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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指紋)
김 문 수
홍정표(洪正杓) 내외는 맞벌이 부부였다. 맞벌이 부부라니까 혹 어떤 사람은 그들 내외가 아침 상을 물리기 무섭게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각기 자기네 직장으로 달려가 일하고 그렇게 일한 날들이 쌓여 한 달이 되면 정해진 날에 월급을 타오는 그런 봉급쟁이로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들 내외는 그런 맞벌이 부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 달에 몇 번씩 무슨 단체나 회사에 나가 그곳의 기획에 참여한다든지 자문 역할 같은 것을 해주고 거기에 상당한 사례금을 타오는 그런 고급스런 맞벌이도 아니었다. 홍정표는 미장이였고 그의 아내는 동네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돌아다니는 여자였다. 남편 홍정표가 미장이 노릇을 해 들여오는 수입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이집 저집 불려다니며 이불 빨래도 해주고 김장도 거들어주며, 혼사집이나 초상집 같은 데에 가서 부엌일이나 바느질을 거들어주는 등 하여 품삯을 받아오게 되니, 따지고 보면 역시 맞벌이 부부인 셈이다. 혹 그들의 이런 집안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끔,
“내외가 그렇게 억척스럽게 돈을 긁어모아대니 이 동네도 곧 새 부자가 나타나겠 는걸.”
이런 농담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들 내외는 무슨 약속이나 된 듯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을 흘릴 뿐 별다른 변명도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들 부부에게 언제 누가 붙여준 별명인지는 모르나 ‘개미부부’ 라는 별명 이 붙어 있었다. 개미처럼 부지런한 부부라는 뜻일 테지만 그들 부부에게 붙여진 그 별명 속에는 낭비와 사치를 모르는 검소한 부부라는 뜻도 은근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 홍정표는 집에 들어 앉아 있는 날이 많게 되었다. 집을 짓는 일이 뜸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들을 다시 놓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집을 수리할 사람들은 이미 날씨가 선선해지기 전에 서둘러서 해버렸지 지금까지 미루어두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미장이인 남편과는 달리 그의 아내에겐 매일같이 품삯을 벌어들일 일거리가 생겼다. 때가 때인 만큼 혼사집도 늘어났고 겨울 준비를 하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요즘 같은 상태로라면 김장철이 지날 때까지 그녀는 계속 품팔이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날도 홍정표는 아내가 품팔이를 나가자 자기집 부엌 아궁이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사실 금년 겨울은 손을 보지 않아도 그냥저냥 날 수도 있는 그런 아궁이었지만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하루 온종일을 방구석에 처박힌 채 보낼 생각을 하니 손이 심심해서, 반은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 하는 꼴이 되었다. 이렇게 소일거리로 일부러 꾸민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못 되었다. 일을 마치고 흙손과 흙칼 등을 씻고 있는데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려댔다.
“누구세요?”
“납니다.”
홍정표는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듣고 그가 반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만 짐짓,
“나라뇨?”
하는 반문을 보냈다. 그의 그런 반문은 대문 밖에 선 사람이 반장임을 확인하는 반문이라기보다는 물 묻은 손을 마른걸레로 대충 훔친 뒤에 대문을 열어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시간적 여유를 벌기 위한 수작이었다.
“나요. 나 반장이오.”
“웬일이십니까?”
홍정표는 마른걸레로 물 묻은 손을 훔친 다음에 대문의 빗장을 끌러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웬일이십니까?”
하고 되풀이해서 물었다.
“오늘은 일을 안 나가셨군.”
“네, 요즘은 일거리가 뜸해져서…….”
“벌써부터 그럽니까?”
“불경기 불경기 하니까 집 매매도 없고 그러니 자연 우리 같은 미장이야 별 볼일이 없어진 거죠.”
홍정표의 그런 말에 반장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하며 옆구리에 끼고 온 서류 봉투에서 무언가를 골라 뽑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무슨 세금이라도 나왔습니까?”
홍정표는 서류 봉투 속에서 무언가를 골라 찾는 반장의 얼굴로 시선을 갖다 꽂으며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세금 고지서는 아니니 안심 하시우.”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요즘 같은 때에 세금 고지서라도 받으면…… 우리 같은 사람은 정말 살 맛이 안 납니다.”
