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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중품중생을 다녀왔구나“
법륜(장수 팔성사 주지)
1) 저도 극락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나이 스무 살 때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극락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비록 꿈에 잠깐 다녀온 이야기지만 5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뚜렷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잘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 세상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대부분 이상하고 허망한 이야기는 안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누가 「극락세계 유람기」라는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었는데, 읽어보니 중국에서 극락을 다녀오셨다는 관정 스님의 이야길 쓴 것이다. 나는 내용을 읽어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경험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어느 날 도반인 학림사 수환 스님이 전화를 했다. 내일 중국에서 관정 큰스님이 오셔서 법회를 하니 친견하라는 전갈이었다. 다음날 일찍 나는 조치원으로 쫓아갔다. 그러나 도착할 때 관정 큰스님은 이미 법회를 마치고 떠난 뒤였다. 어디로 가셨느냐고 물었더니 거제 오송암 스님이 모시고 왔다가 그 절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다음 날 바로 거제도 오송암으로 달려갔다. 오송암에 이르러 보니 주지 스님이 법당에서 신도들과 법회를 하고 계셨고, 관정 스님은 통역과 단 둘이 쉬고 계셨다.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통역하시는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스님과 단 둘이 나의 극락 다녀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스님 저도 잠깐이기는 하지만 극락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어떤 경계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스님은 극락의 여러 곳을 다 다녀오셨으니 저의 경험에 대해 어떤 경계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녀 온 이야기를 그대로 자세히 해 보아라.“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말씀드렸다. 비록 20살 때의 이야기지만 마음속에 늘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거침없이 이야기했다(자세한 이야기는 이글 마지막 참조). 이야기도 길고 통역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지만 스님은 끝까지 듣고 계시다가 마지막에 말씀하셨다.
”네가 중품중생을 다녀왔구나. 그 세계는 넓은 평야가 이어지며 상품에 가면 집이 있다. 하품세계는 연꽃이 덜 피어 있는데 업을 가지고 간 사람이 연꽃에 남아 있다가 연꽃 밖으로 나가면 극락사람이 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을 느꼈다. 나는 일찍이 경험한 이 이야기를 늘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서 그 경계에 대한 확실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생생한 이야기이고 그 많은 세월 나를 지탱해주는 부처님의 가피였지만 누구에게 이야기하면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들었기 때문에 선뜻 내놓기 어려운 법담이었다. 그런데 관정 스님은 그것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아울러 그 경계에 대한 확실한 주소를 짚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 이야기는 사바세계에서 진행되었지만 마치 극락의 중품중생에서 일어나는 한 편의 그림 같은 대화였다. 주지 스님에게 미처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두 시간 가까이 큰스님을 독대한 것도 아미타부처님의 가피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이야기를 통역하던 강 거사님이 스님에게 말씀 드렸다.
”큰스님, 이 스님은 절에 온지 1년도 안된 어린 나이에도 벌써 극락을 구경하고 왔는데, 왜 저는 7년이나 큰스님을 모시고 다니며 통역도 하고 공을 들였는데 한 번도 극락구경을 안 시켜 주십니까?“
”너와 이 스님과는 전생의 업이 다른데 어떻게 큰스님을 따라가느냐. 너는 100년을 따라다녀도 안 될 수 있다.“
큰스님이라고 하지만 위엄을 보이거나 딱딱하게 어려운 법문을 하시지 않고 마치 가까운 이웃이나 벗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대해주어 편했다. 큰 스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어 자신감이 생겼다.
2) 팔성사 법회
그 뒤 그 때 통역을 했던 강거사가 우리 절을 한 번 찾아왔다. 강거사는 연변에서 농업대학을 나와 오랫동안 농업에 관련된 공무원으로 일할 때 장수의 사과 생산기법을 배워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송암 스님에게도 부탁했지만 또 다시 강거사에게 다음에 관정 스님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우리 절에서도 한 번 법회에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2004년 10월 9일 우리 절에서도 관정 큰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하게 되었다. 당시 본사인 금산사 홈페이지에 소식을 알리고 극락을 다녀오신 큰스님이 법문을 하신다는 것을 신도들과 주위에 알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독려하였다. 그날은 또 음력 8월 27일로 우리 스님 기일이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그날 법회에서 관정 큰스님은 극락 다녀 온 이야기와 극락을 가려면 어떻게 염불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고 정토선 염불을 직접 들려주셨다. 법회가 끝나고 하룻밤 주무시고 난 뒤 강원도 영월로 가셨다.
2004년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81살이신 관정 큰스님은 연세에 비해서는 그렇게 연로해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매일 이어진 벅찬 일정 때문인지 매우 지쳐있는 표정이셨다. 그 연세에도 당신이 중국에서 다시 지은 17개 절 가운데 하나에서 대웅전이 불에 타 불사를 하신다고 하신다. 나도 불사를 했지만 불사를 할 때 자금조달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으니 우리 절에 오실 때가 한국에 마지막으로 오셨고 3년 뒤 입적하셨다고 한다. 늦게나마 큰스님을 만나 나의 극락여행을 증명해 주시는 가피를 입어 정말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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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촉촉히 겨울비가 내리는 날
모쪼록 무탈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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