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사설 시조(辭說時調)
개념:시조 3장 중에서 초,종장은 대체로 엇시조의 중장(40자 이내)의 자수(字數)와 일치하고, 중장은 그 자수가 제한 없이 길어진 시조이다.
-사설 시조는 17세기에 이르러 나타났으리라고 생각되며, 18세기에 이르러 크게 성행했다.
-사설 시조를 이룩한 주동적인 인물은 평민 가객(平民歌客)들이었다. 이 시기에 대두(擡頭)하던 평민 문학의 일환으로서, 산문 정신과 서민 의식을 배경으로 한 사설 시조는 시조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사설 시조는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낡은 허울을 깨뜨리고, 새 생명을 지니고 등장했다. 이와 같이 지난날의 영탄이나 서경의 경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폭로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암유(暗喩)로써 그 표현 기교를 바꾸어서 애정,거래(去來),수탈,패륜(悖倫),육감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시대의 충의에 집착된 주제를 뒤덮었다.
1. 형식면에서는
① 사설조로 길어지고,
② 가사투(歌辭套) 민요풍(民謠風)이 혼입(混入)하며
③ 대화(對話)가 많이 쓰이고,
④ 새로운 종장 문구를 개척하였다.
2. 내용면에서는
① 구체적,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가 도입되고,
② 강렬한 애정과 육욕(肉慾)이 표현되며,
③ 어휘(語彙), 재담(才談), 욕설이 삽입되고,
④ 거리낌 없는 자기 폭로, 사회 비판 등이 이루어졌다.
3. 사설 시조의 미의식
-사설 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형을 강조하는 평시조와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설 시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웃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중세적 고정 관념을 거리낌없이 추락시키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 등이 그 주요 내용을 이룬다.
-남녀 간의 애정과 기다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대개는 직설적인 언어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종래의 관습화 된 미의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세속적 모습과 갈등을 시의 세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사설 시조는 문학의 관심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4. 사설시조의 형성
- 영조,정조 이후 서민 계급이 자기네들의 생활 감정을 담고자 종래의 양반 계급이 써 오던 평시조의 형태를 개조(改造)한 것이다.
5. 사설시조의 주제
① 구체적이고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의 도입
② 강렬한 애정과 내용의 표출
③ 언어유희,재담(才談),욕설의 도입
④ 기탄(忌憚)없는 비유를 통한 사회
⑤ 비개성적 사물의 유형적 배열을 통한 감정의 발산
예문
장진주사
鄭 澈
한盞 먹세그녀 또 한盞 먹세그녀 곶 것거 算 노코 無盡無盡 먹세그녀
이몸이 죽은 후면 지계우혜 거적더퍼 줄이여 메여 가나 流蘇寶帳에 萬人이 울어예나 어욱새 속새 덥개 나모 白楊속에 가기 곳 가면 누른해 흰달 가는 비 굴근 눈 소소리바람 불제 뉘한盞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우헤 잰납이 파람 불제야 뉘우친들 어떠리
구룡폭포
조 운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 만폭동 다 그만 두고 구름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 끝에 이슬되어 그슬구슬 맺혔다가 연주담(蓮珠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해일
윤 금 초
때린다, 부…부순다, 세상 한 켠 무너 버린다.
바람도 바다에 들면 울음 우는 짐승 되나. 검푸른 물 갈기 세워 포효하는 짐승이 되나. 뜬금없이 밀어닥친 집채만한 파도, 파도…. 해안선 물들였던 지난 철 허장성세 재갈매기 날개짓 소리 환청으로 들려오고, 우리 더불어 한 바다 이루자던 동해 바다 문무대왕 수중릉 대왕암이 하는 말도, 몇 문단 밑줄 친 언어 다 거품 되어 스러진다. 미완성 내 그림자 물거품 되어 쓰러진다. 난파의 세간 살이 부러진 창검처럼 이에 저에 떠밀리는 먹빛 아찔한 이 하루, 천길 궁륭같은 푸른 물 속 한 걸음 헛디딘 벼랑길 이 하루가 멀고 험한 파랑에 싸여 자맥질한다, 자맥질한다.
저 바다 들끓는 풍랑 어느 결에 잠재울까.