“제 엔장, 홍씨도 엄살은·…·홍씨 엄살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엄살이라뇨?”
“엄살이잖구, 이 렇게 집까지 지닌 사람이…… 엄살이지 뭐요.”
“이게, 어디 집 축에 끼는 집입니까? 사람이 살고 있으니 집이란 말이 붙지, 이게 어디…….”
“그럼 집이 아니구 돼지우리란 말이유?”
반장은 한참 동안 서류 봉투 속을 뒤적이고 나서 누런 카드 한 장을 뽑아내더니 홍정표에게 이런 퉁과 함께 건네는 것이었다. 반장의 퉁을 받은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않고 그저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반장이 내미는 카드를 받아들고 그 위로 눈길을 떨구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민증 발급 신청 카드였다.
“이 집 아주머니 이름, 뭐드라?”
“이복순이요. 복 복자, 순할 순자.”
“음, 여기 있군. 이 집엔 주민등록증 할 사람이 두 사람뿐이죠?”
반장은 물으나마나 한 이런 한마디를 던지더니 서류 봉투에서 또 다른 한 장의 카드를 꺼내주며,
“우리 동네는 월요일이 주민등록 하는 날이요. 이 카드에 사진을 붙여가지구 동회로 가면 되는 거요.”
이렇게 말했다.
“이 카드만 가져가면 됩니까?”
“거기 사진 붙이는 칸이 있죠? 거기다 사진을 붙여가지구 가야죠. 여자는 왼쪽에다 붙여야 하구, 남자는 오른쪽에다 붙여야 해요. 사진들은 찍어뒀겠죠?”
“사진이야 벌써 박아놨죠.”
“그럼 됐어요. 그걸 붙여가지구, 거기다 적어넣을 걸 적어서 동회로 가져가면 동회에서 지문을 찍어가지고 거둬들이게 되는 거니깐.”
“여기 원적은 뭐고 본적은 또 뭐지요?”
“앗따, 이 양반. 원적도 모르고 본적도 모르는 모양일쎄. 홍씨 본적이 어디요?”
“충청북도죠.”
“그럼 원적을 기입하는 칸에는 아무것도 쓰지 말고 본적이라는 칸에만 적어넣어 가지구 가라구요. 아주머니는 본적이 어디죠?”
“나랑 마찬가지죠.”
“그럼 아주머니도 원적 칸은 그냥 두고 다른 것들만 적어넣어 가지구 가라구요. 카드 앞면 맨 끝에 써넣는 요령이 자세히 적혀 있으니까 그 카드를 쓸 때 자세히 읽어보고 써넣으시오. 자아, 그럼 난 시간이 바빠 그만 갑니다.”
반장이 열려진 대문 밖으로 휙 몸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지자 그는 다시 대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반장이 일러준 대로 카드 앞면 맨 밑을 보았다.
※표가 된 난에는 기입하지 말라는 등 여섯 가지의 주의 사항이 인쇄된 것을 두 번이나 읽은 다음 별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자리에서 아내와 자기의 주민증 발급 신청서에 기재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본적을 적어넣던 그는 잠시 볼펜을 멈추고 오랜 옛날의 일을 생각에 떠올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땐, 되민증이라고 어지간히 놀림도 받았었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 지금 자기가 카드 위에 적어넣은 본적지에서 지금의 아내와 눈이 맞아 야반 도주하여 서울로 올라왔던 것인데 이 서울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촌놈이라는 뜻이 담긴 ‘되민증(도민증一道民證)’ 이라는 딱지가 붙어 공연한 핍박( ? )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민증과 도민증 제도가 없어지고 그 대신 주민증 제도로 바뀌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주민증을 발급받아야만 되기에 이르렀으니 홍정표로서는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어느덧 ‘되민증’ 이었던 자기나 자기 아내가 옛날식으로 따진다면 거의 완전한 ‘시민증’, 그것도 ‘서울 특별 시민증’ 으로 바뀌었으니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당신, 왜 잠을 못 자구 그러우?”
밤이 깊을 대로 깊어졌건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뒤채는 남편에게 아내가 이렇게 말해왔다. 그러자 홍정표는 아내의 그런 말에 슬며시 무안스러운 기분이 되어,
“내게 왜 잠을 못 자느냐고 그러는 당신의 그 말은 잠꼬대로 그러는 거야?”
