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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글창제의 실질적 주역 "신미대사 김수성"
한글창제과정과 신미대사 이순신장군
2009/03/05 00:48
http://blog.naver.com/crimbbang/10043520625
★★★한글의 기원(퍼옴)
*목차:1.범어와 한글의 유사성
2.파스파문자와 한글의 유사성
3.티벳문자와 한글의 유사성
4.한글창제의 실질적 주역 "신미대사 김수성"
{{2}}범어(산스크리트어)와 한글
차례
1. 서론
2. 한글 자음과 데와나가리의 유사성
2.1 한글과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체계
2.2 한글과 산스크리트 자음의 유사성
3. 한글 모음과 데와나가리의 유사성
4. 결론
1. 서론
3년 전에 지금은 사어가 된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면서 발견한 것인데, 산스크리트어에서 우리말처럼 동사가 뒤에 오는 등 다른 언어와 달리 한글 문법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가끔 산스크리어트어 문자인 데와나가리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곤 했다, 그러나, 별로 유사점을 찾지 못 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데와나가리 문자를 반시계방향으로 90도 돌려보았더니 바로 한글 자음이 보였다.
너무 기뻐서 이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자료도 약간 수집했다. 그 해 한글날까지 다큐멘터리를 완성하여 방송하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 듯했다. 그러나, 한글의 창제 기원에 대한 문헌도 거의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문 자료를 읽을 수 있는 자신도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한국인 대다수의 가슴 속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의 문화로 한글을 들 것이다. 많은 서양인 석학들도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알파벳이자 가장 과학적인 필기 시스템이라고 극찬한다. 특히, 천지인 삼재를 표시한 단 세 개 버튼만 사용하여 자음과 모음을 쓸 수 있는 한글은 IT 시대에 들어서 어느 언어보다 더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한류의 영향도 크지만,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배우기 쉽게 쓰기 쉬운 한글이 국제어가 되지 못 하고, 여러 언어를 짬뽕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저분해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복잡한 영어가 국제어가 되었다는 것은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불행한 사태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고유 문자가 없는 언어에 한글을 사용하게 하자는 한글 국제언어화 시도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한글의 창제 기원은 훈민정음언해본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듯하다. 훈민정음언해본에 따라 한글 자음은 발음할 때 혀나 입술 등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땄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자음이 발음 기관에서 소리나는 위치에 따라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산스크리트 문자를 본딴 한글의 모양이 발음 기관에서 따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것이 한글의 독창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 한다.
아마 이러한 한글 창제 당시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학자들이 훈민정음언해본이 나온 직후부터 한글이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했고 그후에도 많은 쟁쟁한 학자들이 주장하였지만,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별로 정설로 받아들이는 거 같지는 않다.
최근에 한글 자모의 기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한 김봉태 목사에 의해 2권의 책으로 출판된 바 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법보 신문에서도 한글의 기원이 산스크리트어와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편 기사가 몇 번 나오고 학계에서도 발표한 걸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별로 반응하는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한글의 기원이 산스크리트어라는 것을 갈수록 확신하고 있다. 여기에 이에 대한 근거와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참고로 여기서 잠깐 역사적으로 범자(산스크리트 문자) 기원설을 들어본다. 다른 설은 주장하는 사람의 수도 범자설에 비해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설의 주장에 근거가 별로 없어 보이고 번쇄하기만 하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판단은 네티즌 여러분들에게 맡길 뿐이다.
1.1 범자 기원설
범자기원설은 훈민정음이 범자(산스크리트 문자)의 글자체를 본받았다는 의견으로 역사적으로 쟁쟁한 학자들이 이를 주장하였다. 그 주장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을 들어보자. 성현(1439-1504)은 『용제총화』제 7권에서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 들에게 명령하여 언문을 짓게 하니 초 종성이 8자,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글 자체는 범자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며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語音문자로써 표기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막힘 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라고 하여 곧 글 자체를 범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최초로 말하였다.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우리 나라 언어는 글자모양이 전적으로 범자를 본떴다(我國諺書字樣篆倣梵字)라고 하여 역시 범자 기원설을 주장했다. 황윤석(1729-1791)의 『韻學本源』에도 “우리 훈민정음의 淵源은 대저 여기에 근본 하였으되, 결국 범자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1932년간)에서 언문 글자법이 원래 범자에 근원한 것임을 말하고 범자와 언문글자의 꼴과 소리가 서로 비슷한 것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이기도 하였다.
