益齋 李齊賢의 元代 學者들과의 交遊 關係。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원나라 체류와 교유 관계를 살펴보면, 익재가 단순히 원나라의 주자학을 받아들인 고려의 유학자였다는 설명만으로는 그의 학문적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익재는 원대의 여러 학술 계통과 문인 네트워크에 직접 접촉하였으며, 당시 중국의 주요 학자·문인들과 시문을 주고받고 교유하였다. 따라서 익재의 원대 경험은 고려 말 성리학 수용사의 차원을 넘어, 원대 유학의 다양한 흐름을 직접 경험한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대 유학의 계통을 살펴보면 먼저 조복(趙復)에서 요추(姚樞), 허형(許衡), 요수(姚燧)로 이어지는 계통이 있다. 조복은 이른바 강한(江漢) 조복으로 알려진 주자학자이며, 요추는 그의 학문을 계승한 인물이다. 허형은 요추의 제자로서 원대 국가 관학의 정착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요수는 다시 허형의 학문을 계승하면서 문학적으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이 계통은 주자학을 국가의 관학과 관인 학풍 속에서 정착시킨 대표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계통으로는 학자들의 재야적 활동과 문인적 교유를 중심으로 전개된 학풍이 있었다. 특히 초려 오징(草廬 吳澄)을 중심으로 하는 학맥이 중요하다. 주희(朱熹)에서 황간(黃幹), 요로(饒魯), 정약용(程若庸)을 거쳐 오징으로 이어지는 계통은 원대 주자학의 중요한 한 갈래를 이루었다. 오징은 관학 체제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야에서 학문을 강론하며 많은 문인을 길러냈으며, 그의 문인과 학문적 영향은 원대의 문학·유학계에 널리 이어졌다.
원명선(元明善)과 우집(虞集)은 이러한 오징 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원명선은 오징의 제자로서 주자학적 학문을 계승한 학자이자 문장가였으며, 우집 역시 오징의 학문을 계승하면서 원대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유학자로 활동하였다. 특히 우집은 원대 문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그의 학문과 문학은 원대 지식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조맹부(趙孟頫) 역시 이러한 원대 학술문화의 중요한 인물이다. 조맹부는 정거부(程鉅夫)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주자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주자학적 학문 전통과 연결된다. 동시에 그는 송설체(松雪體)로 대표되는 서예가이자 뛰어난 문인으로서 송대 문인문화와 원대 문인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자였다. 따라서 조맹부를 단순히 서예가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원대 유학과 문인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던 학자·문인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원대 유학의 지형에서 익재 이제현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문헌을 통해 익재가 시문을 주고받거나 직접 교류한 것으로 확인되는 원대 인사는 조맹부(趙孟頫), 원명선(元明善), 장양호(張養浩), 우집(虞集), 탕병룡(湯炳龍), 주덕윤(朱德潤), 허겸(許謙), 진초(陳樵), 명본(明本) 등 모두 아홉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조맹부는 송설체로 널리 알려진 당대 최고의 문인·서예가였으며, 원명선과 장양호는 문인이면서 유학자로도 활동하였다. 우집은 유학자이자 원대를 대표하는 문장가였고, 탕병룡 역시 당대의 저명한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주덕윤은 고려에 와서 정동행성 유학제거(征東行省 儒學提擧)를 지낸 인물이며, 허겸은 북산학파(北山學派)의 일원으로서 원대 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진초는 뛰어난 시인이었으며, 명본은 중봉(中峰)을 호로 한 불교계의 고승이자 문인이었다.
특히 익재와 직접적인 학술·문학적 관계를 살펴볼 때 조맹부·원명선·우집의 세 사람이 주목된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원대 주자학의 학문적 전통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동시에 원대 문인사회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익재가 이들과 교유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인적 친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익재는 원대의 주자학이 하나의 단일한 계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학맥과 지역적·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전개되고 있었음을 직접 경험하였다. 허형으로 대표되는 관인학풍과 오징으로 대표되는 재야학풍, 그리고 유인(劉因)과 같은 재야 유학자의 학풍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서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인적 교유와 학문적 영향 관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고려 말 성리학의 원대 수용을 허형 계열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원대 유학의 실제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가능성이 있다. 원대에는 국가 관학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학뿐만 아니라 재야 학자와 문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학, 지역적 학문 전통, 문학과 서예를 매개로 한 지식인 네트워크 등이 함께 존재하였다. 익재는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학술공간 속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조맹부·원명선·우집과의 교유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조맹부는 송대 문인문화와 원대 문인사회를 연결하는 인물이었고, 원명선과 우집은 오징의 학맥을 계승한 학자·문장가였다. 익재는 이들과 직접 시문을 주고받으며 원대의 학술과 문학을 경험하였다. 이는 익재가 단순히 중국의 학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인물이 아니라, 당시 중국 지식인 사회의 중심부에 접근하여 그들과 직접 교유하고 학문적·문학적 소통을 이루었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익재의 원대 경험은 ‘주자학의 수입’이라는 단선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원대 유학의 복수 계통과 문인 네트워크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익재가 교유한 인물들을 하나의 단순한 사승 계보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당시 원대 학술계의 여러 흐름을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다.
趙復 → 姚樞 → 許衡 → 姚燧
郝天挺 → 元好問 → 閻復
朱熹 → 黃幹 → 饒魯 → 程若庸 → 程鉅夫 → 趙孟頫
二程 → 袁漑 → 薛季宣 → 敖繼公 → 趙孟頫
朱熹 → 黃幹 → 饒魯 → 程若庸 → 吳澄 → 元明善
朱熹 → 黃幹 → 饒魯 → 程若庸 → 吳澄 → 虞集 → 蘇天爵
이러한 계통들이 서로 중첩되고 교차하는 원대의 학술적 공간에서 익재는 여러 학자들과 직접 교유하였다. 따라서 익재를 특정한 하나의 중국 학맥을 받아들인 고려의 학자로 규정하기보다는, 원대의 다양한 유학·문학 전통을 직접 접촉하고 이를 고려의 지식사회로 매개한 국제적 지식인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특히 당시 원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명성을 누리던 조맹부·원명선·우집 등과 익재가 직접 교유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학문적·문학적 위상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익재는 원대 중국의 학술과 문학을 일방적으로 배우는 위치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저명한 학자·문인들과 대등한 문학적 교유를 이루면서 자신의 학문과 문장을 펼쳐 보였다.
따라서 익재의 원대 교유는 단순한 ‘중국 학문 수용’으로만 설명하기보다, 고려의 대표적 문인·유학자가 원대의 최고 수준의 학술·문학 네트워크에 직접 참여한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익재 이제현은 고려 말 성리학 수용의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고려와 원의 학술·문학 세계를 연결한 국제적 지식인이자 원대 유학의 다양한 계통을 직접 경험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출처>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 ㅣ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