이러한 대꾸를 보냈다. 지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지경으로 달며 있는 자기의 기분을 아내가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홍정표는 지금, 마치 소풍 전날밤의 아이들이 날이 밝아오면 떠날 즐거운 소풍 길에 마음이 달떠 잠을 못 이루듯, 바로 그와 똑같이 달뜬 마음 때문에 잠조차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의 마음이 이렇게 달떠있는 까닭은 내일 아침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한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나들이래야 집에서 나가 동회까지 나가는, 그것도 주민증을 바꾸기 위한 그런 나들이일 뿐인 것을 가지고.
“누가 잠꼬대랬어요!”
어린것을 끼고 자던 아내가 자기 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렇게 대답해오자, 홍정표는 슬며시 아내의 젖무덤 위로 자기 손을 갖다 붙이고 슬슬 쓸어대며,
“당신은 왜 안 자?”
하고 물었다.
“잠이 안 와요. 공연히…….”
“공연히?”
“네.”
“사실은 나도 공연히 잠이 안 와서…….”
“당신 동회 사무실 어딘지 알아요?”
“그럼, 지난 여름 장마비에 동회 사무실 벽이 무너져서 내가 그 벽을 발라줬 는 걸.”
“멀다면서요?”
“버스로 다섯 정거장인가 가야 하니까 여기선 꽤 먼 셈이지.”
“당신 낼 무슨 옷 입으실래요?”
“와이셔츠 빨아놓은 거 있지?”
“있죠.”
“네 꾸다이를 해야지.”
“나도 낼은 한복을 입을 거예요. ……우리 이렇게 온 식구가 같이 나가는 건 이번이 첨이죠?”
홍정표는 아내의 이런 소리를 듣자, 아내도 내일 있을 나들이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구나 싶어 문득 콧날이 찌잉 저려짐을 느꼈다. 그의 기억엔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맨 처음 서울로 도망쳐올 때 아내와 먼길을 같이 온 기억 외엔 동부인하여 대문 밖을 나간 기억조차 전혀 없었다. 억지로 정말 억지로 갖다 붙인다면 여섯 살박이인 큰 아이가 세 살 먹던 해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 한밤중에 들쳐 업고 병원에 같이 간 일 정도밖에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홍정표나 그의 아내가 그런 극히 사무적인 외출을 하게 된 것을 가지고 무슨 놀이라도 즐기러 가듯 이렇게 가지껏 부풀어 있는 것이었다.
“애들 나들이 옷은 있나?”
“나들이 옷이 어딨어요. 언제 나들이를 다녀왔어야죠. 애들이야 늘 입는 옷을 입히면 되잖아요.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라고 놀러가지 말란 법이 있어? 내일은 동회에서 일이 끝나는 대로 애들 데리고 창경원에라도 갈 작정이니까 그러지!”
“정말이에요?”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이렇게 되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아내의 젖무덤 위에 붙이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주어 힘껏 움켜쥐었다.
따지고 보면 홍정표가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그랬었다. 남들은 철철이, 그 철에 맞게 행선지를 바꾸어가며 나들이를 하곤 했지만 그는 먹고 사는 데만 골몰하여 그 흔하게들 가는 창경원 한 번 식구들을 이끌고 간 적이 없던 터라, 내일 동회에서 일이 끝나는 대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 구경이나 해볼 작정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이라도 좀 마련해놓으라구…… 며칠 굶는 한이 있더라도 낼은 꼭 창경원엘 데리고 갈 테니까.”
“하지만 돈이 있어야죠.”
“맨날 그놈의 돈 때문에 떳떳한 나들이 한 번도 못한 게 아냐! 그러니까 낼은 눈 따악 감고 하루쯤 즐겨보는 거야. 그깐놈의 돈 어떻게 보충 못 할려구.”
“그러시구려……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이제 어서 눈 좀 붙이세요.”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의 가슴 위에 놓여 있는 남편의 손을 슬그머니 밀쳐버렸다. 그러나 홍정표는 그러한 아내의 손짓에 냉큼 응할 수가 없었다.
“여보 미안해! 사는 게 뭔지, 원!”
홍정표는 아이들 쪽으로 돌아누우려는 아내의 몸을 와락 끌어안으며 자기 가슴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이 양반이, 이러다 아이들이 깨겠수!”
