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농부였던 슈호프가 강제수용소에 갇힌다. 독일과 전투 중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는데, 그 일이 조국을 배신한 간첩으로 오인 받아 벌써 8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같은 막사에는 고위 관직자 출신 페추코프도 있다. 그는 풍요롭게 살다가 이곳에 갇혔기 때문에 항상 허기에 시달린다. 감독 출신인 체자리는 자신의 영화에 공산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나타내었다가 이곳에 끌려왔다.
그 외 여러 인물들이 소련 강제수용소 운용 실체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실제로 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방하는 표현이 섞인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체포되어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 동안 카자흐스탄 북부 카라간다 수용소에 수감되었었다. 그 경험이 실감나게 소설로 복원된 것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1962년 11월 소련에서 출판되었다. 공산체제의 비인간적 면모를 고발한 글이 소련에서 발표되었다니, 조금 놀라운 일이다. 물론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의 검열을 거쳤다. 그렇다면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닌가!
2008년 8월 3일 세상을 떠나는 솔제니친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원고를 소련 문학지에 보낸 때는 1962년이었다. 당시는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집권한 이후여서 소련 사회 전체가 스탈린 체제에서 발생한 부조리를 비판하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정치 상황과 작품 발표 시기가 맞물린 소설이 있다. 최인훈의 〈광장〉이다. 철학과 학생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가 이북에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치안당국 취조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이명준은 그 후 북한으로 넘어가고, 국립극장 무용수 은혜를 알게 된다.
6·25전쟁 때 북한군과 함께 내려온 이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은혜를 만난다. 그는 은혜에게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 명준은 포로로 잡히고 휴전이 성립된다. 포로수용소는 그에게 남한, 북한, 중립국 중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할 자유를 준다.
남한은 개인의 공간 밀실이 타락했고, 북한은 대중의 공간 광장이 타락했다는 것이 이명준의 판단이다. 두 곳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이명준은 중립국을 선택한다. 하지만 배에 실려 중립국으로 가는 도중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이런 소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최인훈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1960년 4월혁명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말이다.
작가 최인훈은 〈광장〉 발표 후 58년이 흐른 2018년 타계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광장〉을 개작하기는 했지만, ‘광장 2’라고 할 만한 소설을 연보에 남기지는 않았다.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보다 더 아름다운 공화국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