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밑에 어쩌다가 보니 올해 달력 구하는 일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이야 휴대폰에 컴퓨터에... 손가락만 움직이면 날짜 확인이 가능하니
굳이 달력을 구해 달지 않아도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지요.
그래 저희 집에는 여태 새 달력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쬐끔은 불편한지라 오늘은 꼭 달력을 해결하리라 마음을 먹고
책장 윗칸에 모아둔 지난 달력들을 죄 끄집어내렸습니다.
참고로 저는 지난 달력들도 대체로 모아둡니다.
달력들은 특히 종이 질이 좋기 때문에 뒷면을 밑그림 연습장으로 써도 좋고,
두께가 있어 부침개 부칠 때 소쿠리에 받쳐 기름 빼내는 데 쓰기에도 아주 딱이거든요.^^
물론 이런 달력들은 크기나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아예 사용조차 않은 새것들의 경우이고,
사용한 달력 중에도 유난히 마음에 드는 것은 버리지 않고 따로 보관을 해 두는데,
이것들은 때에 따라 되살려 쓰기 위한 용도로 그리합니다.
그 중고 달력 중에서 최다 되살려 쓰기를 한 고물달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래의 '이철수 판화달력'입니다.
1996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장장 5년 동안 재활용을 했습니다.- -;;
오늘 달력보따리를 풀어본 김에 그 고물달력 한번 소개합지요.^^
1995년 세밑,
인사동에서 크기와 꾸밈새와 내용 모두 제 취향에 꼭 맞는 이 달력을 발견한 순간,
거금 6만원을 내고 왕창 10권을 사 버렸습니다.
9권은 주변 지인들께 새해 선물로 드렸는데, 엄청들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하나는 우리집 화장실 문 안쪽에 걸었습니다.
(우리집 식구들은 화장실에서 무지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욤.- -;;;)
그로부터 재활용된 흔적들입니다.
1997년엔 날짜 부분만 가릴 수 있는 작은 종이에 새 연도와 날짜를 같이 써 붙여 사용했구요,
1998년엔 97년도의 자국을 커버할 수 있는 크기의 종이에 날짜만 써서 붙이고,
새 연도는 위에서 보다싶이 달력 여백에 그대로 써 넣어 또 재활용을 했습니다.
('쓴 차 한잔이 저 홀로 식었다. 그도 마음! 차 한잔/ 철수 95' 라는 이철수씨의 글귀에 빗대어
'맑은 물 한 바가지가 똥 한 덩어리 데리고 흘러간다. 그도 마음...영희 96/ 똥 한 덩어리'
라고 쓴 것은 96년 9월 어느날 응가를 보던 ㅇㄱ이가 변비의 고통을 잊어보려고 쓴 낙서이고,
'9월, 간 곳도 없는데 다 지나가 버렸다. 그에게도 마음이 있을까?'라고 쓴 것은
98년 고딩 3년생이던 딸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자신의 절박함을 토로한 낙서랍니다...ㅋㅋ)
(딸아이와 저는 글씨체가 비슷합니다)
1999년도엔 달력의 뒷면에 아예 새로운 꾸밈을 해 보았습니다.
6월, 꽃이 지는 계절에 맞춰 이형기의 '낙화'를 연필로 써 두고
응가 보는 내내 음미하면서리....
(딸아이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우리 시를 외우게 되기를 바랬다는...^^
2000년, 마지막으로 되살려 쓴 달력의 모양새입니다.
그동안의 붙여 쓴 자국들을 완전히 커버하기 위해
원고지 한 장을 거의 다 사용했습니다.
위에 방점 찍힌 11, 12, 13일이 아마도 2000년도의 한가위 연휴였던 것 같군요.
팁으로 낙서가 제일 많은 10월을 공개합니다.^^
5년간 재활용을 하면서 앞면은 4번이나 사용했기 때문에
솔직히 각 낙서가 씌어진 연도는 저도 잘 분간이 안되는군요.^^
딸아이 글씹니다. 아마도 화장실에서 무지 심심했나 봅니다.ㅋㅋ
저랑 딸아이가 주고받은 낙서인데,
아마 날짜도 다르고 연도도 다를 겁니다.
기왕에 까발리기로 한 것이니 낙서 중에 하나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21일 마꼬출산예정일---안 낳기만 했단 봐라!> --제 글씹니다.