아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녀도 남편의 억센 팔 힘에 의해 몸이 바스라져버릴 듯 안겨 있는 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싫기는커녕 이제는 오히려 아내 쪽에서 더욱 적극적이 되어갔다.
“여보, 정말 당신 고생이 많았어.”
“이 양반이 새삼스럽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고생 아녜요. 또 우리가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산 덕분에 이 볼품없는 집이라도 지니게 됐구요.”
아내의 목소리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은 홍정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당신 창경원에 가봤수?”
“가보긴 언제 가봐. 당신이나 나나 다 똑같은 신세지.”
“들은 얘기로는 별의별 동물이 다 많다는데…….”
“낼 가보면 알겠지.”. ˙
“동회에서 그 손도장 찍고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쉬이 끝나진 않을 거야.”
“금방 끝났으면 좋겠는데…….”
“금방 끝나지 않는다 해도 창경원에 갈 시간이야 있겠지.”
홍정표는 아내를 끼어안은 채 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내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동회로, 창경원으로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공연히 가슴이 설레였다. 홍정표의 머릿속에는 오래 전에 본 창경원 앞 풍경이 사진 박히어졌다. 어느 해인가 벚꽃 철에 창경원 앞을 지나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딱 한 번 본 창경원 앞의 복작대는 풍경이 지금 느닷없이 그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던 것이다.
한 손에는 빨간 고무 풍선을 쥔 아이가 다른 한쪽 손은 제 어머니인 듯한 부인의 손에 잡힌 채 딴전을 피워대며 걷기도 했고, 울긋불긋한 나들이 옷차림이 군중들 앞에 목이 긴 기린을 커다랗게 만들어 세운 간판이 서 있는가 하면 수퉁과 음식이 든 가방의 줄을 X자 형으로 양쪽 어깨에서 늘인, 수학 여행 온 시골 학생들……홍정표는 그런 수많은 군중 속에서 자기와 자기 아내가 자기들의 두 아이를 데리고 매표구 앞에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환영을 보았다.
“왜 진작…….”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진작에 그런 즐거운 나들이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의 중얼거림이었다.
“뭐라구요?”
“아냐, 내 혼자 얘기야.”
“어서 주무세요, 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자야지.”
“저도 자야겠어요.”
“그래, 어서 자라구. 낼 아침 나들이 준비도 해야되구 하니까.”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눈을 감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오라는 잠은 냉큼 와주질 않고 쫓으려는 잡생각들만 끈덕지게 몰려오는 것이다.
얼마 후, 간신히 잠이 든 그는 꿈을 꾸었다.
자기의 아이들이 풍선을 둥둥 띄우며 앞장 선 뒤를 자신과 아내가 뒤따라 걷는 꿈이었다. 그들이 걷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푸른 잔디밭 길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걷던 홍정표는 자기의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음을 느꼈다. 자기뿐만 아니라 아내도 또 아이들의 발도 모두 땅에서 떨어져 있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자기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풍선의 힘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홍정표는 밤새도록 자기와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모든 식구들이 그렇게 하늘로 떠다니는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었다. 그날은 티 없이 맑고 드높은 늦가을의 하늘이었다.
홍정표 내외는 간밤에 잠을 설쳤는데도 그날은 신 새벽부터 자리에서 빠져나와 부지런을 피워댔다. 홍정표는 아까부터 자기의 낡아빠진 구두에 약칠을 하여 윤을 내기에 바빴고, 그의 아내는 아내대로 반닫이 속에 개어 넣어뒀던 남편의 양복과 자기의 한복을 꺼내어 다림질을 하는가 하면 아이들이 입고 나설 옷가지들을 고르느라 여간만 부산스럽지 않았다. 그들 내외가 이렇게 수선을 떠는 바람에 두 아이도 잠이 깨어버렸다. 작은놈(그들 부부는 막내라고 불렀다)은 이제 겨우 네 살밖에 되지 않아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를 이상스럽게 느낄 정도로 약진 못했으나 그놈의 형인 여섯 살짜리의 큰놈은,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수선을 떨어대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가 있었던 모양으로, 연신 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엄마 왜 그래? 아빠 왜 그래?”