외국인으로는 호레이스 언더우드가 '한국은 그 글자에서 만큼은 단연코 중국 문자와 비교하여 독창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 한글은 14개의 자음과 10개의 모음을 합하여 스물네 개로 구성된 자모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 글자들은 그 생김새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익힐 수 있다. 언어 학자들은 한글이 세계에서 두번 째로 뛰어난 문자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아마도 기원은 산스크리트어에 근거한 문자라고 생각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金澤廣三郞 박사는 "한글은 결코 세종 대왕의 때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불교가 성한 고려 시대에 이미 승려의 손으로 생각한 것인데, 그 자형의 벌림이 함께 범자를 모방하여 된 것"이라 하였다.
2. 한글 자음과 데와나가리의 유사성
산스크리트어를 표시하는 문자인 데와나가리의 자음 모양과 체계는 아래 그림과 같다.
그림 1. 데와나가리 문자의 자음
2.1 한글과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체계
그림 1에서 보듯이 산스크리트어 자음은 한글의 자음 체계와 아주 유사해 보인다.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한글의 자음은 아음(어금닛소리), 치음(잇소리), 설음(혓소리), 순음(입술소리)이라는 네 가지로 나누어지고(그림 2 참조), 각 음에 대해 전청음, 차청음, 전탁음, 불청불탁음이라는 네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그림 2. 한글의 자음 체계
이와 유사하게 산스크리트어도 그림 3에서 보듯이 연구개음, 구개음, 반전음, 치음, 순음이라는 다섯 가지로 나누어지고, 그 각 음에 대해 무성 비기음, 무성 기음, 유성 비기음, 유성 기음, 비음이라는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연구개음은 한글의 아음과, 구개음은 치음과, 치음은 설음과 거의 유사하고, 순음은 한글에서도 똑 같이 순음이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반전음은 한글에 해당 문자가 없다는 점이 가장 틀린 점이다.
그림 3.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체계
한글과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체계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체계는 일본의 가나의 자음 체계와도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분명히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강하게 주고 받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물론 인도 산스크리트어에서 한글에 영향을 주었고, 한글에서 일본어, 또는 인도 산스크리트어에서 직접 일본어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자음 체계를 한글에 도입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세종 대에 한글을 연구하기 위해 성삼문 등(?)은 중국 음운 학자 황모모(?)를 만나러 요동에 십수 차례 간 것은 사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한글의 음운 체계는 분명히 한자의 음운 체계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자의 음운 연구와 체계도 중국 자체 내에서 발달한 것이 아니라, 불교 전래의 영향으로 주로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또한 바꿀 수 없는 역사적인 기록이다(사서의 근거는 나중에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따라서, 한글의 음운 체계는 중국의 음운 연구와 체계를 중간 과정으로 거쳐서
산스크리트 음운 체계의 영향 하에 이루어진 것은 추측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2 한글과 산스크리트어 자음의 유사성
그림 1.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한글의 자음은 산스크리트어의 데와나가리('신의 문자'라는 뜻)의 자음 전체를 따온 것이 아니라 일부만 따왔다. 데와나가리의 자음 체계에서 윗 그림의 문자 전체가 자음인 것은 아니고 자음+모음 ‘아’의 형태이다. 예를 들어, 그림 1의 첫 번째 행, 세 번째 열에 있는 ‘(가)’는 자음 'ㄱ' + 모음 'ㅏ'의 형태이다. 여기서 다른 자음을 보면 모두 ‘’ 부분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 부분이 한글의 모음 ‘ㅏ’에 해당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데와나가리 ‘(가)’에서 순수한 자음‘ㄱ’에 해당하는 부분은 ‘’ 부분이다.
한글의 첫 번째 자음 ‘ㄱ’은 데와나가리 '(가)'에서 본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을 뺀 순수한 자음 부분은 ''가 된다. 언뜻 이 자음 부분만 보면 'ㄱ'과 달라보이지만, 이것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만 돌려서 ''으로 만들면, 한글의 자음 'ㄱ'과 똑 같은 모양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한글의 모음 ‘ㅏ’에 해당하는 ‘’ 부분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서''로 만들면 바로 한글의 첫 모음 ‘ㅏ’와 거의 유사한 모양이 됨을 알 수 있다. 한글 모음 체계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글의 두 번째 자음 'ㄴ'는 데와나가리 '(나)'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 부분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만 돌리면 한글의 'ㄴ'과 똑 같은 모양이 된다.
