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주바다, 300개 오름과 해녀를 품다

[펀스(최정수)]

바다의 날 11주년 - 제주 해녀

제주바다, 300개 오름과 해녀를 품다

2006-05-29 오후 2:04:09 게재

제주해녀, 세계유일 ‘살아 있는 문화유산’
잠수병 치료시설 등 맥 이어갈 투자 절실

제주바다는 신이 흙을 퍼다 만들었다는 한라산과 이름과 모양이 모두 다른 300여개의 오름을 품고 있다. 품은 것은 한라산뿐이 아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모진 삶을 견뎌온 제주의 해녀들도 품는다. 바다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해녀는 한반도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존재다.
4월말 제주 바다 속은 겨울을 벗어나 봄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다. 바다 속은 육지보다 한 계절 늦게 오기 때문이다.

◆“제주여자면 한 가족은 먹여 살려야지” = 제주 새벽바다에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하자 부지런한 해녀들 마음은 벌써 물가에 있다. 4월 24일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어촌계 해녀들이 선창가로 모여든다. 배를 타고 물질을 나가기 위해서다.
오전 10시. 제주 바다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잔잔했던 바다에 서서히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방파제를 넘었다.
북제주군 앞바다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는 해녀들의 표정은 느긋하다. 조급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마을 잠수회장인 김효숙 씨는 “뭐 급할 것 있나요. 오늘 못 들어가면 내일 작업하면 되지요” “바다에 순응하고 살아야지 바다를 이기려 하면 재앙이 따른다"고 말했다.
작업을 포기한 해녀들은 어느새 흩어져 밭일을 하거나 자신들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물질을 나가려고 배를 기다렸던 한 할머니는 어느새 분무기를 메고 밭으로 나갔다. 해녀들은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를 맞춰 가까운 바다에서 먼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한다.
하루 서너시간 무자맥질을 하고 다시 밀물과 함께 서서히 뭍으로 나오면서 작업을 마친다.
김상종 북촌 어촌계장은 “‘제주 여자로 태어나시민 한 일가는 동동 멕여 살려야주(제주 여자로 태어났으면 한 가족은 먹여살려야 한다)’라는 격언이 있다”며 “제주 해녀들은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지만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할 때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주 수산청 직원은 취재팀에게 북제주군 성산 앞바다는 아직 바람의 영향이 없다고 알려왔다. 수중촬영팀을 실은 차량은 성산 어촌계를 향해 달렸다.
성산포 어촌계소속 해녀들은 벌써 해안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바다위에 하얀 테왁(해산물을 담는 망을 띄우는 도구)만 눈에 들어왔고 해녀들이 ‘호오이’ 하며 내뿜는 ‘숨비질소리’가 들렸다. 취재팀은 한손에 수중촬영장비를 들고 수영으로 해녀들이 작업 중인 곳으로 다가갔다. 취재협조를 부탁하고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소라나 전복을 따는 모습을 쉽게 담을 수가 없었다. 물속과 수면을 이동하는 해녀들의 몸놀림은 부드럽고 빨랐다. 한창 진행 중인 썰물 때문인지 시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제주 남자, 공물·병역부담에서 4.3항쟁까지 = 제주도 경작지는 총 면적의 29%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계를 위해 바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전부터 제주여성은 힘든 물질과 밭일, 자식 키우며 집안일까지 도맡아 처리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모두 한량이었을까. 힘든 살림을 여자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제주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종실록에 “제주사람들은 해산물로 살아가는데 진상하는 수량이 많아 백성들이 지탱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흩어지니 진상하는 수량을 감함이 옳습니다”라고 임금에게 탄원한 기록이 남아있다.
포작(飽作), 즉 전복을 따는 사내들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기록을 보면 제주 남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공물 양과 부역, 출륙금지 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제주도에 국마장과 목축장을 설치해 말을 키웠고 조공을 나르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게다가 병역의무까지 수행했으니 제주 남자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군 복무기간은 지역방위군의 경우 40여년이나 되었다. 남성이 병들었거나 노인일 경우 젊고 건강한 여성이 대신 군역을 치러야 했다. 1600년대 초에는 여정(女丁)이 남성군인 수보다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여성들의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한다.
현대사에서도 제주는 불운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로 불리는 4·3항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민중항쟁은 그해 11월 미 군사고문단이 지휘하는 토벌작전의 제물이 됐다.
제주민중에 대한 무차별 총격은 제주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 여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가족을 잃은 수많은 해녀들은 슬픔과 분노의 한을 바다에 쏟아냈다. 무자맥질을 했다가 수면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숨비질소리’와 함께 고통도 내뱉는다.
56년 동안 제주 바다에서 물질을 해온 강순열(76·서귀포시 중문)씨도 아픈 역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강씨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한을 물질하면서 바다에 쏟아낸다”며 “언제나 소리 없이 받아 주는 바다는 친한 친구고 부모 품 같이 포근하다”고 말했다.

