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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교동도 여행기.
1.언제:2016.5.14
2.산행코스:교동대교->교동면사무소->연산군유배지->
화개약수터->화개산정상->화개사->
대룡시장->교동면사무소->강화군 길상면
인천 강화도 서북쪽에 교동도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옛부터 주변 바다의 조류가 급해 유배지로 이름 날렸을 만큼
한동안 닿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던 섬.
멀게만 느껴지던 교동도에 재작년 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접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연백평야까지 불과3.2km인 민통선 지역으로
다리를 건너려면 여전히 군 검문소에 신분증을 내보여야 합니다.
조선시대 당쟁에 희생된 정치인들이 도성과 멀리 떨어진
전라도 해남이나 제주 등지로 유배됐던 반면,
서울에서 가깝고 접근이 어려운 지리적 특성때문에 왕족들의 유배지로
한번 유배되면 다시는 살아서 나오기 힘들었다는 고립의 섬이었던
교동도를 지난 주말, 임야 매물 현장 답사를 겸해서
자동차를 타고 건넜습니다.
교동도 위치도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리는 필생의 숙원입니다.
육지와 떨어진 섬의 낙후와 불편을 해소하는데
다리만큼 필요한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를 잇는
이 교동연륙교는 총길이 3.44km로 총 9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2014.7.1일 정식 개통되었습니다.
오월의 눈부신 햇살이 찬란했던 미세먼지도 없던 화창한 날,
이곳 교동면사무소에서 산행 기점을 삼아
화개산으로 오릅니다.
화개산으로 오르는 황톳길에서 내려다보는
마을과 들녘이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에서 만난 조선시대 한증막입니다.
오늘날의 찜질방의 원조인 셈인데 옛 선조들도
한증막을 이용했다는 흔적입니다.
마른 소나무 가지를 태워 남은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올라앉아 땀을 내는 방식으로
화개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이 돌무덤은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1960년까지도 간간히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늘에 닿을 새'라는 의미로 '달을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강화 나들길의 교동코스 중 하나인 '다을새길'은
옛 지명 달을신의 소리음인 다을새의 이름을 따서 탄생했습니다.
'나들길'이란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1906년,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끊어진 길을 연결했습니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중략>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서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이 지금 가고있다
- 피천득,<오월>
오월 숲엔 연두색 새순들이 하루하루 총총해지고
부드러운 바람에 찰랑대며 찬란합니다.
신록으로 짙어지기 전의 이맘때쯤의 숲은,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환해지고 힐링이 되는 느낌입니다.
교동도는 연산군 유배지로 유명한 섬이기도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섬'으로 악명 높았다는데
유배당한 이들 대부분은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인조의 반정으로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은
이곳으로 유배된지 2달만에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고 합니다.
교동도에 다리가 생기기 전,
이곳 화개산에 오른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연산군 적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돌비석만 덩그러니 서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초가 황토집까지 지어놓았습니다.
유배 장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추정지로 거론되는 세곳 중 가장 유력하다고 평가되는
이곳에 빗돌을 세웠다고 합니다.
정확한 유배 지점은 아니지만 화개산에 막혀 어둑한 북서향 지형,
좌우로 우거진 울창한 수림 등이 '위리안치' 터로 삼았음직 합니다.
잎들이 무성한 오월의 숲이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연산군 하면 언뜻 떠오르는 캐릭터가 '폭군'이라는 것인데
조선조 27대 왕 중에서 반정으로 축출된 군왕은 광해군과 연산군 둘뿐입니다.
특히 연산군은 광해군과는 달리 무엇 하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 없는
그야말로 ‘폭군’의 전형으로 지금까지도 취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므로
그대로 믿을 것이 못되는지,연산군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역사가들 중심으로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나이 열아홉에 보위에 오른 연산이 재위 12년 만에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축출되어 하루아침에 귀양길에 올라
이곳 교동도에 유배되어 쓸쓸히 짧은 생을 마쳤다고
저기 서 있는 돌비석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전 시인이기도 했다는 연산군이 남긴 시 한편입니다.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人生如草露)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會合不多時)
연산군 유배지를 지나 완만한 산길을 따라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휴일임에도 인적은 드물었고 호젓했습니다.
