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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주제 : 한국 교육의 구조와 현실
-교재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김순천 지음, 동녘 펴냄)
<교육불가능의 시대>(이계삼 엄기호 외 지음, 교육공동체 벗 펴냄)
이계삼 선생님 글을 함께 읽으면서 내용을 풀어 주셨어요.이 날 늦게 수업에 참석하는 바람에 앞에 30분가량은 듣지 못해서 모자라는 부분이 있을겁니다.
"온유=땅" humus(흙), 땅의 속성은 농민의 마음과 같다.농업사회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감각이 사라진 산업초기사회에 농업운동은 처절했다.이전의 기억과 대조되었기 때문일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은 곧 산업사회에 적응을 하게 되었고 이전 사회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경인선이 완공되고 꼬마아이가 기차에 치어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그 때 사람들은 철도에서 아이의 장례를 치르며 기차를 불태우려고 시도했다.<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뽀르뚜까가 떠오른다. 꼬마 주인공 제제로부터 소중함을 앗아간 야속한 기차 망가라치바.제제는 기차를 천둥같은 존재로 받아들였고 결국 아저씨의 죽음으로 기차를 저주하게 된다. 공장 역시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괴물로 제제는 받아들인다.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에서도 산업화 초기 시대를 저주한 구절이 등장한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울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이 구절은 예언자적인 시선으로 기계앞에서 열 몇시간이나 계속 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때의 심정을 표현한다. 또, '악마의 맷돌'이란 산업혁명기 자연과 인간성 파괴를 은유하는 관용어로 쓰이는데 시장경제 즉 공장을 가리키고 인간적인 것들이 갈려나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함께하는 할머니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요대로만" 신기하게도 이반 일리치의 기본 논리인 '민중의 평화' 가 녹아있다. 이는 진보의 논리와는 반대의 개념이다.미래를 지향하는 말이 아니다.박노자가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이야기 한 삶과 로베르트 수사가 말한 느릿느릿한 삶을 뜻한다.계몽해서 더 나은 삶을 살자는 말은 아니다.삶의 지표를 공유하고 이대로만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어린이책시민연대도 마찬가지이다.힘있는 유력단체가 되는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 서로 존중하면서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발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퇴행하는것은 아니다.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그래서 적응형 인간만이 살아 남는다고 생각한다.복잡한 생각을 하면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글을 써보면 알수 있다 정답이 있는 논술은 상위권 아이들이 잘쓴다.그러나 일상적인 글은 중하위권 아이들이 훨씬 잘 쓴다.'적응형인간'은 파시즘의 기본논리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볼수 있듯이 대표적으로 아이히만은 생각하기 싫어한 인물이다. 죄책감으로 악몽에 시달리다가 금방 잊어버리고 일을 걱정한 사람이다. 엄기호의<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는 애들의 정서와 생활을 알려면 웹툰을 보라고 한다.조석의 <마음의 소리>에는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반전코드가 가득하다.아이들은 왜 반전을 좋아하나? 실제 아이들의 삶속에 반전이 없다.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존재이며 자연스럽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미카엘 엔데의<모모>에서 원형극장 자체를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고 드라마를 만드는 장면을 통해 알수 있다.회색 신사가 준 장난감은 상상력을 박탈하는 지루한 것으로 버리고 만다. 아이들은 원래부터 다른세계를 동경하는 존재인 것이다.그래서 반전을 좋아하지만 늘 똑같은 세상을 지루하게 살아가고 있다.아이들에게는 일탈이 없고 예측 가능한 날만이 존재한다.반 아이들과 1년을 마무리하는 글쓰기를 할 때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맥주마셨던 일,비빔밥 해 먹었던 일등 재미있었던 하루만을 기억했다 .수업205일은 기억에 없고 그 하루만을 기억한다.
<영혼없는 사회> 어느 여고생의 시
인생은 하루뿐
나는 오늘도 내 자신의 한계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절제하고 견디려 노력한다
그러다 한순간 방심하면 모든 노력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나는 오늘도 시간에 쫓기며 피로한 몸을
등지고 하얀 종이에 글씨와 숫자를 채워 나간다
지금은 힘들지라도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시간을 쪼개어 공부한다
나는 오늘도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의자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다 눈길을 돌리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펜을 놀리는 아이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더 불안해진다
18세 꽃다운 나이라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나날을 반복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살아간다
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다 포기한다
나는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과목과
똑같은 일과로 하루를 마친다
아직까지 나의 인생은 단 하루뿐이었다
매일 똑 같은 나날뿐이었으니까
나는 아마 졸업하기 전까지
나에게 단 하루뿐이다
매일 똑같은 나날뿐일 테니까