이런 질문을 연발했다. 그러나 홍정표도 그의 아내도 자기의 어린 것이 궁금해 못 건디겠다는 투로 이렇게 물어대는 물음에 대꾸조차 못 할 정도로 각기 자기네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빠 말해봐.”
큰놈이 또다시 이렇게 때때거렸다. 그제서야 홍정표는 구두에 광을 올리던 손을 멈추고 그 아이 쪽으로 눈길을 보내며,
“뭐?”
하고 물었다.
“왜, 이렇게 구두만 닦고 있어?”
큰놈의 눈에는 전에 없이, 자기 아빠가 이른 아침부터 구두짝을 붙잡고 씨름을 해대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음, 우리 장근일 데리고 좋은 데에 구경 갈려고…….”
“좋은 데가 어딘데?”
“창경원.”
“창경원이 어디야?”
홍정표는 자기의 어린것들에게 창경원에 관한 재미있는 여러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물론 그가 말한 것들은 자기도 모두 남에게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지식일 따름이었다. 그러자 그 얘기를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듣고 난 큰놈이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 우리 오늘 창경원에 간다. 코끼리도 있고 호랑이도 있대:”
이렇게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래, 그래서 엄마가 지금 이렇게 창경원에 가서 맛있게 먹을 김밥을 만들잖니?”
아내도 즐거움이 가득 고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그 김밥 코끼리도 줄까?”
어린것의 순진한 이 한마디에 집 안은 다시 즐거운 옷음으로 가득찼다.
홍정표와 그의 아내가 대문을 나선 것은 아홉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홍정표의 머리는 기름이 지나치게 올라 반지르르 했다. 말끔히 면도도 되어 있었으며 쿨렁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도 매어져 있었다. 그러한 그의 오른쪽 손에는 큰아이의 손이 잡혀져 있었고 다른 한쪽 손에는 창경원에 가서 펼칠 김밥 꾸러미가 들려져 있었다. 그러한 남편의 뒤를 따르는 연분홍 한복 차림인 그의 아내 얼굴에는 여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짙은 화장이 올라 있었다. 입술도 칠해졌으며 눈썹과 눈에도 까만 칠이 올라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한쪽 손에는 작은아들의 손이 잡혀져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핸드백이 들려져 있었다. 이러한 일가족의 외출을 눈여겨보던 동네 미장원 아가씨가,
“어머 촌스럽기두 해라. 원, 일부러 저렇게 촌티가 철철 흐르게 꾸미려고 애를 써도 따라갈 수가 없겠네.”
라고 종알대며 배꼽을 움켜잡았으나 누가 자기네 행색을 흉보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홍정표 내외는 차라리, 거드름을 피워대며 길을 간다고 표현함이 옳을 정도로 아주 자랑스럽게 걷고 있었다. 하기야 홍정표 마음속에도 또 그 아내의 마음속에도 지금 이렇게 몸치장을 하고 가족 동반하여 외출하는 모습을 누가 봐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타까움이 철철 넘칠 정도로 가득히 고여져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자랑스런 걸음걸이로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섰을 때였다. 저만큼 떨어진 곳으로부터 빈 택시 한 대가 기세 좋게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홍정표는 “택씨!” 하고 고함을 질러대며 점심 보자기가 들린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택시가 그들의 앞에까지 와 닿게 되려면 아직도 시간 여유는 많았다.
“왜요 ? 택시를 타려구요? ”
아내는 급한 소리로 물었다.
“기분이니까, 모처럼 만에 한 번 타보는 것도 괜찮다구.”
아무런 주저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아내도 순간,
‘오늘 같은 날, 그깐 택시비 아껴서 뭘 하누?’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고는 혹 택시가 자기들 앞에서 서질 않으면 어쩌나 싶어 자기의 남편처럼 핸드백이 들려져 있는 손을 번쩍 추켜 올리며 “스톱 ! 스튬 ! ”을 연발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을 처음부터 자세히 지켜보고 있던 이층 사진관집 총각은 바로 자기 코 밑에 있는 홍정표 부부를 향해 결코 적지 않은 목소리로,
“원, 쪼다 같은 것들! 택시 한번 요란하게 세워보는군! 젠장 왕년에 택시 안 타본 놈 있어?”
이렇게 욕설을 끌어 부었다.
