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만주에서 개천절을 마친 대종교 총본사는 소련 공산당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환국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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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 단군을 세운 대종교가 환국해서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서울 중심에서의 단군전 건립이었다. 대종교의 원래 계획은 단군민족관 건립이었다. 즉 단군의 영정을 모신 개천궁을 서울의 중심에 건립함으로써 민족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하자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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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외곽단체로 출범한 단군전
봉안위원회(위원장 성재이시영)는 활발하게 준비하였고 이를 위해 각계의 인사들이 말 그대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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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학자 겸 정치인으로 양명학자 위당
정인보를 비롯하여 미군정의 민정장관을 지낸 민세 안재홍, 철학자 한뫼 안호상, 경로 이상은, 강천봉(본명 성모), 한글학자 이극로(월북),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사학자 이선근, 산운 장도빈, 고고학자 손보기, 국제법학자 이한기 등 당대의 정관계 및 학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총망라되다시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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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가로는 단국대학을 창립한 장형을 비롯하여 홍익대학 창립자인 송암 이흥수, 국학대학(현 우석대학의 전신) 초대학장 정열모, 수당 맹주천 서울고교 교장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제헌의원 서상일과 동아일보의 정치단평 ’단상단하‘를 집필하던 언론인 백광하도 대종교 역사 편찬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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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화 예술계인사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을 비롯하여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 함기용과 ‘하늘에는 안창남(한국 최초의 비행사) 땅에는 엄복동(사이클 선수)’으로 유명한 스포츠인들, 그리고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과 춘향전을 감독한 홍성기와 같은 영화인들, 작가인 이은상, 국악인 성원경, 바둑 명인 조남철 등이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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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하고자 함께 모의했던 우덕순, 실업인 조정구(삼부토건 회장), 이동준(인천제철 사장), 그리고 군 출신으로는 청산리 대첩의 영웅 철기 이범석(국무총리)을 비롯하여 국방경비대의 창설 대장인 송호성(월북), 강영훈, 박영준(5.16 주체 독립운동가) 등이 모두 대종교인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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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중심으로 서울 중앙에 단군전을
건립하고자 하는 운동이 활성화 되었는데 가장 적절한 장소로 손꼽힌 곳은 일제가 남기고 간 남산의 소위 조선 신궁이다.
<1925년 일제는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소위 그들의 신화 상의 시조라고 하는 아마테라스[천조 대신]와 근대들어 명치유신을 이루어낸 메이지왕을 주신으로 받들면서 단군도 합사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내선(일본을 내지라 하여 조선과 두 나라를 가리킴)일체의 상징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조동근의 뿌리로 단군을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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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단군의 전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국민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억눌리고 차별 받던 일제에 대한 반발심리가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단군의 향수를 자극하여 봇물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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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대종교의 노력은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과 당시 미국의 눈치를 보던 정권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결국 우리는 민족의 국조(國祖)이자 족조(族祖)이고 뿌리인 단군을 모신 민족관 건립이 좌절되고 만 것이다.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서 대종교는 단군 민족관을 건립하고자 시도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도 처음 실패한 것과 비슷한 배경으로 인해서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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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968년에 설립된 현정회는 초대 이사로 이병도와 신석호를 영입하여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시조로서 받들고 그 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순수한 민간단체로 등록되어 정부 주관 행사에서 민간대표 자격의 부여와 정부 표준 단군영정 지정, 표준영정의 공공 출판물 게재 등 일련의 단군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다. 이 부분도 대종교 주체로 다시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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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근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신화적 내용을 담은 단군의 숭배는 우상숭배와 다름없다는 논리와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특정한 종파적 이해를 국가가 나서서 대변하는 것은 올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과연 단군에 대한 숭배가 우상숭배와 동격이고 아무리 한국 사회가 다종교 사회라 해도 근원없는 민족과 개인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의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하물며 거듭 민족의 혼과 얼을 강조했던 대종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