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가는 지난 1월 27일 화요일 찾은 길은 장성새재 옛길 따라 몽계폭포를 거쳐 백양사 가는 길이었습니다. 걷는 길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장성새재 옛길, 문득 문경새재를 떠올리면서 호남과 영남의 새재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장산국립공원 장성새재는 입암산과 백암산 자락 사이로 넘어가며, 전남 장성군과 전북 정읍시를 잇는 옛 고갯길을 복원한 길입니다. ‘새재’라는 이름은 이 고개가 새의 목처럼 잘록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숲이 우거져 하늘에 뜬 달도 숨어 안 보일 정도로 깊은 고개란 뜻으로, ‘월은치(月隱峙)’라고도 불렸습니다.
같은 ‘새재’지만 경상도 땅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의 순우리말 표현이고 관로(官路)였습니다. 반면, 호남의 장성새재는 지름길 혹은 샛길의 뜻이 강합니다. 문경새재가 거칠고 험한 남성의 길(땅)이라면, 장성새재는 부드러운 여성의 길(땅)처럼 느껴집니다.
부드러운, 호남의 넉넉한 인심을 반영하듯 편안한 길...
이 길은 이 지역에 살던 옛 사람들이 장을 보거나 한양으로 과거(科擧) 보러 갈 때 지름길로 이용했던 길로, 한양으로 가는 삼남대로인 갈재(노령(蘆嶺))를 이용하기 곤란한 사람들도 관아의 시선을 피해 비밀리 넘던 숨은 길이었다고 합니다. 정감 넘치는 이 길은 1960년대에 군사도로로 사용되면서 길 폭을 넓혀 탱크가 다녔다고 하는데, 1970년대 이후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2004년부터 복원사업을 실시해 지금은 옛 오솔길로 우리 곁에 되돌아 왔습니다.
이 길은 정읍 백학마을 쪽 입암공원지킴터에서 걷기 시작합니다. 길은 완만한 능선으로 여기가 정말 고갯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순합니다. 한적한 산길을 힘들이지 않고 장성새재까지 오릅니다. 장성새재 정상 부근은 넓은 분지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때까지 주막도 있었고, 10여 가구가 살면서 밭농사도 짓고, 근처 장터에 땔감도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돌담 흔적이 분명한 돌무더기, 주춧돌 흔적, 감나무 뽕나무 탱자나무들이 있는 모습에서 옛 집터의 흔적을 봅니다.
이후 새재 갈림길까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원시림을 자랑합니다. 새재갈림길 이후도 넓고 완만한 흙길입니다. 새재갈림길에서 청정한 계곡길을 물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숲체험장을 만납니다. 전남대학교가 1960년대 조성한 삼나무 숲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숲에서 삼림욕도 즐겨봅니다.
전남대가 조성한 삼나무숲
다시 길을 되돌아와 장성 주민들이 외지인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남창계곡을 걸어 장성새재길을 마무리합니다. 단풍철에 내장사 지역이 인파로 북적여도 이 길은 한적한 숲길을 내주지만, 겨울 설경으로도 걷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고 합니다.
장성새재는 숲길과 함께 계곡이 조화를 이루다가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가르는 몽계폭포에 이르러 절정에 달합니다. 한겨울에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호호탕탕 물길을 내립니다. 장성새재를 거닐다가 몽계폭포를 보는 순간 몽유도원도가 떠오릅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의 기세로 장관을 이룰 것 같은, 깊은 산에서 보기 드문 장엄한 폭포입니다.
몽계폭포의 위용
몽계폭포를 본 것만 해도 행운인데 천년고찰 백양사를 들른 것 또한 행운이었습니다. 백양사가 위치한 내장산국립공원은 내장산과 동쪽의 백암산(白巖山), 서쪽의 입암산(笠岩山) 3개 산을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장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8경 중 하나이고, ‘남금강(南金剛)’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장산은 계곡과 산세가 마치 양의 내장과 닮았다고도 하고,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여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들어간 것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대사찰 백양사는 내장산 가인봉과 백암산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백암사, 정토사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백암산고불총림백양사, 천년고찰의 위용
거기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오랜 수행으로 명망 높은 스님이 이 절 약사암에서 불경을 외웠는데, 그 청아한 소리에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답니다.
