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팔꽃) 35cm x 35cm
기다림 35cm x 34cm
水石淸供 35cm x 34cm
저녁소나무가 있는 풍경 65cm x 34cm
늦여름(연꽃) 49cm x 34cm
장미 48cmⅩ34cm
天桃 43cm x 33cm
풍우 48cm x 32cm
먹빛인연…그림으로 시를 쓰다
수묵누드화가 정산 황외성
일반회화가 소설적인 그림이라면 문인화는 시적인 그림입니다. 그 만큼 함축적입니다.
소설보다 수필이 수필보다 시가 더 어렵다고 하지 않나요.
여백없이 꽉 채우면 여러가지 이야기나 테크닉이 들어갈 수 있지만 감춰야죠. 적게 그리고 여운을 남기며……."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한국문인화연구회, 파묵행, 가마먹빛 회원 그리고 부산 누드 드로잉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 중인 정산 황외성(55) 작가를 '제5회 가마먹빛전' 전시장과 그의 작업실에서 팝부산이 만났다.
문인화가가 누드를 그린다고?
열에 열 명은 묻는 질문이다.
일찍이 문인화, 문인산수화가로 활동하며 알려진 그가 누드그리기 작업을 한다기에 이런 궁금증이 앞설 터이다.
보수적인 시각 때문이기도 하고 누드라는 말 자체에 대한 약간의 어색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그는 "내가 좋아서 내가 즐거우니깐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전시를 하죠. 누드드로잉을..."
누드화에 관심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 “그림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사람에 대한 관심, 자신에 대한 관심, 약간 발전해서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되니,
결국은 인체 쪽으로 관심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닮은 가장 가까이 있는 피조물 즉 타인이 되는 거죠. 그렇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라는게 그의 답변이다.
문인화가로 대한민국 서예대전에 12여회 출품만에 초대작가로 된 이후 2004년 첫 개인전 그 뒤 2회, 3회 때는
동양화적인 전통 산수화가 아닌 문인산수화를 전시를 했다.
개인전 4회 때 누드 드로잉만으로 전시를 한 후 부산 누드드로잉회원으로 영입이 되었다.
5회 때는 서울 인사이트프라자 다시 한국화로 전시를 했다
먹빛인연
"인연인거 같습니다.
시인 천상병 선생의 부인 목여사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의 '귀천' 라는 찻집에서입니다"
먹으로 그리는 누드 드로잉을 처음 접한 건 30여 년 전. 인연이라고 하는 그의 음성에서 소중한 추억도 느껴진다.
1987년에 한국 최초로 조선호텔 화랑에서 누드크로키전을 열고 1987년에 한국 최초로 조선호텔 화랑에서
누드크로키전을 열고 1990년 일본 BRITANNICA 국제영감에 한국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수록된
작가 소원 문은희 선생을 회상하며 하는 말이었다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대해 새삼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다들 자기 속들이 꽉 차 영향을 덜 받는데 초창기에 만났으니깐, 그 때문에 시작도 하기도 했구요."
그 때의 작은 인연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하는 정산 황외성 작가. 자신의 20대 방황의 끝 무렵에 만난
소원 문은희 선생과의 인연에 대해 마치 백지에 첫물 들듯이 강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되어 부산에서 서울 화실까지 2년을 다녔다.
배고픈 미술학도가 서울 화실까지 다닌다고 돈도 안 받으셔서 꽃다발 한 묶음씩 사드리고 배웠다고 한다.
그때의 고마움을 엷은 미소로 띄워 보내고 책꽂이에서 주섬주섬 선생의 책들을 찾아 보여주었다.
작업실 한편에 수북한 연습지들
"금방 20년이 되더군여. 그동안 문인화 사군자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서예대전 12년 도전 동안
입선만 10번이나 했습니다.
이 작업도 놓치지 않으면서 수묵산수화 누드 쪽으로 도전했고 2007년에 첫 누드 개인전을 했습니다.
소원 문은희 선생도 최초의 수묵누드를 위해 49세에 도전해 60대에 활발하게 누드 크로키를 발표하기까지
데생에만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붓을 잡았다고 합니다."
정산 황외성 작가도 먹 작업 20여년을 한 후에야 누드크로키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만큼 어려웠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2분 만에 혹은 4분 만에 드로잉을 마쳐야 하는 작업의 흔적들이 작업실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작가들이 누드화를 계속하기가 어려운건 대체적으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계속 모델을 써야하고, 재료비를 들여야 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 실정에서
누드 작품을 쉽게 사서 소장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대단한 그림이 아니면 누드를 집안에 걸어 놓는 풍경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정산 황외성 문인화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시(詩)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그의 생활도 시인인 아내 김영옥 여사의 몫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1993년 ‘문예사조’에 등단해 시인이 된 아내 김영옥 시인의 시집
"따뜻한 풍경 속으로’(두레미디어)표지와 내용에 자신의 그림을 넣을 만큼 아내사랑도 대단하다.
결혼 후 월급은 고작 5년밖에 제대로 못 갖다 줘 미안했다고 한다. 곱게 길러 주신 부모님 덕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시집 속에는 그때의 고단했던 생활고를 담은 시 한 구절도 들어있다.
모두 다 지나갔으니 이제 그 어려움들은 다 좋은 일이 되었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황작가는
예술을 하려면 조금은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며 씁쓸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한국화 산수화나 다른 그림 쪽으로 겸해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풍경이라든지 다른 작업을 해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누드는 자기가 좋아서
그림을 놓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리고 싶은 열정, 수묵누드의 매력
수묵누드가 어렵지만 좋은 점은 한 번 붓을 화선지에 대면 다시 수정할 수 없는 작업이라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마치 빨리 쓰는 글쓰기처럼 그린다.
붓을 휘둘러 글을 쓰듯 그림을 그려야 선의 질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즉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서예적인 필력이 없으면 도전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인체선은 모든 자연물을 대표할 만큼 아름다운 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체의 굴곡을 서양화에서는 색이나 면으로 접근하기도 하는데 저는 하나의 선에 힘 조절의 강약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선의 완성에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그 만큼 손과 마음이 일치된 상태에 가까워져야 가능한 작업이죠.”
끊임없이 하다 보니 인체의 포즈만 봐도 훤하게 비례나 이런 세세한 부분들이 그려진다고 한다.
누드화가 팔리다
"4회 개인전 때 방문했던 한 외국인 교수 부부내외에게 우스갯소리로 던진 소개서로 ‘애로 화가입니다’라고 하니
먹으로 하는 누드화라 오히려 맑은 느낌 먹으주 맑아서 좋다고 하셨고 또 옥천히려 보러 오신 어떤 분은
전혀 수묵누드화에 대해 모르시던 분이 느낌에 감동을 받으시고 사가시기도 하셔서 그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냅니다.”(웃음)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는 팬이 존재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적인 정밀묘사 보다 선으로 함축하며 자제시키면서 선위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깊이를 느끼는 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한 점 때문일 것입니다.
특유한 선의 정서에서 수묵 누드화를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은 거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오후 해질 무렵까지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미술관과 작품 이야기를 해주며 끝까지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는
작가의 모습이 수묵향처럼 은은하게 기억속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