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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락 성경판소리 제주도세계평화포럼과 부산 벡스코 WCC 가다.
우리나라에서 전주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기독인 인, 제주도세계평화포럼과 WCC 부산 벡스코에 참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여건 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프로그램이 내가 사는 전주는 수도인 서울과 300여 Km 떨어진 곳이며 대부부의 모든 선교활동이 서울중심으로 이뤄지기에 WCC 부산벡스코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까지 많은 정보가 오지 않았고, 사실상 지방에 있는 단체나 개인이 참여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두 세계 대회에 모두 참여하게 된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영광을 돌린다.
성경판소리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2009년 12월 5일은 성경판소리 동호회가 결성되던 날,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표 기관지인 한국기독공보 기자가와서, 취재했던 기록에, “2013년 WCC 대회에 공연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는 내용을 실어 한면에 소개한 일이 있었다. 4년 동안 성경판소리는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들불처럼 퍼져 수많은 장소에서 공연이 확산되어 갔다. 많은 매스컴인 CBS, KBS 방송과 각종 인터넷과 신문들, 전북예술회관공연, 그리고 회원들 각자의 지역에서 복음전파자로서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성경판소리란? 우리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일점일획 변치 않게 세계 유네스코에 인류 문화로 지정된 민족문화인 판소리로 하는 예술적 성경말씀 읽기이다. 즉 구전의 소리로 전달되던 성경이, 기록된 성서가 되어, 개개인의 능력껏 읽는 성서에서, 민족문화인 판소리로 함께 듣고 느끼며, 감흥을 갖고 소리라는 에너지로 부딪쳐오는, 공중에 생명력 있는 소리로 재생하여 듣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일궈보자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수천년의 역사와 삶의 양태인 문화를 간직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그리고 이웃 강대국들의 침략에 하루도 편안 할 날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지배를 받거나 침략을 받으며 한(恨)많은 세월을 살면서, 평화의 세상인 홍익인간 정신을 배양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잘 사는 세상을 소망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 풀지 못한 쌓인 한이 가득하고, 몸속에서 익어서 문화 속에도 한이 깃든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 하나가 판소리라는 문화이다.
이 한(恨)은 예수님도 평생 지니신 것으로 죄악의 결과로 불행한 삶을 사는 인생들에게서 느끼신 고통이다. 그는 이 한을 풀어 해방시키고자 인류의 한을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 가셔서,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이라는 한풀이 하는 멋진 메시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예수님의 한은 거룩한 인류의 죄악을 담당한 한으로 그는 부활하심으로 그 한을 풀고 천국을 열어주신 분이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서 한민족에게 개개인의 억울한 한을 거룩한 예수의 한인 사랑으로 풀고 더불어 사는 생명, 정의, 평화의 세상을 열어 가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라 하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한풀이로 세상의 멋을 풀어낼 속깊은 민족으로 환인, 환웅이래 9,300년의 역사속에서 아름다운 민족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왔지만, 이웃 민족들의 계속되는 침략과 억압에 맞서 살면서, 속박의 세월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일제 35년의 식민지를 겪고 계속되는 외세의 힘에 짓눌려, 민족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짝퉁문화, 외래문화, 노예문화, 미일유럽문화에 젖어 살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종이 되어버린 민족의 정신 속에는 온갖 돈으로 가득하여 썩어가며, 모든 문화는 자본, 돈과 연결된 사악한 생각으로,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 삶으로 가득하여, 1만여 역사 속에서 전달해준 민족의 고유한 공동체문화와 홍익인간 정신을 사라지고, 양육강식과 극심한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 부익부빈악빈 속에서 외래문화를 마치 자신의 문화인양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 특히 교회 문화가 그 앞장을 서고 있는 형국이면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짝퉁문화와 꼭두각시, 노예문화를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지하에서 외치며 울부짖는 민족 후손들의 살 길, 예수님이 전해주신 한풀이 해방과 부활과 현존의 가르침의 살 길을 버린 민족이 되어 버렸다. 민족의 희망이요 등불인 성경을 전담한 교회마저도 치우치고 왜곡된 삶의 문화를 앵무새처럼 외치며, 짝퉁문화와 꼭두각시 문화, 노예문화를 마치 제 것인 양, 확산 보급하며 제 것은 잃어 버렸으면서, 마치 서구유럽문화를 제 것인 양, 눈감고 아옹하며 진실을 가린 민족의 정신적, 영적 상태로 황폐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것, 우리소리, 우리민족의 것, 짝퉁이 아닌, 꼭두각시 문화가 아닌 자랑스런 한국인의 것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춤추며 발전시켜 가고자, 예수님 앞에 기도하기를 수년 하였다.
2006년 어느 날 찾아간 우리 민족 문화예술를 장려하는 전북 도립국악원에서, 생황, 단소, 피리, 북, 젓대, 장구, 북, 대금, 가야금, 거문고, 시조, 민요, 판소리, 고전춤 등을 만났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듯, 우리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예배드리고 싶은, 목마름에 지친 갈증을 풀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은 민족정신과 홍익인간 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며, 민족 혼이 되살아나는 것이란 믿음에 확신한 나는, 고기가 물을 만나듯 빨려 들어갔고, 배우는 4년간을 10년처럼 열심을 다했다. 장구를 배웠고 판소리를 통해 민족 문화예술에 깊숙이 젖어 들었다.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에게 주신 유구한 삶의 양태인 문화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신 보배이며 은혜이며 축복임에 틀림없다. 각 민족에게 주신 이 축복 속에 수백, 수천, 수만년의 그 민족의 삶의 흔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건 예수님을 자기 민족문화예술로 찬양하며 감사하며 섬길 줄 알아야 되는 것이다. 짝퉁, 똑두각시, 노예 신앙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 동안 배운 판소리 눈대목(중요한 대목, 잘 부르고 맛깔나는 대목) 가사를, 신앙적인 내용으로 바꾸어 복음판소리라는 형태로 소리해 보는 기간이었다. 40여 대목(부분)을 몇몇 가사를 개사하여 소리하여 보니 너무 신앙적으로 은혜로 왔다. 국악원에서 함께 하는 동기들에게 개사한 복음판소리를 들려주니 너무들 좋아했다. 10월 쯤되어 내 마음에 주님의 지시가 내렸다. 그것은 3년간 판소리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니 판소리 논문을 써야 된다는 지시였다.
주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주여! 무슨 논문을 어떻게 쓸까요?”
“네가 3년 연속 판소리를 하면서 쑥대머리와 사철가를 몇 번 부른지 아느냐?”
생각해 보니 1천번이 넘게 소리했다.
“네가 목사로서 내 말인 성경을 1천번 읽은 부분이 있느냐?”
“요한복음 3장 16절과 창세기 1장 1-5절정도, 그리고 요한복음 1장1절로 18절 등 몇 구절......
“그런데 신앙과 별 관계없는 듯한 판소리를 1천번 이상을 하지 않았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희 민족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성경 전서를 일점 일획 변함없이 판소리로 작곡하라. 성도들이 축자 영감설을 금과옥조로 여기니 그대로 판소리로 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소리로 전파되는 소리꾼이 되어라.”
“이런 주님의 계획이 있어서, 작곡에 필수적인 3년간 북연주법을 그렇게 열심히 익히도록 하셨군요.”
“왜? 번역된 성경전서를 일점일획 변함없이 작곡해야 합니까?”
“네 민족은 번역된 성경전서를 신앙의 금과옥조로 여기며, 네 민족 신앙인은 한점, 일획이라고 변게 하면, 이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이제 네 민족 수준이 고등교육을 대부분 받았으니 번역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줄 알기 때문이며,
네가 그 동안 10여 년간 사회선교를 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들어 보았지만, 내 말(주님)을 갖고 마음껏 풀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차라리 일점일획 변게치 말고 그대로 소리로 전파하여, 개개인 사상이 접목되지 않게, 번역된 내용 그대로 민족의 생명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네 속에 불타는 말씀 전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작곡하여 판소리로 전파하여라. 그리고 영어, 일어, 중국어로도 할 수 있는 부분은 연습하여 전파하면 아시아 수십억 인구의 영혼이 흡족함을 누릴 것이라. 그리고 교단을 초월하여 반대할 사람들도 적을 것이라,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이 없어서 기갈인 이 시대에 내 말(주님)을 전파하라.“ 이러한 대화로 심령의 기도를 하면서, 4달 동안 매일 10시간 이상 성경 전서를 작곡하였다. 두 번을 연거푸 읽으면서 판소리 박자를 넣으며 즐겁게 작곡을 완성하고, 대한성서공회에 판소리성경을 편찬하겠다는 공증을 체결한 것이다.
4년 동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들불처럼 사람들이 심령에 성경판소리가, 전국각처에서 전파되고 있던 중, 지난 2013년 8월 1일, WCC 부산벡스코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시는 김용복 총장님이 전주를 방문하시던 중,
“이번 WCC 부산벡스코 대회 한 주간 앞서, 그 준비 모임의 성격이기도 한 “제주도 세계 평화 포럼”이 10월 24부터 26까지 2박 3일 동안 있는데, 성경판소리를 초대하니 30분 동안 공연하라,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계속되는 WCC 부산벡스코 세계 기독교 대회에도 참여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씀 하셨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총장님! 주제와 내용을 주시면 작곡하여 판소리로 하겠습니다.”하고 말하자,
“주제는 금번 WCC 주제인 생명, 정의, 평화의 세상이라”고 하셨다. 그 내용과 작곡 분야는 최목사가 전문이니, 최목사가 알아서 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나?” 하신다.
