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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Whom the Bell Tolls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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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 어느 누구도 저 혼자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 폭풍이 불어와 해변을 쓸어 가면, 씻긴 만큼 곶(岬)은 줄어 들고 결국 대륙도 줄어 듦이라. 그대 친구와 그대 자신의 농토가 줄어드는 것. 누구든지 죽으면 내가 상처를 입는 것이니 나 또한 인류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인간은 누구나 연대(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명제를 노년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영화로 한번 더 유명해지고...
영화속에서 이렇게 흘린 눈물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존 던의 시를 애창하게 만들었던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집필 모습과 수염난 얼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하면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게 만드시는 부친 모습.
2005년에 소천하신 모친과 함께... 젊은 날의 흔적...
장남으로 태어난 본 카페지기의 어릴적 모습.
부친은 2009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신촌 세브란스에서
치료 받으셨다. 그렇게 팽팽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메멘토 모리를 일깨워주는 주인공으로 변신되신 것!
인생은 이 땅에 왔다가 홀연히 가게 되는 법.
야윈 어깨, 백발의 흐트러짐, 갸날퍼진 팔다리,
쭈글꾸글해지신 얼굴과 피부에서 슬픔이 배어나온다.
옛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생 마지막 종이 아직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부친의 모습속에서 그리고 늙어가는 나의 모습속에서
어느덧 그 종소리가 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오늘 울리는 조종 소리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며야 하겠다.
p.s. ... 추가 후기
부친께서는 2010년 1월 9일 하늘나라로 소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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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어디서나 화두로 떠오른 Well- Being! 그러나 조용한 기세몰이로서의 Well- Dying도 그 못지않다 그누구도 피해 갈수없는 노쇠현상...바쁜?일상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다고.. 핑계 대다가 결국은 돈걱정 하면서도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현실을 많이본다 그럴때 느끼는 서운함 외로움 소외감들을 결국 안으로 곰삭히다가 서서히 받아들일 즈음 이미 몸은 손 쓸수 없게 까지...그런데 이제부터 잘해보겠다는 때늦은 한마디! 어떻게?? 조금더 일찍 사랑의 실천을 할 수는 없었던 걸까? 못내 안타까운 심정..요양원동기가 진정한 친구라는 신조어까지등장한 세태라 미리미리 맘 비우며 Well-Being 하는 것도 Well-dying의 좋은 대처방법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