한글의 세 번째 자음 'ㄷ'는 데와나가리 '(다)'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것은 돌리지 않아도 한글의 'ㄷ'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한글의 네 번째 자음 'ㄹ'는 데와나가리 '(라)'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 부분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만 돌리면 한글의 'ㄹ'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한글의 다섯 번째 자음 'ㅁ'는 데와나가리 '(마)'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것은 'ㄴ'과 헷갈리므로 의 전체적인 모양에서 'ㅁ'을 딴 것같다.
한글의 여섯 번째 자음 'ㅂ'는 데와나가리 '(ㅂ)'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 부분도 반시계 방향으로 45도만 돌리면 한글의 'ㅂ'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한글의 일곱 번째 자음 'ㅅ'은 데와나가리 '(사)'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것은 한글의 'ㅅ'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한글의 여덟 번째 자음 'o'도 데와나가리에서 딴 것인데, 데와나가리의 자음이나 모음에서 딴 것이 아니라 데와나가리 숫자 0에서 딴 것이다(그림 4 참조). 이 숫자 0은 현대의 숫자와 거의 같은 모양이다. 데와나가리 숫자 0은 불교도라면 잘 알고 있듯이 나가르주나(龍樹)의 공(空)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공 사상에서 나온 숫자 0은 중세에 서양으로 전파되어 상업을 발전시키고 근대의 수학을 형성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한글의 자음 'o'는 음가가 없으므로 공사상에서 나온 데와나가리 숫자 0을 그대로 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4. 산스크리트 숫자와 그 사용례
한글의 아홉 번째 자음 'ㅈ'은 데와나가리 '(자)'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된다. 이것도 한글의 'ㅈ'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한글의 열 번째 자음 'ㅊ'은 'ㅈ'와 같은 치음(齒音)이므로 'ㅈ' 위에 한 획만 더 그어 매우 간략하게 표시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글의 열한 번째 자음 'ㅋ'도 앞의 'ㄱ'과 같은 아음(牙音)이므로, 'ㄱ'에 한 획만 추가하여 표시한 것이다.
한글의 열두 번째 자음 'ㅌ'도 앞의 'ㄷ'과 같은 설음(舌音)이므로, 'ㄷ'에 한 획만 추가한 것이다.
한글의 열세 번째 자음 'ㅍ'은 앞의 'ㅁ'과 같은 순음(脣音)이므로, 'ㅁ'에서 아래와 위의 가로 선을 길게 늘려 표시한 것이다.
한글의 열네 번째 자음 'ㅎ'은 데와나가리 '(하)'에서 딴 것으로, 공통적인 모음 부분을 빼면 ''가 되어 한글의 'ㅎ'과 유사한 모양이 된다.
3. 한글 모음과 데와나가리의 유사성
한글의 위대성은 자음보다는 모음 체계에 있다고 본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글의 자음 체계는 산스크리트어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독창성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글의 모음도 산스크리트어의 모음 체계에서 많이 따 왔지만, 그러나 한글에서 고유하게 도입하는 모음이 훨씬 더 많다. 더 뛰어난 점은 모음과 모음을 합치는 간단한 복모음 체계를 고안했다는 것이다.
한글의 단모음은 10 개이다. 영어는 단모음이 고작 5 개(a, i, u, e, o) 밖에 안된다. 한글은 복모음까지 따지만 이론적으로는 69 개에 이른다. 산스크리트어는 모음 전체가 14 개밖에 안된다.
한글에서 초성 아래에 붙는 단모음이 5가지(ㅗ, ㅛ, ㅜ, ㅠ, ㅡ), 초성 오른쪽에 붙는 단모음이 5 가지(ㅏ, ㅑ, ㅓ, ㅕ, ㅣ)이 있다. 여기서 복모음의 개수를 따지면, 우선 단모음에 'ㅣ'가 붙는 형태가 7 가지(ㅚ, ㅟ, ㅢ, ㅐ, ㅒ, ㅔ, ㅖ)가 있다. 그리고, 'ㅘ'와 'ㅝ'가 있다. 모음 세 개가 겹치는 복모음의 개수는 'ㅙ'와 'ㅞ',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현재 사용하는 전체 모음은 21 가지가 된다. 이러한 단모음을 중첩시켜서 복모음을 만드는 조어 방식에 따라, 한글은 모음 개수가 자음의 개수보다 오히려 더 많은 문자가 되었다. 따라서, 한글은 모음의 개수만큼 다양한 소리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산스크리트어의 단모음의 실제 용법은 다음과 같다.
