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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솟은 봉수산 푸른 기슭에-금마초등학교 제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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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지식인 스크랩 칭기즈칸 : (8) 복수는 나의 것
미루나무 추천 0 조회 92 12.04.28 00: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테무진 to the 칸

 

 

 

 

(8) 복수는 나의 것

 

 

1

 

(전편에 이어)아내를 잃었다. 그런데 되찾을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테무진은 커레이트족의 칸 토그릴을 찾아갔다.

 

"메르키트 놈들이 제 아내를 빼앗아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녀석아, 네가 나한테 담비가죽옷을 주며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니? 아들이 나쁜 짓을 당했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냐. 도와주마!"

 

옹 칸은 천사였던 걸까? 음...

 

의붓 자식이 험한 일을 당했다.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는 것도 자존심과 평판에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여기서 테무진은 '정치'란 걸 제대로 배우게 된다.

 

옹 칸은 테무진에게 말한다.

 

"자네, 자무카라는 친구와 '안다'를 맺지 않았나? 그 친구 요즘 보통 잘나가는 게 아냐. 자무카한테도 도와달라고 부탁해 보게. 내가 테무진을 도와주기로 했는데, 내가 2만명을 준비할테니 자무카가 2만명 정도의 병사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이 말을 내가 했다고 꼭 전달하면서 말이야."

 

시키는대로 해야지 별 수 있는가? 테무진은 카사르와 벨구테이를 자무카에게 보내 자신의 사정과 토그릴의 말을 전하게 했다.

 

"흑흑 우리 성님이... 형수님이..."

 

그 옛날 얼어붙은 오논 강 위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테무진... 두 번이나 안다를 맺은 테무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해들은 자무카는 뚜껑이 열렸다.

 

"더러운 메르키드 새끼들이 감히 내 안다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내 안다의 잠자리를 썰렁하게 만들고(참 솔직한 표현이다...), 밤마다 외로움에 잠 못들게 했다 이거지? 그렇다면 출정한다!"

 

자무카는 과연 우정만으로 전쟁을 결심했을까? 글쎄...

 

우리는 딴지스인 만큼, 졸라 시니컬하게 접근해보도록 하자.

 

물론 안다와의 우애 때문에 자무카는 정말로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만으로 2만의 군대가 덜컥 모이지는 않는다. 커레이트족이야 워낙 크고 강성하니까 부족 내에서 2만명의 전사를 소집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자무카가 속한 자다란 씨족은 몽골족이었다. 몽골족은 분열되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몽골족 출신의 전사들을 다 합쳐도 2만이 될까 말까였다.

 

그러나, 모을 수 있다. 절대권력이 없던 당시의 초원에는 이 세력 저 세력이 이합집산하고 있었다. 뜻이 맞으면 A집단과 B집단이 얼마든지 힘을 모아 C를 공격할 수 있었다. 물론 공동의 목표를 완수하면 당연히 손 흔들고 헤어진다. 그러다 다음엔 적으로 만날 수도 있고. 따라서 자무카가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일시적으로 전사들을 모을 수 있다. 그 청사진이란 바로 이익이다.

 

메르키트족은 초원에서 아주 잘 나가는 부자집단이었다. 메르키트족을 약탈하는데 성공한다면,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메르키트족이 공짜로 부자가 된 건 아니었다. 메르키트족은 사납고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인간들이었다. 커레이트족이 단독으로 붙어보기엔 버거운 상대였다. 자무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명분없는 전쟁은 주변 부족(씨족) 전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성사되기도 어려운 데다가, 전쟁 당사자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딱 좋다. 하지만, 테무진은 옹 칸의 안다의 아들. 그리고 자무카는 테무진의 안다였다. 옹 칸과 자무카에겐 명분이 있었다. 함께 연합해 2:1의 유리한 상황에서 메르키트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또한 토그릴은 메르키트족에 원한이 있었다. 그가 7살 때, 오도이드 메르키트족이 그를 납치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절구질'을 하는 아동노동착취를 당했다. 아버지가 군대를 몰고 와 결국 구출되었으나, 좋은 기억일 리 없다. 이번에 복수에 성공한다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게 되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무카와 토그릴은 테무진과의 '신의를 지키면서' 이윤이 보장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토그릴이 보낸 신호를 자무카가 곧바로 이해한 건, 뭐 당연하고.