총장님은 “평화에 관한 스토리가 있는 판소리”를 해야 한다고 만 하셨다.
8월 한달 동안 주님께 이번 세계 기독인의 천국잔치에 함께 참여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그 자리에서 찬양하다 죽는다 해도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고 기도했다. 감사의 급상소 기도를 올렸다. 이러게 기도하며 준비하던 중, 8월 22일 성경판소리 동호회 제22회 전국수련회에서, 이 일을 보고하자 서로 협력하자고 힘을 모아 주었다. 나는 주님께 계속하여 기도를 올렸다.
“주여!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판소리를 해서 세계 기독인의 천국 잔치축제인 ‘제주도 평화 포럼’과 제10차 WCC 부산벡스코대회에 참여할수 있을까요?” 밥을 먹을때도 걸어 갈때도 앉아 쉴 때도 주님을 향해 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적합한 말씀을 주시라고 호소했다.
어느 순간 주님의 은총이 임하는 데 마음에 선명하게 떠 올랐다.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기록된 정의와 평화, 생명에 관한 말씀을 정리하고, 예수님의 삶의 발자취가 정의, 생명, 평화임을 전파하라”
가슴에 선명하게 내용, 방법, 그리고 평화에 관한 대략적 스토리가 떠 올랐다. 즉시 컴퓨터 앞에 앉아 준비에 착수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평화에 대한 선언이 가득했다. 이렇게 평화에 대한 스토리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 하는 일이 행복한 일이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라는 이 말씀의 종국은 하나님이 이루신 평화의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라는 말과 같음을 깨달았다. 즉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은, 평화의 세상에서 살기 위한 것임을 느끼면서 기쁨은 가득했다. 성경말씀을 정리하면서 복음이 더욱 이해가 되고 깊고 환희에 젖는 기쁨이었다.
주님이 배설하신 천국잔치에 참여된 죄인은 더 이상 어떤 새로운 기쁨, 생명, 길, 진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 기쁨과 은총, 평화를 감사하며 사는 것이 복음으로 구원 받는 신자의 마땅한 본분임이 새록 새록 영혼에 각인되었다.
처음에는 평화를 만든 사건들 몇곳을 선택하여, 일반판소리 같이 작곡할까? 하는 생각에서,
“에덴의 평화, 가나안 평화, 출애굽의 평화, 혈루증 앓은 여인의 평화, 천국의 평화 등”으로,
사건중심의 스토리로 평화에 관한 판소리를 구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내면의 신학적 검증이 필요했다. 그리고 2달 정도 남은 기간에 이러한 내용으로 작곡하고 소리로 습득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되었다.
다시 주님앞에 기도하자, 내 심령속에 솟아 오르는 평화로운 장면이 한폭의 병풍처럼 떠 올랐다. 평화로운 에덴동산을 먼저 소리하자. 그런데 죄악으로 그 행복한 에덴이 파괴되며 반평화의 세상이 되어가면서, 낙원은 사라지고,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함성을 통해 우리들에게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이번 성경판소리를 통해 그 평화의 에덴을 찾아가는 순례자가 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평화의 아들이지만, 세상에 고난의 종으로 보내시겠다고 하시며, 그가 이루실 에덴은 천국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셨지만, 자기 민족이 영접지 않고, 그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어 십자가에 죽게하였다.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은 선지자들의 예고처럼 되어졌고, 그 분은 모든 천지만물의 평화를 위한 참 생명으로 오신 구세주였다. 이제도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에 참여한 사람들은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아직도 세상 나라의 어둠속에 그 영혼을 맡기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나라가 도래함을, 말씀하신 계시록의 평화의 동산 천국모습을 소리로 형상화 한다면, WCC 부산 대회까지 평화 순례의 길을, 가락과 리듬을 탄 소리기차의 행렬로, 박력있게 흥과 멋과 풍류의 즐거움으로 천국잔치의 흥을 돋구기에 부족함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 기도하며 그래도 내면의 이야기가 있는 구절들이니 절절했다.
성경에 기록된 평화에 관한 구절말씀을 판소리로 엮어 선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로 평화를 첬더니 주루룩 66권의 구절들이 춤을 춘다. 주님의 성령의 은혜로 가슴이 뛰고 흥이 솟았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하여 이루실 평화의 세상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평화를 위한 세계 대회 천국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성경말씀으로 30분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어떤 스토리로 바다처럼 깊고 넒은 평화에 관한 내면의 뜻을 갖게하여 성경판소리를 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소리 잔치의 순서를 정할까?
먼저, 가장 중요한 WCC 주제와 소주제를 판소리로 선포하자.
그리고 제주도 세계 평화포럼 뿐 아니라 부산 벡스코에도 10일 동안 내내 울려퍼져, 세계인이 생명, 정의, 평화가 귀딱지가 붙게 듣도록 하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로 해서 세계의 모든 기독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경말씀 순서대로 평화의 에덴 동산을 그리게 하여 평화를 사모하게 하며, 깨져버린 평화의 동산의 슬픔을 그리자. 하나님의 간절함은 평화이며 그 평화를 주시려고 고난의 종을 보내주셔서, 평화의 나라를 원하고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면 이야기를 넣자. 이사장 53장의 고난의 종을 소리하자.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연결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곧 평화를 위한 고난이었음을 선포하게 하자, 그런데 우리민족은 아직도 분단으로 평화가 필요한 곳임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구하자. 그래서 모든 세계가 춤추는 평화가 있는 요한계시록의 새하늘과 새땅, 천국을 노래하게 하자는 줄거리가 잡혔고 성경귀절도 모두 선정되었다.
평화의 에덴동산 10귀절, 깨어진 평화 동산 4귀절, 반평화의 모습과 죄악상 5귀절, 깨어지는 세계 평화 17귀절, 반평화에 대한 하나님의 평화선언 3귀절, 하나님의 심판과 고난의 종 약속 5귀절, 아들이 이루실 평화의 세상 4귀절,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세상 예언 2귀절, 평화의 왕의 통치 8귀절, 예수님의 평화위해 십자가 지심 15귀절, 평화가 필요한 분단의 한반도 7귀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계인을 평화의 세상을 위한 사건임 5귀절, 영원한 평화의 나라 천국도래 7귀절로 모두 92귀절을 선정했다. 그리고 작곡된 박자로 이어 정정하고 작은 소리로 하여 보니 흥겹고 복된 스토리 있는 성경말씀 평화선언곡이 되었다.
나는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즉시 내용을 집행위원이신 김용복 총장님께 알렸더니 너무 좋다고 하신다.
일단 평화의 소리곡은 되었지만 연습이 필요했다. 성경판소리는 큰 소리와 북을 연주해야 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 전주에서 4년 동안에 6곳을 옮겨 다니며 연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나와 함께 연습할 정인순 명창이 소리 학원을 하려고 연습실을 대관하고 전화가 왔다. 나는 그 동안 성경판소리 제주도, 부산대회에 나가게 된 사정을 대략 설명했다. 정인순 명창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동참하겠으며 앞으로 두 달 동안, 소리원생을 뽑지 않고 자신도 연습하겠다고 말한다.
2달 동안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주도와 부산벡스코를 가려면, 이 경비 또한 만만치 않는 것이었다. 어찌할까? 김용복총장님이 초청할 때 곁에 건축사업선교를 하는 목사가 있자, 그 보고 스폰서가 되어 최목사가 제주도 공연에 올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시자, 즉시 그렇게 하겠다는 친구 목사가 있었지만, 벌써 3주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 답답해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두달마다 모이는 전국 성경판소리 동호회의 모임이 22회 여름 수련회 모임이었다.
남원 산동마을 친구 사업훈련장에서 갖는데, 마치 주소망교회 강훈식목사 후배가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강훈식 목사의 영혼과 마음을 여신 것이다.
그 동안 나를 통해 이런 저런 성경판소리 이야기를 들었지만, 탐탐치 않게 생각하는 눈치 같았고, 자기 교회에서 두 세차례 공연을 통해 들려 주었지만, 별 반응이 없던 후배 목사였다. 그가 여름 수련회에 참여하기 전, 김용복 총장님과 전화를 통해 말씀을 듣고, 무엇인가 하려던 차에 수련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여름 수련회에 12명의 동호회 회원이 모여, 우렁차게 하는 성경말씀 판소리를 듣고, 그 가운데 일반부 대상을 받은 4명의 회원이 있으며, 정인순 명창의 소리를 들어 보더니, 그 마음과 영혼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이 모임의 강사로 활동하는 나는,
“금번 제주도세계평화포럼과 부산WCC에 참여하게 되니, 성경판소리 동호회가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세계 대회이니 참여하실 분은 두 달정도 모든 것을 접고, 오직 판소리 연습모임에 열심을 내고, 거룩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성경판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두 세계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평화의 자녀가 되자”,고 말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자금, 거리, 모임의 어려움을 들어 반거절, 반허락의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즉 동호회 이름으로는 참여치 않되, 전주 최목사가 하는 모임에 개인적으로 적극 후원, 참여 한다는 결론이었다. 이런 결정도 너무 감사했다.