홍정표는 또 그의 아내도 다 똑같이 바쁜 눈길을 이리저리 굴리며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지금 막, 택시를 불러세운 자기들을 바라봐주는 동네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동네사람은커녕 누구 하나 낯선 얼굴을 그들에게 돌려 바라보아주지도 않는 것이었다. 으스대던 마음에 찬물이 끼얹혀졌다.
“탈려면 어서 타요!”
차 안에서 운전수의 이런 퉁이 튀어나오자, 홍정표는 당황해진 손으로 얼른 차문을 열어 아이들과 아내를 태우고난 뒤 자기도 서둘러 택시 으로 들어가 앉아 문을 닫았다.
그들 부부는 금방 동회 사무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벌써, 숱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서 자기들의 순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정표 내외도 가지고 온 주민증 발급 신청 카드를 꺼내들고 줄의 맨 꽁무니에 붙어섰다.
“아빠. 여기가 창경 원이야?”
“아냐, 조금만 더 참아, 창경원엘 데리고 갈 테니까.”
홍정표는 매분마다, 큰놈과 이런 입씨름을 하며 줄에 서 있었으나 그 줄은 좀처럼 줄어들질 않았다.
홍정표 내외가 지문(指紋)을 찍기 위해서 담당계원 앞에 선 것은 집을 나선 지 꼭 세 시간 만이었다.
“손에 힘을 빼세요. 손에 힘을 주지 말라니까요!”
홍정표는 지문을 채취하는 담당계원에게 몇 번씩이나 이런 퉁을 먹으며 양쪽 열 손가락으로 그 계원의 지시에 따라 지장을 찍어댔지만 어느 한 손가락도 지문이 제대로 나타나질 않았다. 카드 위에 찍힌 것은 그저 시꺼먼 잉크 자국일 따름이었다. 그토록 지문이 나오지 않자 담당계원은,
“당신 직업이 뭐요?”
하고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다루듯 이렇게 물었다.
“미장입니다.”
홍정표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가락들이 모두 매끈매끈하게 다 닳아빠졌으니 지문이 나올 까닭이 있냐 말요! ”
“죄송합니다.”
홍정표는 정말 무슨 죄라도 진 듯 허리를 굽혀 사죄를 했다. 그리고 어떻게 봐줄 수가 없느냐고 사정을 했다.
“허어, 이런 딱한 양반 봤나. 고슴도치 몸에 가시가 없어봐요, 누가 그걸 고슴도치라고 하나. 마찬가지로 지문이 없는 손도장을 어떻게 지문이랄 수 있겠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얼굴을 붉혀가지고 지문을 채취하는 계원 앞을 빠져나온 홍정표는 뒤돌아서서 지금 자기에게 무안을 무더기로 퍼븟던 계원 앞으로 가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그 계원에게 다가서며 새까만 잉크에 칠갑이 되어 있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계원은 냉큼 아내의 손을 잡고 지문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 계원은 일손을 멈추고 아내의 지문이 찍힌 곳을 들여다보며,
“어허, 이 아주머니도 새까만 먹통이군!”
하고 한심스럽단 투로 소리쳤다. 지문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홍정표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서 그런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도 한 일주일 푹 쉬고서 지문이 새로 자라나면 그때 다시 오시오.”
“선생님, 우리는 그날 벌어 그날 먹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손도장 때문에 쉬란 말예요?”
비실비실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다시피 하는 홍정표의 귀에 이런 아내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무슨 고함 소리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맥이 풀려 집으로 돌아온 홍정표 내외는 나들이옷을 벗어놓을 염도 않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넋을 잃은 사람처럼 벽을 지고 앉아만 있었다. 손가락이 닳아빠져 지문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야만 하는 자신들의 신세가 오늘처 럼 처량하게 느껴진 날도 일찍 이 없었다. 그들 부부는 잔뜩 풀이 죽어 한숨만 쉴 따름이었다. 그러한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치 같은 건 볼 필요도 없는 두 아이가 방바닥 한가운데에 창경원에 가서 먹겠다고 준비했던 점심 보자기를 풀어놓고 앉아서, 생전 처음으로 먹어보는 김밥의 맛에 홀려 ‘창경원에 왜 안 데려가느냐’ 던 떼부리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끝-
2016년 12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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