뭐든 물어봐도 좋아,최대한 열심히 설명해줄게.
내 두 눈으로 무얼 보고 있는지,
어째서 내 심장이 고동치는지,
왜 내 육신은 대지에 뿌리박혀 있지 않은지.
관목, 잡목숲, 풀밭, 골풀아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는 건 전부 혼잣말이야.
너희들은 그것을 듣지도 않고
너희들과의 대화는 꼭 필요한데 할 수가 없구나.
바쁜 생활에 쫓기고,
그리고 언제까지나 미뤄진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詩, <식물들의 침묵>중
보물주머니라는 꽃말을 가진 야생화 현호색 입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義)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탑니다.
- 한용운,<나의 길>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 오세영,<양귀비꽃>중
오월
온통
세상은 사뿐거리는 봄 처녀의 걸음
치맛자락의 울렁이는 유혹인데
나는 창가의 모과처럼
향기롭게 썩어가는 오후.
양귀비의 입술인 양
타오르는 꽃들이여
오월의 한스러운 꽃들이여
그대들이 뿜어낸 치명적인 빛깔들
숨 막히듯 밀려드는 매혹의 공기들
어느 것 하나도 너희 곁에 머물지 못하고
춤추는 나비들의 날갯짓 속으로
꿀만 탐하는 벌들의 입술 위로
빨려들어갈 뿐.
- 최인호,<부유하는 단어들>에서
오월의 숲은 온갖 살아있는 것들의 기척으로 가득합니다.
따스한 햇살에 생기 넘쳐보이는 돈나물들이
입가에 군침을 돌게 합니다.
화개산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은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집니다.
산 중턱을 오르자 드넓은 교동평야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강화도와 석모도가 간척으로 현재의 해안선을 가졌듯이,
교동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갯벌과 바다를 메워
넓은 농경지를 얻었습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땅 황해도 연백군과 마주보는 최전방 섬이기도 합니다.
화개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 한려해상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으로 펼쳐집니다.
건너편 지척에 볼음도,주문도,아차도 등 서해 섬들이
점점이 떠있고 바로 아래 읍내리 마을과 남산포구도 아득합니다.
화개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지척에 보이는 섬은
석모도 상주산입니다.
화개산 정상에 서서 동쪽방향을 봅니다.
강화 본섬의 별립산이 보이고 그 아래 창후리 포구가 보입니다.
다리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저곳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타고
이곳 교동도 월선포구로 건너왔습니다.
발 아래가 고구저수지입니다.
그 너머로 서해, 다시 그 너머가 북한 땅(황해남도 연안군)입니다.
화개산 바로 아래 대룡리와 지석리 사이에 들판이 광할합니다.
간척으로 얻은 저 농경지로 교동도는 전국에서
가구당 경작면적이 가장 많은 곳이 되었습니다.
교동도 쌀이 맛좋고 유명할 정도로 교동도는 섬이면서도
주민 대부분이 고기잡이가 아닌 농업에 종하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드넓은 들판을 경작하기 위해
바다를 막아 만든 큰 인공저수지가 많습니다.
고구저수지는 농번기를 맞아 한가득 물을 담았습니다.
바다 건너 육지가 북녘땅 황해남도 연안군이며
날씨가 더 좋은날은 개성 송악산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드넓은 교동평야입니다.
교동도에는 논이 약 2,640만 평방미터,
밭이 660만 평방미터로 모두 3,300만여 평방미터의 농경지가 자리합니다.
간척사업을 통해서 생긴 농경지로 강화도에서 경작지 면적이
가장 넓고,호당 경지면적도 가장 넓습니다.
교동도는 쌀 등 농작물이 잘 되기로 유명합니다.
지정학적으로 한강,임진강,예성강의 하구에 위치한 까닭에
기름진 퇴적토가 매년 쌓였기 때문이며,
별다른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이라 현재까지도
알아주는 농작물이 매년 생산되고 있습니다.
'교동에 풍년이 들면 교동사람들은 13년을 먹고
강화도 전체 사람들은 3년을 먹고도 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동도는 비옥한 섬입니다.
