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으로 자연의 풍광을 한껏 끌어들이려는 욕심에 투명한 통 유리창을 많이 냈다. 투명 유
리들이 달린 지 일 년이 넘도록 손을 대지 못했다.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 거기까진 눈
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좀 여유가 생겼는지 바깥 풍경을 가리는 유리의 흙먼지
와 얼룩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부터 하루에 두 세장씩 닦아보리라 생각하고 베란다로 나섰
다.
마침 고모가 읍내에서 사온 유리 닦개가 있었다.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긴 플라스틱 막대
에 한쪽엔 스펀지가 다른 한 쪽엔 고무로 만든 날이 부착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이 도구를
쓰면 높은 곳까지 닦을 수 있을 것이었다.
먼저 스펀지에 물을 흠뻑 적셔 유리에 대고 박박 문질렀다. 부옇게 앉아있던 흙먼지와 새
나 벌레들의 똥이 말갛게 씻겨나갔다. 맑은 물에 스펀지를 헹구어 다시 문지르니 유리는 휘
익휘익 유쾌한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소나기 내린 뒤끝처럼 물기를 초롱초롱 머금은 유리
는 눈에 눈물이 고인 청초한 소녀를 연상시켰다.
문득 유리창 닦는 일이나 마음 닦는 일이나 매 한 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흙먼지
와 굵직한 얼룩이 묻은 유리창은 먼저 물로 씻어내야 한다. 그와 같이 원한과 분노, 미움과
같은 굵직한 마음의 장애들은 눈물로 씻어 내리게 된다.
이 때 좋은 도구가 있으면 닦는 일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체험과 인내심을 겸비한
상담자나 벗, 좋은 책, 심리 혹은 영적 프로그램 등은 마음을 씻는데 좋은 도구가 되어준
다.
기억을 불러내어 그때의 감정을 대면하고, 그것과 관련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상상력
을 발휘하여 각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엔 자기연민에서 나오는
눈물이 있고, 타인에 대한 연민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 뒤따른다. 각각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제서야 참회의 눈물이 쏟아진다.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가슴은 말갛게 씻긴다. 신
앙생활을 하거나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미어지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보아야 한다.
이슬 같은 물기가 방울방울 맺혀 있는 유리창은 보기가 좋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산과 들
과 바다도 어쩐지 더욱 분위기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가진 않을 것이었다. 물방
울을 그대로 두면 그것도 지저분한 얼룩이 된다. 유리 닦개의 한 쪽에 달린 고무날을 창문
에 바짝 대고 위에서 아래로 당기며 물기를 제거해 나갔다. 그런 다음 마른 걸레로 닦아냈
다. 물기가 만들어낸 무늬들이 지워지며 유리는 투명해졌다. 바닥과 계단 공사를 할 때 튀었
던 시멘트 자국들은 손톱으로 긁어내고 다시 걸레로 문지르니 사라졌다. 아주 미세한 더러움
도 있지만 한 번에 다 없앨 수는 없는 일. 두고두고 조금씩 지워나가기로 했다.
마음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나 기억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릴 수는 없다. 그
눈물이 오래 지나면 힘들여 닦아야 하는 얼룩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이어 습관이
된 감정들을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감정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 냉정한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기연민의 눈물을 닦고 보송보송하게 마른 건조한 눈으로
자기가 가진 감정과 생각의 습관, 말과 행위의 습관을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라야 진정
자신이 원하는 자아를 만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한꺼번에 해내고 이루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조금씩 보이는 것만큼만
바꾸어나가면서 그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고 다시 발견하고, 그런 자기의 모습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아가야 한다. 조금씩조금씩 투명해지는 시야를 느끼는 것이 보람이며 행복이다.
그것이 우리네 삶의 참맛이 아닐까.
유리창 너머로 하늘이 푸르다. 종려나무 잎을 흔드는 바람마저 살아서 이편에 선 이의 가
슴 속에 살랑거린다. 내일은 또 두 세장의 유리를 닦을 것이다.
첫댓글 유리창을 닦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는 글.
...........!
마음의 창을 닦는 일은 자신과의 철저한 싸음이며 확신!!! 좋은글 모아서 책으로 펴 내면 어떨까?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이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