이제는 없습니다
이제는 빠른 몸놀림으로 반응하고 결단할 때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이고
10절하반절부터는
다음 주에 하도록 하는데 참으로 바라기는
삶의 목적과 소망하는 꿈을 간직하고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과 좌절과 은둔의 이유밖에 발견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일을 바라보고 고난을 이겨냅시다
흔들리지도 말고
무기력에 빠지지도 말고
고통 가운데 매여 방황하지도 말고 주신 말씀과
들려진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여 주의 뜻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