동강의 사연(1)
전선구
어름치 쏘가리도 시끄러워 이사갔다
너 진작 아름다운 가슴을 가졌는데 풍만한 엉덩이는 생명을 출산 하고 젖 먹여 보듬고 길러 묵묵히도 살았다 청산녹수 때 못 만나 하루하루 병이 깊어 시름 속에 살아가고 그나마 허리 잘려서 죽어 갈지 모른다네 너 요즘 참 유명하다. 신문에 현수막에 심심찮게 텔레비젼에 출연하고 인기가 좋더구나 뜬다 떠. 내사야 아득한 예처럼 유명하지 않으면 동강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 많았으면 ....
서러운 아라리 가락 흘러흘러 떠난 자리.
동강의 사연(2)
비오리 원앙새도 삶의 터전 다 잃었다.
태백산 내린 물이 한수로 흘러들고 굽이굽이 빼어난 절경 옥수천리 유장터니 어이다 입에 올라 이지경이 되었는고 글쟁이 글을 쓰 고 사진쟁이 사진 찍어 돌려대고 선전한다 환경보호 명목아래 별의 별 놈 다 모인다. 차에다 배를 싣고 졸부들은 몰려와서 세월 안은 조약돌도 마구마구 건져 간다. 그래도 너는 운이 턴다 운이 터 4.13 총선 덕에 명맥은 잇는다더라. 믿어도 될까요 당신들 말을.......
병이든 쉬리 한 마리 한심하게 바라본다.
동강의 사연(3)
동강아, 아무래도 무사하지 못하게다
말장난하는 자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술수에 능한 사람 뭐가 무서우랴. 환경보호 중히 여겨 댐 건설 백지화라 총선 전 발표 터니 총선도 지나가고 얻을 표도 다 얻었다 한 달이 채 못되어 도마 위에 올랐구나 발전 댐은 무엇이고 홍수 댐은 무엇인가, 환경이 파괴되긴 마찬가지 아니겠나 국가의 천년대계 필요하면 건설하고 다른 방책 있으면 그만 둘일, 조삼모사 국가정책 불신 받기 적당하다. 이제는 눈감고 아웅, 그만하면 좋으련만...
옥수천리 금수강산 수몰되어 병이 든다.
동강의 사연(4)
댐 건설 정책 두고 민심만 흉흉하다
십 팔 미터 낮춘다고 환경 친화 댐이 될까 그 많은 국민 혈세, 다목적 그만두고 한가지 목적이라, 국가에 이익 될까 수몰 예정 지역의 별의 별 이야기들 정책도 문제지만 지역 민도 문제 많아 보상가 높이려고 유실수도 급히 심고 가건물 사설도로 마구잡이 급조 하니 빚지고 낭패하여 몰골이 말 아닐세. 참으로 난감하여라, 이 빚을 어이할까 재산은 압류되고 경매의 위협 속에 목숨도 끊는다는 흉흉한 이야기들, 은근히 수몰되기를 바라고 부추기는 무리도 있다는데.....
어쩔까 슬픈 이야기 어이 풀면 좋을까.
(二)[옴니버스 시조]
한 편의 連作時調 속에 앞에서 말한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混作 형태를 말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시도된 새로운 시조 형태이다.
1.옴니버스 시조의 형태
윤금초의 장편시조 [청맹과니 노래]가 그 시발점이며, 근래 패기에 찬 젊은 시조시인들이 다투어 試圖,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대 사회의 複雜多技한 문명의 흐름을 포착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에 적응해가는 인간들의 사고와 심리의 重層構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 영역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286시대, 386시대는 이미 과거 역사로 기록되고 있으므로, 이제 [새로운 세기에 부응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시나 소설을 구획 짓는 장르 개념이 차츰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편서사시조 같은 스케일이 웅장하고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變奏]를 시도해야 한다.
예문
송광룡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윤금초 [주몽의 하늘], [백악기 여행]
전선구 [찬란한 소멸]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송광룡
1
돌꽃 피는 것 보러
돌곶이 마을 갔었다.
길은 굽이 돌면 또 한 굽이 숨어들고 산은 올라서면 또 첩첩 산이었다. 지칠대로 지쳐 돌아서려 했을 때 눈 앞에 나타난 가랑잎 같은 마을들, 무엇이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을 불러냈나. 살며시 내려가 보니 무덤처럼 고요했다. 가끔 바람이 옥수수 붉은 수염을 흔들 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자취 묘연했다.
여러 날 헤매이다가
텅 빈 집처럼 허물어졌다.
