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0417
[경복궁역 3번 출구~(시내버스~자하문, 윤동주시인의 언덕 하차)~산행시작~창의문~북악산~
청운대~와룡공원~혜화문~낙산공원~흥인지문~오간수교~(광희문)~장충체육관]
작년에 가고자 했던 한양도성 순성길을
꽃피는 봄날에 걸으려 미루었다기보다,
최근 몇 달 정신없이 집중했던 루틴을 깨워
'걷지 않으면 안 된다'를 실천하러 길을 나서 본다.
처음 걷는 한양도성 순성길 18.6KM.
경복궁역 3번 출구,
맞은편 서촌.
아침 서촌거리
경복궁 3번 출구 50M,
제헌회관(공사 중),
198인으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1948년 5월 31일 개원하여 그해 7월 17일 제헌 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후 현대사까지 제헌동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2008년 2월
최후의 198인이 사망하면서 제헌동지회의 활동이 다하였다는.
올해 2026년부터 7월 17일은 18년 만에 다시 5대 국경일이 되었다.
자하문 고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문학관
시를 쓴 그 당시
윤동주 손수 필체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하다.
누구든 부처일 수 있듯이
시 또한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하면 시(詩)가 되는 것을.
1938년 5월 10일.
윤동주문학관 길 건너
1968년 1.21 사태 당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동상.
그냥 지나치려다가 언뜻,
이 사람 고향이 춘천이라 한 컷 자세히 들여다본다.
최규식은 1931년에 춘천에서 태어나 36세에 종로경찰서장이 되었다.
1960년대 그 시절 눈치 볼일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시절.
1968년 1.21 사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래도 그때 바닷가 촌구석에서 살던 내가,
피난 내려와 술을 자주 마셨던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몇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랄까.
순성(巡城) 시작지점
창의문(彰義門).
일명 자하문(紫霞門).
창의문이 자하문과 동일한 문이라는 것은 나도 오늘 처음 알고 놀랐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거의 모를 일(유교가 이러하여 나는 유교에 솔직히 불만이다.)
1900년대 초에 인왕산을 배경으로 찍은 창의문 사진
이제 시작이다.
1300여 계단.
처음 오르는 길이라 이 기분 더 이상 궁금하고 더 즐거울 수가 없다.
북한산 족두리봉과 향로봉, 그리고 비봉
자북정도(紫北正道),
'자하문 북쪽의 정의로운 길'이라는 뜻으로 박통의 친필이라고 한다.
아마
이 글은 박통의 이름인 중간 글자 정(正)을 딴 의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북악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인왕산
계속 똑같은 모양의 비상초소
북악산 정상석(342M)
이것도 일명 백악산이다.
북악산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본 북한산 비봉라인,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보현봉, 그 뒤로 북한산 주릉.
1968년 1.21 사태 15발 총탄을 맞고도 끄떡없이 살아있는 소나무,
과연 소나무란!?
북악산 아래 언덕에
북악산의 안산(案山)인 남산과 경복궁이 잘 조망되는 곳,
북한산의 백운대(白雲臺)에 견주어 청운대(靑雲臺)라고 이름 지었다고.
남산과 경복궁
다시 한번 더
오른쪽 끝에 형제봉도 보인다.
뒤돌아 본 북악산
촛대바위,
여기 촛대바위 전체는 높이는 13미터이다.
일본 놈들이 일제치하 시절 조선의 명줄을 끊고자 우리나라 명산에 쇠못을 박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곳이 그중의 한 곳이다.
지금은 쇠못을 빼고 그 자리에 촛대를 세운 것이라고.
숙정문(肅靖門).
1394년 조선을 설립하면서 정도전이 인의예지(仁義禮智)에 입각하여 설계했다는,
동(흥인지문), 서(돈의문), 남(숭례문), 북(숙정문)
한양도성의 사대문(四大門) 중의 북문(北門)이다.
말바위
말바위
ㅋㅋ홍종수는 지금 과연 무얼 하고 있을까!?