어느 날 백암산 골짜기에서 하얀 양 한 마리가 내려와 계곡 바위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고, 스님이 불경을 외울 때마다 백양이 내려와 가만히 듣고 있다 불경이 끝나면 조용히 일어나 산으로 돌아가곤 했답니다. 그러던 날 밤 스님의 꿈에 그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전생에 죄를 짓고 양으로 태어났으나, 스님의 불경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하고 절을 올렸답니다.
다음날 그 양이 불경 소리를 듣던 자리에 죽어 있어,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바꿔 불렀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백양사 약사암 벽화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이라 말들 하지만, 한 겨울 장성새재와 백양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가을 단풍의 아이콘이 된 백양사 내장산이 아닌 한겨울에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장성새재 옛길과 몽계폭포, 그리고 백양사를 찾은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이 내렸으면 더 멋지겟지만 그런 마음조차 부질없게 만드는 백양사의 경건 장엄한 기상은 마음마저 맑게 해주더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을 아닌 한여름에 장성새재 옛길을 다시 걷고자 합니다. 여름의 그 길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 이상의 내용은 여행도보 장성새재 옛길 안내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정읍 백학마을 쪽 입암공원지킴터에서 시작
입구는 평범, 소박하지만...
첫 인상에 속지 말라는 것 처럼 슬슬 반전이 시작됩니다.
한겨울임에도 풍부한 수량, 울창한 산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겟죠.
예전 군사도로의 흔적. 새재=사이길 규모 답지 않은 넓은 길
그늘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있지만, 남도에도 눈이 안내려 겨울가뭄이 극심하네요.
기막힌 길의 시작입니다. 장성새재 옛길,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인 곳입니다.
남창골=남창계곡으로 갑니다.
달이 숨어 안보일 정도로 깊은 고개... 한여름에 오고 싶은 길입니다.
수량이 풍부한 계곡...
해발 379m 비교적 높은 지대인데 계곡과 함게 걷습니다.
대나무밭 사이로 걸어갑니다.
삼나무숲 체험장 가는 길
새도 쉬어가는 고개 '장성새재'... 설명문이 미흡하네요. 설명문 중 틀린 부분을 찾아보세요~~ 새도 쉬어가는 길이라면서 샛길(間路)라는 것은 어색하죠.
예전 군사도로로 활용된 된 길. 그래서 잘 정비된 길.
전남대 장성학술림 표지가 보입니다.
만추의 숲길을 걷다가...
삼나무숲길로 들어갑니다.
겨울철이라 입산금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몽계폭포 가는 길..절경은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랍니다.
몽계폭포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몽계폭포 설명문..폭포를 보는 순간 이런 설명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한여름 장마철에 오고싶네요.
여기서 버스를 타고 백양사로 이동합니다.
백양사 입구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백양사 구경을 합니다.
내장산국립공원 설명문
한겨울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 그래도 마음을 비추고 비우고자...
백양사 입구... 오래된 길참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어쩌면 속세를 건너는 중인지도....
백양사 쌍계루. 가을이면 대표적인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눈도 없는 겨울이라...
조계종 5대총림 중 하나인 고불총림 백양사
백암산을 배경으로...
백양사 대웅전 입구에는 용 형상의 나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잇는 형상이지만 뿔이 위치가 어정쩡. 뿔을 집어 넣은 것은 전형적인 '사족'의 느낌. 마음을 비우라는 도량(道場)에서도 저런 불필요한 장식을 왜 하는지 의문이...
백암산을 배경으로 한 백양사 대웅전...
백양사 8층석탑. 탑돌이로 유명한 곳.
기회가 되면 백양사 주변도 걷고 싶어서...
백양사를 내려오는 길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 단체 개인사진입니다.
전부 환한 웃음입니다.
우리길 고운걸음은 항상 '맑음'입니다.
겨울산행, 몸을 풀어야죠. 휘바람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수량이 많은 계곡을 건넙니다.
힘차게~~
하치님 패밀리~~ 과거 일진회 같았음.
다리위에서...