강훈식 목사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이 세계기독인의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춤을 추며 즐길까?우리는 ‘성경판소리 선교회 운영이사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제주도와 WCC세계 대회에 참여한다는 확신을 갖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 두 달정도 밖에 남지 않는 기간에, 작곡한 가사를 모두 암송하고 공연을 해야 한다. 그것도 세계 120여 나라와 기독교민족 대표들에게 우리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소리를 해야된다. 그것도 자그마치 30분이라는 시간을 해야 한다. 주님 앞에 기도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을 내기로 했다. 이때까지도 준비된 것은 오리무중이다. 뜬 구름 잡듯 대의와 명분은 있었지만, 그것을 이룰 명창들과 사람이 필요했다.
9월 5일에 운영이사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그 동안 쌓아온 인맥관계를 살폈다. 우리 지역에서 덕망있고 인품있고 기금으로 참여할 수 있는 13분이 선정되었다. 물론 이름만 올려 주실 분이 절반이 될 것임을 감안했다. 바로 전화로 허락을 받고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서울에서 집행위원이신 김용복 총장님이 왕림해 주셔서 성황리에 운영이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예산도 2천만원이 세워졌다. 9월 13일에 운영이사회 모임을 통해 모든 계획이 확정되었다.
일단 그 동안 판소리로 함께해온 정인순명창과는 의기투합되어 함께 제주도와 부산에 가자고 각오를 굳혔다. 9월 18일에는 김성득집사를 모시게 되어 고난의 종 부분을 하기로 했다. 53일 동안 호남우도전수관이 대관되어 연습에 들어갔다. 판소리로 30분의 분량이니 그 내용이 만만치 않았다. 보통 일반 유행가도 2분30초에서 3분을 넘지 않으며 유행가로도 10여곡을 작곡하여 연습하는 일이니 쉬운 일이아니며 성령께서 도와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다. 이제 성경판소리가 민족혼을 담고 리듬과 가락, 그리고 흥과 멋과 맛, 박자별로 지루하지 않게, 2분에서 3분 사이로 가사 길이를 정하고 정리하여 30분의 작곡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한 것은 이미 가사가 성경에 주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작사자는 이미 하나님이시고 이제 작곡이 남았는데 그것도 이미 민족에게 주신 판소리라는 은혜의 가락들이 수없이 있었다. 취사선택 적합한 가락을 갖고 천국잔치에 흥을 돋구면 되는 것이다는 확신이 들었다.
100여 구절로 작곡된 성경판소리는 30분 분량이 되었다. 몇 차례 시간을 확인을 해 보았는데 29분 정도 걸렸다. 일단 3-4명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후 2-5시까지 연습하기로 했다. 이제 10월 되고 나니 30여일 밖에 시간이 없다. 서너 사람이 자기들도 참여해 보겠다고 찾어 왔다.
나는 연습하려는 회원들에게,
“앞으로 연습시간이 없으니, 참여하고 싶으면 모든 사업과 시간과 물질의 희생을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거룩한 믿음을 갖고, 온몸과 힘과 정성을 다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왜냐면 세계 기독인들을 모시고 공연하는 일로서 우리가 큰 기쁨, 희락의 즐거움으로 할 수 있겠냐?” 고 물었다.
몇몇 회원이 말하기를
“하루에 3시간씩은 못하고 1시간 정도 시간을 낼 것”,이라 했다.
“일단 해봅시다 그리고 10여일 남기고 확인해서 갈수 있을지 못 갈지 결정을 내립시다.” 라고 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몇차례 나왔다 안 나왔다 하더니 스스로 물러선다.
한분은 1시간씩은 열심을 내어 40여 Km떨어진 임실에서 자가용을 타고 왔지만, 일찍이 숨겨진 후두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중도 하차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사람들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열심히 연습하던 중, 이사장 53장의 고난의 종의 내용은 고난 받는 사람이 직접했으면 하는 영감이 왔다.
기도하는 가운데 어려서 소아마비로 온몸이 뒤틀리는 장애를 갖는 김성득 집사가 생각났다. 그는 9남매 형제중 9번째 3대 독자로 태어난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전주예수병원 마취과장을 지내신 분이며, 초대 선교사님들을 집에 모시고 사신 분으로 그 아버지 그리고 김집사의 할아버지때부터 믿는 가정이고 우리나라 초대선교사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했던 가정이다. 당시 소아마비 접종이 시험겸 처음 시작 될 때라, 그 아버지 마취과장이 너무 조심한 나머지, 딸 9명 뒤에 얻은 독자 아들이기에 너무 조심한 나머지 접종을 하지 않았는데, 그 아들에게 소아마비가 와서 이렇게 온몸이 뒤틀리는 몸을 갖는 인생이 된 안타까운 성도이다. 말도 입안에서 혀가 꼬여 재대로 할 수 없는 참으로 중증 1급 장애우이다. 이런 김집사에게 전화하여 대략 설명하고 연습실로 오라했다. 이번 세계 대회에 출전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김집사는 건강, 시간등 여러 가지 형편상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 대답이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설명했다.
“여보! 김집사님, 내가 왜? 이번 세계 기독인 형제자매들이 모이는 천국잔치 대회에 참여하려고 하는지 아시오.
나는 김집사보다 몸은 건강하지만, 내가 먼저 주님 품에 안길지, 당신이 먼저 품에 안길지 모르는 일 아니요?
우리 생명이 들의 풀과 같고 바람같아 금방있다 없어지는 존재일 뿐이고, 당신은 영혼이 깃든 내몸보다 많이 불편하지만, 나도 언제 장애를 갖을지 모르며, 누가 먼저 주님앞에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우리 일생에 언제 이렇게 세계 기독인이 모이는 천국잔치가 있겠소. 생각해 보시오. 나는 금번 이런 세계 천국잔치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들, 더 이상 한이 없겠다는 굳은 믿음으로 임하고 있소. 집사님 몸이 비록 장애로 힘들게 살아온 58년의 생이지만,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가 어데 있겠소. 건강 그까지것 개나 물어가라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찾아온 천국잔치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주 찬양하다가 죽읍시다. 무슨 한이 있겠소? 그러니 같이 갑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생각합시다.“ 하고 간곡히 권했다.
온 머리를 뒤틀며 어둔한 말로,
“그래! 목사님 말이 맞네. 그럼 나고 할게”하고 말하니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럼 한 주간에 시간을 낼 수 있다는 토요일 오후에 만나 연습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두 주간 연습했는데,
다니는 신학대학 NGO 강의실을 계단을 올라가다가 빙그르 굴러,
그 나마 구부러진 한쪽 팔이 부러져 기부스를 했단다. 눈물이 솟앗다.
나는 속으로, “아이구! 김집사가 얼마나 실망되고 아플까? 주님! 김집사님을 돌보소서.”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김집사 공연 연습은 끝났구나! 그 어려운 장애 몸에 성치 못한 한쪽 팔마저 부러졌으니 이일을 어찌할꼬?”
“연습하자는 말도 못하겠네.”
그런데 토요일이다. 다른 일을 하려고 차를 타고 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김성득집사다.
“여보세요. 최목사님,”
“왜? 팔 부러졌다며.....”
“예, 부러졌는데 내가 지금 연습실 계단 아래 왔는데, 붙잡을 손이 없어서 못 올라가고 아래 있어요. 어디세요?”
눈물이 왈콱 쏟는다. 꾹 눌러참고,
“나 지금 연습실로 가고 있는데, 잠깐 기다려요.” 가서보니 말이 아니다.
기브스한 팔에 지팡이 짚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처량한지.
도저히 등에 업고도 이층으로 올라 갈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차안으로 들어오라 하고 김집사 전화기 녹음기에 즉시 녹음해 주며,
“앞으로 2주후에 김용복 총장님모시고 총 연습있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주소망교회로 오라”고 했다.
“단 그 대목 판소리는 김집사님이 책임지라,”고 했더니 아이 처럼 방긋 웃으며, “알았어요” 한다.
김 집사를 대원으로 선정하고 보니, 남자, 여자, 장애우가 어울리는 참 평화의 모습이 짜임세 형성되었다.
8월 27일에 손녀가 서울에서 탄생했는데, 9월 9일에 딸아이가 손녀 혜린이를 낳아 몸보호하기 위해 친정 집으로 귀여운 손녀를 데리고 왔다. 생명이 품에 안겨온 것이다. 주님께 감사한 일은 딸 슬기가 첫 손녀 혜린이를 낳아, 몸 해부간 한다며 집에 와 있는 기간과 공교롭게도 겹친 기간이었다. 금번 WCC 주제가 정의, 생명, 평화인데, 정의는 지난 세월 독재민주화 선교를 통해 조금 알듯했고, 평화는 분단된 우리민족의 현실에서 절실한 문제여서 조금은 알듯했지만 생명은 영적인 주님의 부활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전부였었는데, 이 시간없고 바쁜 기간에 손녀 혜린이가 내 품에 안겨있어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더욱 갖게 해주는 기회가 된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주신 선물이며 이 생명을 날마다 품에 안고 먹이고 재우고 어루면서 본 것이다. 이 생명은 더더욱 풍성해져야 하는데, 경험, 지식, 상식, 역사, 문화등의 세속적인 모든 것에 휩싸여, 이 생명이 억눌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생명을 안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며 감사한지, 성경의 평화는 이 생명의 풍요를 위해 오신 예수님의 손길만이 젖줄임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겠지만 특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품에 안긴 생명을 보면서 더더욱 생명의 하나님을 느끼며 판소리 연습을했다.
