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동녘이야기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레져 및 여행산책 스크랩 화폐의 변천
수니짱 추천 0 조회 113 07.09.16 07: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막론하고 돈(화폐)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생활수단으로, 때로는 애증(愛憎)의 대상으로 인류역사와 함께 존재하여 왔다. 물론 인류 최초의 화폐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은행권 또는 주화와 같은 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교환의 매개가 가능할 정도의 이동성과 내구성을 지닌 직물, 곡물, 농기구 등이 그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이를 물품화폐(物品貨幣)라 한다. 그후 적은 양으로도 고유의 가치를 가지면서 보관, 휴대 및 운반면에서 편리한 금, 은, 동 등의 금속이 화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를 금속화폐(金屬貨幣)라 한다.

 

물품화폐와 금속화폐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재가치(素材價値)가 있어 어느 누구의 지급보증이나 유통을 위한 법적 강제력이 수반되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금속화폐의 주조권을 군주 등 국가권력이 소유하게 되면서 주조차익(鑄造差益)을 얻을 목적으로 귀금속 함유량을 감소시켜 화폐의 소재가치가 액면가치보다 낮은 주화를 제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화폐의 소재가치가 액면가치보다 낮은 화폐를 명목화폐(名目貨幣)라 하는데 오늘날의 화폐는 명목화폐가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은행권(지폐)이다.

물품화폐, 금속화폐 그리고 명목화폐로 발달해온 화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은행권과 주화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나 최근에는 정보통신 및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신용카드, 전자 자금이체 등 현금대체 결제수단의 이용이 더욱 보편화되면서 머지 않아 전자화폐(電子貨幣)가 현재의 은행권과 주화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여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자화폐가 화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미래에 일반대중이 애용하는 결제수단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일반대중의 확고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자화폐는 아직까지 위조 및 도용(盜用) 등 보안상의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돈 세탁 등 범죄에의 이용 가능성, 국제간 자금이동 파악의 곤란 및 개인정보의 집적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 등 아직도 해결하여야 할 문제점이 많이 남아있다.

 

아울러 인간의 성향은 원래 손에 잡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형의 전자화폐보다는 유형의 현금화폐에 대한 매력을 더 크게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점에서 은행권과 주화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의 중요한 지급결제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화폐의 발전


특 징

종 류

물품화폐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교환의 매개가 가능할 정도의 이동성과 내구성 보유 직물, 곡물, 농기구

금속화폐

적은 양으로도 고유의 가치를 가지면서 보관, 휴대 및 운반면에서 편리 금화, 은화, 동화 등

명목화폐

화폐의 소재가치가 액면가치보다 낮은 화폐 은행권, 주화

전자화폐

IC칩이 내장된 플라스틱 카드나 PC 등 전자적 매체에 화폐가치를 전자기호로 저장한 화폐 IC카드형(몬덱스,비자캐시등), 네트워크형(E-캐시,사이버캐시등)



 

그림으로 보는 화폐역사

 

선사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동굴이나 물가에 살면서 수렵과 어로 등으로 극히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하였다고 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의 유적 속의 부조(RELIEF)나 벽화에 그려진 농부, 수렵인, 어부들의 생활 모습에서 당시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는 생활 수단으로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5세기 바빌로니아(BABYLONIA,우루 3왕조)에서는 금,은,합금의 천연물을 물품화폐 또는 평량화폐로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으며,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제각기 다른 물건으로 화폐를 대용하는 물품화폐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동양에 있어서는 기원전 16-15세기 중국에서 조개를 물품화폐로 사용하여오다 춘추시대인 기원전 8-7세기경 교역의 발달을 배경으로 하여 농기구,칼 등을 본딴 포전과 도전을 주조하였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원형방공의 엽전을 중국 전국토에 유통시켰으며 그 형태는 그 후 약 2000년간 답습하면서 동아시아의 중국 문화권에 전파되었다.

 

한편 서양에서는 기원전 7세기 지금의 터키인 리디아에서 처음 금속화폐가 만들어졌다.일렉트럼 코인(ELECTRUM COIN)이라고 불리워지는 천연의 금과 은의 합금인 이 화폐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화폐로 동물이 각인되었으며 그 형태는 그리이스,로마로 전파되었다.

패화

 

기원전 16세기경 조개 껍질이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되어 중요한 화폐의 기능을 다하였다.

