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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suffering, 성령의 네번째 열매 (Galatians 5:22, 23)
영어권 나라에서는 딸이 결혼 할 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진주를 가리켜서 영어로는 “Frozen Tears, 얼어붙은 눈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곁을 떠나는 딸에게 진주를 건네주는 이유는, 진주처럼 아름답고 빛나며, 또한 영원히 사랑 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랍니다. 어떤 분은 진주도 땅에서 캐는 보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주는 바다 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어쩌다 잘못해서 모래알이 조개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깔깔한 모래알이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될 때 조개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조개 속에 들어간 모래가 모두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찌르는 모래알이 부드러운 자기 살에 박히게 되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답니다. 한 가지는 조개가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은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살이 썩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얼마가지 않아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가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을 찌르는 모래 앞에, 조개의 또 다른 선택은 모래를 향해 반응하는 것입니다.자신의 살 속에서 “nacre [néikər]”라는 진주를 만드는 눈물의 액체를 짜낸답니다. 조개는 이 생명의 즙으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동안을 계속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쌉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결혼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얼어붙은 눈물”로 표현되는 진주를 선물하는 까닭은, 눈물도 흘려야하는 시집살이는, 진주를 만드는 값진 삶임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시집살이를 하다 보면 속상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을 참고 인내하게 되면, 결국 진주와 같은 아름답고 사랑 받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아픈 날들을 참게 되면, 그 삶은 아름다운 진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을 찌르는 모래가 들어 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상처주고, 낙심시키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분을 품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반응으로, 내 인생을 진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 16:32절을 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He who is slow to anger is better than the mighty, And he who rules his spirit than he who takes a city [NKJV]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은 인생의 진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인내를 잘하십니까? 화를 얼마나 잘 다스리십니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Galatians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2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오늘 본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그리고 “오래 참음”이라고 전개합니다. “오래 참음”이란 히랍어로 “마크로두미아 makroqumi,a”인데, 이 단어는 long”라는 “마크로스 makros[makros]”와[1] “진노 (wrath)”이라는 “뚜모스, qumwj[qumos]의 합성어입니다.[2] 진노를 내지 않을 수 없지만, 오랫동안 참는다는 뜻입니다. 분을 내야 하는데, 오랫동안 그 분노할 마음을 속에 품고만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영어 성경 KJV에서는 “오래참음”을 “Longsuffering”라고 번역합니다.[3] 조개처럼 오랫동안 고통을 간직한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해 자신의 관대함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반대하거나 고통을 준 사람을 향해 오랫동안 권리행사를 보류 하는 것을 뜻합니다.[4] 분내고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픈 마음을 꾹 참게 되면, 결국 인생의 진주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요? 성경은 인생의 진주 만드는 원리를 잘 안내합니다.
첫째, 입장을 바꿔서 봐야 한다. View with Other’s Eye
인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속상하게 하고, 분 나게 하는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기쁨과 평화를 잃을 때는 언제입니까? 모든 것을 내 자신의 관점에서, 내 필요와 내 소원 대로, 나의 목표와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내 일정과 내 계획에 따라 볼 때입니다.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근본 이유는, 이기심입니다. 내 중심으로 살다 보니,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평화를 잃고 화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서라는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 19:11를 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A man's wisdom gives him patience; it is to his glory to overlook an offense.
삶에 지혜가 있는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허물을 용서하다”라는 말에 주목해 보십시오. “허물을 용서하다”는 문구를 영어 성경은 “Overlook an offense, 자신에게 분을 나게 하는 사람,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대하다”라고 번역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왜 자신에게 분을 내게 하는 사람을 관대하게 대합니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 자신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입니다. 두 번째는,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옳다는 뜻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외로워서 그랬어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22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김경준 선생님께서,
10대 학생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노와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책, 『외로워서 그랬어요』에서 설명합니다. 사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멀쩡한 아이는 없습니다. 욕은 기본이고, 가출하고 술 먹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런데, 문선생님은 이런 사춘기 청소년들의 돌출 행동과 비행에는 나름대로 이야기 있다고 말합니다. 문 선생님은 학생들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이유, 그 아픔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의 첫 이야기는 “외로운
양치기 소년”입니다.