 

 

2

 

그러나, 버뜨.

 

다시 생각해보면, '이윤이 보장된 사업'이라고 해서 전사들이 구름떼처럼 모이지는 않는다. 전쟁은 위험한 일이다. 부상과 죽음의 위협이 있는 건 물론이고, 린치와 약탈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 때문에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다. 세력을 모집하는 사람은 평편이 좋거나 아님 실력이 뛰어난, 믿을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모험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테무진과의 나이를 비교해 봤을 때, 이때 자무카의 나이는 많아야 스무살 정도였다. 최대치로 잡는다고 해봐야 스물 한 살...

 

학자들은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하고 <몽골 vs 세계>전쟁을 시작했을 때 몽골의 총 인구를 100만 명 가량, 정예 전사를 10만 명 가량으로 추산한다. 당시 초원의 세력권은 크게 동쪽의 타타르, 중앙의 커레이트, 서쪽의 나이만으로 삼분되어 있었다. 그보다 덩치는 조금 작지만 사나워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메르키트라는 무시할 수 없는 독립세력이 있었고. 나머지는 군소부족이었다. 몽골족은 그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몽골 씨족에 속한 약관 스무살의 파릇파릇한 청년이,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초원세계 전체의 전력 1/5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초원이 통일될 때까지, 수십년 계속된 전쟁에서 죽은 전사의 수를 감안하더라도 1/6 정도... 최소한 1/7이다.

 

자무카는 이미 최소 수백, 많게는 1~2천명이 넘는 전사로 이루어진 추종집단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이다. 자무카가 속한 자다란 씨족은 유서깊고 존경받는 혈족집단이었다. 하지만 결코 주목할 만한 세력과 규모를 갖지는 못했다. 따라서 자무카도 생전의 예수게이처럼 능력만으로 사냥꾼이자 용병단이자 약탈대를 조직한 대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본 시리즈를 계속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자무카는 전투의 천재였다. 그리고 진짜 마초였다. 재수없을 정도로 높은 자존심, 그리고 그 자존심에 걸맞는 실력을 모두 갖고 있었다. 초원에서 남자는 보통 14~16세에 결혼했다.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혼적령기를 확실히 넘겨야 비로서 성인의 대접을 받는다. 따라서 자무카가 이름을 알리고 세력을 모을 수 있던 기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5년 이하다. 아마도 2~3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초원에 난데없이 등장한 혜성이었다.

 

 

3

 

토그릴은 권력과 부, 정치력으로는 자무카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능력은 자무카가 경험 많은 토그릴보다 우위에 있었던 게 확실하다. 토그릴도 이 사실을 잘 알았는지,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자무카에게 맡긴다. 군대가 집결하는 장소와 시간을 자무카가 정하게 한 것이다.

 

자무카는 사령관으로 선임되자마자 친구를 위한 복수를 부르짖는다.

 

"오도이드 메르키트, 오와스 메르키트, 카아드 메르키트를 쳐부수어 테무진의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자! 보르테 부인을 구하자!"

 

... 아, 물론 전쟁이 가져다주는 이익도 빠뜨리지 않는다.

 

"겁쟁이 톡토아 새끼의 처자가 끝장이 나도록 약탈하자! 그의 온 나라가 끝장이 나도록 약탈하자!"

