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일강 하류 델타(삼각주) 지경에 위치해 있다. 나일강은 장장 6,670km 이상을 흘러 내려 지중해로 합류한다. 나일강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기 전 약 2백km 지점에서 부채꼴로 갈라져 나일강 하류 삼각주를 이룬다. 나일강 물줄기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거대한 도시 카이로가 있다.
카이로는 이집트 아랍 공화국의 수도이자, 아프리카 최대 도시로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이다. 약 250개의 사원과 카이로 대학 및 알아즈하르 대학(이슬람 대학), 회교 박물관, 이집트 국립 박물관(고대유물 전시) 등이 있으며, 원래 로마의 요새 바벨론이 있던 부근에 642년 아랍인의 군대 주둔지(푸스타트)로 세워졌으나, 새 도시는 968년 파티마조가 건설, 973년에 수도로 삼았다.
카이로와 구약 성경의 관계는 요셉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관이 된 요셉은 ‘온’이라는 도시의 제사장 딸과 결혼한다. 온이 바로 오늘날의 카이로이다. 온은 태양신을 섬기던 도시로, 이곳에는 태양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다. 희랍 사람들은 온을 태양의 도시라는 뜻의 헬리오폴리스로 불러, 오늘날에도 카이로의 한 구역은 이 이름대로 불린다.
- 이집트 아랍공화궁의 수도로 아랍어로는 ‘미즈르’(Misr)로 불림
- 세계 대도시 중 가장 강우량이 적은 도시(연평균 28mm), 1월의 평균기온 12.4℃, 7월 28.2℃
- 이슬람교가 번창한 이 도시에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콥틱 교회가 있음. 이집트의 콥틱 교인은 전체 인구의 약 20%로 추정됨.
피라미드(기자 지역)
피라미드는 석재 구조물로서 고대왕국 시대부터 제2중간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유행했던 고대 이집트의 무덤 유적이다. 주전 2세기 경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피라미드는 대표적인 기자를 비롯하여 이집트에서는 모두 14군데에서 약 70개 정도가 확인되었다. 피라미드의 직접적인 기원은 마스터바(Mastaba)라 불리는 무덤의 상부구조가 여러 겹 층층이 올려 진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라미드는 원래 장례 건축으로서 넓은 의미의 피라미드 복합체로 구성되었다. 이는 중심의 피라미드 외에 나일 강변의 골짜기 신전(valley temple), 피라미드 동쪽으로 건설된 장례 신전(mortuary temple), 이들을 이어 주는 뱃길(causeway)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카이로 시의 남서쪽으로 약 9km 떨어진 지역에 있는 기자(Gizah)는 세 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하다. 이들 피라미드는 모두 제 4왕조 (주전2613-2494년)의 파라오들인 쿠푸(Cheops=Chufu), 카프라(Chephren=Chafra), 멘카우라(Mykerinos=Menkaure)의 것이다. 그 중 제일 큰 것이 쿠푸 왕의 무덤이고, 그의 아들 카프라의 무덤이 그 다음으로 크다. 가장 규모가 작은 피라미드가 멘카우라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하나를 짓는데 20여 년이 걸리고, 10만 명의 인원이 동원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드(I.E.S. Edward)의 <애굽의 피라미드>(The Pyramids of Egypt)에 의하면 쿠푸의 피라미드를 짓는데 230만개의 돌이 소요되었다. 돌 하나의 평균 무게가 2-2.5톤에서 가장 큰 것은 15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원래 높이는 146m인데 10m 가량이 무너져 내렸다. 그 무너져 내린 부분에는 그 만한 높이의 철봉을 세워 놓았다. 밑 부분은 한 변의 길이가 230m인 정방형으로 그 밑면적은 52.900m2에 달한다.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교살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며, 원래 이집트어로는 ‘살아있는 형상’이라는 의미의 ‘셰세프 안크’(shesep ankh)로 불려졌다.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인두사신(人頭獅身)의 괴물이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여성으로 날개가 있으나, 고대 이집트의 것은 남성이며 날개가 없다. 사람 얼굴 외에 양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도 있다. 이 중에서 기자에 위치한 스핑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자의 몸과 사람의 얼굴이 결합된 형태로 남아 있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두 번째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신전 가까이에 있다.
이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의 모습이다. 길이 73m, 높이 20m에 이르는 이 스핑크스는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서 주변을 골짜기 같이 깎아서 만들게 되었다. 제 4왕조시대에 만들어져 오랜 세월동안 스핑크스는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변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주전 1400년경 투트모세 4세가 왕자 시절 사냥 후 지쳐서 스핑크스 머리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스핑크스가 ‘숨막히는 모래에서 나를 꺼내주면 왕이 되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뒤 모래를 치워 스핑크스의 모습을 드러나게 했고, 왕이 된 투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의 두 발 사이에 이 꿈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신전 건축이 융성하던 신왕국 때는 신전의 수호신으로 많이 세워졌다.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 앞에는 수십 개의 양머리의 스핑크스가 있는 일명 ‘스핑크스의 길’이 있다.