김경준 선생님은 영균이라는 학생이 왜 돈 지갑을 훔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반복해서 했을까요?” 그러면서 이런 답을 제시합니다. “그건, 그건 말이에요. . . . 아마도 . . . 외로움때문, 아니었을까요? 산 위에서 홀로 보내야 하는 그 외로움, 거짓말을 한 것이 밝혀지면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을 보고 싶은, 그 간절한 외로움 때문에 그 친구가 그런 행동을 한 것 이랍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사람 그리워하는 그 밑 마음은 보지 못하고, 아니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속은 것에만 분노하여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님은 영균이가 돈 지갑을 훔치다 걸려서 맞은 다음에 왜 도둑질을 했는지를 들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자신이 혼나고 맞는 것을 보는것을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소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균이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하소연으로 들렸답니다. 그래서 영균이를 만나서 물었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야?” 그랬더니, 입술을 깨문 채 한 참 있다가 아버지에게 욕을 퍼 붓더랍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왜 엄마를 집에서 나가게 해요? 지겨워요.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것도, 술 먹고 아버지가 들어 온 날 친구 집으로 도망가서 자는 것도 이젠 지겨워요. 아버지는요, 아니 그 인간은요, 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천만 번도 더 해야 되는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그 순간 영균이를 껴안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영균이가 흐느끼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품에 안겨서, 대성 통곡을 하면서, “아빠 아빠, 아빠! 아빠!”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면서 함께 엉엉 울었답니다. 김경준 선생님은 영균이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상처주고 화나게 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나를 화나게 하고, 적대하는 사람을 향해, 내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린 인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Love Deeply
인내하는 사람이
되는 세번째는 더 많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첫 열매가 사랑이라고 했잖습니까? 사랑하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4절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영어 성경은
이 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Love
is always patient, 사랑은 항상 참는다”는 것입니다.
한 두 번 참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되면 항상 참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사랑이 가득 차 있다면,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화를 내고 분을 삭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안에 사랑이 비어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관대합니다. 사랑하면 참습니다. 사랑하면 다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 4:2).
“Always be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with each other, making allowance for each other's faults because of your love” [NLT]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의 문장 뒤 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Because of your love,” 당신의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용납할 수 있다라고 번역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잘해 주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용납하고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용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는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선택 하는 것이고, 사랑하면 관대하게 된다하는 것입니다.
영국 역사에서 여성으로서 첫 번째로 하원의원이 된 어스터 (Astor)는 당시 수상이었던 원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과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두 분이 연회장에서 만났는데, 어스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윈스턴,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나는 당신이 마시는 커피에 이미 독약을 탔을 거예요.” 그러자 처칠은 이럴게 대답했답니다. “그렇군요. 당신이 내 아내였다면, 난 독약이 든 그 커피를 마셨을 겁니다.” 나는 내 아내인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독약도 마실 것이요. 사랑하게 되면 독약도 마시게 됩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서울 여자 대학교에 장경철 교수가 쓴,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에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5]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간혹 얌체 차들이 자기 앞으로 끼어 든답니다. 그래도 소형차들이야 괜찮지만, 대형차들은 매우 위험하답니다. 자신 신분이 아무리 목사 안수도 받은 얌전한 대학교수지만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형 버스가 끼어 들더랍니다. 그것도 자신의 차를 부딪힐 정도로 위험하게 끼어 들더라는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기분이 제법 나빠서 소리를 지를 수가 있었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답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의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이 관대함을 느꼈답니다.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리 너그러워졌을까?”이렇게 생각하는데,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끼어 드는 버스의 옆면과 뒷면에 쓰인 글귀가 자신의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여자 대학교 부속 초등학교”라는 글씨가 들어왔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이 다니는 학교 버스였답니다. 장결철 교수의 글에 의하면, 그날 몇 대가 더 끼어들어도 자신은 양보하고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있더랍니다. 이분은 자신의 이런 관대한 태도를 보면서, 그날 사랑과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깨닫는 것이 있었답니다. 지금까지는 “사랑은 늘 상대적이다”라고 생각해 왔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면, 나도 사랑하고,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면, 내가 특별히 사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답니다. 그런데 그날은 버스 운전자가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위험하게 했는데도, 차도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차를 운전하던 Driver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답니다. 자신이 학교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학교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향해 관대해지고, 자신을 위험하게 했던 운전자도 사랑스러웠답니다.