오전에는 운영이사회와 자금을 위해 일하고, 오후에는 2시에서 5시까지 성경판소리 연습하며, 집에 오면 밤중에도 종종 칭얼대는 귀여운 손녀를 품에 안는 일이었다. 피곤하여 힘들 듯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어 보인다. 정말 즐거운 것은 너무 행복, 평화 생명 풍요가 넘치는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밤에는 손녀를 안고 돌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 바쁜 일정 속에 서울에 살며 사위는 인천주안교회 교육목사와 서울교회의 전도사로 선교하는 딸부부가 안겨준, 손녀 혜린이를 돌봐야 하는 일이 매우 힘들만 한데,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에 대한 풍성한 은혜의 계시였다. 금번 제주도와 부산대회의 주제가 생명, 정의, 평화인데 생명에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한 나에게, 귀여운 손녀 혜린이를 내 품에 밤마다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자게하신 주님의 배려라고 믿었다.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한 상징적 의미인 있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나의 과거 신앙적 삶을 살펴보면 우선 정의에 대해서는 수 십년간 독재민주화통일선교를 통해 맛은 보았고, 평화에 대한 선언 역시 한민족 분단속에서 겪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부족했기에 주님이 손녀를 보내주셔서 내 안방을 차지하고 딸의 건강을 돌보며 품에 안았던 손녀는 생명 그 자체로 손녀와 2달 동안을 같이 지내면서 연습하였던 것이다.
모든 생명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오신 주님, 그 원초적 생명이 작은 몸을 입고 숨을 쉬며 품에 안겨있는 거룩한 시간들이여! 이 생명이 몸과 함께 자라면서 달라 붙는 숱한 세상의 것들, 지식, 정신, 마음, 재물, 돈, 햇살, 땅, 공기, 그리고 수많은 이웃들..... 그러나 생명은 위로부터 와서 이렇게 존귀하게 이쁘게 내 품에 있구나! 이 생명의 하나님을 성경판소리로 하고 있는 복된 삶을 누리는 나는, 참으로 큰 복받은 존재임을 더욱 확신 시켜주는 사건이었다.
더욱 생명, 정의, 평화의 하나님을 판소리로 하는데 큰 힘과 용기와 지혜로 깨달음을 얻으며 하루 하루가 복되었다.
이렇게 즐겁게 온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준비하던 중, 운영이사장 임수진장로로부터 10월 7일에 전화 한통이 왔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 국악 찬양을 잘하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이번 세계대회에 함께 출전하면 어떤가요?” 그래도 성경판소리 중간에 국악찬양을 생각하긴 했지만, 성경판소리의 자리가 잡히고 굳게 세울 때까지,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국악찬양을, 성경판소리 동호회 22회 모임때까지 하지 않았는데, 운영이사장이 갑자스럽게 제안을 하셨다. 잠간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성경판소리를 설명하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10월 10일에 김용복 총장님과 전화하던 중, 우리 국악 찬양을 넣는게 어떠냐며, 생명, 정의, 평화 주제에 맞는 국악 찬양이면 더 좋겠다고 하신다. 우리나라에 이 주제로 국악찬양이 준비된 곳은 내 상식으로는 아직 없다. 그것도 2주 앞두고 이게 무슨 말씀인가? 그런데 몇 년전 전주완산교회에서 협동목사 하던 때, 글로리 국악 찬양단을 만들어 활동하던 기억이 났다. 그 내용과 가사들이 독재민주화투쟁선교 시절의 정의, 평화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주님이 이미 마련해 놓으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즉시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김용복 총장님도 좋아하신다. 총장님께서 국악단 걱정을 하신 듯 하였지만 사물악기로 하기 때문에 특별한 악단도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렸더니 더더욱 잘 되었다고 하신다. 물론 운영이사장의 말씀도 있었기에, 다시 전화를 드려 운영이사장님이 소개한 국악팀을 만나보기로 하여 아라리 국악 찬양단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판소리와 맞추느냐는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어느 부분에 넣을것인가? 따로 할 것인가? 이제 이 짦은 시간과 마당에 국악찬양과 성경판소리의 트러블 없는 만남이 가능한 것일까?
급할 때는 기도다. “주여! 어찌해야 되옵니까? 주님의 영광을 우리 혼과 얼과 영혼이 담긴 우리문화 판소리로 하려는데, 같은 국악찬양을 넣어야 되니, 이 일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계의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나눌 천국잔치에 차려질 음식과 같은 것인데 어찌해야 합니까?”
아라리 팀과 두 세차례 모임을 갖었는 데, 가사가 탐탐치 않았지만 그런대로 주제와 어울렸다. 아라리팀은 시디를 제작하고 있는 준비된 팀으로 주님이 이미 선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감사한지 몇차례 맞춰보니 훌륭한 하모니가 이뤄졌다. 우리 성경판소리팀과 같이 할 2곡과 아라리가 할 3곡(시디제작곡) 즉시 선정되고, 2주 후에 리허설에 오라하였다. 오전에는 팜프렛을 2천부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경비가 320만원이란다. 주님이 운영이사회를 통해 역사하셔서 자금이 5백만원 정도 마련되어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게 하고 계셨다.
그런데 큰 문제는 제주도 세계평화포럼의 초청은 김용복 총장님이 주관하시는 모임이라 초대된 것이 분명하고 공연이 확정되었지만, 부산 WCC 참여는 몇 년 전부터 준비된 것이라 사실상 공연 참여가 어려운 문제였다. 운영이사회 총무 강훈식 목사님과 서울 부산 WCC 한국준비위원회를 방문했다. 총무와 실행 담당자를 만나 성경판소리 공연을 부탁했지만, 이미 짜여진 계획들이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몇 차례 아는 지인들과 김총장님이 소개해 준 분들을 만나 보았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 시일이 촉박하여, 이제 바꾸려면 제네바 WCC본부와 상의해야 된다며 차일 피일 답변을 미루는 일로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운영이사회에서 몇몇 분이 공연 출연이 안되지 않냐며 빨리 운영이사를 소집하여 보고해야 된다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 10여일 남은 부산 WCC가 불투명해서 김용복 총장님께 그 동안 일을 보고하고, 어떻게 해야되냐고 여쭈었더니, “그렇게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 뚫어야지! 그렇게 융통성 없이 하지 않아도 된다며 걱정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김총장님은 몇 가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씀하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몇몇 소개해 주신 담당자들과 상의했더니, 탈핵과 생명마당에서 주관하는 고리원전 앞 대회와 부산 시민 거리 문화재 공연에 출연할 수 있게 배려가 되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제주도 출전 일주일 전 9월 18일 금요일 이다. 집행 위원이신 김용복 총장님을 모시고 리허설을 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큰 기대를 갖고 오신 총장님이신데, 우리는 아직 정확하게 준비된 것은 없다. 다만 그 동안 연습하고 준비된 내용을 보여 드리고, 일주일 남았으니 조언을 받기로 마음 먹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리허설 시간 7시 주소망 교회에서 10여 명 정도를 모시고 시작되었다. 30분간의 성경판소리가 시작되었는데, 정인순 명창이 소리가 나질 않는다며, 옆에 앉아 물만 홀짝거린다. 나 혼자 북을 치며 최선을 다해 소리하지만, 설익은 밥처럼 귀 명창들 앞에서 내가 생각해도 너무 부족하다.
20여분의 시간이 지나자 참다 못한 몇몇 분이 도저히 못 듣겠다며 반발하고 일어서 버린다.
총무와 참관자들이 그만하라며 걱정 염려스러운 표정이 역력하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실망하는 하는 눈빛이다. 마치 아라리팀이 끝 부분에서 민요 국악복음송을 멋지게 해주어서 그런데로 체면 유지가 된 기분이다.
사실 나는 처음 모두 모여진 자리이며 리허설이란 말은 붙였지만, 모일 틈이 너무 부족했었기에 오늘 총 연습시간으로 그 동안 연습한 전체를 보여주고,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가려서 필요한 만큼 준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 의도와는 다르게 중단되었고, 이런 저런 쓴 조언이 나왔다. 사실 천국잔치에 참여한다는 기쁨으로 김총장님 말씀 듣고 30분간의 스토리있는 성경판소리를 준비는 했지만, 확실한 모양, 정확한 시간, 날짜 모두가 오리무중이던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때문에, 일단 리허설이라 해서 모이고, 해 보고 세계대회에 맞는 분량과 시간과 형태를 만들어야 된다고 여겼다.
총장님은 어떤 가능성을 보시고 건설적 비판을 해 주시면서, 여러 가지 세계대회에 걸맞는 충고, 조언을 해 주셨다. 그런데 나의 가슴과 머릿속에 큰 희망과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 조언의 말씀에 따라 방향감각 그리고 세계 대회의 성향에 맞는 리듬과 원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김용복 총장님이 원하시는 공연이 어떤 것임을 알게 되었다. 김총장님의 여러 가지 조언, 부언의 말씀을 듣고 국악찬양과 성경판소리의 조화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보였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글귀가 떠 올랐다.
