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최용현(수필가)
영화 속의 악독한 이미지 때문에 유명 여배우들이 모두 출연을 고사(固辭)한 덕분에 단역만 해오던 무명배우가 주인공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귀머거리 부모들을 위해 수상소감을 수화(手話)로 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서 수간호사 역을 맡아 열연한 루이스 플레처 얘기이다. 2022년 9월 24일, 그녀가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에 나온 켄 키시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년)는 미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병원에서 수간호사로 대변되는 기득권세력의 억압과 이에 맞서서 저항하는 한 남자환자를 통해 1960년대 후반 미국영화의 주류인 기존질서에 대한 반항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 영화는 1976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모두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 핵심 5개 부문의 상을 석권한다. 영화사상 아카데미 ‘톱 파이브(top five)’를 모두 차지한 영화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양들의 침묵’(1991년) 세 편뿐이다.
허풍쟁이에다 깡패, 색골인 38세의 부랑아 맥 머피(잭 니콜슨 扮)는 교도소에서 시키는 노역이 싫어서 일부러 미친 척하다가 정신병원으로 이감된다. 그곳에서 벙어리와 귀머거리에다 덩치가 엄청나게 큰 인디언 추장 브롭덴(윌 샘슨 扮)과 난장이 마티니, 말더듬이 소년 빌리, 하딩, 테버 등의 동료환자들과 카드놀이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수간호사 래치드(루이스 플레처 扮)가 주재하는 정신적 치료요법인 집단토론회가 열린다. 맥 머피가 오늘부터 시작하는 월드시리즈 TV중계를 보여 달라고 건의하자, 래치드는 환자들에게 익숙한 일과시간표를 변경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도 맥 머피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래치드는 다수결로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참석환자 9명 전원이 찬성에 손을 들었지만, 래치드는 이 병동엔 18명의 환자가 있기 때문에 과반수가 안 된다고 말한다. 맥 머피는 그들은 모두 식물인간이라고 반박하지만 래치드는 모두 같은 ‘환자’라고 말한다. 그때 청소를 하던 브롭덴이 손을 들어 과반수를 넘기지만 래치드는 토론회가 끝날 시점에는 9:9였다며 부결되었다고 말한다.
주저앉아 분노를 삭이던 맥 머피가 꺼져있는 TV를 쳐다보면서 갑자기 큰소리로 가상의 야구중계를 시작한다. 그러자 환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탄성을 지르고 의자 위에서 발을 구르는 등 마치 실제로 야구경기가 방영되는 것처럼 TV 앞에서 소동을 벌인다. 그들의 귀에는 ‘즉시 중지’를 요구하는 래치드의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맥 머피는 주말 외출시간에 환자들을 병원 버스에 태우고 운전하여 병원을 빠져나가 여자 친구 캔디까지 차에 태운다. 그리고 낚싯배를 타고 나가 환자들에게는 바다낚시를 가르쳐주고, 자신은 선실에서 캔디와 재미를 본다. 또 병원 내에서도 농구를 가르치거나 파티를 여는 등 자유분방하게 행동한다. 그러자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줄 알았던 브롭덴이 말문을 열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통한 맥 머피는 브롭덴에게 함께 탈출하여 캐나다로 가자고 말한다.
어느 일요일 밤, 맥 머피는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캔디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사들고 면회를 오라고 한다. 캔디와 그녀의 친구 로즈가 병원에 오자, 맥 머피는 관리인에게 술을 먹이고 로즈와 동침을 시켜준다. 그런 다음, 동료환자들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광란의 파티를 연다. 그러다가 빌리가 캔디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채고 두 사람을 한 방에 넣어 준다.
다음날 아침, 출근한 래치드는 난장판이 된 병원의 모습과 방에서 빌리가 벌거벗고 웬 여자와 함께 누워있는 모습을 본다. 래치드는 친구인 빌리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한다. 빌리가 무릎을 꿇고 빌어도 래치드가 뜻을 굽히지 않자, 빌리는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만다. 그러자 맥 머피는 화를 참지 못하고 래치드의 목을 조르다가 끌려가 뇌수술을 당한다.
며칠 후, 두 남자가 맥 머피를 부축해 와서 침대에 눕히고 나가자, 브롭덴이 다가가 이름을 불러보지만 맥 머피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의 시선은 멍하게 허공을 향해 있고 이마에는 수술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맥 머피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무기력한 인간,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탈출을 결심한 브롭덴은 맥 머피를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베개로 맥 머피의 얼굴을 누르는데, 그러자 발버둥 치던 맥 머피의 팔이 떨궈지며 축 늘어진다. 브롭덴은 욕실로 들어가 육중한 식수대를 뽑아 창문을 부수고 탈출한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눈을 뜬 테버가 미친 듯이 웃어대는 소리를 뒤로 하고, 브롭덴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고 할 수 있는 맥 머피, 즉 잭 니콜슨의 자유분방하면서도 다양한 표정 연기는 화면을 압도한다. 또 부드러운 음성과 표정 속에 속내를 감춘 래치드, 즉 루이스 플레처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연기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다. 둘 다 남녀주연상 수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연기로 증명하고 있다. 환자 테버로 나오는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백 투 더 퓨처’(1985년) 시리즈에 나오는 괴짜 박사이고, 난쟁이 환자 마티니는 배우 겸 감독으로 유명한 147cm 키의 대니 드비토이다. 두 사람의 젊었을 때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새롭다.
인디언 추장 브롭덴이 식물인간이 된 맥 머피에게 함께 가자면서 안락사 시키고 병원을 탈출하는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잘 녹아있는 것 같다.
첫댓글 오래 전 나의 삶이 보이지 않는 사회 율법으로 구속돼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때 참 공감을 많이하며 봤던 영화네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 경험이 있으시다면 영화 내용에 훨씬 더 공감을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