그러면서, 장교수는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하게 되면, 전에는 안 보였던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전에는 별 가치 없는 것이 그렇게 귀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나 교회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꼭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게 되었답니다. 비록 부족한 사람들이 만난다고 해도, 사랑의 시선만 회복되면,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사랑의 교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Rely on God
인내를 키우는 마지막 단계는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고, 소망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인간의 의지력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인내할 것이다”라고 다짐하지만, 감정을 움직이는 사건을 만나면 또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요? 오늘 본문은 인내는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고,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따라, 인내는 성령의 열매라고는 것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께 맡긴다면 특정한 상황들이 예전처럼 머리 아프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야고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9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Therefore be
patient, brethren, until the coming of the Lord. See how the farmer waits for the precious fruit of the earth, waiting
patiently for it until it receives the early and latter rain [NKJ].
농부는 하늘을 의지하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물론 자기도 부지런히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지만,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라는 것처럼 막연한 것도 없습니다.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리기는 해도 너무 적을 수도 있고 지나치게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비가 올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풍성한 결실을 하게 될 것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 짓는 농부는 아무 의심 없이 희망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이렇듯, 농부가 열매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결실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자기 생활에서 실제 경험했던 다윗은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여러분의 길을 맡기고 그분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주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잠잠히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시 37:5, 7).
Commit everything you do to the LORD. Trust him, and he will help you. Rest in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 .
잠잠히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Rest in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편안히 계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인내를 갖고 기다리십시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하나님께 기회를 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Trust him, and He will help you!
넷째,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인내도 성령의 열매입니다.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의 인내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됩니다. 이 진리를 잘 보여주는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창 37-50). 이름이 요셉입니다. 그는 17살이 되던 때에, 하나님 때문에 인생에 큰 꿈을 가집니다. 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하게 된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의 꿈은 금방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그의 인생은 혹독한 고통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큰 꿈이 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움 받습니다. 심지어는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셉의 인내를 시험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노예 취급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의 가슴 속에는 큰 꿈이 있지만, 그의 인생을 더 꼬입니다. 요셉이 주인의 부인을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말하는 사람 때문에 누명을 씁니다. 그리고 감옥에 던져집니다. 그의 인생은 소망을 이루기는 커녕, 감옥처럼 사방이 막혀 버렸습니다. 요셉은 또 다시 인내를 시험하는 고통의 순간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요셉은 사라졌습니다. 마치 그의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에서 사람을 사람을 잘 만나, 곧 옥에서 풀려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왕이 이상한 꿈을 꾸고 고민하는데, 아무도 해몽하지 못합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해 주면서, 요셉의 인생은 대 반전됩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제 이인자, 즉 총리에 오릅니다. 이때가 요셉의 나이 30세입니다. 17살에 큰 꿈이 있었는데 결국 이꿈을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13년이나 걸렸습니다. 요셉의 인생길이 이렇게 지체되고, 요셉이 고통 가운데 인내했던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함께 창세기 45:7; 50:20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요셉의 말 속에서, 우리는 요셉이 그 수치와 고통 속에서도 왜 인내할 수 있었는지를 발견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내는 곧 자신의 꿈을 이룰 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들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6] 이제, 여러분의 인내는 여러분 인생의 꿈을 이루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인내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내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인생은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 삶은 하나님께서 정금처럼 빛나게 할 줄 믿습니다 (욥 23:10).
응답찬양: 325 (359) 예수가 항상 계시니
공동 기도
1. 인내하는 성품을 더해 주옵소서. 농사짓는 농부처럼, 오늘 봄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낙심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소망 중에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 사랑은 오래참는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제가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변에 나와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3. 나의 인내로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1]Joseph Henry Thayer, trans.,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Harper & Brothers, 1887), 387. 헬라어 “mak”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급하게 보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하는 상태를 뜻한다 (잠언 15:18; 16:32). 헬라어 “makrs”는 “(거리가) 먼 (long),” “(시간이) 긴 (long)” 을 뜻한다.
[2]Büchsel, “qumoj,” in TDNT, vol. III, 167. 다음 구절들을 참고하라. 롬 2:8; 고후 12:20; 갈 5:20; 엡 4:31; 골 3:8.
[3]헬라어 “makroqumi,a”를 사용하는 다음 구절들을 참고하라. 롬 9:22; 고후 6:6; 딤후 3:10; 4:2; 벧전 3:20.
[4]Alfred Plumm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Second Epistle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Edinburgh: T. & T. Clark, 1915, reprinted 1966), 196.
[5]장경철,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서울: 두란노, 2008), 72-73.
[6]존 파이퍼 지음/ 차성구 옮김, 장래의 은혜 (서울: 좋은 씨앗, 2014),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