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교과서를 개발하겠다던 교육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알 만한 연대순이 틀리는가 하면 친일·독재 미화 논란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나친 나열식 서술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늘릴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건 나열식 서술에 오류·왜곡 곳곳서 확인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가 최근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바람대로 국정교과서가 교육 현장에 적용된다면 올해부터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한국사에 대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학생들의 학업 능력이나 수능 시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많은 사실을 나열식으로 기술한 데 따른 것이다. 또 국정교과서가 교사의 강의 위주가 아니라 학생 중심의 참여형 수업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성과도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수업을 운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사건 나열식 기술인 데다 본문과 활동 문제가 연결되지 않기도 해 학생들이 교과서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또한 국정교과서 서술 내용 곳곳에서 오류와 왜곡이 확인되고 있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에 따르면 세계사가 포함된 중학교 역사 2의 경우 세계 사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지 않거나 편향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사학계는 최근 함무라비(기원전 1728~1686)보다 400여 년 전에 사용된 우르남무(기원전 2112~2095) 법전을 발굴했다. 은퇴한 보수 원로 학자 중심의 집필진이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또 독일 나치 정권의 등장과정을 미화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최소화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파시즘의 등장 과정을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8였다”로 합리화하는가 하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독일 나치의 반인륜적 범행을 “유대인을 박해하였다”로 축소해 기술했다.
한국사 영역에서도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국정교과서는 편찬 기준마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고려시대 토지제도인 공음전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편찬 기준에 ‘공음전은 공로를 세운 관료에게 지급하는 토지임에 유의한다’고 돼 있지만 교과서에는 ‘고위 관료들에게 지급돼 세습이 가능했던 공음전’으로 기술돼 있다. 이 교수는 이어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 경향은 국제 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지위 등이지만 이 분야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기존 교과서보다 퇴보했다”고 강조했다.
국가 폭력 외면·독재 미화도 논란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현대사 부문에서 국가 폭력과 인권 탄압 서술 누락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등 과거사 진상 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 국가폭력 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사 부분 서술만 보면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반공과 안보라는 냉전 논리에 입각한 국방부의 정훈 교과서 같다”고 혹평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미래엔출판사가 출간한 기존 검정 교과서의 경우 6쪽이었던 박정희 관련 서술 분량이 9쪽으로 늘었다. 국정교과서 전체 분량이 검정 교과서에 비해 20% 가량 줄어든 것까지 고려하면 증가 폭은 더 커진다. 그는 “6월 항쟁 이후 30년 세월은 4쪽 안팎에 불과하다. 박정희란 단어를 20회 이상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 주도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안보를 지키며 산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유신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식으로까지 논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