김용복 총장님은 힘과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시는 길에. 나는 확신있게, “ 총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어느 방향이며 어떤 형태인지 알았으니 결코 세계인과 총장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정 작곡하여 주님의 영광을 돌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보니까? 충분히 가능해...... 다음 주 제주도에서 봅시다.”
이미 30분간 성경판소리로만 준비된 내용이 있고, 아라리 국악찬양이 준비되어 있는데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그 동안 쌓아논 노하우로 이미 성공적인 공연이 될 것임을 주님이 확신토록 해 주신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하나님 생명의 축복인 손녀 혜린이가 내품에 안긴다. 이 손녀가 내 품에 오면 더욱 안정되게 잠도 잘자고, 놀고, 이쁜 짓을 한다. 새근 새근 잠든 평화로운 생명을 품에 안은 난 너무 행복했다.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고 피곤도 잊게 한다. 또한 아내와 딸이 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다. 너무 큰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된다. 밤잠을 설치면서 딸 슬기 혜린이 어미가 힘들어 하면, 나는 딸이 안쓰러워지고 손녀인 딸을 안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딸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이런 삶속에서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은 익어가는 것 같았으며 세계대회의 주제가 더욱 깊고 두터워졌다.
“오! 주님, 저같은 죄인이 이렇게 축복의 은총을 받아도 되는지요.”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11월 19일 새벽 1시쯤되어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작곡한 곡을 살피며 실패를 거울삼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용을 절반으로 줄이고 국악찬양을 삽입했다. 주제를 성경판소리로 하고 두곡의 국악 찬양을 아라리와 함께하며, 다시 10분 정도에 걸쳐 짧게 작곡한 성경판소리를 하며 중간에 정인순 명창의 국악찬양을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라리가 준비한 3곡의 국악찬양을 합쳐 넣고 주기도문으로 경건하게 마친다 머릿속에 매우 환상적인 작곡이 완성된다.
11월 21일 월요일 오후 2시 우리 연습실에서 재 리허설을 한다하니 아내와 딸 슬기와 손녀 혜린이와 함께참관을 하겠다 한다. 딸이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피아노로 석사과정까지 전공하고 합창단 공연을 계획 반주한 경험이 있기에 꼭 와서 듣고 평가해 달라했다. 딸도 매우 기뻐하며 국악소리 연주를 들을 기회라며 좋아했다. 연습실에서 30분의 공연이 시작되었고 시작과 끝은 징소리로 하였더니 모두가 흡족해하며 대 만족한 모습이다. 이제 10월 23일 제주도 4.3민주공원으로만 가면되는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큰 위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아라리 국악찬양팀에게 작곡과 가사를 주는 교수와 주변 목사 몇몇이, 꼴통 보수 교단인 모양인데 WCC를 반대하기 때문에 공연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변에서 WCC를 사단, 혼합주의, 용공주의, 동성애 등등으로 곡해하며, 아라리팀들에게 WCC를 반대해야 한다며 출전을 멈추라고 압박을 한 것이다. 우리 교단은 WCC를 지지하는 교단 목사이기에, 그들이 하는 말이 잘못된 것이며 반대를 위한 무식한 반대라고 설명해 주었다. 감사하게도 아라리 팀들이 각자 다니는 교단이 우리와 같은 교단이어서, 결론은 당신들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11월 22일 다음날 전화가 왔다.
그들이 교회에 가서 자기가 다니는 목사님께 물어보니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슨 소리냐며 우리는 목사라도 WCC 초대를 받지못해 못가는 판인데, 세계인의 기독교 올리픽 같은 거룩한 대회를 어떤 사람들이 그런 사단같은 소리를 하느냐,”며 걱정 말고 참여하라고 하며,
“그런 무식한 사람들 말은 듣지도 말라고 하였단다.”며 용기내어 공연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며, “주여! 감사합니다. 그 용기와 결단을 갖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우여 곡절 끝에 11월 22일 제주도 출발 하루전이 되었다. 공연할 7사람과 준비해 줄 1사람이 비행기로 제주도 4.3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통역을 감당할 한 사람이 필요했다. 마치 한일 장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 교수이며 김용복총장님과 안면이 있는 김은주 교수에게 전화하여 함께 동행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교수님이 듣고 “자기가 왜? 가야지요. 여러분은 개개인 당 4분 정도 공연을 위해 가는데, 자신은 무엇 때문가야 하느냐?” 고 묻는다. 내가 말하기를, “김교수님도 세계인의 모임에 가 보시고, 제주도 구경도 하시고, 가시면 우리를 위해 통역해 주실 것인데 4분만 하시겠냐고 말씀 드렸다. 이번 성경판소리 공연에 더 많은 시간 동안 주님이 쓰실 것입니다. 즉 우리에 대해서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소개하는 일과 팜프렛 소개하는 일, 그리고 그곳에 참여해서 세계적인 감각을 익히시는 일 등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면 매우 좋을 것 같다”, 고 말해 주었다. 한참 후 쾌히 승낙해 주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한석이 없어 취소하고 즉시 장흥항구로 페리호 배를 알아보니 좌석이 있었다. 이제 내일 아침 차질없이 23일 새벽에 출발하면 된다. 4시간 정도 봉고차량으로 이동하고 다시 배를 타고 2시간 30분 제주도로 향해 가야하는 여행 길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주안에서 진행되었다.
24일 새벽 5시 30분 주소망교회에 모인 9명의 대원들은 페리호가 기다리는 항구로 향하였다. 남쪽으로 300Km 되는 거리다. 짐을 가득 싫고 9사람이 가득탄 봉고를 타고 달려가는 우리들의 앞길은 매우 감사함으로 넘쳤다. 푸른 바다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넓게 펼쳐진 남해 바다가 보이고 평화롭게 보이는 페리호가 들어와 있었다. 평생에 배를 처음 타 본다는 장애우 김성득집사도 흥분된 상태다. 수백석의 자리를 마련한 큰 페리호이기에 안전하게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제주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4.3민주 공원으로 가려는데, 타고간 봉고 자동차가 휠이 고장을 일으켰다. 물어 물어 공업사를 찾어가 수리하여 타고 도착하여 본격적인 리허설에 들어갔다. 리허설을 지켜보신 김박사님의 얼굴에 기쁨의 웃음이 가득하시면서 좋다고 하신다. 모든 예비준비를 마치고 우리들을 위해 주관처에서 마련한 숙소 호텔에 들어가 짐을 놓고, 저녁에는 제주도 해녀 횟집에 들어가 맛있는 회로 좋은 써비스를 받았다.
숙소로 들어와 밤새 작곡한 가락을 연습하면서 제주도 밤을 지냈다.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다시 4.3공원에 도착하여 성경판소리 예배를 올렸다. 우리는 예상 한 대로 실수 없이 온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서 주님을 바라보며 영광을 올렸다. 온 몸에 땀이 흘렀다. 세계 기독인의 평화포럼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성경판소리 예배를 올리고 밖으로 나와 제주도를 유람했다. 점심 식사는 김총장님의 배려로 세계인과 같이 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점시때 김용복총장님이 우리를 만나자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무 감격스럽고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께 감사했으며,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하시며, “세계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감동스럽다.”고 한다 하신다. “그래서 앞으로 모든 회무가 은혜롭게 진행될 것이라.”며 기뻐하시면 축하해 주셨다. 피부색이 각색인 세계의 형제, 자매들이 말은 통하지 않지만, 엄지 손가락을 들어 너무 좋았다고 브라보를 외치며 명함을 건넨다. 몇몇 대원들에게는 싸인을 해 달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사진도 찍고 서로 친교를 갖는 시간을 갖어 매우 행복하고 좋았다.
25일 아침 성경판소리 예배를 은혜롭게 마치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나니, 오후 6시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 이곳 저곳 경관을 구경하다가 일출봉에 올라갔다. 사면이 푸른 물결로 출렁이며 파도들이 왔다가 다시 사라져가며 주님을 찬양하는 듯 하다. 일출봉에 다다라 아래 우묵한 곳 바닷가에서 회 한사발 먹는 맛은 매우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툭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니 마음이 포근해 진다. 매우 기쁜 하루다. 드디어 오후 6시가 되어 다시 페리호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 끝나고 가는 길의 바다는 만만치 않았다. 심한 파도가 격해서 배가 좌우로 요동 한다. 배안의 많은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장판이 된다. 우리 대원 중 한분도 매우 심하게 배멀리 진통을 한다. 나도 처음 겪어보는 심한 파도의 진통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배의 요동을 한편으로 즐기는 맘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장흥에 도착하였다. 한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장흥에 도착하여 찻속에서 전주로 오는 길에 WCC를 반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한 토론을 했다. 아라리 국악찬양 원장은 아직도 주변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너무 잘못된 전이해에 의해 WCC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자신이 지금 국악 찬양 시디를 만드는 일에 관여한 작곡가 작사자가 모두 꼴보수로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잘못된 것을 말해주고 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하나 설명해 주었다.