화개산에서 내려다보는 교동도는 고즈넉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가만히 앉아 섬의 풍경에 잠겨 있노라면'쉼'이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서해 5도보다 북에 가까워 개발 대상에서 제외된 이 섬은
지금에 와서야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한적함으로
요즘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여행 명소 중 한곳이되었습니다.
밀물처럼 몰려와 가슴 흔들어대던 봄꽃들이 진 숲엔
어느새 잎들이 무성합니다.
녹음을 스쳐오는 청아한 바람에 나뭇잎들은 생기 발랄했고
오후의 눈부신 햇살이 푸르름을 더했습니다.
바로 아래 대룡시장과 그 옆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교동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한
교동면사무소가 보입니다.
교동도는 강화 본섬의 약 1/5 정도 크기지만,
가깝게는 6.25 전쟁부터 멀게는 삼국시대의 역사가 담겨진 곳입니다.
현재도 북한과 인접해 해상 및 수도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는데,광개토대왕비에 나온 관미성이 바로 이곳 교동도입니다.
관미성은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과 서해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지역이었습니다.
'고요한 후에야 평안할 수 있고,
평안한 후에야 생각할 수 있다.'
<대학>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상념이 나뭇잎처럼 뒤집어 진다
전위(前衛)에 선 나뭇가지들은 허공을 향해 발을 딛으며
몹시 흔들린다 세상은 없는 것을 향해 발기한다
그대 자신을 항아리 속에 가두지 말라
때로는 결혼이나 도덕 같은 거 헌신짝이듯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일부일처제는 일종의 종교, 불륜은 약속어음이며
도덕이란 면죄부는 얼마나 과거를 지향하는가
문제는 내일을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젖은 구름이 날개를 턴다
그 속에서 번개가 인다 물 속의 불, 극으로부터 생명이
나온다 여자가 남자를 낳고 석유나 석탄, 부패는 힘이다
썩지 않는 자는 기다리지 않는 자이다
그대 젓갈처럼 썩어 문드러지라 길 옆에 쥐 한 마리 죽어 있다
끓는 구더기들을 더럽다고 느끼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편견이란 마약 같은 것, 나는 왜 새가 운다고 말했던가
졸참나무 우듬지에 핀 까마귀가 말한다 푸드득 내려와
구더기를 쫀다
- 이대흠 시집 < 상처가 나를 살린다 >에서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등산로는 호젓하기만 했고
이따금 들려오는 대북 방송 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만이
숲속의 정적을 깼습니다.
석단만 남아있는 화개산 봉수대입니다.
강화도 남쪽 덕산(덕정산)봉수대에서 연락을 받아
다시 강화도 북쪽 봉천산 봉수대로 전했다고 합니다.
하산길 숲길에서 보이는 고구저수지.
생기발랄한 연둣빛 나뭇잎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가치입니다.
이따금 불어오는 신록의 숲을 스쳐온 청아한 바람에 마음을 씻고
스마트폰에 시달려 탁해진 눈을 정화시킵니다.
화개산 정상에서 화개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있는 이정표입니다.
화개산 산행코스는 비교적 완만하고 거리도 길지않아
부담없이 오르기 좋은 산이었습니다.
화려하게 붉던
4월은 가고
연두색 치마 펄럭이듯
신록의 춤이 곱다
젓 냄새 엄마 품의
여린 이파리들
촉촉함에 윤이 나고
맑은 바람 숨 쉰다
- 윤의섭,<신록강산> 중
고려시대 때 창건한 절로 추정되는 화개사는
절 마당 한켠에 보호수 한그루가 이 절의 역사를 말하는 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 김용택<그랬다지요>
"살아 있는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는 것,
행복한 자기 망각 가운데에서 자연의 총체 안으로 되돌아 가는 것,
그것은 사유와 환희의 정점이자
성스러운 산봉우리이며 영원한 휴식의 장소"
- 프리드리히 휠덜린,<히페리온>에서.
봄이 고여서
산에 들에 물이 오르더라
풀과 나무에 연초록
연초록이 번지더라
- 이문재 , <봄이고인다> 부분
화개사를 지나 교동면사무소가 가까워오자
대룡시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교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곳 대룡시장은
교동면사무소 바로 아래에 터잡았습니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에는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는
기억과 추억을 일깨워주는 섬이기도 했습니다.