 

역사엔 자무카가 부른 웅장하면서도 폭력적인 전쟁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사에서 우리는 자무카가 '가오'를 무척 중요시하는 마초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영기에 술을 뿌려 제사를 지냈다. 이미 자신의 영기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흔치 않은 새까만 말을 타고, 새까만 황소가죽 북을 두드려 전쟁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초원사람들은 무채색을 중요시했다. 가장 귀족적이고 순수한 색은 흰색이다. 순혈 귀족을 '흰 뼈'라고 부른다. 반면 검은색은 순수혈통이 아니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화려한 색이기도 하다. 예컨데 결혼하는 신부가 타는 수레는 검은 색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해발 1600미터의 초원, 봄과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노랗고 겨울에는 하얀 맑은 초원에서 검은 색은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이었다.

 

자무카는 검은색과 모종의 관련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은색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쇼맨쉽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자다란 씨족임을 과시하려는 거였을까? 몽골족은 '바보' 보돈차르의 후손인데, 그의 아내가 낳은 첫째아들은 생물학적으로 보돈차르의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즉 '검은 뼈' 자다란의 후손임을 나타내려는 거였을까? 아니면 자기 아버지를 상징하는 거였을 수도 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무카 아버지의 이름은 '카라 카다안', 즉 검은 카다안이었다.

 

자무카의 갑옷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즉 직사각형의 수많은 쇠판을 끈으로 연결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나중에는 이 갑옷 형태가 몽골제국군의 기본 무장이 된다.). 당시의 몽골족은 가난해서, 가죽을 두껍게 댄 갑옷이 전부였을텐데... 심지어 소모품인 화살까지도 복숭아나무 껍질로 정성껏 장식된 것을 쓰고 있었다. 한마디로 끝내주게 성공한 남자였다. 이런 안다의 모습을 본 테무진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1만을 모을 테니 너는 너대로 1만을 모아봐. 커레이트가 2만, 우리 몽골이 2만 - 합쳐서 4만을 만드는 거다."

 

전쟁을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로서 성의와 책임을 보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테무진 주제에 무슨 재주로 전사 만 명을 모은단 말인가? 게르 하나에서 장정 한 명씩 튀어나온다고 해도, 초원에 별처럼 퍼진 만 개의 게르가 테무진의 뭘 보고 모험을 감수한단 말인가.

 

 

여기에 10000을 곱하면 된다.

 

자무카에겐, 안다의 역량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는 테무진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다. 커레이트족과 자무카가 한 편이 된다. 이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보험이다. 아무리 테무진이라도 커레이트와 자무카의 신용도를 걸면 사람을 모을 수 있었을 터- 이 절호의 후광효과를 놓지지 말고 세력을 모으는 경험을 함 해보라는 뜻도 있었으리라. 

 

 

4

 

테무진은 1만의 장정을 모으는 데 성공했을까? 어이구, 전혀...

 

자무카가 2만을 다 모았다. 토그릴 1만, 토그릴의 동생인 자카 감보가 1만. 이렇게 커레이트 2만을 합쳐 4만명 - 이게 '아내 찾기 안다 연합'의 총전력이었다. 그래도 테무진이 군사를 모집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선, 아마 수십명에서 기백명 정도 가까스로 모은 것 같다.

 

자무카가 정한 집결 장소는 오논 강의 발원지였다. 테무진과 토그릴, 자카 감보는 며칠 집결지에 며칠 늦게 도착했다. 테무진은 시간을 지킬 수 있었지만, 토그릴과 자카 감보가 케를렌 강줄기를 따라 올라온다기에,

 

"아, 그러면 마침 우리가 그분들이 지나는 길 근처에 있으니까... 기다렸다가 합류하지 뭐."

 

하느라고 같이 늦었다.

 

상호계약을 할 때, 목표를 완수하고 찢어질 때는 동등할 수 있겠지만... 집단행동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한 명의 지시를 받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전쟁에 돌입했을 땐 모두가 총사령관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말인즉슨 자무카가 왕이었다.

 

 

 

 

스무 살의 자무카는 초원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인 토그릴과 그의 동생, 그리고 안다인 테무진에게 호통을 친다.

 

"눈보라가 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집결시각을 엄수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몽골이다! 지금 장난하나?"