1. WCC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 WCC에는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는 오해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안에는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WCC의 존재근거의 시작인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 라고 그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WCC는 교회들의 연합체이고 교회가 아니면 WCC에 가입할 수 없다. 심지어 NCC도 가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NCC가 WCC의 산하단체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협력단체일 뿐이다. WCC에 가입하려면 가입하고자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것이 WCC 헌장 1조의 신앙고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서류심사가 통과되면 같은 지역의 기존 회원교회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국의 경우 회원교회인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한국정교회대교구의 동의를 구하게 되는데, 이 중 한 교회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기독교 기관도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만이 아니라 마호메트, 석가모니, 심지어 모택동까지 신봉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이며 거짓 증거이다. 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동증언, 공동봉사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2. WCC는 다양성속의 일치를 추구한다.
: WCC가 모든 교파를 통합하여 단일교회를 만들려 한다는 의심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세계의 모든 교단을 통합하여 세계단일교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의구심은 합동과 통합의 분열 명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WCC는 최초부터 단일교회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지금 단일교회가 되지도 않았다. WCC가 추구하는 일치는 획일적 일치나 기구적 일치가 아니고 다양성 속의 일치이다. 즉 개 교회의 보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1950년 토론토에서 열린 중앙위원회가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일교회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데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WCC가 항상 강조하는 일치는 다양성속의 일치이다.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 8항에 따르면 “WCC 회원교회는 서로 영적 관계 속에 들어가 서로 배우며 서로 도와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굳건히 세우고 교회의 삶이 갱신되도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함에 있어서 1항에서 “WCC 회원교회들은 대화를 하든지 협력을 하든지 교회의 공동증언을 하든지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거룩한 머리라는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WCC는 이렇게 세계교회가 다양하지만 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다양한 지체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정통 기독론(451년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년 네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여 ①사도적 신앙의 공동이해, ②성례전의 상호인정, ③권위 있는 공동의 가르침과 결의구조 등을 함께 하는 교회의 협의회적 친교를 추구한다. 이것이 곧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이다.
WCC는 ‘일치는 교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각 교회는 보편적 교회지만 전체는 아니다.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신경의 우주적 공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3. WCC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
: WCC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낭설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혹은 성경 전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위에 굳게 서 있는 한국의 회원교회들을 비롯한 전 세계 349개 교회들의 교제인 WCC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 WCC 정신의 근간이 되는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라고 WCC의 존재기반이 성경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WCC의 성경관을 확연히 밝히고 있는 1978년 방갈로문서에 따르면 성경은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고 전제하고 신약의 특수성을 ① 하나님을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 ② 성육신이 되신 말씀, ③ 화해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④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하나님에 의한 희망의 역사 완성, ⑤ 성령을 통한 구약의 메시지의 보편화 ⑥ 구약성서와 신약성경의 상통성 등으로 밝히고 있다. 동 문서는 구약의 특성으로 ① 하나님을 창조주, 역사의 주, 정의의 심판자로 계시 ② 하나님의 거룩성과 피조물에 대한 애타는 사랑 강조 ③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창조와 자연에 대한 관심 ④ 개인의 도덕과 윤리뿐 아닌 구조악의 변혁에 대한 요구 ⑤ 공동체성과 현세에 대한 관심 강조 등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WCC의 대부분 문서는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할 때 성경 인용을 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WCC는 성경을 믿지 않는다거나 부인한다는 것은 거짓 증언이다.
4.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부정하고, 석가, 마호메트, 공자, 모택동 등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WCC는 헌장 제1조에도 이렇게 밝히고 있지만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진 창립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선포했다. “세상을 위한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선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하신 말씀으로서 사셨고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단번에 부수시고, 모두가 성령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누리도록 문을 여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역사와 각 개인의 행위에 대한 최후 심판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심판이 될 것이며,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이다. 이 메시지는 WCC가 창립하면서 세계앞에 공표한 것으로서 WCC의 공식적 입장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하신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최후의 심판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희망의 역사로 이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WCC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다거나 다른 피조물과 동격으로 놓는다는 주장은 거짓된 주장이다.
5. WCC는 편파적 신학이 아닌 온전한 신학을 추구한다
: WCC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WCC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회원자격요건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WCC의 교회일치 노력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교회일치를 위한WCC의 기본원칙은 ‘다양성속의 일치’ 혹은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이다. 교회의 최대 아픔중의 하나인 교회분열의명분은 항상 교리에 대한 이해차이였다. WCC안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 있는 349개의 다양한 교회가 있다. 신학적 이해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한 교파의 신학을 다른 교회에 강요할 수 없다. 따라서 WCC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를 통해 세계교회 간에 신학과 교리의 차이에 대해 늘 대화하면서 공통의 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WCC는 각 교회가 처한 상황을 반영한 신학적 다양성을 상호 인정하면서도 정통 기독론(451,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를 늘 추구해 왔다. 따라서 WCC는 회원교회가 가진 다양한 신학을 함께 성찰하면서도 그 다양한 신학적 사고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일치점을 항상 추구하는 온전한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WCC 반대자들은 WCC의 사회참여와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는 복음의 증언을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 이것도 WCC의 복음이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모르는 이해부족이다. WCC의 신학이 사회참여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던 정통복음주의권인 로잔언약 그룹도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에서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형태의 소외, 억압,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임도 의미한다.”며 ‘기독교 사회적 책임’을 선언함으로써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제2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1989, 마닐라)와 “제3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2010, 케이프타운)로 이어진다. 2012년 3월 마닐라에서 열렸던 WCC선교대회에 참여한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의 선교는 ‘온전한 교회로서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온전하게 증거하는 것’이라는 WCC의 선교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복음의 통전적 넓이에 공감을 표현하였다. 세계교회에는 이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의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고 있다
6. WCC는 선교와 전도를 교회의 존재가치로 고백한다
: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가 다원주의를 신봉하며 개종전도 금지를 선포했다고 하는데 WCC는 결코 개종전도금지를선포한 적이 없다. 이것은 WCC의 생성동기나 역사나 현재의 선교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하는 말이다. WCC가 태동한 모태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WCC 제1차 총회 메시지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아직 수많은 동료인류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 우리가 여러 대륙에서 여기에 모인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교회를 독려하시어 복음이 세상 만방에 전해지도록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사랑 안에 살며 그가 다시 오실 것을기다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1982년에 발표한 WCC 공식선교문서인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이란 문서를 보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의 세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섬기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WCC는 2011년 세계복음주의연맹과 로마카톨릭교회와 더불어선교에 대한 행동강령에 합의한 바가 있다. 이 합의는 모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과 로마카톨릭교회까지도 선교강령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는데 큰 뜻이 있는데 혹자는 이 문서에서 다른 종교가 강세인 지역에는 선교를 하지않는다는 입장표명같은 것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의 본질이 선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는 그리스도인의 복음전도는 그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행해야 하며, 복음전도는 어떤국가나 어떤 문화나 어떤 체제도 막을 수 없다는 ‘신앙의 자유’를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다종교 사회 속에서 복음전도를 할 때는 타인에 대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도활동을 함에 있어 속임수나 물질공세나 강압적 수단과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쓴다면 이것은 곧 복음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Proselytism)이고, 역증거 혹은 ‘증거의 부패’가 된다는 말이다. 사실 에큐메니칼운동이 염려하는 것은 기독교교회간의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이다. 예를 들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기존 교회가 있는 500미터 안에는 교회개척을 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이 규정을 세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20세기 초 에큐메니칼운동이 시작된 동기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문제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후 자본주의권의 교회가 러시아와 같은 동구권에 들어가가전제품 같은 물질을 상품으로 걸고 전도운동을 할 때에 이 문제가 극심했다. 이것은 복음을 상품화하는 행위이므로 이런 식의 전도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WCC에 참여하는 교회들의 생각이다.
7. WCC의 선교유예 선언은 아프리카교회의 자립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 WCC는 선교유예를 선언함으로써 선교를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선교유예(moratorium)를 선언하고 더 이상 선교하기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인용하는 선교유예는 케냐의 동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가 선언한 것인데 그가 선교유예를선언한 내용의 문맥을 살펴보면 결코 선교를 포기하거나 중지선언하지 않았다. 가투 목사가 선교유예를 절규한 이유는 아프리카 교회의 독립과 자립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 수백 년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아프리카 교회가 계속 서구교회의 선교사들과 선교자금에 의지한다면 결코 자력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프리카교회가 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선교를 수행할 능력을 키우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이 경제적, 사회적 의존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바로 선교자금과 선교사를 계속 받는 것을 중지하는 선교유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선교유예론이었다. 말하자면 자력으로 선교하고 목회하는 교회가 되려면 서구교회로부터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받는 것을중지해야하며 그래야 아프리카 교회는 자립할 수 있는 교회가 된다는 요지이다. 이 속에는 아직도 그 숙제가 풀리지않는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의 경제적 자립, 정치사회적 독립까지도 염두에 둔 깊은 고뇌의 선택인 것이다. WCC가 1982년에 발표한 공식선교선언문인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확언」이란 성명서에는 “선교의 유예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좋은 선교를 위한 선교유예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어떤 때는 필요할 것이다.”라고 선언되어있다. 선교유예는 선교중지나 포기가 아닌 더 좋은 선교를 하기 위함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사상 드물게 교회성장과 자립성을 동시에 이룩한 교회이다. 여기에는 한국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식도 큰 영향을끼쳤다. 네비우스선교방식은 ‘자치, 자립, 자전''의 원칙이다. 아프리카 교회가 선언한 선교유예는 바로 아프리카 교회가 자치적, 자립적, 자전적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자립적 성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법의 아프리카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피 선교교회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교회성숙의 과정중의 하나이다.