<마꼬 왈, 아나, 배 째라 배 째!> --딸애 글씹니다.
(마꼬는 그 당시 우리집의 생구 강아지 였는데 지금은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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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력 들추어 보며 한참을 즐겁게 보내고 나서
대망의 2007년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대충 간단하게, 작년에 쓰던 것을 그대로....ㅋㅋ
김목수 방에 걸어 둔 연꽃달력입니다.
겨우 날짜 부분만 새로 써 넣은..... 날림으로 급조했습니다.- -;;;
소석 선생의 한국화 달력은 아주 앙징맞은 크기에
그림도 좋고, 달력의 여백도 많아 잘 보관하면서
앞으로 몇 번은 더 되살려 쓰게 될 것 같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올해는 첫장을 이렇게 조잡하게 꾸며서
제 방 책상 옆에 걸었습니다.- -;;;;;;;;;;;;;;;;;
딸아이는 작년에 쓰던 명화 달력 위에다 글자만 바꿔 넣는 기지를 발휘했더군요.
(날짜가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는 데다 인쇄가 희미해서 가능했다는군요...^^)
셋 다 대충 조잡하고 꾸지리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시간에 쫓기는 있는 상황인지라 1월은 이렇게 때우고,
2월부터 고물쟁이의 솜씨를 함 부려볼까....마음을 먹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올핸 계속 지금의 방법을 고수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요.
점점 무색 무취 무감이 되어간다고나 할까요.....^^
이상 달력 이야기 끝~
첫댓글 요즘 달력업계가 어렵다 그러던데 그게 원경님 때문이라는걸 이제사 알았슴다.....그래도 신선한 느낌은 지울수가 없내요...
앗,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아니, 벌써 일어나신 건가요? 아무튼 이런 야심한 시간에 만나니 갑자기 동지의식이 드는군요.- -;;
일부 달력사진이 배꼽처리 되어 유감이지만, 참 대~단 하십니다... 1) 얼마나 평소 덕을 못쌓고 사셨기에 변변찮은 달력하나 안들어 오는지. 2) 암만 자신은 재활용 이라는 전 지구적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고 항변할 지 모르나, 골콤 궁상떨고 사시면 갱제가 안돌아 가고... 3) 자신이야 재미있고 좋아서 라서 항변할 지 모르나 그달력 일년동안 치다보고 사실 김목수님은 얼마나 괴로울꼬... 진 안텨도 되죠??
1)커다랗고 얼덜룩한 그림달력은 몇 장 들어왔는데 취향이 아니라서 부침개 깔개용으로 넘겼음. 2)맘에만 들면 달력을 6만원어치도 사는 사람한테 무신.... 3)김목수는 한술 더 떠 아예 달력이 필요없다는...ㅋㅋ // 제 소원이 연말에 제발 좀 한가해져서 독창적인 달력을 제 손으로 만들어 사랑 주신 지인들께 선물 좀 해 보는 것인데요, 2008년엔 그 소원을 꼭 함 실천해 보고 싶군요.^^(그렇다고 지나친 아부는 사양함다... ㅋㅋ)
원경님과 같은 분 또 어디가서 찾아볼까나~
난생 첨 접해 보는 아이디어입니다...별 게 다 재활용이 됩니다그려...역쉬 떵야그가 인상 깊었습니다.^^ 제 컴만 문젠가요? 달력 몇 장이 배꼽으로... 안습..ㅜ,.ㅜ
이제 잘 보이능교? 지난밤 비몽사몽간에 올리느라 몇 장 복사를 해서 수정을 했더니만 바닷물 건너가기에는 성능이 좀 떨어졌던가 보옵니다.ㅜ.ㅜ
?임니다^~* 역쒸 누야가 ?오~!! 따님 방 벽에 고문과 영문이 사이좋게 붙어 지냅니다.
역쉬~~ 원경님의 인생은 통채로 야술이십니다.. 2008년엔 원경님의 소원이 꼭 실천으로 이루어지시길--()--
'야술=야한 술수'로 읽으면 어쩌라고...ㅜ.ㅜ 그리고 참, 락미 개업식 때 제가 선물해드렸던 소석선생 달력, 아직 안 버렸으면 꼭 우리집에 갖다 버려주시구려. 진짜루....흐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