2
화르르 타오르는 내 몸엔 열꽃이 돋고
세상은 천길 쑥구렁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누군가 눈 좀 뜨라고 내 이마를 짚었다.
나, 그 서늘함에 화들짝 깨어났다
눈 뜬 돌들이 지천으로 가득했다
온전히 제 안을 향한 환한 꽃밭이었다.
주몽의 하늘
윤 금 초
그리움도 한 시름도 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흰 適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왕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 오고 막다른 벼랑에 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 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 천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四神圖 布置하는, 광활한 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놓고.
백악기 여행
-우항리 공룡 발자국 화석에 관한 단상
윤 금 초
물새떼 날개짓에는 하늘색 묻어난다
중생대 큰고니도, 갈색 부리 익룡들도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 날자 날자꾸나.
장막 걷듯 펼쳐지는 광막한 저 백악기 공원.
물벼룩 물장구치는 안개 자욱한 호숫가, 켜켜이 쌓아올린 색종이 뭉치 같은 시루떡 암석층 저만큼 둘러놓고 배꼽 다 들어낸 은빛 비늘 아기공룡 물끼 흥건한 늪지 둑방길 내달릴 때 웃자란 억새풀 뒤척이고 뒤척이고….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잠든 세월 걷어내고 두 활개 훨훨 치는 비상의 채비한다.
1억년 떠돌던 시간, 거기 머문 자리에서.
한반도 호령하던 그 공룡 어디 갔는가.
지축 뒤흔드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
앞 산도 들었다 놓듯 우짖어라, 불의 울음.
저물면서 더 붉게 타는 저녁놀, 놀빛 바다.
우툴두툴 철갑 두른 폭군 도마뱀 왕인가. 파충류도 아닌 것이, 도롱뇽도 아닌 것이, 초식성 입맛 다시며 발 구른다 세찬 파도 밀고 온다. 검은 색조 띤 진동층 지질 아스라한 그곳, 결 고운 화산재·달무리·해조음 뒤섞이고 뒤섞여서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별로 뜬 불가사리도 규화목(硅化木) 튼실한 줄기도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깨어나라, 깨어나라.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잠든 세월 걷어내고 이 강물 저 강물 다 휩쓸어 물보라 치듯 물보라 치듯, 하늘색 풀어내는 힘찬 저 날개짓!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 날자 날자꾸나.
찬란한 소멸
전 선 구
어둠이 밀려온다 파도를 타고 온다
달집이 타오를 때 불길 속에 뜨는 달
가슴도 불이 붙어서 잠든 혼이 깨어난다.(평시조)
더럽힌 손을 씻고 무심으로 손 모은다 화산처럼 솟구치며 염염히 타는 불꽃 때묻은 허물 벗어던져 넣고 또 넣는다 저미듯 아픈 상처 벗기고 또 벗기고 딱지처럼 달라붙은 미련도 때어낸다 원망도 깎아내어 서럽도록 사르고 집착으로 눈먼 사랑도 끊어낸다 병든 마음 토해내어 한숨 마저 태워라 아아 진리는 무엇이며 소망은 무엇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사르는가 태우고 날리어라 회색 빛 그림자도.... 찢기듯 가슴 조이던 정도 한도 태워라.(사설시조)
순수를 바라본다 청정을 바라본다
불꽃이 충천할 때 둥그런 정월 대보름 달 가슴에 가득해라
마음은 찬란한 불꽃 뜨건 눈물 흘린다.(엇시조)
파도처럼 뛰는 가슴 횃불같이 타오른다 치솟는 불길 속에 생명을 인식하고 일렁이며 고함치는 소멸의 향연에서 오히려 얻을 수 있는 새 생명을 찬미한다 산이여 강이여 바다여 하늘이여 너 곧 나 이고 내 곧 네 인 것을 순수한 대자연에 일체 되는 엄숙함 수많은 얼굴 속에 화평이 깃들인다 화 평의 얼굴에는 장엄이 가득해라 오오 장엄한 적막 무상을 깨침이여 무위로 돌아가는 황홀한 영혼... 사무쳐 충천하여라 무상이여 무위여.(사설시조)
덧없는 삶 속에 무엇을 쫓았던가
찬란히 소멸하는 달집을 바라보며
밝은 달 한 아람 안고 노정기를 적는다.(평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