- 석회암 바위산을 깎아 만듦
- 4,500년 가운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모래에 덮여 있었음
- 1,380년 광신도들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손상됨
- 1818년 스핑크스의 앞발 사이에서 카비글리아가 1m 높이의 수염을 발견, 현제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 기자의 공동묘지는 카프라의 아들 멘카우라에 의해 완성됨
(이건 산이다 산! 산 세 개가 우뚝 서 있다)
눈 앞에 펼쳐진 산같은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왕인 파라오(Pharaoh)의 무덤
고대 이집트는 성경의 애굽이고 파라오는 바로를 말하는 것이다!
입구쪽에 위치한 제일 큰 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2대왕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우리를 내려 준 곳은 장소가 비좁아
카메라 화각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크다.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 전제 왕국이 형성된 이후
30개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이를 통상적으로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등
3기로 나눈다. 그 중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피라미드가 건축된 것은
고왕국의 제3~제4 왕조(전 2585~2395경) 때라고 한다.
이집트의 파라미드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쿠푸 왕의 것으로
높이가 146m이며, 밑변은 한 변이 각각 230m에 이르는 정방형이며,
각 변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재료로 쓰인 돌은
누런색이 도는 석회암인데, 평균 1.5톤의 돌 230만 개를 쌓아 올렸다.
이 피라미드를 완성하는 데 10만 명의 백성이 해마다 3개월씩
동원되어 2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대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에 있는 가장 큰 피라미드를 대 피라미드라고 한다.
이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560년 무렵 세워진 쿠푸의 피라미드로
완공에는 약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바로 옆에 아들 및 손자까지
파라오 3대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있다. 대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다.
(낙타꾼들이 풍경으로는 좋으나)
호객행위가 심하다. 따라 다니면서 낙타를 타라고 한다.
(사진 포인트 잡기가 마땅찮아 이리저리 뛰어 다녀 보지만..)
피라미드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
많은 문명권에서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태왕릉이나 장수왕릉 등도 정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의 일종.
그중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적인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
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80여 기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나일 강 서안
사막 연변 여기 저기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2권)'에 나오는
기록이 현존하는 피라미드에 대한 제일 오래된 기록이라고 한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기자의 대(大)피라미드는 10만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낙타꾼들.. 피라미드 주위에만 있는게 아니다)
(피라미드는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유명하다)
피라미드는 갑자기 나타난 건축 양식으로
아랍어로 '직사각형의 벤치'라는 의미의 마스타바라는
왕을 매장하는 벽돌식 단층 무덤에서 발전하였다고 한다.
파라오 조세르(Djoser) 시대에 이 마스타바를 더 높고 웅장한
형태로 변형하여 다층 마스타바 혹은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임호테프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이후 파라오 스네프루(Sneferu, Snefru)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의 형태의 건축물을 건설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당대의 피라미드 건축 경험 부족으로 붕괴하고 만다.
스네프루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피라미드를 지었지만 피라미드의
각이 너무 예각이었던 탓에 다시 붕괴 위험에 부딪치자 어쩔 수 없이
공사 중에 각도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를 굴절 피라미드라고 한다.
그러나 스네프루는 굴절 피라미드로 만족할 수 없었고, 더욱 상징적이고
미적으로 완성된 피라미드를 짓기 위한 재차의 노력을 했으며,
이 건축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이미지와 같은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다음의 파라오 쿠푸(Khufu)는 이미 완성된 선대 파라오의
피라미드에서 그 규모를 극대화하여 대규모의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이러한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전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건축 기술의 개량과 발전이 바탕이 된 것이며 단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이후 거대한 피라미드가 정점을 이루고, 평민들까지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게 되면서 사람 크기 정도의
작은 피라미드들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일위는 앞쪽이 카프라왕, 뒤쪽이 쿠푸왕, 아래는 멘카우라왕 피라미드)
파라오는 저승세계의 왕인 오시리스의 환생이자
|
첫댓글 람세스 2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이주 이후 400년이 지난 때 일어난 파라오이며 그는 하피루이민족이던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축출하였다. 그 때가 모세의 인도를 따라 출애굽할 때이며 람세스 2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람세스 성과 비돔 성을 건설하였고 자기의 이름을 따라 고셈지역을 람세스라고 부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