8. WCC가 사회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전적 선교를 한다
: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WCC를 전체적으로 모르고 하는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WCC활동에는 양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흐름으로 신앙과 일치 문제를 다루는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흐름으로 복음의 실천적 증언을 다루는 분야이다. 여기에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교육’이 덧붙여져 WCC활동의 4대 분야를 구성한다. 여기에서 ‘삶과 일’의흐름은 다시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한 분야는 인권운동, 평화운동, 정의운동과 같은 사회적 증언운동이고 또 다른 분야는 긴급구호, 재해구호, 재건 등의 봉사활동이다. WCC 창설직후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재건하는 일이 WCC의 주된 사회선교영역이었다. 이런 WCC의 통전적 활동이 한국에는 사회선교, 정치참여로만 각인된 데는 한국의 70년대 80년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70, 8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상황은 군사독제, 인권침해, 민주화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이 상황 속에서 WCC는 한국의 인권신장,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공동선교, 협력선교, 기독교연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독재정권으로부터 반정부운동으로 비춰졌고 따라서 당시 정권은 WCC가 정치집단, 용공세력, 반정부단체라고 역선전하였다. 이 때문에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있다, 정치집단이다. 반정부집단이다, 불온한 단체이다.’라는 각인이 찍혔다. 그러나 WCC의 이러한 연대는 한국의 민주화, 인권신장, 사회정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늘 동행하며 민족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옴으로써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교회와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갈 6:2) 세계교회의 공동선교활동이라고 보아야 옳다. WCC의 사회적 증언은 단순한 사회참여 차원이 아니고 ‘성경적 근거’와 ‘신앙적 부름’때문에 이루어지는 복음증언이다. 인종주의에 대한 WCC의 입장이 그 한 예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총회는 ''인종, 피부색, 종족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모든 회원교회가 자신들의 삶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나치주의에 대한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이외의 어떤 주권도 인정할 수 없는 독일교회의 신앙고백 행동이었고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고 격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대한 저항은 그리스도 안에 어떤 인종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복음을 거역할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바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룬”(고전 12:13) 교회가 인종차별을 한다면 이것은 복음에 대한 배반이고 속임이다. WCC가 인종차별철폐를 한다거나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평화를 세우는 일은 사회참여, 정치참여가 아니라 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선포이자 신앙의 증언이다.
9. WCC는 복음의 가치가 인간의 이념보다 상위라고 선언한다.
: WCC는 용공 및 게릴라 자금지원단체라는 허위 주장에 대하여-WCC 반대자들의 또 하나 비판은 WCC는 용공단체이며 공산게릴라에 자금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이 WCC에 가입하고 있으니 용공단체가 아니냐는 식이다. 사실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복음과 교회를 인간의 이념에 종속시킬 수 있는 행위이다. WCC의 기본입장은 ①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한다. ② 인간의 어떤 이념이나 정치체제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부여신 인권, 자유, 평화, 신앙의 자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책임적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WCC 창립총회부터 나타났다. 그 때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온대표들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 때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해서 안 되고 “어떤인간의 문명이나 이념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며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하며 기독교인은 어떤체제 속에 있더라도 책임적 사명을 다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WCC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그 교회가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더라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인다
- WCC를 용공단체로 낙인찍은 일은 미국의 극우반공주의자 칼 메킨타이어와 그가 이끄는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이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될 때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은 백인, 흑인, 유색인종을 철저히 분리하는 인종분리정책을 써왔다. WCC는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 인종차별은 단순한 인권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위배되는 신앙적 문제로 인식하고 ‘인종차별철폐운동’을 전개한다. 이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해방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미국의 백인보수세력과 유럽의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웁살라총회에서 주제연설을 하게 되어 있었으나 직전에 암살당했다. 또한 당시 아프리카 도처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도 과거 식민지 지배를 하던 서구의 보수세력에게는 크게 위험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WCC를 비롯하여 인종철폐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단체들을 용공세력으로, 그들이 지원하는 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매도했다. 남아공 백인정부를 대변하던 ‘아프리카 인스티튜트 뷸러틴’에 실린 ‘테러후원’이라는 글에는 테러후원단체가 망라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WCC뿐 아니라 UN, 아프리카일치기구(OAU), 아프리카교회협의회, 영국교회협의회, 심지어 미국연합장로교회까지 공산주의를 지원하는 테러후원세력으로 분류했다. 로데시아 반군 자금지원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것이 게릴라지원운동이라면 한국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지원도 모두 게릴라지원이 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교회는 세상이념이나 세상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안 된다 WCC는 동서가 이념으로 갈라져 있을 때 꾸준히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을 WCC에 참여시키며 세계교회와 교제하게 했다. 그 결과 1990년대 공산권이 해체되었을 때 교회가 그나마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고 러시아나 동구권 교회안에 세례희망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교회는 WCC를 용공이라 비난할 것이 아니라 WCC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에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던 1980년대에 북한에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데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WCC이기 때문이다. WCC의 교섭과 활동으로 북한에는1983년에 분단 후 처음으로 성경찬송 5천부가 인쇄되었고 1988년에는 평양봉수교회가 건립되었다. 1986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제네바에 초청하여 남북교회가 만나게 했고 이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세계로 불러내 세계교회와 교제케 했다. 교회는 월남했어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월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면서 에스겔 37장에 유다와 이스라엘, 남과 북을 통일시켰듯이 북한교회와 남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고 믿는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도운 것이 WCC이다.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지켜온 선교단체이다.
10. WCC는 기독교신앙에 굳게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도모한다.
: WCC는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이 근자에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가 WCC가 다원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WCC가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 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 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데 어떻게 기독교교리를 타종교의 교리와 섞는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WCC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랍 국가들처럼 다른 종교가 국교나 다수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기독교신앙으로 개종하는 개인이나 교회의 활동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들의 신앙과 교회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가 필요해서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이다. 3.1운동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독립선언을 선포한 예가 바로 민족공통의 문제를 위해 종교 간에 협력을 한 예이다. 9.11 테러 이후 종교가 국가나 문명 간의 갈등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 간의 협력의 필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 경우 협력을 할 뿐이지 결코 교리적 사안은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는데(요1:1) 기독교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유 안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영 역시 오순절 이전부터 역사와 창조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다면 이것이모든 종교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종교간의 대화 이면에는 이런 신학적 질문이 늘 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는 1961년 뉴델리 총회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개최된 국제선교대회가 발표한 「세계를 향한 부름」이란 성명서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신 생명의 빛이시다. 빛은 안 비추이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 간의 대화라기보다 선교선언이 아닌가? WCC가 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주로 인용되는 문서인 바아르문서 「종교적 다양성: 신학적 관점과 확언」에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종교 간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신앙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또 하나의 비판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구원이 온다고 한 것을 회개한다고 했다는 비판이다. ‘회개’란 말이 나온 문서는 1979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발표한 「다른 신앙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지침서」이다. 그러나 거기에 나오는 회개란 말은 종교개혁 정신의 회개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수용자란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회개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WCC는 결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 지침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증거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에 임하라.”고 거듭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를 다원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1. WCC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 정현경의 켄베라 총회주제 강연 비판에 대하여
- WCC 캔베라 총회에서 행한 정현경 교수의 주제강연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WCC총회에서도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정교회는 아주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발표는 WCC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교회 대표의 주제발표가 정통 삼위일체의 성령에 대한 성찰에 집중한 반면 정현경의 발표는 문화적 접근을 하였다. 정현경은 초혼제의 문화의식을 하면서 성경 속에 있는 인물과 인류역사 속에 부당하게 죽임당한 영들을 한 맺힌 영으로 보고 그들의 영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제발표의 본문에 해당하는 신학적 성찰에는 문제가 없다. 성령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계시며, 창조와 생명의 바람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영은 당신의 백성을 출애급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교회를 해방적 공동체로 시작하신 바로 그 영이시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라고 지적하고 인간중심주의, 이원론적 사고, 죽음의 문화에서 회개하고 생명중심주의, 상관성주의, 생명의 문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회개의 촉구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아멘"하고 마쳤다. 정현경의 주제발표 본말은 기독교성령론의 이해를 따르고 있고 도전부분에는 성령의 역사를 물신주의, 생태위기 등 인간과 지구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과 잘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본문 서두에는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 맺힌 영혼을 부르는 목록의 끝에 예수의 영도 열거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앞에 열거한 한 맺힌 영들과 동격이 아니다.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의 희생과 죽음은 만물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자신의 내어주심’이므로 한 맺힌 영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정교회 쪽에서 “개인의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을 성령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무속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한 점이다. 사실 이 점은 WCC가 종교간 대화 지침서에서 이미 경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WCC는 ‘성경을 번역할 때 번역하는 문화의 내용을 너무 차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문화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본질이 모호해 질 수 있음으로 주의하라’고 했다. 정현경이 취한 무속초혼형식은 바로 이 주의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이런 선을 넘은 예가 많다. 예를 들면 성탄절은 이제는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지만 원래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고 로마 태양신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예수님이란 의미로 고대기독교에서 채용을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중국문화전통에서 부르던 ‘상제(上帝)’란 개념을 채용했고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하나님을 부를 때 이슬람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 “알라”(Alla)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처럼 기독교는 다른 문화권과 만날 때 일정부분 서로 형식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늘 지켜야 한다. WCC는 이를 지키려고 늘 조심하고 있다. 정현경의 주제발표는 문화속에서 성령을 숙고해 보려는 한 개인의 입장이지 WCC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 개인적 영성순례행보는 전통적인 기독교인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보는 WCC와 무관하다.