에비앙님의 위용
후미를 담당하신 매봉님과 요산님
우리길 고운걸음의 미래이자 주역~~
고운걸음의 저력이자 버팀목~~
풍소님과 옆지기님~
어느 분이 소녀시대라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맞고요~
루시아님
실비아님
에메랄드님
맑음님
형중사랑님
사진모델의 달인 그래이거다님
맥반석 찐계란의 달인 방글이님
폰카 편집의 달인 산산님~
홍콩배우이자 폰카 달인을 넘어 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이백님
순간 포착의 달인 붕새님
후기 댓글의 여왕~ 에비앙님
고운길 분위기의 달인 하치님. 삼족오님과 한판 붙으면 누가 이길지 모름~~
즐거우셨죠~
행복하셨죠~~
좋은 길 열어주신 그린비님과 수고해주신 정든길님 에비앙님께 감사드립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첫댓글 나에게 딱 마춤코스같은 길이었지요.
좋은길에 동행할수 있고 똑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즐거운 걸음이었읍니다.
공부도 함께 할수있는 후기는 늘 감사하며 수고하셨읍네당.....*(_ _)*
이렇게 멋진후기 올리시느라 시간이 필요하셨군요
멋진사진 글 읽으며 그날의 행복을 다시 맛봅니다
감사드립니다
내도 기회가 있다면 다시 걷구싶은길...!
조금 더 욕심내 입암2km지나 삼거리에서
내장사가는길 북사면길 욕심이 생깁니다.
멋지게 수고로움 하신 작품잘보고...못찍어 아쉬었던곳 사진 몇장 ..잘모셔갑니다.
수고마니하셨습니다~~~
언제나 멋진 후기 잘 보고 갑니다~~~
수고에 감사요~~ *^^*
비 내리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눈이 내리면 눈이 와서 좋고 이런 날 저런 날, 나름대로 다~좋아서 도보 길은 언제나 맑음입니다~낙화유수님 고생 많으셨구요~감사합니다~
낙화유수님이 이번 여행도보를 총정리해 주셨네요. 이젠 여행도보 수능시험 봐도 될 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외롭게 진사로서의 소임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데 부끄럽게시리 이 늙은 몰골은 왜 올리셨나요.. ㅠㅠ
낙화유수님!
'달인'에다 '마법사'까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올 여름 再방문! 콜입니다~
달달한 음악에 취해 후기에 흠뻑 빠져보는 아침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기다린 보람을 무색하게 하지않는 멋진 후기입니다
낙화유수님의 인물사진이 좋은 이유는.,.
독특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랄까??~~~
정말 정말 오랜만에 낙화님의 후기를 보네요... 많이 많이 반가운 마음 전합니다...
백양사 애기단풍 보러 다녀 온 기억이 새록 새록... 몽계폭포는 여전히 겨울에도 콸..콸...
말이 필요없죠잉~
제가 사진을 안찍은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죠잉~
볼수록 신기하죠잉~
저리 많은 기록들과 사진들~ 정리 그리고 ...
자주 나오시란 얘기 예서 멈춰야 할듯!
쌍코피 터지실듯 하야......ㅋ
백양사 사진들! 눈을 뗄수 없었답니다.
내장산과 백양사 마무리 완결편!!!
고맙습니다~^^
달도 숨은 고개 장성새재...summary가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문학적인 느낌이 섬세함이랄까~끝까지 다 읽고 갑니다..
여름 장성새재 기대하고 시프므니다.. good~~~~*(*
낙화유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온순하고 멋진 길이라며 사박사박 걸었는데
후기를 보니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줄 몰랐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길의 터프가이 낙화유수님 용의여의주 금시초문인데 신기롭네여 ㅎ사진 인물보다 잘나오게
해줘서 고맙구요 수고 했습니다. ^ ^~~~~~~~~~~~~~~
헐~~다시 보니 백양사 용을 닮은(?) 소나무의 치장이 백해무익 조잡함으로 전락 시킨 듯 합니다.
대마도의 그 소나무와 비교 되서 더 아쉽고,,,, 하치님 독사진 참 이뻐요~~
이제야 봅니다.
이렇게 멋진 후기를 올려주시느라 시간이 걸리셨군요.
멋진 사진 감상 잘하고 갑니다.
저도 이제서야 들어와보네요..
저도 인물이 큰 사진찍기를 좋아하는데 사진컷이 제 취향과 비슷하시네요~
암튼 덕분에 영상으로 한번 더 다녀오는 호사를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