격세지감
시간이 멈춘 듯한 대룡시장은
한 때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습니다.
다리가 놓였어도 교동도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실향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교동도는 피난민의 애환이 깊게 스며든 곳입니다.
이곳에는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3만여 명에 달했다합니다.
현재 교동도 인구가 3천여 명인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피난민 규모는 10배 이상입니다.
피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생계를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시장을 열었는데
이곳이 바로 대룡시장입니다.
대룡시장 골목길에 있는 교동다방에서
진한 쌍화차 한잔으로 옛 추억에 잠시 잠깁니다.
휴일 한낮임에도 한적함이 묻어나는
대룡시장의 뒤안길을 둘러보고 뭍으로 향합니다.
다리가 놓여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었지만
바쁜 일상에 지칠 때마다 한번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곳 교동도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교동도를 나와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위치하는
친구 집에 잠시 들러갑니다.
몇년 전 척박한 땅을 매수하여 이곳으로 귀농을 한 이 친구는
그동안 원주민들의 외지인들에 대한 텃세와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집한채를 지어 텃밭을 옥토로 일궈냈습니다.
남향의 소박한 주택 앞을 잔디마당을 가꿨고
마당 한켠 양지바른 곳에 강아지들의 황토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옆 텃밭에는 감자와 고구마 고추 상추등을 심었습니다.
땅 경계로 울타리 삼아 매실나무와 오가피 나무,
화살나무와 포도나무등 유실수등을 식재했습니다.
전체 면적은 약 460여평이며 주택 포함하여 매매가격은 3억2천만원이며
텃밭만 200평 분할(건축허가 득해주는 조건)하여 1억3천만원에
매매 가능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상담 문의 환영합니다.
(윤선한 공인중개사 010-5277-2461)
오월,연두빛 신록이 찬란했던 화개산과
시간마저 느리게 흐른다는 옛 '시장통' 모습 오롯이 남아있는
대룡시장의 뒤안길을 거닐며
무심코 지나가는 봄날의 끝자락에서 한나절 휴일을 즐겼습니다.
교동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섬이었습니다.
왕족의 유배지로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과 임해군, 능창대군,
중종 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까지 모두 이곳으로 유배와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승자들의 기록은 그져 기록일 뿐,그것이 곧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교동도에 유배된 많은 왕족들의 행적에 대한
세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그 저간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뭍에 남기고 떠나 온 가족들에 대한 애뜻한 그리움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절절함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오롯이 섬에 배어있는 것같았습니다.
잡다한 일상에 매몰되어 봄꽃 구경 제대로 한번 못했는데
어느새 봄날이 다 지나갔습니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는 시기,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여유를 가져야겠습니다.
-끝.
글,사진:윤선한
"최대의 것에도 위압됨이 없으며
최소의 것에서도 기쁨을 찾아낸다.
이것이 곧 신성이다."
- 프리드리히 휠덜린,<히페리온>첫구절.
첫댓글 오랫만입니다
선한씨가 그동안 왜케 나들이한번 없이 조용하더니만 일을 빌어 그래도 짬을 내셨네요..
잘 지내고계신거죠?
글을 읽어가는 속도가 정말 오랜시간이 걸리더군요..왜냐면, 많은 자연과 호흡하는 싯구절들이 눈을 멈추게하고 마음에 담아 또 한번 느끼게 합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문학을 조금이나마 힐링하고 갑니다.
좋은곳은 같이 가는 추진을 한번하시자구요~~ 주변인도 잘 계신거죠?
오랜만입니다.
처자식 멕여 살리려믄 이제 주말에도 일을 해야한답니다.^^
일정 잘 맞춰 도봉산 오봉이나 북한산 노적봉 등반 추진해보지요.
항상 쥔장의 시선을 따라 함께 여행한 것같은...
소개해주는 글들도 좋지만 특히 쥔장의 글빨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독서력도 정말 대단하시구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건투를 빕니다.
교동 화계산의 아름다운 산책로와 연초록이 어우러진 오월의 향기가 나네요.
삼복더위에 시원함으로 다가와 지나간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많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