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8장 인생사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라 8: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라 8: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라 8: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라 8: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라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라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인생사는 하나같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든 힘겨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다가옵니다. 옆사람이 볼 때는 쉬운 일 같은데 본인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필요합니다.
레위인들 데려가기
에스라의 결심은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갈 사람들을 모집했는데 2천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막상 성전에서 봉사하고 율법을 배워서 가르칠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지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에스라는 기가막혔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하며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족장들을 불러모아서 레위사람들을 모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종사할 259명의 사람들이 모아졌습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레위인들이 모이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18)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들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고 나가면 아무리 막막한 상황이라도 한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의 도움 거절하기
에스라는 평소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사렘으로 가는 길에 군사들을 붙여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군사들의 도움없이 먼길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대로 하나님이 도우셔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인생 살이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항상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붙여 주셔야만 되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우심을 입어야만 됩니다. 에스라는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도우심을 입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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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8장. 영적 자존심이 필요하다.
1. 아닥사스다 왕의 명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2차 귀환을 하는 무리의 지도자인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가졌던 태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잃어버린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영적 자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먼저 2차로 귀환하는 백성의 자손별 숫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1~14). 규모는 남자가 약 1500명 정도로 부녀자를 합하면 약 5000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 귀환할 백성을 전부 모았는데 에스라는 그들 중에 레위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15).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성전인데, 레위인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목사가 없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3.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레위인들이 왜 없었을까요?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므로 다른 지파들과 같이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이국 생활에서 나름대로 정착하여 살게 된 레위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땅이 없이 성전의 봉사를 한다는 것은, 큰 믿음의 결단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레위인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이 망하고 끌려온 지 130여년이나 지난 이제 그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게다가 130년의 세월을 볼 때, 귀환하는 백성은 모두 외국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이 아니었겠습니까?
4. 이제 에스라는 급히 족장들을 모아 레위인을 찾도록 지시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합당한 레위인들을 찾게 됩니다(18). 여기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는 표현은 에스라서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표현입니다. 성전 건축과 역사적 귀환이란 사건은 결코 인간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으로 가능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을 기대하고 살아갑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살아야 합니다.
5. 에스라는 출발에 앞서 아하와 강가에 모인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에스라는 왕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7:6), 부녀자들을 포함한 이 먼 귀환 여정의 안전을 위하여 왕에게 군사를 요청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왕에게 자신이 섬기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도우시는 분인지를 수차례 말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스라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말과 신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러한 결심은 5000여명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모든 백성과 함께 금식하여 은혜를 구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23). ‘하나님의 손이 도우사’ 그 멀고 먼 여정 동안 이들을 모든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셨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3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또한 그 믿음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6.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 자존심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적 자존심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 특별히 말과 태도와 행동으로 표현된 우리의 신앙에 책임을 지는 태도입니다. 어떤 누구라도, 신앙에 대해, 은혜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도 하고 결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삶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실행에 있어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거기에 자기에게 맡겨진 목숨들이 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 자존심, 영적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람을 의지하거나, 재물을 의지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적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너무나 세속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적인 방식과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