그림 5. 산스크리트어의 단모음의 실제 사용례(여기에는 7가지만 나와 있지만 2가지가 더 있으나, 필요하지 않으므로 생략하였다. 그리고 복모음이 네 가지 더 있으나, 여기서는 필요하지 않아서 마찬가지로 생략하였다).
그림 5에서 첫 번째 모음인 한글의 'ㅏ'에 해당하는 ''는 이미 앞 절에서 설명하였다. ''를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리면 한글의 모음 'ㅏ'와 똑 같은 모양이 된다. 실제로 산스크리어 글자를 쓸 때 이미 ''이 모든 자음에 공통적으로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모음으로 바꾸려면 그에 해당하는 모음을 좌우 또는 아래 위에 따로 붙인다. 그림 5에서는 장음인 'ㅏ-'가 되는 경우만 있는데, 장음 'ㅏ-'가 되는 경우에는 ''를 자음 오른쪽에 덧붙여서 ''와 같이 쓰고 '까-'로 발음한다.
'ㅓ'는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없고, 'ㅏ'를 반전시켜서 창작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5에서 두 번째 모음인 ''는 음가는 한글의 'ㅣ'와 같고, 쓸 때는 자음 부분 왼쪽에 ''와 같이 쓰고, '끼'로 발음한다.
세 번째 모음인 ''의 음가는 한글 모음 'ㅣ-'이고, ''와 같이 쓰고 '끼-'로 발음한다.
한글의 모음 'ㅣ'는 바로 산스크리트어 장모음 ''에서 본딴 것이다. 단모음 ''에서 안 딴 것은 한글 모음에 장단을 구별해서 표시하지 않으므로 상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 5에서 네 번째 모음 ''의 음가는 한글의 'ㅜ'이고, 자음 아래에 ''와 같이 쓰고 '꾸'로 발음한다.
다섯 번째 모음 ''의 음가는 'ㅜ-'이고, ''와 같이 쓰고 발음은 '꾸-'가 된다.
그 다음의 모음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더 이상 한글 모음이 본 딴 것이 없으므로 생략한다.
한글의 모음 'ㅜ'는 산스크리트어 모음 '' 또는 ''에서 따왔지만, 모양은 안 따고 자음의 아래에 쓰는 그 위치만 따왔음을 알 수 있다. 위치만 따온 것도 글자를 쓰는데 엄청난 편리를 주는 것이다. 위치만 따오고 모양은 데와나가리의 ''가 모양이 좀 복잡하여 쓰기 힘드므로, 그냥 단순히 'ㅏ'를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서 사용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ㅗ'도 단순히 'ㅜ'를 반전시켜서 사용한 듯하다.
그 이외의 한글 모음 'ㅑ, ㅕ, ㅛ, ㅠ, ㅡ'와 그외의 복모음들은 우리만의 창작이다. 우리 한글은 단모음을 조합하여 복모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독창적인 면이다. 게다가 단모음 10 가지도 천지인 삼재 세 가지로 분해할 수 있으니 정말 감탄할 정도로 간단하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모음과 자음을 합성하여 수많은 글자를 만든다는 제자 원칙이 거의 모든 발음을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5. 결론
위에서 한글의 자음은 산스크리트어의 데와나가리 자음을 거의 그대로 본뜬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글의 단모음 중 일부(ㅏ, ㅜ, ㅣ)는 데와나가리 모음의 일부를 본 떴지만, 전체 모음은 독창적인 제자 원리에 따라 합성한 것이다. 따라서 한글은 모음 부분에서 독창적인 면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글자 형태와 제자 원리를 본딴 것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의 기원에 대한 다른 설 중에서 훈민정음언해본에 적힌대로의 발음기관 상형설은 현재 한글의 기원에 대한 정설로써, 이에 따르면 한글은 우리가 거의 독창적으로 창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본 대로 그 문자 체계는 산스크리트어와 거의 같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가 발음나는 위치로 분류된 체계이기 때문에, 발음 기관을 상형하였다는 것도 산스크리트어를 모방한 것이지 독자적인 창작이라고 보기 힘들다.