각자성석(刻字城石)은
그 당시 봉건주의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현명한 정책이었던 것 같다.
한양도성을 쌓은 기록을 남김과 동시에 감독과 석공과 공사를 한 백성의 지역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화강암에 기록함으로써,
공사 이후 무너진 도성이 발생하면 책임을 소급하여 물어 다시 오게 하여 또 쌓게 하였다고 하니,,,
그 먼 곳에서 다시 불림을 당하지 않도록 애초부터 철저히 일을 잘 단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말바위부터는 도성 바깥으로 나와 와룡공원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삼청각과 북악산 팔각정, 그리고 보현봉
와룡정(성균관대 후문)
와룡공원
성벽은 이곳
성북역사탐방공원에서 끝난다.
여기부터 혜화문까지는
1 킬로미터 구간을 바닥표지와 이정을 확인하며 주택가를 걸어 지나가야 한다.
혜화문(惠化門),
여기까지가 한양도성길 백악구간이다.
이제부터
순성길 낙산구간 시작
혜화문 길 건너
다시 낙산구간
한양도성 성벽이 시작된다.
낙산공원 내 철 지나고자 하는 벚꽃
낙산에서 보는
인왕산과 북악산
낙산공원 서길 카페거리
두타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동대문이 가까워진다.
두타
동대문 측면과 옹성(壅城),
시각(視角)을 달리함으로써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는 긍정적인 각도는 아직도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 것인가!?
동대문 맞은편 흥인지문공원에서는 이 벌건 대낮에 가무(歌舞)의 달인 동이족(東夷族)들이 춤과 노래로 시끌하다.
(여기까지가 한양도성 낙산구간이다.)
동대문
흥인지문,
여기부터 한양도성 흥인지문 구간이다.
| 오간수교 청계천 엠비가 이거 하나만은 잘한 건가 싶다? 두타 앞마당 동대문역사문화공원(DDP) 중국 분위기? 도심을 걷다가 이런 선술집 같은 분위기를 만나는 즐거움이란! 막회물회에 가자미구이 그리고 소주 한 병, 나는 이러한 수준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의 더할 나위 없이 조타. 신세계백화점 남산? 장충단길로 들어선다. 장충체육관과 신라호텔 오늘 하루 종일 하늘엔 새털구름이다. 한양도성 흥인지문 구간은 여기까지. 다음은 남산타워만 보며 걸어가면 될 터. 남산은 과연 얼마만이던가! 아마도 선술집에서 가자미구이 먹느라 이놈이 끊겼거니 싶다. 실도상거리 12KM 익숙한 서울 말로만 여러 번 듣던 한양도성, 북한산을 여러 번 올랐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산 도봉산 산기슭 산기슭을 연결하여 만들어 놓은 북한산둘레길을 걷다가 이제 서울 한양의 속알맹이 한양도성을 반쯤 걸어 보았는데, 역시 처음 찾아가는 길, 처음 찾아가는 공손한 마음과 다소곳한 기대와 설렘은 역시 한계효용이 있을 수 없는지라. 오늘 걸은 길은 산과 역사와 성벽과 도심이 어우러진, 옛날에 태어나 성벽을 쌓고 살던 그 사그라진 민초들과 현대에 문명화를 누리며 사는 민초이면서도 민초가 아니고 민초이면서도 민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그 길을 걸었다. *(광희문光熙門을 놓치고 걸었다.) |

첫댓글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신 정성과 필력이 돋보이는 배움과 감동을주는 여행기입니다. 그냥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네요. 말바위에 이름새긴 홍종수씨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홍종수씨는 바위의 새김과 마모로 보아
생멸을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조만간
장충체육관에서 인왕산까지
마무리를 할 예정인데,
보리아빠님 시간되는대로 나중에
길 따라 한번 걸으셔도 좋을 듯,
산과 성벽과 도심
나름대로 저는 꽤 좋았습니다.
@유투(U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