◆두통에 시달리는 해녀들 진통제 ‘뇌산’먹고 물질 = 취재팀은 다음날 바람의 영향이 덜 받는 서귀포로 이동했다.
서귀포 중문 해녀 10여명이 바다로 나가 물질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해녀들이 약봉지를 꺼냈다. 취재팀 눈에 들어 온건 하얀 가루약 ‘뇌산’이다.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물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바다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문턱이었다.
27년 동안 해녀 생활을 한 강옥례씨는 “두통약(뇌산)을 물질하기전 꼭 먹어야 한다.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 자맥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들은 심한 잠수병(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통에 시달리는 원인은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기 때문이다. 숨을 오래 참으면 몸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체내에 남아 머리에 영향을 미쳐 통증을 일으킨다.
상군에 속하는 제주 해녀들 중 수심 20미터에서 2분 이상 숨을 참고 작업을 한 기록이 있다. 제주도청은 잠수어업을 하는 해녀가 5545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고령자는 북제주군에 살고 있는 김 모(87) 씨로 경력이 69년이다. 대부분 50-60대 연령층이다. 이들의 간절한 소망은 투통을 치료할 수 있는 감압치료 장비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제주도는 예산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해녀가 점차 감소하는 원인 중 하나는 소득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 해녀들의 1인당 평균 소득은 314만원. 일을 잘하는 해녀들은 하루 5만~10만원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2004년보다 50만원이 줄었다. 제주도청 이종만 수산과장은 “나이가 많아 하군에 속한 해녀들과 물질을 잘하는 상군해녀들과의 소득차이는 많이 난다” 며 “채취한 해산물을 조합을 통해 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알려진 액수보다 소득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다 환경 변화 등으로 갈수록 채취량이 줄어들어 소득도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청과 해녀들이 정부에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투석과 복지사업이다. 제주 바다도 백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수온상승과 육지의 양식산업이 원인으로 알려진 백화현상은 근해 바다 소라와 전복의 서식처를 파괴 하고 있다. 해초가 사라진 바다에서는 다시마와 미역을 주식으로 하는 전복이나 소라도 점점 사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어촌계는 해초와 패류들이 살 수 있는 투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바다에 돌 던지기’다. 올해 요구한 투석사업은 159ha 지만 지원이 가능한 면적은 26.6ha에 불과하다. 사업비가 200억원에 달하지만 제주도비와 시비로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6억원 뿐이다. 두통을 호소하는 해녀들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감압치료시설도 갖추어야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나이가 많은 해녀들이 잠수생활을 그만둘 경우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만 있는 해녀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제주대학교와 국내 연구기관들은 해녀를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주도청 이종만 수산과장은 “정부와 자치단체가 제주 해녀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제주 해녀를 통해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고 말했다.

/글 전호성·사진 남준기 기자hsjeon@naeil.com
수중촬영= 김상욱 해성수중 대표
도움 주신분들=제주해양수산청. 제주도청. 북촌어촌계 서귀포 중문 어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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