 

즉 테무진은 위대한 몽골족 전사로서 격이 떨어지는 행동을 했다는 뜻. 그렇다면 이는 자동적으로 몽골족이 아닌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격이 떨어질 만도 하다는 뜻도 된다. 자무카, 이렇게 세 사람을 보기 좋게 보내버린다. 그래도 세 사람, 할 말 없다. 토그릴은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시인한다.

 

"우리가 잘못한 거 맞네... 지금 사령관은 자무카 아우일세. 아우가 마음대로 처분하게."

 

자무카 형, 카리스마가 아주 그냥 지대로다. 대체 이 끝모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야 실력에서 나온다. 그는 토그릴을 '용서'한 후, 곧바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전을 내놓는다.

 

"현재 메르키트 세 부족은 각각 떨어져서 야영하고 있다. 톡토아가 이끄는 오도이드 메르키트는 '보오라' 초원에 있다. 다이르 오손이 이끄는 오와스 메르키트는 '오르콘', '셀렝게'강의 '탈콘' 섬에 있다. '카아타이 다르말라'의 카아드 메르키트는 '카라지' 초원에 있다."

 

이 때를 놓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무카의 목표는 신속한 '각개격파'였다. 전력이 합쳐지기 전에 하나씩 깨트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구밀도가 적은 초원에서 무려 4만 명의 전사가 모였다. 메르키트족이 바보도 아니고, 이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4만명이 자신들을 향해 진격한다. 이 역시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확실히 승리하려면 적의 허를 찔러야 했다. 적이 예상한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서 준비할 틈 자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아래 지도를 보자. 현대 몽골의 강 지도다.

 

 

 

우측 상단에 오논(Onon) 강이 보인다. 그 바로 밑의 물줄기가 헤를렌(Herlen)강. 현대 몽골 표준어인 '할하' 몽골어로 '헤를렌'이라고 부르는 이 강이 중세 몽골어인 '카막' 몽골어로는 케를렌 강이다. 오논 강과 케를렌 강 모두 발원지는 테무진의 토템 부르칸 칼둔이다. 오논 강에서 왼쪽으로 가면 할하 몽골어로 '오르혼(Orhon)' 강이 보인다. 카막 몽골어로는 오르콘 강이다. 오르콘 강 바로 위에 셀렝게(Selenge) 강 물줄기가 있다.

 

오르콘과 셀렝게의 강줄기가 만나고 흩어지는 곳. 여기가 메르키트족의 주 야영지였다. 보오라 초원과 카라지 초원이 어디인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메르키트족이 매우 부유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렇게 강줄기가 복잡하게 얽히는 곳은 물이 풍부할 뿐 아니라, 충분한 수량과 퇴적물 덕분에 물 많고 영양 많은 풀들이 자라게 된다. 이런 풀은 가축을 살찌게 한다.

 

게다가 '탈콘 섬' 이라는 지명도 등장한다. 초원엔 바다가 없다. 따라서 '탈콘' 섬이란, 두 물줄기 사이에 있는 삼각지다. 퇴적물로 이루어진 삼각지의 토양이 얼마나 영양만점이었겠는가. 토양이 풀을, 풀이 가축을, 가축의 고기가 사람의 영양상태를 만든다. 메르키트족,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다.

 

 

셀렝게 강 

자무카는 진격의 장애물인 강을 거꾸로 이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몽골의 강은 강폭이 좁다. 별로 깊지도 않아서 말로(요즘에는 지프로도) 건널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역(水域)은 지상과 비슷하게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깊은 수역도 있다.

 

곳곳에 강줄기가 뻗어있는 지형에서, 상식적인 공격루트는 뻔하다. 이곳을 주 목영지로 하고 있는 메르키트족이 그 정도 예상하지 못할 리가 없다. 따라서 허를 찌르려면 오히려 건너기 곤란한 지점을 골라야 한다. 자무카가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곧장 킬코 강을 도하한다."