아이들에게는 여러날이 있지 않다.단 하루밖에 없는것이다.그리워할 대용물의 세계,서사가 좌절되니 아이들은 웹툰과 같은 반전이라도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풍,번개같은 것에 열광하기도 한다.아이들에게는 학교의 기억이 없으니 인생의 기억도 없다.삶이 이런식으로 진행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모>는 그래서 의미 심장한 소설 같다.회색인간은 나중에 쓰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라고 말한다 현재의 시간은 없는 근대의 시간개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학교,직장,노후를 거치면서 평생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걱정하면 산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관심을 받고싶어서 '인정투쟁'을 하며 살아간다.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자신을 무서울 정도로 잘 안다.겉모습과는 달리 속마음은 차분하고 진지하다.어른들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내버려 두고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랄뿐이다.학교폭력을 아이문제(가해자,피해자)로 축소시키려고 하지만 실은 사회문제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긍정의 화신'같다.현실을 인정하고 잘 보이려고만 애쓴다. 뭐가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하며 들어 줄 친구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좋은 프로그램이나 좋은 선생님 좋은 강의가 필요한게 아니라 좋은 친구와 서로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이 것이 인간적인 교섭이고 인간의 성장이다.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에서 정신치료,심리치료를 받는것은 아이를 분석화 대상화 하여 ADHD ,조울증 등 낙인을 찍을뿐이다.언어의 무서움은 존재를 고정하는데 있다.MBTI는 인간탐구지식의 결정체이기는 하지만 기분나쁘다.어떻게 이것으로 인간을 알수 있나?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말이다.존재는 고정화,고착화 될수 없다.인간은 신비롭고 알수 없는 존재이다.관계를 통해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수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관계'이다.아이들은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웃고 떠든다.너무 좋은 것이다.그래서 관계는 긍정되어야 한다. 학교를 병원화하는 심리치료가 아니라 관계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기계적인 치유는 인간을 더 깊이 병들게 한다.때로는 분노,화도 내야 한다.아이는 원래부터 관계지향적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우리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 그리고 참혹한 이세상을 바꾸어 달라는 것'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정책상 학원과 심야학습을 제한하는 제도도 중요하다.입시도 필요하다.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사회는 바닥을 친 경우라서 조그만 반향이 물꼬를 틀수도 있다.야자를 전국에서 불법화 한다면 아이들의 삶과 학교는 달라질수 있다.학교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하루 5시간이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 교실안의 낙인(왕따,따돌림)은 대학이나 교실밖에서는 쉽게 해소 된다. 공간의 변화가 원인이다.학교라는 시공간의 촘촘한 공격성때문에 친구사이에 문제가 생긴다.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선생님에게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제도를 없애고 사교육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드는 등 학교 안 밖의 학습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최소가 아니라 최대치라도 말이다.이런것이 사교육을 강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이미 돈은 없기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않게 될 것이다.아이들의 시공간이 생길꺼라는 면에서 낙관적이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를 통해서는 대학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꺼리가 많다. 초중고는 차라리 낫다.훨씬 삭막한 것은 대학이다.친구도 없고 모든시간을 같이 할수가 없다.대안학교를 보내는 것보다 대학을 안보내는 것이 더 낫다.대학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그럼에도 아이들은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 선망을 가지고 있다 1년이면 이 선망은 대부분 사라진다고 한다.쓸모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더 잘 안다.굳이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져라.대학졸업장은 이제 무용지물이다.엄기호는 공동체,친구가 우리삶을 채워줄 것이라고 했다.공감 즉 같이 애도할줄 아는 공동체가 긴요하다.달공부도 작은 공동체이기도 하다.작은 공동체라면 어떤 의미라도 있다.수유너머같은 학습 공동체나 빈집같은 곳이 실질적인 대학(큰 배움)이다.직장문제도 농사도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껍데기뿐인 지금의 대학은 무너져 가고 있다.작은 형태의 정서 공동체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있다.그래서 아이들은 살 수 있는데 대학은 이마저도 없다.돈만 뽑아먹는 채권자이다.공격적으로 보이콧하고 다른형태로 아이들이 함께 살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그곳에서 삶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울수 있다.
나는 희망을 보기보다는 바닥과 절망을 본다.잘될꺼야 라는 긍정의 언어가 정서상 싫다.노신과 니체처럼...
우리에게 빠진것은 애도,슬픔,분노,일탈이다 이런것을 안하고 살려고 한다.점잖은게 교양이라고 생각한다.idiot(돌아이)는 그리스 시대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감정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남눈치 안보고 자기감정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bios도 의미가 변하였는데 근대이전에는 사회적생명,정치적 생명으로 남들과 어떻게 영예롭게 살것인가?의 뜻이었다가 근대 이후에는 육체적생명(bio)으로 바뀌었다 .
한국교육은 망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급진적인 실천을 하는것이 더 자연스럽고 쉽다.공동체가 없으면 모든게 다 허당이다.긍정적 선교자들이 가득차 있다 잘하자는 말만 해서는 안된다.교육공동체 '벗'은 자급자족의 어려움이 있다.그래도 필요한 것만 해나가고 있다.허위를 지적하고 혁신학교의 참모습,바른소리를 내는 곳이 있어야 한다.
아이의 삶(어떻게 살지)은 이미 정해져 있다. 많은 부분 이미 결정되었다. 부모의 총체적인 간섭으로 경로를 변경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떠나보내야 한다(수시로,심리적으로)
혁신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여전히 학교는 사람사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는 곳이다.
지적성숙프로그램보다는 학생 자체가 살아나야 한다.학생 중심으로 자치,규율,방송이 이루어지고 목공,댄스,스포츠,농업등 다양한 방과후 활동이 3시이후 이루어져 자기시간이 생겨야 한다.지금 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삶을 체험하는곳으로 아이들이 인식해야하는데 현재 혁신학교는 그냥 잘 공부하는 곳일 뿐이다.입시에 상관없이 정면도전하는 것을 겁내고 있다.
달공부 후 함께 나눈 영화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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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읽고보니 요새 아이들이 생각이 없는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아이들이 희망을 찾지 못해 생각없이 낙심한 인생을 사는지도 모르겠네요..;;슬픈 현실.