12. WCC는 인간의 성(性) 전반에 대한 성찰을 한다.
: WCC가 동성애 지지 결의를 했다는 허위에 대하여
- WCC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에 가장 허망한 것이 동성애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WCC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어떤 공식적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WCC는 인간의 성(性) 문제를 50년 전부터 다루어왔다. 그러나 동성애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해 다루어왔다. WCC가 성 문제를 최초에 다룬 것은 제3차 총회(1961, 뉴델리)에서였다. 여기에서는 혼전경험, 성폭력, 축첩, 부적절한 관계, 단기혼인, 쉽게 하는 이혼, 종교가다른 사람, 혹은 교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 다문화결혼 등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졌다.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는 위의 문제에 덧붙여 피임, 산아제한, 가족계획, 낙태 등의 문제가 추가되었고 동성애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웁살라 총회는 성문제는 교회 안에서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문화와 문명에 따라 아주 다양한 관습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해보도록 권고하였다. 제6차 총회(1983, 뱅쿠버)와 제7차 총회(1991, 캔베라)에서는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간의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성, 성과 인간관계 등 문제가 토론되었다. 캔버라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교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고 민감한 문제이므로 여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제8차 총회(1998, 하라레)를 준비하면서는 아프리카 짐바브웨가 동성애자들을 체포한데 대한 인권적 차원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8차 총회를 기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연구를 성지남력(sexual orientation)차원에서 인간의 성(human sexuality) 전반에 대한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WCC가 동성애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성의 보편적 접근을 위해 취한 포괄적 장치인 셈이다. 이후 개인의 성윤리, 혼외정사, 유전자공학과 성, 에이즈, 콘돔사용문제, 성폭력, 심지어 난민촌에서 구호요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난민여성들의 성폭력 문제 등이 인권차원에서 제기되었다. WCC가 다룬 성 문제는 인간의 성 전반에 관련된 것이고 동성애 문제는 주로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고 있는 북미나 유럽에 의해 제기되는 현실이며 여기에 대한 남반구 교회는 대부분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WCC안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이다. 이렇게 박성원(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이형기(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님이 공동작성한 내용을 조목 조목 설명해 주고 이제 주변을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경고해 주었다.
그러나 조명옥 집사는 아직도 그 시디 만드는 일에 미련을 갖고 있어보였다.
10월 26일 토요일 새벽에 한통의 전화가 조명옥 집사로부터 걸려왔다. 메니저로부터, “조집사가 WCC에 참여하면 작곡과 작사를 못해주고 시디작업을 중단하겠다.”는 협박성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부당성을 말해주고 WCC는 세계 기독인의 축제로서 올림픽같은 모임이며, 천국잔치지 비판하는 소수 무리들의 말처럼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그들이 그렇게까지 한다면 주변정리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한주간 뒤에 있을 WCC 부산 벡스코 대회인 11월 2일 고리원전 공원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11월 3-5일 공연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매우 급박한 상황에 닥쳐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께서 이미 수년전에 훈련시켜 놓은 국악찬양 글로리아 선교단이 생각났다. 글로리아 국악찬양단 대원들로 충당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세계의 기독인 형제자매를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인데 주님이 어떤 길을 마련하셨겠지,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토용일 오후가 되어 다시 전화가 와서 아리라국악찬양 팀이 3-5일은 참여하고 1, 2일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주님께 기도하며 11월 2일 고리원전 앞에서 공연을 기획했다. 7분 공연을 하여야 하는데, 국악찬양 내용에 생명, 정의, 평화의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주님께서 미리 30분 공연을 준비하게 하셔서 7분으로 줄여 공연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게 대본에서 연결되도록 줄이면 되는 것이지만, 이번은 매우 고민스러운 작업이었다. 기도하면서 공연 내용을 1/4로 줄여야 했다. 그리고 탈핵과 생명의 마당 장소인 만큼, “핵없는 세상 만들어와, 핵없는 세상 만들라.”는 외침이 다시 작곡되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4명이 공연하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판소리의 유연성에 대한 은혜에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 소리는 말 그대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가락을 붙여서 부르는 오페라 같은 것으로 늘이고 줄이는 일이 가능했다.
11월 1일 오후 우리 4명은 부산으로 향했다. 초행 길이어서 무려 4시간 가량의 차를 타고, 예약된 호텔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고 공연 준비를 하는데, 기장 고리원전이 상당히 먼 거리였다. 거반 2시간 가량을 달려가 10시가 못되어 도착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10시 30분이 넘어 거의 11시가 되자 100여분의 외국인과 내국인이 몰려와 토론 장소에 모였다. 고리원전 정문 앞에 앉아 원전의 피해를 없애고 생명의 풍요로움을 위해 기도하며 성경판소리를 맛뵈기로 들려주는 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 7분의 시간을 주신 주최측의 배려에 감사했다. 김성득 집사를 배려하여 나와 같이 부산에 남기로 했지만, 기장에서 부산까지 다시 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김집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시 전주로 가자 했다. 토요일 이기에 다음날 주일 예배를 드려야 했다. 우리는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전주로 왔다. 아라리 국악찬양팀이 WCC를 반대하는 의견을 물리치고 합류하여 하나님께 끝까지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국악찬양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번에 전화해서 만약 한마디만 반대하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정리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조집사님께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다른 말씀은 하지 않고 부산에 가겠다고만 하신다. 얼마나 고마운지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11월 3일 각자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11월 4일 월요일 오전에 모여 부산을 향하여 8명이 출발하는데, 강목사님이 현금이 다 떨어져 후배 목사에게 광고비를 달라하자, 교회에는 아직 광고하지 못했고, 자신의 통장에 있는 현금 49만원을 보내겠다하여 오늘 기금이 되었다고 말한다. 주님께 기도하며 자금이 바닥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11월 4일 저녁밥을 먹고 부산 벡스코 광장을 찾아갔다. 시민문화행사가 4일밤 성대하게 벡스코 앞 사거리 모퉁이 집회장소에 수백명이 넘는 내외국인이 모여 핵없는 세상을 위한 집회를 하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아라리 팀과 우리 성경판소리 팀이 같이 움직였다. 성명서 발표와 고난의 현장 이야기가 있었고, 우리 팀이 공연하는 순서가 되었다 시간은 7분이다. 고리원전에서 했던 작곡대로 공연에 돌립했다. 정인순 명창이 항상 밝은 표정으로 순종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소리를 해준다. 아라리팀이 밝은 국악찬양으로 공연하고 내려오니, 김용복 총장님과 주변 사람들이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한다. 김총장님이 하신 말씀, “이 팀이 우리 문화재를 살렸다.”고 하신다. 매우 흥겹게 문화제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11월 5일 204호 마당 공연을 성공리에 감당해야, 성경판소리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계인의 천국잔치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4년 전인 2009년 도에 기도한 대로 WCC에 참여하는 성경판소리가 될 것이다. 주님의 큰 손길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낀다. 총무 강훈식 목사가 나의 귀에 조그마한 소리로 우리가 사용할 현금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주여! 어찌하오리까? 현금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고 팀의 먹거리가 해결되는데, 다 떨어졌다하오니 어서 현금을 보내주소서” 벡스코 204호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진행자 노혜민 목사가 찾아와 봉투를 건네주는데 30만원이란다. 가뭄에 단비 만나듯 현금문제가 해결되어 매우 기쁜 마음으로, 대원들이 너무 수고했고 이제 공연이 마쳤으니 위로 차, 회한사발 먹고 가는것이 좋겠다해서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갔다. 한결 마음이 가볍고 기쁘다. 부두가에 북작거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횟집에 들어가 부산 포구가 환하게 보이는 곳에서 회를 먹으니 기쁨이 가득하고 은혜가 충만하다.
제주도에서 부산벡스코 WCC 공연까지 주의 영이 인도하신 손길을 따라 왔다가 이제 주님의 은혜의 손길에 붙들려 전주로 향하여 돌아왔다. WCC 부산벡스코와 제주도 공연 4차례의 여행이, 제주도세계평화포럼 9사람 1박2일과 부산 고리원전 앞 공연 4사람 1박2일, 그리고 8사람 1박2일의 두차례 공연에 소요된 경비는 계산해 보니 모두 1,100만원이 들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보살핌 속에 두 달간의 성경판소리 민족문화 예술적 소리가 세계의 기독인과 함께 천국잔치에 초대되어, 이렇게 주님의 은혜 가운데 천국축제 공연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성삼위 일체 하나님께 할렐루야 감사하며 제주도를 거쳐 부산 벡스코까지 무사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축복에 감사를 드린다.
전주노회 사회선교 담당
성경판소리꾼 최덕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