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아침저녁으로 무더위를 한풀 꺾은 서늘함이 먼저 살갗에 전갈을 보내더니 이제 가을이 성큼 눈으로 접어드는가 보다.
온 나라의 이름난 산과 숲에 단풍이 곱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떠올라 내 맘을 들뜨게 한다.
속담에 “장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찌 효부(孝夫)인들 있을까만 반년을 넘어 앓고 있는 아내를 혼자 두고 선바람을 쐬러 나간다는 것은 도의에 앞서 양심의 문제이다.
더욱이 올 들어 내 건강도 썩 좋지 못하여, 5년 전 남한한성에서 우연히 만나 2018년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믿음직한 내 후배와의 굳은 약속도, 그렇게 바라던 동해안 “해파랑 길(770km)” 걷기도 모두 접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가까운 곳이라고 가을이 오지 않을 이가 없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름 내내 날이 밝기 전에 오르던 개운산 산책을 오후 3시로 늦추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의 으뜸징표라면 단풍이다.
붉을 단(丹)자와 단풍나무 풍(楓)자를 쓴 단풍이란 단풍나무(신나무라고도 함)의 줄임말인데, 늦가을에 그 잎이 붉게 또는 누렇게 변하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고 우리국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김태정 박사의 “한국의 자원식물(서울대출판부 간)”에 의하면 단풍나무는 갈잎 큰키나무(落葉喬木)로, 잎이 봄부터 가을까지 붉은 것은 “홍단풍”이라한다 하였는데, 내가 살핀 바로는 봄에 붉은 잎을 피워서 한여름 푸르렀다가 가을에 다시 붉어지니 행여 이 두 가지 종류가 다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산책길로 접어드니 갈잎이 소복이 쌓여 가을이 깊어감을 느끼게 하더니, 툭 트인 운동장에 이르니 눈길 닿는 곳마다 단풍이 곱다.
무지개의 빛깔이 일곱 가지인 것이야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만, 단풍을 왜 오색(五色)단풍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파랑, 노랑, 빨강, 하양, 검정이 오색이라는데, 파랑은 단풍이 미쳐 들지 않은 것이고 검은 단풍은 아직 본 일이 없으니 그저 단풍이 울긋불긋 여러 가지 색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단풍의 빛깔은 빨강과 노랑이 으뜸이 아니랴!
북한산이 바라다 보이는 운동장 북녘 펜스 아래 울타리처럼 심어진 키 작은 참빗살나무 잎이 수줍은 시골소녀의 볼 보다 더 해맑은 진홍이다.
개운산 북녘으로 뻗은 코숭이 전설의 북바위(鐘岩)를 타고 오르는 담장이덩쿨. 거대한 자연의 캠버스에 추상화를 그려나가는 붉은 열정이 차라리 뜨겁게 느껴진다.
마로니에 마당의 나무벤치에 잠시 쉬었다가 일어설 때 하늘을 가로막던 그 탐스런 칠엽수 입사귀가 노랗게 물 드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려오는 길, 나무계단 옆에 우거진 샛노란 단풍을 보고 나는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대개의 산열매들이 붉은 색인데 거기 노란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기 때문이다.
무슨 나무일까?
노란 잎과 노란 열매만 가지고 그 이름을 찾지 못해 잠을 설치다가,
그만 PC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첫댓글 단풍에 대한 여러가지 상식을 알게 해 감사합니다.
지금 한참 단풍철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석산님의 자유게시판에서는 참으로 폭넓은 진리를 배우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