 

킬코 강은 어디일까? 지명이 하도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바람에 현재의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역사에는 자무카-테무진-토그릴-자카 감보의 연합군이 지나간 강의 지점이나 깊이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물이 무척 깊었던 것은 확실하다. 걸어서는 물론이고 말을 타고서도 건널 수 없고, 낚시를 하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하는 곳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자무카는 군대를 몰아 서쪽으로 진격했다. 한밤중에 킬코 강을 만난 도합 4만의 대부대... 그들은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곡선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사람과 말이 함께 뗏목을 타고 그대로 강을 도하했다! 예상치 못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속도전, 즉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전격전'이었다. 뗏목을 이용하면 말이 물을 튀길 필요가 없어 이동하는 소리를 은폐하기도 쉬워진다.

 

뗏목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야 물론 숲에서 나무를 잘라 만들었을 것이다. 몽골 초원에서 숲은 주로 강줄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킬코 강을 건너면 바로 보오라 초원이다. 톡토아 베키의 오도이드 메르키트가 버티고 있다. 거기서 한밤중에 횃불 켜놓고 4만명의 사람과 10만 마리가 넘는 말이 탈 뗏목을 우지끈 뚝딱 만들고 있으면, '우리 뗏목만 만들면 바로 쳐들어가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리 만들어 간 뗏목이다. 자무카가 정한 집결지는 오논 강의 발원지였다. 브루칸 칼둔 산을 끼고 있고, 북쪽은 시베리아 숲의 남단이다. 뗏목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에게 정치와 전술 외에, 한가지 중요한 술수를 더 배운다. 바로 '선전전'이다. 역사는 테무진을 심리전술 - 선전전의 대가로 기록한다. 자무카의 심리술은 테무진이 경험한 최초의 선전전이다.

 

자무카가 외침에 따르면, 톡토아 베키는 "말 안장을 두드려도 (전투을 알리는)북 소리로 알고 놀라 달아나는" 인간이며, 카아타이 다르말라는 "초원의 풀이 바람에 치는 소리만 들려도" 놀라 자빠지는 겁쟁이이고, 다이르 오손은 화살통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가는 작자였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아군 전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 아마 소정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5

 

킬코 강에서 배를 타고 밤낚시를 하던 메르키트족의 어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아니 저게 다 뭐여... 가만히 보니 뗏목을 탄 대부내가 오도이드 메르키트의 야영지를 향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부는 급히 톡토아 베키의 게르를 찾아간다. 담비를 잡으러 숲에 나갔던 사냥꾼도 급보를 전하러 달려왔다.

 

"수만 명이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톡토아 베키는 자무카의 전격전술에 적절한 대응을 할 틈이 없었다. 신속히 강을 건넌 연합부대가 이미 전열을 가다듬고 야영지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게르는 물론이고 게르 안의 것들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부족의 수령인 그의 게르마저도 약탈당했다. 톡토아 베키는 소수의 무리만 이끌고 훗날을 기약하며 도망가야 했다. 킬코 강 도하작전은 성공했다.

 

 

 

 

특별히 위로 솟아오른 게 없는 초원에서, 강은 중요한 랜드마크다. 메르키트 족 3개 씨족도 강줄기를 따라 흩어져 있었다. 오도이드 메르키트의 톡토아 베키는 오와스 메르키트와 합류하기 위해 셀렝게 강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패주가 거듭될수록 약탈당할 물건과 사람도 계속 남겨지게 마련. 연합부대는 약탈을 거듭하며 톡토아 베키를 계속 추격했다.

 

자무카의 부대는 톡토아 베키가 다이르 오손에게 합류하자마자, 다이르 오손이 부대를 준비하기도 전에 오와스 메르키트족을 2차 타격,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어 또다시 약탈했다. 톡토아 베키가 외려 길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자무카는 적이 상황을 알고 준비할 틈을 주지 않고, 강줄기를 따라 그들을 쉼없이 격파해나갔다.