기타 설 중에서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은 파스파 문자설인데, 이 문자는 원 세조 쿠빌라이가 젊은 티벳 승려인 파스파에게 세계의 모든 언어를 표시할 수 있는 국제적인 문자를 고안하라는 명령에 따라 만든 것이다. 이 문자를 파스파 문자라고 하는데, 티벳어와 마찬가지로 산스크리트어를 본따서 만든 것이다. 파스파 문자는 원대에 잠깐 쓰였지만, 그 후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같다. 파스파 문자의 모양은 아래 그림 6과 같다.
그림 6. 파스파 문자
파스파 문자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본딴 대로 모양은 데와나가리와 비슷하지만 직선이나 네모 형태로 단순화시켰다. 그래서 얼핏 보면 자음의 모양은 한글 자음과 비슷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개의 자음만 비슷할 뿐 전체적으로 많이 틀리다. 그리고 모음은 한글 모음과 많이 틀리다. 따라서 한글과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설사 백보 양보하여 파스파 문자가 산스크리트어보다 한글과 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파스파 문자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를 본땄기 때문에, 모양의 유사성도 당연한 것이고, 문자 체계는 거의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파스파 문자의 중요성은 고려 시대에 몽고의 지배를 백년 이상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던 문자일 수가 있다는 데 있다. 파스파 문자가 한글 자모와 전체적으로는 달라도, 직선과 네모 형태의 디자인은 한글 창제 시에 따왔을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파스파 문자가 한글에 미친 영향은 한글의 디자인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설 중에서는 그 근거나 일관성에 있어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설이 더 이상 없다고 본다. 여기에는 심지어 히브리어 기원설과 같이 황당한 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도와 한글 창제가 조선시대 백성들과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마치려고 한다. 세종대왕은 수많은 신하들이 그토록 반대했음에도 한글 창제를 밀어붙인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통치의 용이성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조정에서 정책을 펴려해도 한문으로 적힌 방은 무지한 일반 백성으로서는 때려죽인다고 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이를 양반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국가의 정책이 그것을 실행하는 양반들에게만 전달되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왜곡되어 전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왕조의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중국사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사에서 왕조의 흥망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귀족들의 면세권의 확대에 따라 평민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고(대표적인 예로 조선말기의 삼정의 문란을 들 수 있다), 그에 따라 귀족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 한 농민의 난이 빈발할 수 밖에 없고, 왕조 수입이 격감하여 경제적으로 붕괴한다는 점이다. 극동사에서 이러한 귀족들의 특권을 배제하고 견제하는 것이 왕권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왕조는 어김 없이 멸망했다. 극동사에서 왕조의 흥망은 면세권에 대한 왕권과 귀족들간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귀족들에게만 국가 정책을 전달한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된다.따라서 왕조의 정책이 제일 아래의 계급까지 제대로 전달되고, 백성들도 글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전달 받을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은 통치자인 자신과 백성을 모두 위하는 뜻에서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이유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이전의 고려 시대부터 절실하게 요청된 것이었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지식인들에게도 힘겨운 한문으로 된 경전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따라서 불교는 일부 귀족들을 위한 종교였을 뿐, 일반 백성들은 저급한 차원의 믿음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 균여대사는 보현십원가를 우리말로 지어서 유포시키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것은 우리말 문자가 없는 상황에서 구전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일부 극소수 스님들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 포교의 측면에서도 우리 문자의 필요성이 고려말에 이르러 매우 고조되어 있었지만 고려 말의 정치적인 불안으로 성취되지 못 하다가, 조선 건국 초기인 세종대에 이르러 정치적인 안정이 이루어지자 자연스럽게 한글이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었다.
오늘날 와서 생각해보면, 최만리를 비롯한 대다수의 신하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에서 그들이 형식에만 치우친 뜬 구름 잡는 성리학에 얼마나 경도되어 있었고, 중국 사대주의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에 서양 학문이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행태를 보이는 지식인들이 허다하므로 몇천년이 지나도 사라질 줄 모르는 그놈의 사대주의는 어쩔 수 없이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이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여 끝까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려고 아둥바둥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용서할 수 없는 야비한 무리였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한글의 창제로 인해 세종 이후 부녀자들까지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소설 문학, 수필 문학 등이 등장하는 등 우리 고유의 문화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문자를 가진 하나의 탁월한 문화가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 한문을 쓰면서, 중국에 굽실대는 최만리와 같은 무리로 가득 찬, 문자가 없어서 나라도 없어진 여진족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