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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시판 스크랩 간월도 간월암(2013,5,9)
이상규 추천 0 조회 23 13.05.10 20:2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태안 당암포 좌대 낚시를 갔다가 오는 길에 혼자 들러봤다.

낚시야 세월을 낚으러 갔으니 오며가며 보는 여행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천수만을 가로질러  홍성군과 당진군을 잇는 서산방조제로 엄청난 농지를 확보한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의 우리나라 조국 근대화에 끼친 영향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식량이 부족하여 농토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지금이야 갯펄이 주는 부가가치가 높다고 하지만

그 것은 배가 부른 다음 이야기다.

논과 밭은 공단이다 뭐다 하여 농사 기능을 상실하니

공업화로 인해 좁은 농토가 더 줄어들었다.

그 때는 우리나라 특성상 해안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에서는 큰 힘 들이지 않고 바다를 막을 수 있었고

바다만 ?으면 수백만평의 갯펄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시대의 위업이 수많은 방조제와 간척지였다.

 

천수만은 현대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

경지정리된 드넓은 농토를 미국 식으로 완전 기게화 하여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모든 농토가 기계화 됐지만 당시에 농업 기게화는 외국영화에서나 봤다.

그런데 천수만의 현대 농장은 70년대부터 완전 기계화 하여 농사를 지었다.

저주영식 도하나의 결단이었고 우리나라 식량부족 상황 타개에 일등공신이 된

훌륭한 의사결정이었다.

 

천수만은 홍성시 서부면과 보령시 천부면,오천면 서산시 부석면에 걸쳐 있는데 수심이 낮다하여 낮을 '천'자를 쓴 것이다.

평균 수심이 10m정도였던 것을 현대건설이 막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대형 유조선으로 최종 물?이 공사를 한 

 이른바' VLCC유조선 공법'이 오랜 현정 경험을 통해 정주영 회장에 의해 탄생된 곳이다.

천수만의 서쪽은 태안군 태안반도 기부의 반도와 안면도에 둘러 쌓여 있다.

천수만은 A,B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A지구는 간월호이고 B 지구는 부남호라 한다.

항공기로 볍씨를 뿌릴 정도로 거대한 농지가 조성된 이곳은 추수후 낱알이 풍부하여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간월암---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육지가 된다.

과거에는 간월암을 피안도,피안사라 햇고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하여 '연화대'라 부르기도 했고

또는 낙가산,원통대라고도 했다 한다.

 

'간월암'이란 이름은 무학대사로부터 비롯됐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 곳에서 정진하던 중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간월암'이라 불렀단다.

간월암 으로 내려 가다 육지 어귀의 해안을 찍었다.

우리가 산의 높이를 얘기할 때 보통 '해발 몇m'라고 하는데 이곳이 그런 고도측정의 기준점이 되는 것같다.

육지에서 간월암 들어가는 부분 해안에 이 표지가 있다.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무학대사 아버지는 나라에 빚을 지고 도망다니니 포졸들이

무학대사 어머니를 대신 잡아가던중 갑자기 산기가 돌자 세상이 눈으로 덮힌 겨울이라 눈이 없는 한 곳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애기를 낳게 하고 옷가지로 덮어 놓고 그 어머니를 잡아 갔는데 이를 알게된 현감은 무학대사 어머니를 풀어주었고

아기를 덮어 둔 곳으로 달려온 어머니는 큰 학이 날개를 펴고 아기를 덮어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을 '무학'이라 지었고 그 고개 이름을 '학돌대'라 부르게 됐단다.

무학대사는 기울어져 가는 고려 국운을 짐작했고 함경도 고원 백연암에서 이성계에게 500일 기도를 올리게 하였는데

기도 마지막날 이성계의 써가래 3개를 짊어졌다는 꿈을 해몽하고 장차 새나라 왕이 될 것임을 짐작했다 한다.

한양에 터를 잡게 하였고 창여문이란 이름으로 지금의 경복궁을 28년간 지으시니

조선의 국운이 28대 왕으로 끝날 줄을 미리 짐작했던 것같다는 설도 전해진다.

간월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목이 해풍과 수많은 태풍을 견뎠다.

조선의 배불,억불 정책으로 간월암은 폐사 됐었다.그러던 것을 1941년에 안면면장 박동래와 만공선사가 중창하였고

만공선사는 조국 해방을 위한 1,000일 기도를 하였는데 천일 기도후 바로 광복을 맞았다고 하니 대단한 기운이 있는 절이다.

최근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법력을 얻었다고도 한다.

불교는 각 나라로 전파되면서 그나라 토속신앙과 많이 동화된 것같다.'산신당'이 절에 더러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간월도는 일몰 풍경과 달이 떠있는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단다.

 

불상보다 이런 산신령,용왕님 같은 상이나 초상화가 있는 것이 전통 사찰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다.

 

꽤 많은 동전이 방문객들의 기원을 담아 뿌려져 있다.

관광지에 이런 동전 기원이나 놀이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청소하는 사람 월급이 나온다고 하니

우리나라 백성들도 참 순진무구하고 소박하기도 하며 믿는 방법이 아직도 토속적이다.

방문자들의 기원을 담은 돌탑이 해안에 많이 쌓여있다.

간월암과 이어지는 이 육지의 끝은 대형 주차장이다.

간월암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계단

 

간월항은 천수만의 두 구역중 한 쪽의 입구다.

간월암을 보기위한 관광객들이 많았다.

주로 아파트 노인회등에서 온 노인분들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라 관광객이 적은 상태임에도

간월암에는 관광객들로 가득찼다.

간월암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따뜻한

둥글레 차를 한 잔씩 주고 있었다.

간월항 쪽에는 특산품 판매 코너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영화를 찍어도 아름다울 유채꽃밭이 간월도 들어가는 입구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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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5.20 12:11

    첫댓글 책을 발간하지.,.잘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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