 

 

굽이굽이 약탈길...(셀렝게 강) 

 

다이르 오손과 톡토아 베키는 소수의 전사만 챙겨서 1. 급박한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해 2. 동족에게 위기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3. 재빨리 전사들을 추려서 반격을 가하기 위해 카아드 메르키트족의 야영지로 도망갔다. 자무카는 그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남은 메르키트 사람들은 무자비한 약탈과 린치의 아수라장에 남겨졌다. 남자들은 무장을 하고 말에 오르기도 전에 살육당했다. 그 다음은 여자들을 붙들어 억류할 차례다. 한밤중의 피난민들은 어디로 도망가야 할 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죽기도 하고, 붙잡히기도 했다. 비명과 신음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연합부대 대부분이 약탈이 혈안이 되어 있을 동안,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기 위해 피난민 행렬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미친듯이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보르테! 보르테!"

 

 

 

 

보르테와 코아그친은 이 난리통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만 남은 씨족인 '카아드 메르키트'의 야영지를 향해 도망가는 행렬에 섞여 있었다. 코아그친 노파와 함께였다. 그녀는 수레를 타고 있었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밀실 형태의 수레였을 것이다. 그녀는 메르키트족의 값나가는 <재산>으로 분류되었을 테고, 따라서 되도록 적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을 터이니...

 

마침 달빛이 무척이나 밝은 밤이었다. 하지만 테무진은 수레 안에 있는 보르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때 기적처럼, 테무진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보르테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테무진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보르테는 코아그친과 함께 수레에서 뛰어내려 테무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밤인데도 테무진이 쓰는 말고삐와 밧줄을 알아보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당시 초원에서 이런 물건은 모두 수제로, 집집마다 각자 만들기 때문에 자신에게 익숙한 물건을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초원의 유목민들은 감각이 예민하다.

 

그때도 테무진은 아내가 자신의 곁에 다가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르테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었다. 테무진은 이상함을 느끼고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그토록 찾아헤맨 아내가 있었다. 테무진은 말에서 뛰어내렸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를 것도 없이

 

"서로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6

 

감격의 순간...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와 재회한 테무진은 어서 아내와 함께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이 위험 속에 보르테를 계속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약탈의 이익이나 군사적 명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복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덕에 보르테를 차지했던 '장사' 칠게르는 생명을 부지한 채 무사히 달아났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자 마자 토그릴과 자무카에게, 다음과 같은 순진무구한 전갈을 보낸다.

 

"전쟁의 목적은 제 아내를 찾는 거였잖아요. 드디어 아내를 찾았습니다. 그러니 이만 약탈을 그만두고 돌아갑시다."

 

 

어서 즐거운 나의 집으로... 

 

자무카와 토그릴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이녀석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4만 명의 대부대는 이익을 위해 모였지, 한 불쌍한 부부의 재결합을 위해 모인 게 아니다. 게다가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을 추격해 카아드 메르키트를 신속히 쳐야 한다. 어정대다가 반격할 기회를 주면 바로 그 시점부터 희생자가 발생하고, 전쟁의 이익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자무카는 자신의 안다 테무진의 요청을 가볍게 씹고, 진격을 계속해 카아드 메르키트마저 철저히 짓밟아 버린다. 그 와중에 톡토아와 다이르 오손은 도망가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카아드의 수장 카아타이 다르말라는 포로로 붙잡혔다.

 

실상이야 어떻든, 전쟁의 명분은 테무진에게 있었다. 자무카와 토그릴은 카아타이 다르말라를 테무진에게 넘겼다. 테무진은 그의 목에 칼을 씌워 자신의 토템인 부르칸 칼둔으로 호송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부르칸 칼둔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어 죽는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찾았고, 가족의 은인 코아그친도 구했다. 하지만 벨구테이는 아직도 자신의 생모 소치겔을 찾지 못했다. 소치겔은 카아드 메르키트족에 붙들려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든 그녀는 별다른 커리어도 없는 가난하고 늙은 전사에게 넘겨졌다.