이 패화의 소재로는 열대지방의 해안에서 서식하는 자안패로서, 중국 근해에서는 많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극히 귀중하게 여겨졌으며, 중국경제규모의 팽창과 더불어 천연패화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짐승의 뼈나 돌, 금속등으로 만든 패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화폐나 경제 관계가 있는 한자에 패자가 많이 쓰여지고 있는것을 보아도 중국에서 패화가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폐


광활한 중국 내륙지방에서는 생선이 귀해 건어류가 값진 상품으로서 선물이나 지불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귀한 물건모양을 따서 화폐로 만드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사회관습의 영향을 받아서 청동 인조건어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경폐

 

주왕조시대는 예악을 중시하였으므로 청동으로 제례악기인 경의 모양을 본딴 화폐가 사용되었다.

이 악기는 서로 다른 크기의 청동 조각을 달아 놓고 두드려 소리를 내는 것으로서 경의 한 형태로 우리나라 고궁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이 악기에 붙어 있는 청동조각이 화폐로 통용되었으며,이후 그 모양을 본딴 청동화폐가 나타났다.

 


기타 실물형 화폐

물자가 귀했던 고대에는 화살촉이나 귀걸이 등 무엇이나 영구성이 있고 쓰임새가 있는 물건이면 가치를 인정받아 지불수단으로 사용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금속제품은 구하기도 어렵고,장기간 보유하고 있어도 상하거나 훼손되지 않는 장점이 있어 화폐역할을 하기는 안성맞춤이었다.

포전

 

포전은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동안 주왕실 및 한나라, 위나라, 송나라 등 농경이 주산업인 중원지방에서 주조되어 중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다.

포전이 발달과정에서 처음에는 실제 농구대로 실물을 충실히 따랐으나 점차적으로 단순화되어 전국시대 말기에는 실제 농기구 모양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양으로 변모되었다.

도전

 

칼모양을 본따 만든 고대중국의 도전은 춘추전국시대에 융성했던 제나라를 중심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도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나라 산동성의 제도(685.B.C)를 비롯하여 연나라의 평명지방에서 주조된 연도, 명도전(450~350.B.C), 조나라의 조도(320~220.B.C) 등이며 제도에는 제나라의 법정통화라는 뜻의 제법화의 문자가 고서체로 양각되어 있어 도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

기원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는 열국을 평정 하므로서 400여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게 하였으며 행정 체제를 중앙집권 체제로 개혁하는 한편, 당시까지 지역별로 무질서하게 시행하던 각종제도, 도량형 등을 통일시켰다.

이에 따라 새로운 화폐체계가 확립되어 원형방공의 반량화로 대체하여 2,000여년 동안 이어 내려온 중국 화폐제도의 기본골격이 되어 중국문화권인 동남아에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그리이스의 코인


기원전 6세기 경부터 만들어진 그리이스의 코인은 회고적인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높은 예술성을 갖추고 있으며 서양 코인의 원형이 되기도 하였다.

호박금[금과 은의 천연 합금]이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들 코인은 초기에는 한쪽 면에만 조각되어 개개의 배지로서 쓰였다. 그후 그리스 신화의 여러신들, 성조(올빼미), 곡식의 이삭, 지배자의 얼굴들이 양면에 새겨졌고, 만든 사람의 싸인이 새겨진 것도 있다. 헬레니즘기에는 각국 왕조 지배자의 용맹함을 찬양한 코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로마의 코인


그리이스 지역에서 시작된 서양화폐의 역사는 대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인 헬레니스틱 왕국들의 시대를 거쳐 로마로 이어지게 된다.

고대 로마의 화폐는 그리이스의 연장에 불과했으나 서기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화폐 제도를 확립한 이후로 황제마다 자신의 초상을 주화에 넣는 특유의 화폐문화를 이루었다.

로마는 영토가 넓어 지역마다 화폐의 종류나 액면이 조금씩 달랐지만 이탈리아 반도 중심의 본국에서는 금화인 1아우제우스 및 1/2아우제우스, 은화로는 1데나리우스와 1/2데나리우스, 동화로는 두폰디우스, 콰드란 등의 다양한 액면과 소재의 화폐들이 발행되었다.


우리나라


우리민족은 고조선 시대에 이미 자모전을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삼한시대에 와서는 철이 중요한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금속을 소재로한 평량화폐 내지 물품화폐가 유통되었으며, 특히 동 옥저에서는 금,은 무문전이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야금술을 비롯하여 수공업 기술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신라시대 고분에서 많은 금 세공품이 출토된 사실만 보더라도 금의 유통량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금, 은이 칭량화폐의 기능을 다하였던 것이지만, 그것이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보편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는 돈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신라국전 무문"이라든가, 그밖의 기록이 있는것을 보면 신라에서는 금,은을 소재로한 각각 두종류의 무문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는 고대의 찬란한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나 화폐문화는 기록으로만 전해오고 있을 뿐 당시 유통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