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서일지 (2)
(24.05.04~05.25)
이렇게 비 오는 날엔
-2일차(24.05.05)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이 내린다고 한다. 아내를 데리고 어딜 나가기는 무리다. 차량에 먼지가 잔뜩 묻어 지저분했는데 이참에 봄비로 세차를 할까 싶다. 그리고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 파묻히기로 한다.
책을 여러 권 한 번에 빌려놓으면 흔히 하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을 읽다 잠시 지루하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책을 들어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전부 일시적 스캔을 거치다 보면 나중에 읽지 않는 책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 읽는 순서를 미리 정해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 읽을 요량이다.
1)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2)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 - 이철성
3) 《사서 일기》 - 앨리 모건
4) 《나와 퓨마의 나날들》 - 로라 콜먼
5)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6) 《서머싯 몸 단편선 1》 - 서머싯 몸
7)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 조너선 커우프만
8) 《청부 살인자의 성모》 - 페르난도 바예호
-어느 누구나 ‘위대한’ 집사라고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마셜 씨나 레인 씨 같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저 무작정 유능하기만 한 집사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거기에 가장 근접하는 의미를 담아낸 것이 바로 ‘품위’라는 단어다. (<첫날 저녁 : 솔즈베리> 중에서)
자신이 집사로 있던 ‘달링턴 홀’이라는 대저택의 주인이 영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뀌며 새 주인이 주인공에게 연료비를 대줄테니 잠시 휴가를 다녀오라는 제의를 받고 국내(영국)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소설을 쓴 일본이 출생지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나이 다섯 살이던 1960년에 영국으로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의 영국으로 그의 나이 34살이던 1989년에 이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한다.
어릴 때 이주한 낯선 외국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보아온 영국을 내지인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차분하게 회고록적인 문체로 어떤 인생(주인공인 집사)에서 삶의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오래고도 깊은 역사를 외국인인 자신의 내면 속에 온전히 체화시켜 생각하고, 영어로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중략)...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 (<첫날 저녁 : 솔즈베리> 중에서)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