 

벨구테이는 무장해제된 포로들을 족쳤다.

 

"내 엄마 어딨냐, 이 개새끼들아."

 

포로가 뭘 어쩌겠는가?

 

"어머님은 저 집에 살고 계신데여..."

 

소치겔은 벨구테이가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통곡한다.

 

"우리 아들들(자신의 아들과 헐룬의 아들들 모두를 말한다.)이 저렇게 장성해서, 군대를 지휘하는 번듯한 사내들이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보잘 것 없는 남자의 노리갯감이 되어 있었으니... 부끄러워서 어떻게 아들들 얼굴을 보겠누?"

 

소치겔 아줌마의 자괴감, 이해가 간다... 벨구테이가 게르문을 열고 들어갈 때, 소치겔은 아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다른 쪽 문을 열고 튀어나간다. "양가죽 누더기" 차림이었다. 그녀가 어떤 취급을 받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숲으로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글쎄...

 

이미 연합부대는 카라지 초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말을 탄 병사들이 게르에서 방금 두 발로 뛰어나간 아줌마를 놓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다시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고, 실제로도 이후에 소치겔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이때 소치겔이 자살했다고 추측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몽골초원에서 자살은 엄청난 금기다. 절개를 지키기 위한 자살. 후퇴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충절. 초원에서는 이런 거 안 쳐준다. 끝까지 사는 게 좋은거다. 싸우다 안 되면 후퇴하고 다음에 반격하는 게 상식인 거다. 죽음은 무조건 나쁜 거고, 자살은 더 나쁜 짓이다. 필시 테무진 가족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소치겔의 자살을 실종으로 윤색해놓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벨구테이는 분노와 광기에 휩싸였다. 테무진은 벨구테이를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수 없었다. 그는 벨구테이의 친형 벡테르를 죽인 전력이 있다. 메르키트족에게 습격받을 때, 자신의 생모 헐룬은 말을 탔지만 벨구테이의 생모 소치겔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되었다... 테무진이 벨구테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벨구테이는 메르키트족 포로들에게 고두리살(지난 편들에서 설명했듯이, 끝이 뭉툭한 새 사냥용 화살)을 쏘아대며 소리친다.

 

"내 어머니를 찾아내라(살려내라)."

 

고두리살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그 대신 엄청나게 아팠을 거다. 벨구테이의 행동은 활쏘기가 생활화된 초원에서 '구타'에 해당되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벨구테이의 분노는 이정도 구타로 해결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테무진 가족의 야영지를 습격해 보르테와 소치겔, 코아그친을 납치해간 메르키트 전사들은 대략 300명이었다. 벨구테이는 포로들에게 린치를 가해 '불게' 만들면서 그 300명의 약탈대에 속했던 전사들을 모을 수 있을 때까지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였다. 뿐만 아니었다. 벨구테이는 그걸로도 모자라서 "그들의 친척의 친척에 이르기까지" 도륙했다. 그런 벨구테이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칼춤을 추는 악마처럼 보였으리라.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벨구테이는 자신이 죽인 자들이 남긴 여자들 중 "품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버렸다(최소 수십 명은 되었을 것이다.). 소치겔 납치사건과 관련된 나머지 생존자들은 모두 벨구테이의 가내 노예로 전락했다(나중에 노예제 폐지론자인 테무진에 의해 모두 해방된다. 하지만 당분간은 지옥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연합부대는 오르콘과 셀렝게, 두 강 사이에 있는 탈콘 삼각지에서 전투의 최종 정리를 마쳤다. 생존자를 확인하고, 논공행상을 하고, 약탈품을 분배하는 등의 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기어이 탈주에 성공한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은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테무진의 생애 첫 전투가 끝났다.

 

 

(다음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계속)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연재중인 글을 퍼온 것입니다.

원문으로 읽으시려면 여기 클릭  

 

http://www.ddanzi.com/news/565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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