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이작 왓츠, 복음성가의 아버지는 ‘순교자’
# 순교자 유재헌 목사의 찬송시
♬ ‘목마른 사슴이가 물을 찾음 같이’
- 고베 감옥에서 작시 -
1. 목마른 사슴이가 물을 찾음 같이
갈급한 이 심령은 예수 찾아 타네
후렴: 예수는 내 생명 또한 나의 기쁨
예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사네
2.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해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네
3. 칠보단장한 처녀 때를 바람 같이
속죄 성결한 나도 일각여삼추라
4.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은 예수 향만 피네
5. 예수 죽음 내 죽음 그 부활도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그 천국도 내 것
<예수 없는 천국은 내가 원치 않고
예수 있는 지옥도 나 싫지 않도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쉴 만~~ 한 물 가으로 인도하여 주시네"
시편 23편으로 만든 위 시편 찬송은
유년의 필자가 성결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즐겨 부른 18번 노래였다.
위 구절은 내 어릴 적 기억을 그대로 가사로 옮겨본 것이다.
고신 역사 신학자 이상규 교수도 이 찬송을 누구의 곡인지도 모르고 수없이 불렀다고 고백한다.
이 곡의 작곡가는 바로 무수히 많은 찬송을 작시한 ‘복음성가의 아버지’ 유재헌(1905-1950) 목사님이다.
화단(火壇, 기도의 불제단이라는 의미) 유재헌 목사는
한국 최초 개신교 수도원(修禱園)인 서울 삼각산 구기동 ‘임마누엘 수도원’ 설립자였으며,
해방 전후 한반도를 사도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열정으로 예수를 전하시던 부흥사였으며,
1926년 문창모(장로, 전 세브란스병원장) 등과 제2회 6.10 만세 사건을 주도하다 투옥됐고,
일본 유학 시에도 항일운동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6.25 동란 중 납북되어 순교한 순교자였다.
사위였던 대구서문교회 원로 이성헌 목사
(1924-2021, 전 예장 합동 총회장, 전 총신대 이사장, 전 대한성서공회 이사장)는 유재헌 목사님에 대해
“고베 신학을 한 후 독립교회를 세우시고, 노동자들과 일하면서 손수레에 다다미를 깔고,
아래는 구두수선 도구와 취사도구를 두고, 손수레 위에다가
‘할렐루야, 파령유가(把靈劉家, 영혼을 잡는 유씨의 집)’라 써붙이고 전도하며 일하였는데,
그 손수레가 그의 집이고 직장이었다” 했다.
위 시 가사를 이성봉 목사가 부흥회 다니면서 부르셨기에
사람들이 이 목사께서 작시한 걸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작시자를 바르게 알려준 인물이 바로 이성헌 목사였다.
이성헌 목사는 훗날 장인 되시는 유재헌 목사께 안수기도를 받고 이름도 개명(본명은 이성우)했고,
젊은 시절 화단을 따라다니며 부흥 설교를 깨알같이 기록한 분이었다.
“예수 없는 천국은 내가 원치 않고 예수 있는 지옥도 나 싫지 않도다”라고 외쳤던 화단은
진정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예수에 미쳤던 우리 신앙의 참된 표본이었다.
유재헌 목사님은 필자가 신학을 배운 피어선 학원(현 평택대) 대선배이시며,
필자가 존경하는 조직신학자 故 유광웅 교수(1943-2023)의 부친이기도 하다.
필자의 사위가 강릉 유씨 종친이라고 유 박사께서 더욱 필자를 좋아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2017년 3월 유재헌 목사 유족께서는
『예수 없는 천국은 내가 원치 않고 예수 있는 지옥도 나 싫지 않도다』라는 귀한 책을 펴냈다.
필자는 화단에 대해 아드님 유광웅 박사를 통해서도 전해 들었으나,
화단과 동향이신 찬송가 작가로 유명하신
‘맹꽁이(오소운 목사의 자칭 별명)’ 오소운 목사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